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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창작물’ 보기, 창조적 근육 단련법

2025.04.30

타인의 ‘창작물’ 보기, 창조적 근육 단련법

팔짱을 끼는 대신 창조적 근육을 단련하기로 했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진짜 땀을 흘리며.

Tennis Trouble Makers, 2023, Acrylic on canvas, 225×585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Foundry Seoul. Photo by Kyung Roh.

창조적 근육

서울에서 통영으로 가는 차 안. 아침에 출발했지만 고속도로에서 저녁이 되었다. 감기가 낫지 않아 연신 코를 풀어대 6시간째 메아리를 울리던 중, 이렇게까지 해서 갈 일인가. 짜증이 툭툭 치고 올라왔다.

매년 벚꽃이 필 때쯤 통영국제음악제가 열린다. 관련해 기자 간담회에 참석하러 통영에 갔다는 핑계고, 개막 공연의 티켓을 받았기 때문이다.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와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협연으로 티켓 오픈 1분 만에 매진됐다. 임윤찬의 열혈팬인 친구는 그마저도 결제에 시간이 걸려서지, ‘1초컷’이었을 거라고 했다. 그녀는 임윤찬이 연주하는 라흐마니노프 2번 협주곡은 처음 직접 듣는다며 들떠 있었다.

저녁 6시, 공연까지 1시간 남았지만 통영국제음악당 로비는 붐볐다. 표를 구하지 못한 이들이 곰돌이 필통을 들고 서성였다. 어린 임윤찬이 썼다는 다이소 필통이다. 일명 ‘거장 필통’ 소지는 표를 구한다는 팬들 간의 암묵적 신호다. 그날 임윤찬 팬 카페에는 “다이소 통영무전점에 거장 필통 매진입니다”라는 게시 글이 올라왔다.

공연이 끝나고 같은 카페에는 현장에서 자리를 양도받은 행운의 1인 소식이 전해졌다. “표 구합니다”라고 색색으로 쓴 패널을 필통과 함께 들고 있던 여인이다. 그렇지 못한 이들은 로비 모니터에서 공연 실황을 선 채로 본 뒤 상경하거나, 이틀 뒤 열린, 역시나 30초 만에 매진된 임윤찬 피아노 리사이틀 자리가 혹시나 생길까 싶어 통영국제음악당을 다시 서성였을 것이다.

직접 들은 그의 연주는 감동이었다. 여행의 피로 때문인지, 상사의 카톡 때문인지, 초반엔 집중이 힘들었는데, 마지막 10여 초는 몰입해 눈물이 흘렀다. 통영국제음악제의 진은숙 예술감독이 말한 ‘내면으로의 여행’을 짧게나마 한 것이다.

‘이거면 충분하지.’ 나는 서울로 올라오는 마지막 휴게소에 들러 저린 다리를 풀면서 되뇌었다. 감동도 감동이지만, 임윤찬의 공연을 한 번이라도 직관했다는 것, 필통 팬덤을 알았다는 것만으로도 왕복 12시간과 돈과 체력이 아깝지 않다며 잠이 들었다.

며칠 뒤, 나는 업계 관계자들과 밀라노의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다. 매년 4월 열리는 밀라노 디자인 위크 취재차 모인 자리였다. 대화 주제는 ‘추구미’였다. 내가 ‘I’가 90%인 내향인이라고 하자 다들 못 믿겠다면서 나온 얘기였다. 따지고 보면 MBTI도 자신이 되고 싶은 ‘추구미’의 결과라는 것이다.

누군가 기자들은 ‘시크 추구미’가 있다며 말을 이었다. 무엇을 먹든, 무엇을 보든, 누구를 만나든, 어떤 예술품이든 심드렁해하거나 폄하하려 한다는 것. 그 정도면 다행인데, 내 것 말고는 관심도 없고 찾아보지 않는다면서 비꼬았다. 찔려서 뭔가 변명을 해보려다 말았다. 타인의 창작물에 팔짱을 끼는 태도가 나를 우위에 올려놓는다고 여기는 사람. 내가 그랬기 때문이다. 만약 그 시절의 내가 임윤찬의 피아노 연주를 들었다면 울지 않았을 거다. 통영에 가지 않았을지도. 그저 왜 이렇게 인기가 많나 유튜브를 찾아본 뒤 “그래서 뭐”라고 회답했을 거다.

우리는 디저트를 건너뛰고 밀라노의 루이 비통 홈 컬렉션 전시장을 찾았다. 볼 때마다 유쾌한 디자이너 하이메 아욘(Jaime Hayon)이 여러 포즈로 사진 촬영 중이었다. 그 외에도 홈 컬렉션에 참여한 여러 디자이너가 자신이 디자인한 소파에 앉아 매체 인터뷰에 응하고 있었다. 나도 그중 하나로 순서를 기다렸다. 검은색 수트를 입은 크리스티안 모아데드(Cristián Mohaded)가 열 번째 인터뷰어였을 내게 악수를 청했다. 그는 두 손을 무릎 위에 공손히 올리고, 스패니시 악센트를 섞은 영어로 철학적인 답변을 이어갔다. 5분이나 됐을까, 다음 순서를 기다리는 기자들이 시계를 차지 않은 손목을 과장되게 가리키며 재촉했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었기 때문이다. “당신 완전 록 스타군요.” 내가 민망해져서 웃자 그가 미안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미소를 보냈다. 아르헨티나 시골 출신인 그는 오랜 기간 지역 장인들과 협업해왔다.

