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레이드 프린지 페스티벌_테마를 가지고 여행하기
첫인상은 정적이지만 곧 숨은 즐거움을 드러내는 호주 애들레이드. 그곳의 프린지 페스티벌은 주류에서 벗어나 자유와 평등을 외치며 탄생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시드니나 멜버른이 아니고, 광활한 자연의 울루루나 골드코스트를 포기하고 애들레이드를 선택하는 이유는 뭘까. 호주 여행을 앞두고 나는 이 낯설지만 부드러운 발음의 지역을 추천받았고, 싱가포르 항공을 경유해 도착했다.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주의 주도인 애들레이드의 첫인상은 조용하고 품위 있다. 한낮의 거리는 한적하며, 쨍쨍한 해가 세력을 잃을 때쯤 와인과 인생을 즐기려는 이들이 절제된 활기를 불어넣는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지만, 사람들이 특히 3월에 이곳을 찾는 큰 이유는 애들레이드 프린지(Adelaide Fringe) 때문이다. 이 축제는 ‘자유와 평등’을 새기며 태어났다. 1960년, 주류 예술계와 떨어져 권력도 기회도 가질 수 없던 소외된 예술가들이 자신들의 무대를 마련한 것이 애들레이드 프린지의 시작이다.

올해 65년째로, 매년 2월 말부터 한 달여간 다양한 무대예술을 펼친다. 현학적인 공연보다는 코미디, 서커스, 인형극처럼 대중 친화적인 무대를 임시 천막이나 카페 안뜰, 놀이공원 등에 올린다. 입장료는 공연당 15~50달러 선으로, 아티스트는 최소한의 심사를 거치며 그들의 ‘예술권’을 보장받는다. 애들레이드의 드넓은 런들 공원 내 ‘기이한 기쁨의 정원(The Garden of Unearthly Delights)’에 도착했다. 애들레이드 프린지는 남호주 전역의 500여 개 공연장에서 열리나, 구심점은 이곳이다. 우람한 나무에 장식된 조명이 반짝이고 인파 사이로 임시 공연장이 자리했다. 와인 한 잔을 테이크아웃하고 호숫가를 중심으로 둘러보았다. 동화책에서 본 모습 그대로의 서커스 천막이 매력적이었으나, 이미 매진. 대신 세기말 히트 팝송을 불러주는 음악 공연을 예매했고, 밤에는 ‘어른들을 위한’ 섹시한 공연을 추천받았다(야하기보단 아주 흥겨운 LGBT 댄스 쇼였다).

공연보다 축제 분위기만 즐기러 피크닉 나온 이들도 많았다. 30여 개 음식점과 20여 개 바는 축제 현장에서 흔히 보이는 한철 장사의 느낌은 없다. 글루텐 프리부터 비건까지 다양하고 정제된 음식, 현지 와인과 서버의 기분 좋은 미소가 있다. 나는 호숫가에 자리한 ‘루나(Luna)’에 들러 홍합과 주꾸미 등 해산물 안주에 와인을 곁들였는데, 그러다 보니 공연은 차치하고 바람을 맞으며 잔디에 눕고 싶어졌다. 역시 적당한 음주는 필수다. 하지만 뭐든 순간의 기분에 맞춰 결정하는 것도, 축제의 특권일 거다. (잠시 드러누웠다는 얘기.)

주말 저녁이면 축제 현장은 더 붐빈다. 낮에 본 한가로운 애들레이드와 비교하니 생경하기까지 했다. 올해 한 달여간 열린 축제에는 총 8,100여 명이 다녀갔다.

애들레이드에 간다면 한 끼 정도는 센트럴 마켓에서 먹어보길 권한다. 생산자 협회에서 품질과 가격을 엄격히 관리하는 실내 시장이다.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만 열리며 오후 3시면 문을 닫으니 아침 혹은 점심만 가능하다. 자부심이 강한 주인장들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스멜리 치즈 숍(Smelly Cheese Shop)’의 주인은 “세계 최고의 마켓에 온 걸 환영해요”라고 인사한 뒤, 시식 치즈를 내오며 설명을 시작했다. “치즈만이 아니라 그 지역의 이야기도 같이 모아요. 우리는 스토리텔러예요.” 사설 마켓 투어를 신청한 날, 흰색 리넨 드레스에 호주 원주민이 핸드 페인팅한 목걸이를 목에 건 백발의 가이드가 나타났다. 그녀는 각 점포마다 얽힌 스토리를 들려주었다. ‘루시아스(Lucia’s)’ 피자 가게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유럽과 아프리카를 거쳐 애들레이드로 이주해 60여 년간 운영하고 있으며, 세 가족이 합심한 우유 가게는 기업에 반하여 자체 브랜드를 설립했다고 한다.

