여행

방콕에서 즐긴 가장 정확한 호캉스

2024.12.12

방콕에서 즐긴 가장 정확한 호캉스

글로벌 체인 호텔에 가면 묘한 기시감에 휩싸인다. 모던한 인테리어와 편리한 시설로 가득한 고층 건물 안에 있다 보면 호텔 밖을 나서기 전까진 여기가 서울인지, 바다 건너 유럽인지 알 길이 없다. 언젠가부터 여행을 계획할 때면 에어비앤비 사이트를 더 뒤적이게 된 이유다.

태국 수완나품 공항에서 차로 40분 거리에 위치한 ‘포시즌스 호텔 방콕 앳 차오프라야 리버(Four Seasons Hotel Bangkok at Chao Phraya River)’는 실내에만 있어도 방콕의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우선 하늘 높이 우뚝 솟은 건물이 아니라는 점부터 마음에 든다. 세계적인 건축가, 장 미셸 개시(Jean-Michel Gathy)가 총괄해 2020년 12월에 개장한 이곳은 낮은 건물이 요새처럼 유기적으로 이어져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거대한 통창 너머 수공간으로 꾸민 널찍한 중정이 펼쳐진다. 수공간은 실내외 불문 호텔에서 가장 자주 보게 되는 인테리어 중 하나다. 태국의 젖줄인 차오프라야강, 즉 물가를 중심으로 발전한 방콕의 정서를 반영한 결과다. 그저 객실로 향하는 경로로 치부하기 쉬운 로비와 라운지도 마찬가지다. 코끼리 모티브와 푸릇한 정원, 태국 로컬 아티스트의 예술 작품으로 가득해 내가 지금 방콕에 있다는 사실이 걸음마다 실감 난다.

호텔은 다섯 가지 타입으로 나뉜 261개의 딜럭스와 38개의 스위트룸, 총 299개의 객실을 포함한다. 포시즌스 특유의 현대적이고 고급스러운 감성과 스파 부럽지 않은 거대한 욕조, 벽 한 면을 차지한 통창으로 쏟아지는 상냥한 햇빛이 하나의 풍경을 이룬다. 고심해야 할 건 뷰다. 차오프라야강이 훤히 내다보이는 리버 뷰와 울창한 야자수 정원을 감상할 수 있는 가든 뷰로 나뉘어 있는데, 특히 리버 뷰인 시그니처 스위트룸은 연말에 가장 빨리 예약이 마감된다. 1월 1일 차오프라야강에서 펼쳐지는 불꽃놀이의 장관을 프라이빗 테라스에서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레스토랑은 나를 더욱 ‘방콕’하고 싶게 만들었다. 광둥식 중국요리를 맛볼 수 있는 ‘유 팅 웬(Yu Ting Yuan)’, 정통 브라세리를 즐길 수 있는 프렌치 다이닝 ‘팔미에 바이 기욤 갈리오(Palmier by Guillaume Galliot)’, 신선한 제철 식재료로 이탈리아 요리를 선보이는 ‘리바 델 피움 리스토란테(Riva del Fiume Ristorante)’ 등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의 입맛을 충족시킬 식당으로 채워져 있다. 특히 3년 연속 태국 최고의 바로 선정된 ‘BKK 소셜 클럽’은 이곳에 묵지 않더라도 한 번쯤 방문해야 할 곳. 남미의 화려한 분위기를 본뜬 공간에서 비스포크 칵테일, 진귀한 샴페인 등을 야외 뜰을 바라보며 즐길 수 있다.

더 푹 자고, 더 잘 먹을 수 있었던 건 노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그저 차오프라야강을 바라보며 즐기는 야외 인피니티 풀이 다가 아니다. ‘도심 속 리조트’라는 콘셉트에 맞게 다양한 어른의 놀 거리가 준비되어 있다. 무에타이 수업과 태국 전통 가랜드, 태국 ‘국민약’으로 알려진 야돔 만들기 등 태국의 면면을 경험할 수 있는 알찬 프로그램으로 가득하다. 스팀 룸과 온수 풀까지 구비한 스파부터 명상, 침술 같은 힐링 프로그램, 24시간 피트니스 센터로 구성된 어반 웰니스 센터는 흐뭇한 재충전의 시간을 선사한다. 태국 아티스트를 조명하는 아트 스페이스(ART Space)는 현대미술관(MOCA Bangkok)과의 협업으로 탄생한 공간. 약 3개월마다 바뀌는 전시로 재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컬렉션을 감상할 수 있다. 한마디로 휴양과 체험을 파도 타듯 즐기는 하루의 연속이다. 실내외를 유연하게 잇는 구조 덕분에 모든 이동은 산책이 된다. 하루를 더 부지런히 보내고 싶다면 조깅을 꼭 해볼 것! 아침마다 로비에 물과 조깅 맵을 구비해두는데, 맵을 따라가다 보면 방콕의 아침도 밤만큼이나 근사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호텔에서 한 발짝만 내디디면 호캉스는 어느새 관광이 된다. 차오프라야강을 가로지르는 셔틀 보트는 이동이 목적이 아니어도 해볼 만한 경험이다.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30분 단위로 운항하며 방콕 최대 쇼핑몰인 아이콘시암까지 고작 10분 정도 걸린다. 호텔이 크리에이티브 디스트릭트에 위치한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서울의 힙지로와 비교되곤 하는 이 지역은 갤러리와 각종 예술적 영감으로 가득하다. 방콕의 축소판을 경험하는 듯했던 포시즌스 방콕. 마지막 밤, 차오프라야강에 비친 반짝이는 불빛을 바라보며 서울의 겨울 한가운데서 이곳을 그리워하게 될 거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포토
    Courtesy of FOUR SEASONS HOTELS & RESORTS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