동네 곳곳에 자리한, 누군가는 평범한 주민이라고 할 예술가에게 바구니 짜기, 수놓기 등도 배웠다. 그는 2023년엔 로로피아나, 올해는 루이 비통의 러브콜을 받아 밀라노 디자인 위크 기간에 전시를 열고, 세계의 굵직한 미술관과 함께한다. 말하자면 성공한 디자이너다. 하지만 그는 자기 업적에 침잠하거나 콧대를 높이지 않고, 세상의 크고 작은 예술과 기술에 관심을 보낸다. 그렇기에 새로운 디자인을 창조해내고 있다.

‘창조적 근육’이 단련된 이다. 이 문장은 다큐멘터리 <안도 다다오>에서 처음 들었다. 흰색 트랙 수트를 입은 안도 다다오가 운동장을 뛰면서 촬영감독에게 이렇게 말한다. “창조적 근육을 단련해야 해요. 영화 보고 음악회 가고 미술관 가고 남이 건축한 걸 봐야 해요. 그 이상을 만들겠다는, 그걸 초월하겠다는 용기를 가져야죠.”

꽃샘추위가 계속된 밀라노의 4월, 나는 점심 자리의 화제였던 ‘시크 추구미’를 다시 한번 후회한 뒤, 창조적 근육을 위해 꽤 바지런히 다녔다. 이 기간에는 3,000여 개 전시가 동시다발로 열리는데, ‘언제 와보겠는가’라는 마음이 날 더 재촉했다. 까시나(Cassina) 전시장에서 르 코르뷔지에가 디자인한 LC4 라운지 체어에 눕자 깜빡 잠들 정도로 고단했다. 일어나 침을 닦으면서 나는 창조적 근육을 단련 중이라며 대견해했다.

귀국 비행기에서 사진첩을 훑었다. 뭔가 많긴 한데, 이상하게 그것을 봤을 때 어땠는지는 까무룩했다. 분명 대단한 전시였는데 말이다. 그 이유를 빈번히 추측해보니, 눈이 아니라 카메라 렌즈로 봤기 때문 같다. 찍어야 한다, 남겨야 한다, <보그> 인스타그램에 올려야 한다. 이런 마음이었다. 잘 모르는 디자이너나 브랜드가 나오면 그를 지척에 두고도 휴대폰에 고개를 박고 구글링했다.

“저도 그래요.” 함께 점심을 먹었던 업계 관계자가 말했다. 그녀와 나는 산타 마리아 델 카르미네 성당에서 열리는 이솝의 퍼포먼스를 보러 갔는데, 피나 바우쉬를 잇는 김나영 무용수가 등장하자 휴대폰으로 촬영했다. 20여 미터의 안뜰을 오가는 그녀가 렌즈 밖으로 나갈세라 시선을 휴대폰에 고정했다. 그녀의 춤을 맨눈으로 보지 못했다.

창피한 일화를 더 얘기하면, 리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피에르 위그(Pierre Huyghe)의 전시를 찾자 한 선배가 “베니스에서 우리 같이 봤던 거랑 흡사하네”라고 말했다. 나는 눈치채지 못했다.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에 분명 피에르 위그 전시를 봤는데 말이다.

다행히 베니스에서 하나는 남았다. 당시 사흘 일정인데 보고 싶은 전시가 많아 엑셀에 시간표를 정리해 분주히 다녔다. 여기 찍고, 다음. 장소마다 짧게 둘러보다, 뜻하지 않게 장 콕토의 전시장에서 1시간 머물렀다. 비가 왔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추워서 떨고 다니는데, 우산 없이 비를 맞을 자신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전시장 내 유일한 의자에 앉아 장 콕토가 만든 초현실주의 영화 <미녀와 야수>를 전부 관람했다. 흑백 화면 속 다이아몬드 눈물을 흘리는 벨의 판타지에 몰입했고 황홀해졌다. 베니스에서 많은 전시를 봤지만 그때 전시장의 비 냄새와 장 콕토에 대한 경이로운 감정은 생생하다.

그리고 어제, 까르띠에가 런던 V&A에서 주최한 전시장에서 벨의 다이아몬드 눈물을 다시 보았다. 까르띠에가 등장하는 영화 장면만 모은 필름이었다. 그러자 베니스에서 휴대폰을 내려둔 1시간이 분명히 떠올랐다. 비 냄새도 나는 것 같았다. 런던에서 몇 안 되는 화창한 날이라, 대부분의 인사가 ‘러블리 데이’였는데 말이다.

창조적 근육을 위해 마음을 열고 다른 이의 퍼포먼스, 미술, 사진, 연주를 부단히 찾는 것도 좋지만, 나는 눈으로 봐야 하는 단계에 있다. 카메라를 내려놓고, 가슴으로 받아들여야 내 것이 된다. 그런 다음에야 ‘시크 추구미’가 아닌 진짜 비평도 가능해질 것이다. 안도 다다오처럼 타인의 창작물로 근육을 단련해 그들을 뛰어넘는 내 것을 만들 꿈은 없다. 나는 예술가가 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을 찬탄하고 비평하고 누군가에게 추천하는 평범한 직장인(에디터)임에 만족하고 감사하다. 이 원고를 쓴 뒤 콜드플레이 한국 공연의 ‘피켓팅’에 성공한 친구에게 줄 선물을 사러 간다. 난 콜드플레이의 팬은 아니다. 진짜 팬에겐 한 자리를 뺏어 미안하지만, 월드 스타의 공연을 꼭 한번 내 눈으로 보고 싶다. (VK)

    피처 디렉터
    김나랑
    아티스트
    Mie Olise Kjærga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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