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이제 출근 룩 돌려 입기를 끝내고 싶다면

2025.05.16

이제 출근 룩 돌려 입기를 끝내고 싶다면

“출근용 옷을 사면 주말에 입을 옷이 없고, 주말에 입을 옷을 사면 출근할 때 입을 옷이 없어.”

친구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다며 푸념했습니다. ‘출근 룩’ 화두가 떠오른 건 제가 입은 옷 때문이었습니다. 퇴근하고 모인 친구들이 제가 등장하자마자 ‘그러고 출근했냐’며 놀랐거든요. 록 밴드 티셔츠를 입고 볼캡을 눌러 쓴 저는 해명 아닌 해명을 해야 했죠. <보그> 사무실은 복장 규율이 자유로운 덕에 어제는 컬러풀한 반바지에 플립플롭을 신고, 오늘은 드레시한 치마에 힐을 신을 수 있거든요. 곧이어 다른 친구가 회사에서 슬리퍼 실내화를 신었다고 혼난 이야기를 털어놓은 날, 저희는 서로의 세계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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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5월 황금연휴 동안 미국 드라마 <세브란스: 단절>(2022)을 정주행했는데요. 드라마 속 회사 ‘루몬’을 보며 친구와 나눈 대화가 떠올랐습니다. 회사 사람들의 옷차림이 누가 정한 것도 아닌데 묘하게 비슷했거든요. 주인공 헬리 R이 매회 복사해서 붙여 넣은 듯한 복장을 입고 등장하는 것처럼요. 시프트 드레스, 니트 터틀넥, 테일러드 펜슬 스커트, 펌프스 힐. 출근 룩이 반복될수록, 캐릭터의 감정은 점점 무뎌졌습니다. 의상 디자이너 사라 에드워즈의 정확한 의도였죠. 사라는 <보그>와의 인터뷰에서 “회사 사람들이 옷에 억눌려 보이길 바랐다. 루몬을 일종의 컬트처럼 연출하고 싶었다”라고 밝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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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는 우리의 현실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출근할 때만 입어야 하는 룩을 따로 규정해두면 옷장 앞에서 ‘이건 지난주 금요일에 입었고…’ 같은 생각이 맴돕니다. 안 그래도 빈약한 옷장이 더 아슬아슬해 보이죠. 어쩔 땐 옷 고르는 일이 시간 외 근무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게다가 겨우 고른 옷이 실수하지 않으려고 선택한 무난한 옷이라면 결국 아무런 의미가 느껴지지 않는 순간이 오기 마련입니다.

혹시 지금 이런 고민을 하신다면 이 글이 실마리가 되어줄지도 모릅니다. 브리티시 <보그>의 에디터 조이 몽고메리(Joy Montgomery)는 규율을 어기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출근 룩을 입는 사람들을 포착했습니다. ‘출근 룩은 평소 차림새와 달라야 한다’라는 오랜 관념을 서서히 벗어내는 사람들이죠. 그렇게 형광등 아래 키보드만 울리던 사무실 풍경에, 조용한 출근 룩 혁명이 퍼지고 있습니다.

@katfromfin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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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변화는 SNS에서 가장 먼저 감지됩니다. 캣(@katfromfinance)의 피드를 보면 단번에 그 분위기를 눈치챌 수 있죠. 타비 로퍼에 긴 가죽 장갑, 일부러 어색한 각도로 찍은 사진. 얼핏 크리에이티브 업계 사람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형광등 아래 반복되는 루틴을 견디는 재무팀 직원이라고 말합니다. “서류 더미와 반질반한 구두. 그게 다예요.”

캣은 망설이는 사람들을 격려합니다. “룩이 밋밋해 보인다면 넥타이 하나만 더해보세요. 분위기가 확 달라지거든요.” 그리고 이 변화를 긍정합니다. “요즘 Z세대는 오피스 룩을 완전히 새롭게 해석하고 있어요. 전문성은 더 이상 유니폼에서 나오지 않아요. 이제는 나를 얼마나 정확히 보여주는지가 신뢰로 이어지죠.”

@alinarol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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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 업계 제품 디자이너 앨리나(@alinarolling)도 공감합니다. “우리 인생 대부분이 회사에서 흘러가잖아요. 그럼 원하는 옷을 입는 게 왜 문제죠?” 앨리나는 이제 마음에 드는 옷을 입고 출근합니다. 처음엔 동료들이 조금 낯설어했지만, 지금은 그녀의 룩 자체가 곧 ‘앨리나’가 되었죠. “액세서리부터 바꿔보세요. 신발 색이나 가방, 장난기 있는 목걸이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달라져요. 작은 시도부터 하는 게 좋아요.”

생 로랑, 미우미우, 프라다의 런웨이에 등장한 ‘오피스 사이렌’ 트렌드가 사무실로 흘러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물론 현실과의 간극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어쩌면 패션쇼식 출근 룩은 일종의 코스튬 플레이일지도 모르죠. ‘섹시한 비서’ 같은 이미지가 여전히 소비되는 방식도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고요. 동료가 갑자기 <아메리칸 사이코>의 패트릭 베이트먼처럼 각 잡힌 수트를 입고 출근한다면, 저도 놀라지 않을 자신 없습니다. 하지만 ‘루몬’의 회색 유니폼과 런웨이의 드라마틱한 수트 사이엔 분명 현실적인 접점이 존재합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바로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가고 있으니까요.

@lisaingmarinel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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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 일하는 변호사 리사 잉(@lisaingmarinelli)은 자칭 ‘파워 수트 애호가’입니다. 매일 정장을 입어야 하는 환경 속에서도 자기 감각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죠. “오피스 사이렌 트렌드는 실제로 정장을 입고 출근하는 사람에겐 조금 과하게 느껴지기도 하죠. 하지만 저는 항상 나다움과 회사 분위기 사이의 중간 지점을 찾아냅니다.” 리사는 실루엣에 변화를 주는 방식을 추천합니다. “규정이 엄격한 회사라면, 펜슬 스커트에 단색 재킷이나 펌프스를 매치해보세요. 회사 분위기에 어울리면서도 충분히 멋질 수 있어요.”

    Joy Montgomery
    사진
    Instagram, IMDb
    출처
    www.vogue.co.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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