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반사되는 알렉상드르 드 베탁의 아파트
천장과 벽을 뒤덮은 거울에 모든 것이 반사되는 패션쇼 기획자 알렉상드르 드 베탁의 파리 아파트. 덕분에 아르데코와 바우하우스 감성, 피에르 드 부르고뉴 대리석의 반복적인 패턴과 광택이 더 풍성하다.

2022년 알렉상드르 드 베탁(Alexandre de Betak)은 파리에 갈 때마다 가족과 함께 지낸 파리 레프트 뱅크의 오텔 파르티퀼리에(Hôtel Particulier)에 세컨드 하우스를 구입했다. 파리 근교의 황금빛 밀밭에서 열린 자크뮈스의 2021 봄/여름 패션쇼를 비롯해 획기적인 패션쇼를 기획하며 유명해진 베탁은 자신의 프로덕션 뷔로 베탁(Bureau Betak)의 지분을 상당 부분 매각한 뒤 세계 최고의 커뮤니케이션 그룹 디 인디펜던츠(The Independents) 회장으로서 새출발을 앞두고 적합한 보금자리를 찾고 있었다. 마침 자신의 방대한 미술∙디자인 서적 컬렉션을 둘 공간이 점점 부족해지고 있다는 사실에 조급함을 느끼던 차였다.
그의 새 피에드아테르(Pied-à-terre, 업무∙여가∙출장 등의 목적으로 일정 기간만 사용하기 위해 주로 대도시에 구입하는 임시 아파트. 공간이 넓지는 않으며 관리 서비스를 포함하는 경우가 많다)는 18세기 건물이었다.그러나 16세기에 지어진 인근 건물에 비하면 비교적 새 건물 같은 곳으로 근사한 구조를 간직하고 있었다. 두꺼운 석조 벽과 큼지막한 창문으로 이뤄진 아파트 전면은 센강을 곧장 마주 보고 있었고, 건물 뒤쪽에는 잘 관리된 정원이 있어 자연을 향한 갈망을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베탁이 이 집을 처음 방문할 때만 해도 이곳은 56㎡가 채 안 되는 규모와 2.5m 높이에 침실 두 칸을 욱여넣은 협소하고 불편한 공간이었다. 베탁은 “그래도 창문은 그대로 유지했다”고 언급하며 이 집의 많은 부분이 극적으로 변모했음을 암시했다.

“물론 여전히 과거의 모습 그대로인 부분이 많아요.” 베탁이 이야기했다. 도저히 뜯어고칠 수 없던 낮은 천장은 ‘거울 상자(A Mirrored Box)’에서 영감을 얻어 해결했다. “공간을 확장하기 위한 아이디어였어요. 거울은 모든 것을 확장하는 능력이 있어요. 순식간에 아주 넓고 복잡한 공간을 창조할 수 있죠.” 베탁은 인테리어 할 때 모든 사물과 공간의 관계를 총체적으로 고려한다. “모든 일을 360도로 바라보는 건 평소 습관이에요. 변형할 수 있다는 건 이미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죠. 조명 스위치, 창문, 숟가락과 욕실 수건까지 모든 것을 집의 전체적인 관점에서 선택했습니다. 그렇게 이 공간은 조금씩 계속 진화해왔지만 모든 변화는 이미 집 안에, 제 예상 범위 안에 내재되어 있었죠.”
베탁이 맨 처음 손댄 것은 피에르 드 부르고뉴(Pierre de Bourgogne)의 카보숑 바닥이었다. 컬러 시멘트나 은은한 광이 느껴지는 폴리시드 콘크리트를 고민하던 그는 끝내 18세기 주거 공간의 바닥에 즐겨 깔렸을 법한 재료를 골랐다. “공식이나 규칙이 싫어요. 너무 뻔한 건 뭐든 마음이 안 가더라고요.”

비좁고 일조량까지 적은 공간은 빠르게 뒤바뀌기 시작했다. 손님들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현관에는 구름처럼 뽀얀 모슬린 커튼을 길게 드리웠고, 넉넉한 크기의 데이베드와 거울 천장도 설치했다. 듣기에는 다소 뜬구름 잡는 소리일 수 있지만 실제로 보면 더할 나위 없이 몽환적이다. 베탁은 이 공간을 “웅장하면서도 편안한 첫인상”이라고 소개했다. 암막 커튼 뒤에는 천장에 매달린 서양배 모양의 조명을 껐다 켰다 할 수 있는 스위치(할머니 댁에 있던 조명 장치를 모방했다)와 일본풍 작은 욕실이 숨어 있다. 현관에서 모슬린 커튼과 육중한 문을 지나면 석회석 타일이 깔린 화려하고 커다란 방이 나타나는데 이곳이야말로 이 집의 하이라이트다. 묘하게 유혹적인 거울 반사 효과로 가득한 방은 펑키하면서도 우아한 1970년대 클램프 조명 25개가 서가 곳곳에서 포근한 분위기를 돋우고 있었다. 알록달록한 수많은 책과 앙드레 퓌망(Andrée Putman)이 디자인한 암체어의 립스틱 레드 컬러, 장 자크 베넥스(Jean-Jacques Beineix) 감독의 1981년 명작 <디바>에서 눈길을 사로잡은 작품 ‘파도(La Vague)’의 이브 클랭 블루 같은 강렬한 색채로 뒤섞인 황홀경이었다. 다른 한쪽에는 온갖 말차 도구와 일본 시가현에서 공수해온 도자기로 가득한 심플한 스테인리스 스틸 주방이 있고, 미래적인 분위기의 엘립손 스피커가 곳곳에 방문객처럼 우두커니 서 있다. 이 외에도 호화로운 스케일의 작업대, 각종 키네틱아트와 일본산 캠핑용품, 1970년대의 ‘기괴한 조형물’, 여전히 세련된 미감을 발휘하는 레트로 턴테이블도 이 요술의 집을 이루는 것들이다. 카페 드 플로르(Café de Flore)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가 슈퍼마켓 모노프리 너머로 발견하자마자 구입했다는 바구니 50개에는 온갖 매거진과 전기용품이 가득 담겨 있다.


