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워레가시가 패션계에 남긴 것, 그리고 남기게 될 것
“이런 식으로 누우면 될까요?” 요쿰 할린(Jockum Hallin, J)에게 촬영을 위해 땅바닥에 누울 수 있겠느냐고 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촬영 당시 아직 출시되지 않아, 다섯 번도 채 입지 않았을 것이 분명한 코트를 걸치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요쿰에게 패션 디자이너 특유의 까탈스러움과 예민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친구 크리스토퍼 니잉(Cristopher Nying)과 함께 2005년 아워레가시를 론칭할 때부터 그런 인물이었다. 단지 ‘완벽한 티셔츠’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던 둘은 직접 찍어낸 티셔츠를 더플백에 담아 스칸디나비아 전역을 돌아다녔다. 좀 더 체계적인 뭔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 때쯤인 2007년, 아크네 스튜디오에서 경력을 쌓은 리카르도스 클라렌(Richardos Klarén, R)이 합류하며 지금 우리가 아는 아워레가시가 완성됐다. 클래식한 아이템을 재해석하며 천천히 이름을 알려온 아워레가시는 최근 LVMH의 주목을 받았고, 유럽에만 4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브랜드의 공동 창립자로 아워레가시 워크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요쿰과 CEO 리카르도스가 엠포리오 아르마니와의 협업 컬렉션 발매를 기념해 한국을 찾았다. 그들에게 아워레가시가 걸어온 길, 그리고 패션계에 궁극적으로 남기고 싶은 유산에 대해 물었다.
약 3년 사이에 서울에만 3개 스토어를 추가 오픈했다. 한국이 미국과 영국 다음으로 아워레가시에 중요한 마켓이라고 들었다. 이곳에서 아워레가시가 큰 인기를 끄는 이유는?
J 처음부터 ‘호기심 많은’ 고객을 끌어들이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다. 한국 고객은 호기심이 넘친다. 남들이 잘 모르는 브랜드를 발견하고 싶어 한달까? 서울에 첫 매장을 오픈하기 전에도 온라인 웹사이트 주문량이 아주 많았다.
R 론칭 초기부터 글로벌 시장을 겨냥했다. 예전부터 한국과 일본에서 많은 영감을 받아왔기 때문에 아시아 고객이 아워레가시에 더 깊이 공감하는 것 같다.
이번에는 아워레가시 워크샵과 엠포리오 아르마니의 협업 컬렉션 발매를 기념해 한국을 찾았다. 지난 컬렉션과 어떤 차이가 있나?

J 아르마니는 협업을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들에게는 모든 게 새롭다 보니 첫 협업에는 이런저런 어려움이 많았다. 로고 사용에 제약이 있어 법무 팀과도 논의해야 했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서인지 이번 협업은 훨씬 순조롭게 진행됐고, 아르마니 팀도 “하고 싶은 걸 해봐”라며 믿음을 보여줬다. 지난 협업이 가을/겨울 컬렉션이라면, 이번엔 봄/여름 컬렉션에 가깝다.
세 번째 협업을 기대해도 될까?
J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장기적으로 함께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아워레가시 워크샵의 다양한 면면을 보여줄 수 있는 파트너를 찾고 있다. 반문화에 기반을 둔 스투시와 몇 년째 함께하는 것처럼, 아르마니는 ‘패션적인’ 작업을 함께할 최고의 파트너다.
아워레가시 워크샵은 잉여 원단을 재활용하기 위해 요쿰이 2016년 론칭한 프로젝트다. 여전히 재활용 원단으로 옷을 만드나?
J 100%는 아니다. 비율을 따지면 75% 정도?
협업 컬렉션을 위해 수십 년 전, 아르마니가 사용한 원단을 똑같이 재생산했다.
J 협업을 준비하며 아르마니의 빈티지 원단으로 가득 찬 창고를 방문했다. 워낙 오래된 것들이다 보니, 더는 구할 수 없거나 아르마니조차 재고를 보유하지 않은 원단이 꽤 있었다. 평소에도 아워레가시의 패브릭 랩에서 원단을 개발하기 때문에 빈티지 원단을 재현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컬렉션에서는 특히 클래식한 아이템의 재해석이 눈에 띄었다. 아워레가시의 특기가 은근한 변주를 통해 익숙한 아이템을 재탄생시키는 일이다. 변주가 지나치면 아이템의 본질이 훼손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변주를 최소화하는 건 또 의미가 없지 않나?