저녁이 되어 리 스트리트(Leigh Street)와 필 스트리트(Peel Street)를 찾았다. 아기자기한 바와 레스토랑이 자리한 거리다. 이자카야와 한식을 결합한 레스토랑 쇼보쇼(Shobosho)는 정말이지 아시아 퀴진의 유행을 증명하고 있다. 꼬치 굽는 연기 사이로 매일 만석이다. 다음 블록엔 10여 석 내외의 작은 바가 사이좋은 이웃처럼 붙어 있다. 어디로 갈지 고민하기보단 한 잔씩 호핑하곤 했다. 알프레즈 바(Alfred’s Bar), 제니 와인 바(Jennie Wine Bar) 등 각 바가 주력하는 와인 혹은 칵테일이 달랐다.

애들레이드에서 와이너리 투어를 빼놓을 수 없다. 나 역시 동참했다. 중심부에서 1시간 거리에 자리한 위라위라(Wirra Wirra)는 1894년에 설립되어, 유명 와인 평론가 제임스 할리데이(James Halliday)에게 “호주에서 뛰어난 와이너리의 하나”라는 평을 들었다. 호주 원어민 언어로 ‘유칼리나무 사이로’라는 뜻의 이름처럼, 2013년부터는 나무와 환경을 고려하며 와이너리 부지를 유기농과 바이오다이내믹 농법으로 전환했다. 와인 테이스팅을 신청해도 좋지만, 이곳에 자리한 레스토랑만으로도 충분하다. 드넓은 정원의 아름드리나무 아래 앉아 신선한 메뉴와 친환경 와인을 즐길 수 있다. 오픈 즉시 마실 수 있는 위라위라 하이딩 챔피언 소비뇽 블랑, 15~20년 숙성이 가능한 세련된 와인인 위라위라 처치 블록 등을 권한다. 물론 그날의 날씨 혹은 메뉴에 따라 위라위라의 친절한 직원에게 추천받아도 좋다. “당신의 페이버릿을 가져다주세요”란 멘트도 대부분 성공한다.
좀 더 ‘이벤트적인’ 경험을 원한다면 호주 맥라렌 베일의 대표적인 부티크 와이너리인 다렌버그(d’Arenberg)가 있다. 이곳은 살바도르 달리의 드로잉과 조각을 전시한다. 미술 애호가에겐 다소 아쉬울 수 있으나 와인 테이스팅에 앞서 잠깐 눈요기한다고 간주하면 충분하다. 입구에 들어서자 달리의 초현실주의 그림에 등장하는 ‘녹아내리는 시계’ 모형이 맞이하며, 건물 형태 또한 누군가 맞추다 만 큐브처럼 불규칙적이다. 와인 테이스팅을 위해 도착한 3층. 빨간색 하트 모양 선글라스를 쓴 눈에 튀는 금발의 오너가 인생을 즐기고 있었다(대낮이었지만 그의 테이블엔 와인이 한가득이었다). 유쾌한 오너처럼 와인 테이스팅 과정 역시 범상치 않다. 실험실의 과학자처럼 스포이트와 비커 등을 사용해 자신이 직접 디캔팅하고 해당 와인을 가져갈 수 있다. 병에 라벨까지 붙여준다. 물론 내가 소믈리에가 아니기에 누군가와 나눌 맛은 아니지만, 만들면서 동행과 웃을 수 있었다.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시작해 와이너리까지, 먹고 즐기는 본능적인 이야기만 한 것 같다. 하지만 여행에서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은가. 하나 더, 애들레이드는 곳곳이 자연이다. 50만㎡의 보태닉 가든(Botanic Garden)은 걸어도 걸어도 울창하고 잘 정리된 숲과 뜰이 이어지며, 내가 방문할 무렵에는 유리공예가 데일 치훌리(Dale Chihuly)의 야외 조각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트램이나 자전거로 바닷가에 닿기도 쉽다.

애들레이드 중심가에서 자전거로 1시간 거리의 글레넬그(Glenelg)에는 긴 모래사장과 놀이기구, 레스토랑이 자리한다. 이곳에서 현지인처럼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과감한(?) 선택도 권한다. (VL)
- 피처 디렉터
- 김나랑
- COURTESY OF
- 호주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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