그의 아파트에서는 유쾌하면서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려운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조각가 프란츠 웨스트(Franz West)의 그로테스크한 조명, 자크 아드네(Jacques Adnet)의 1950년대 발레 의자로 미니멀하게 꾸민 현관만 보고 집주인의 취향을 판단하는 것은 성급한 일이라는 뜻이다. 눈에 띄는 디자인 가구와 오브제는 있지만 뚜렷한 트렌드가 느껴지진 않았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어요. 명징하게 정의되고 분류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이전에 한 번도 본 적 없으면서 마음에 쏙 드는 무언가를 발견했을 때 가장 큰 희열을 느끼기 때문이죠.” 베탁은 클리냥쿠르 벼룩시장(10대 때부터 온갖 상인들과 친분을 다져온 곳)과 소규모 경매장(그가 종종 친구들과 입찰 경쟁을 벌이는 곳), 인스타그램에서 발견하고 점찍어둔 여러 장소 틈에서 여전히 보석 같은 아이템을 발굴하길 즐긴다. 인스타그램에 관해서는 인상적인 이야기를 덧붙였다. “애매모호한 ‘영감’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딜러나 애호가 같은 사람들을 찾으려 해요.” 베탁은 새로운 물건을 세상에 내놓기 전 진심으로 심사숙고하는 헌신과 장인 정신을 높이 산다.

이 공간은 그가 태어난 순간부터 쇼맨이자 거물이 되기까지, 서양배 스위치에서 이브 클랭의 작품 ‘파도’와 퓌망에 이르는 취향을 집대성한 알렉상드르 드 베탁의 미학적 여정 그 자체다. 뷔로 베탁의 첫 사무실에도 피에르 드 부르고뉴 바닥이 있었고, 뷔로 베탁이 선보인 다수의 패션쇼에서 거울 상자가 즐겨 쓰였다. 그가 귀여운 크기의 엘립손 스피커 한 쌍을 처음 손에 넣은 후부터 그의 집에는 줄곧 엘립손 스피커가 있었다. 키네틱아트, 책, 잡지 역시 언제나 그와 함께했으며 클램프 램프와 네온 작품, 바우하우스와 아르데코 스타일 소품, 일본과 <스타워즈> 관련 소품도 전부 마찬가지다. 베탁의 비전은 놀라울 정도로 한결같다. “좋아하는 것, 흥미로운 것, 나를 사로잡는 것은 계속 생겨요. 그중에서 관심 밖으로 사라진 것은 단 하나도 없죠. 제가 주목한 어떤 취향과 트렌드도 질리지 않는다는 게 참 이상한 일이에요.”
지인들 사이에서 그는 어린 시절 별명인 ‘타크베(Takbe)’로 불린다. 이는 일종의 베를랑(Verlan, 프랑스어의 은어로, 단어 음절을 바꿔 새로운 단어를 만드는 방식)으로, 베탁을 가리킨다. 오늘날 타크베는 여덟 명이 한 팀을 이뤄 의뢰인의 변덕에도 굴하지 않고 미래지향적 비전을 현실화하는 베탁의 인테리어 및 건축 스튜디오의 이름으로 쓰인다. “미적인 부분에서만큼은 완전한 자유를 원합니다. 사람들을 위한 집을 디자인하기보다는 디자인 자체를 하고 싶어서 회사를 세운 것처럼요.” 그의 회사는 체험형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전통적인 공간을 쾌적하게 혁신하고, 다양한 최신 기술과 디자인을 적용하는 일에 도전하고 있다. “수년 동안 맹렬한 속도로 수백여 공간을 디자인해왔습니다. 특히 패션계에서 일한 경험은 돌이켜보면 정말 영광이었죠. 하지만 이젠 디자이너 뒤에 있지 않고 나만의 무언가를 창조하고 싶습니다.”
베탁이 이야기하는 “미적인 부분에서의 완전한 자유”는 어떤 한계도 없는 혼돈을 겨냥한 말이 아니다. 베탁의 천장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라. 머리 위에 드리우지 않아 이 석회석 바닥이 오직 바닥에만 존재했다면, 과연 이 공간이 지금처럼 매력적으로 느껴졌을까? 그가 이유 없는 무질서를 사랑했다면 서재가 지금처럼 흥미로운 공간이 될 수 있었을까? “제약은 필요한 거죠. 그러나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의식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VL)
- 피처 에디터
- 류가영
- 글
- Sally Singer
- 사진
- Matthieu Salva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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