J 그 미묘한 균형을 유지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가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 늘 돌아보고, 거기에 새로운 무언가를 더할 방법은 없는지 고민한다. ‘더 나은 옷을 만들겠다’는 열망만 있다면, 균형이 무너질 걱정은 없다.
아워레가시 워크샵의 로고, 음양 문양 역시 균형과 관련이 있다. 메인 컬렉션 아이템은 로고를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반면, 워크샵 아이템에는 종종 음양 문양이 등장한다.
J 남은 원단을 활용해 옷을 만들다 보면 여러 가지 제약이 생긴다. 만들 수 있는 옷이 한정되어 있으니, 브랜딩을 더 확실히 하기 위해 워크샵 아이템에는 로고를 사용하는 편이다.
패션에 열광하는 사람은 물론, 관심이 많지 않은 사람도 아워레가시를 입는다. 취향도, 원하는 것도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모두 사로잡은 비결은?

J 크리스토퍼와 나, 리카르도스는 모두 하나의 비전을 공유한다. 하지만 우리의 취향은 다 다르다. 직원을 채용할 때도 마찬가지다. 색깔이 제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여 아워레가시라는 이름으로 뭉쳤다.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만들기 때문에 아워레가시의 옷은 ‘보편적인 매력’을 띤다.
R 언제나 다채로운 매력의 컬렉션을 선보인다. 아르마니와의 협업 컬렉션이 좋은 예다. 평소 아워레가시의 급진적인 디자인과 달리 테일러링에 집중했다.
몇 년 사이 급속도로 성장했다. 지난 11월에는 LVMH가 소수 지분을 투자했다.
R 3년 사이 브랜드가 5배 성장했지만, 우리는 예전부터 해온 걸 그대로 하고 있다. 아워레가시는 여전히 독립 브랜드다.
J LVMH도 “절대 변치 말라”고 했다. 많은 사람이 아는 브랜드가 됐다고 해서 팔릴 만한 옷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너무 빠른 성장은 건강한 게 아니다. 성장이 유일한 목적이 되어서도 안 된다.
요쿰과 크리스토퍼가 2005년 브랜드를 론칭했고, 2007년 리카르도스가 합류했다. 지금은 각자 다른 역할을 맡고 있는데, 요쿰과 리카르도스의 하루는 어떻게 흘러가나?
J 우선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러닝을 한다. 출근한 뒤에는 팀원이나 외부 파트너와 미팅을 주로 한다. 최근 브랜드 규모가 커지면서 여러 가지 새로운 일에 적응하고 있다.
R 나도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준 뒤,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후에는 매니지먼트 팀과 회의를 하거나 세일즈 기록을 살피며 하루를 보낸다. 요즘은 면접도 잦아졌지만, 우선은 팀이 너무 커지는 걸 경계하고 있다. 모든 일정 중 가장 재밌는 건 출장이다.
아워레가시는 늘 창의적인 스타일링을 선보인다. 메인 컬렉션에서는 특히 셔츠나 니트웨어 등을 겹쳐 입는 방식이 눈에 띈다. 각자만의 스타일링 철학이 궁금하다.

J ‘투 머치’는 지양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로 구매한 아이템으로 차려입거나, 빈티지로 도배하는 건 나답지 못하다. 운동을 좋아하니 하이킹 부츠나 스포츠 안경을 쓴 뒤 그 위에 내가 좋아하는 밴드의 티셔츠를 착용하고, 아워레가시 재킷을 걸치는 식이다.
R 다양한 무드의 아이템을 섞어 입는다. 아워레가시 컬렉션처럼!
요쿰은 어렸을 때 펑크 밴드의 일원이었다. 지금은 빈티지 밴드 티셔츠를 수집한다고 들었다. 특별히 자랑하거나 소개하고 싶은 티셔츠가 있나?
J 가장 좋아하는 건 밴드 푸가지(Fugazi)의 티셔츠다. 아이들이 ‘애착 이불’을 갖고 다니는 것처럼 나도 어딜 가든 늘 그 티셔츠를 챙긴다. 이번 출장에도 가져왔다.
스포티파이에 직접 큐레이팅한 플레이리스트를 봤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즐겨 듣던데 각자 요즘 즐겨 듣는 앨범이 궁금하다.
J 밴드 턴스타일(Turnstile)의 멤버들과 친구처럼 지낸다. 그들이 6월 앨범 발매를 앞두고 있어, 요즘은 턴스타일의 음악을 자주 듣는다.
R 최근 비행기에서 들은 스트록스(The Strokes)의 앨범 <The New Abnormal>.
아워레가시가 패션계에 궁극적으로 남기고 싶은 유산은?

R 헬무트 랭과 에르메스, 아르마니처럼 ‘아카이브’가 풍성한 브랜드를 희망한다. 먼 미래에, 어린 디자이너들이 아워레가시 룩을 보며 영감을 받았으면 좋겠다.
J 우리 옷이 후대에도 큰 울림을 줄 수 있길 바란다. 수십 년 뒤, 빈티지 숍에서도 아워레가시의 옷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날이 오길 꿈꾼다. 지금도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 포토그래퍼
- 이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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