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의 까르띠에, 변신의 예술
“소통의 창구이자 표현의 장이며, 시계 산업과 대중을 잇는 가교입니다.” 워치스 앤 원더스 제네바 재단의 시릴 비네론(Cyrille Vigneron) 회장의 표현처럼 제네바 시계 박람회의 위상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그 양과 다양성만 보더라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올해는 무엇보다 여성 시계 컬렉션이 강화되었다. 〈보그〉가 ‘워치스 앤 원더스 2025’에서 엄격하게 선정한 브랜드 20곳이 들려주는 2025년의 ‘시간’들.


까르띠에가 선정한 2025년 테마는 ‘변신의 예술’. 금속과 보석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연금술사 같은 능력은 메종의 풍부한 유산을 새롭게 풀어내는 과정에서 오롯이 드러난다. 그중 가장 먼저 주목할 것은 단연 까르띠에 프리베 에디션. 매년 메종의 전설적인 유산을 재해석해 선보이는 한정판으로, 올해 주인공은 1928년에 처음 출시한 ‘탱크 아 기쉐’다. 프랑스어로 ‘창’을 뜻하는 기쉐라는 이름처럼 오직 두 개의 창을 통해 시간과 분만 표시하는 혁신적인 모델로, 시간을 빠르고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바늘을 없앤 파격적인 아이디어가 특징이다. 2025년식 탱크 아 기쉐는 오리지널과 동일하게 12시 방향 시간 창과 6시 방향 분 창이 마주 보는 모델과 두 개의 창을 사선으로 배치한 플래티넘 모델 두 가지로 나뉜다. 풍부한 창의성과 미학적 혁신이 절정을 이뤘던 1930년대를 기념한 두 번째 모델은 단 200피스만 제작되었다. “점핑 아워 메커니즘과 드래깅 미닛 디스플레이는 기술적 완벽함이 언제나 아름다운 디자인을 위해 존재하는 까르띠에의 정교한 워치메이킹 철학을 구현합니다.” 이미지·스타일·헤리티지 부문 총괄 디렉터 피에르 레네로(Pierre Rainero)의 설명처럼 까르띠에는 오로지 이 새로운 시계를 위해 두 가지 기능을 모두 갖춘 핸드 와인딩 9755 MC 무브먼트를 독점적으로 제작하기도 했다. 단순한 구조 아래 숨겨진 그 기술적 정교함은 경이로울 정도다.
탱크를 기반으로 한 신제품이 하나 더 있다. 한 단계 큰 사이즈로 업그레이드된 ‘탱크 루이 까르띠에’다. 1917년 탄생한 탱크는 수많은 변주를 거치며 진화해왔다. 그중에서도 1922년 공개된 탱크 루이 까르띠에는 더 길쭉해진 직사각 케이스와 끝을 둥글게 처리한 샤프트로 세련된 모습을 자랑했다. 그리고 다시 오늘날에 이르러서 차세대 메커니컬 매뉴팩처 오토매틱 무브먼트 1899 MC 덕분에 비율을 유지하면서 가로 27.75mm, 세로 38.1mm 사이즈로 확대된 것. 이 밖에도 독보적인 노하우를 살려 워치메이킹과 주얼리를 완벽하게 융합한 시계를 추가로 만나볼 수 있다. 얼룩말과 호랑이 무늬를 조합한 추상적인 패턴으로 화려하게 변신한 ‘팬더 드 까르띠에’와 브레이슬릿 양 끝에서 메종을 상징하는 팬더와 다이얼이 마주 보는 뚜아 에 무아 형식의 ‘팬더 뱅글’ 시계다. 시계 전체를 블랙과 골드 브라운 래커를 비롯해 다이아몬드, 스페사르타이트로 뒤덮은 팬더 드 까르띠에 시계는 완성하는 데 110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트레사쥬’의 낯선 모양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프랑스어로 ‘엮은 것’을 의미하는 이름같이 골드 혹은 다이아몬드로 구성된 통통한 꼬임 장식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하지만 단순히 장식성을 강조한 디자인은 아니다. 모든 굵기의 손목에 편안하게 착용할 수 있도록 인체공학적 요소를 실현했기 때문이다.
복각은 헤티리지가 지닌 가치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이를 소개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다. 누구나 떠올릴 만한 상징적인 아이콘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유서 깊은 메종임을 입증하는 것이 아닐까. 까르띠에는 과거를 존중하면서도 그 위에 현대적인 언어를 덧입히는 방식으로 또 한 번 스스로를 넘어섰다.


talk with MARIE-LAURE CÉRÈDE
인생 첫 번째 시계는?
까르띠에 ‘탱크 디반(Tank Divan)’. 아주 독특한 시계다. 까르띠에에 입사한 지 1~2년 정도 되었을 때 거의 월급 전부를 쏟아부었다. 여전히 갖고 있고, 지금도 참 좋아하는 모델이다.
2002년 까르띠에에서 커리어를 시작했고, 2016년에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 까르띠에에서 처음으로 참여한 프로젝트는?
‘탱크 루이 까르띠에’를 단순화하는 것! 정말 재미있는 과정이었다. 당시 골드로 만든 탱크 루이 까르띠에의 실물 모형이 있었는데, 그땐 전부 수작업이었기 때문에 꽤 거칠고 투박한 상태였다. 오히려 그 모습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탱크 솔로’다.
현재 까르띠에 주얼리 & 워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워치메이킹과 주얼리 부문을 총괄하고 있다. 각각의 컬렉션은 어떻게 시작하나?
언제나 스케치다. 단, ‘손’으로 그린다는 것이 핵심이다. 컴퓨터로 그리면 감정이 담기지 않기 때문이다. 늘, 언제나, 매번 손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 후에는 제품마다 다르게 전개되지만, 초기 단계에서 입체감을 불어넣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단순히 선으로 이루어진 2차원의 도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볼륨과 형태를 상상하는 것. 실제로 창작 과정의 50% 이상은 3D로 이뤄진다. 입체적인 형상을 구현하기 위해 3D 프린팅을 적극 활용하고, 완벽한 형태에 도달할 때까지 반복한다.
시대를 관통하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까르띠에는 해마다 아이콘을 꾸준히 정제하고 개선한다. 단순 복원이 아니라 이전보다 더 정교하고 더 고귀한 모습으로, 즉 스스로를 넘어서는 거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요소는 각 제품에 담긴 ‘의미’. 사실 무언가를 만드는 행위 자체는 생각보다 쉬울 수 있다. 어려운 건 의미를 담은 무언가를 창조하는 일이다. 그래서 늘 최종 디자인에서 장식을 걷어내고 본질만 남았을 때를 고민한다. ‘이것은 움직이나? 무엇을 말하고 있나? 여전히 감동을 줄 수 있나?’
워치메이킹과 주얼리 유산을 융합하는 특별한 노하우가 있나?
결국 필요한 건 지식이다.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알고, 숙달해야 한다. 브랜드 역사, 과거 프로젝트 등 모든 맥락을 제대로 이해해야 유산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비로소 창조가 가능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지식을 기반으로 한 창작물은 결코 잘못될 수 없다. 디자이너에게 매우 중요한 원칙이다.
이번 신제품 중 가장 제작이 까다로운 시계는?
‘트레사쥬’ 시계. 각 부분을 따로 만드는 법은 잘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하나의 완성된 구조로 결합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았다. 케이스 뒷면을 보면 위부터 우아하게 이어지는 연속적인 디자인 흐름을 느낄 수 있다. 일반적으로는 뒷면 디자인까지 살리지 않지만, 이것이 오히려 까르띠에만의 시그니처가 되었다. 다리 구조와 상단 부분 모두 주얼리 장인 기술로 제작했는데, 실제로 보면 아주 얇다. 서로 다른 구성 요소를 하나의 자연스러운 형태로 통합하는 작업이 매우 도전적이었고, 그래서 더 의미 있는 결과물이다.
메종이 추구하는 미학과 완전히 새로운 것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법이 있다면?
혁신을 목표로 삼지는 않는다. 시작점은 한결같이 감정이다. 그리고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올바른 아이디어와 적절한 디자인이 나오면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기술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그 과정에서 혁신이 시작된다. 고정관념을 넘어선 디자인에는 기술과 혁신을 끌어올리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VK)
- 패션 에디터
- 김다혜
- 디지털 에디터
- 가남희
- 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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