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뉴스

패션 세계를 정복한 니콜라 제스키에르의 오른팔과 왼팔

2025.06.04

패션 세계를 정복한 니콜라 제스키에르의 오른팔과 왼팔

칼 라거펠트의 빈자리를 늠름하게 채운 니콜라 제스키에르. 이 패션 천재의 오른팔과 왼팔이 비로소 당대 패션 세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 첫 번째, 라반의 줄리앙 도세나가 이미지와 텍스트를 통해 <보그>에 전하는 자신의 열정, 여정 그리고 갈망.

오늘날 줄리앙 도세나(Julien Dossena) 주위에는 다소 프루스트적인 분위기가 감돈다. 라반에서 10년이 넘는 오랜 시간을 보낸 그는 가볍게 회고하는 시간을 가졌다. 창립자 파코 라반이 급진주의와 기이한 신비주의 사이를 오갔던 이 독특한 하우스에서 진화하기 위해서는 줄타기 곡예사의 균형 감각 같은 일종의 인습 타파주의가 필요하다. 체인 메일이라는 명백한 시그니처에 갇히지 않으면서도 로도이드(Rhodoïd, 플라스틱 필름), 목재, 플라스틱 또는 다공질 콘크리트 등 패션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소재를 사용해 ‘옷의 연금술사’라 불린 라반의 유산을 계승해야 한다. 그리고 거기엔 어떤 쾌감이 깃들어 있다. 예컨대 파리 클럽 ‘카스텔(Chez Castel)’에 방문한 제인 버킨이 착용했던 피부를 따라 흐르는 메시 소재 미니 드레스는 노골적인 에로티시즘을 보여주는 동시에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롭고 독립적인 여성성을 드러낸다. 줄리앙은 이를 ‘관능적인 갑옷’이라고 표현한다. 그의 밝은 사무실은 스파르타식으로 간소하게 구성되어 있지만, 감각적이고 학구적이다.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의 긴 유리 테이블과 놀(Knoll) 의자가 놓여 있고, 몽테뉴 거리가 내려다보이는 창가에는 해외 잡지를 비롯한 연구 자료와 책 복사본이 쌓여 있으며, 연필과 마커가 가득 담긴 작은 용기가 자리한다. 줄리앙은 오래전부터 언제나 그림을 그려왔다.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 최서단에 위치한 피니스테르(Finistère) 지역 끝자락에서 자란 소년의 창작을 위한 탈출구였다.

라반의 여성상을 구축하는 데 10년 넘게 걸렸다. 짧은 치마, 날렵한 바지, 플랫 슈즈 등 기술적인 소재와 구조적인 디자인의 옷을 입고 민첩하게 움직이는 활동적인 여성. 초창기에는 정복자의 기질을 지닌 존재로 그려졌다. “직설적이고 매우 자발적인 여성상이었습니다.” 줄리앙이 회상했다. “오랫동안 구축해온 강한 기반 위로, 좀 더 부드러운 변형을 주고 있습니다. 점차 유연해지고 있다고 할 수 있죠. 그리고 최근 거대한 사회적 변화가 그 태도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상하게도, 이런 움직임에 참여하는 여성을 ‘부드러움’을 통해 지원하고 싶었어요. 여성의 힘은 이미 당연한 전제입니다. 나는 그들이 강하다는 걸 알고 있어요. 주변 여성에게서 포착한 표현에 동조하고 싶습니다. 여성의 욕구. 그게 내 작업의 핵심입니다.” 이번 시즌 컬렉션은 봄처럼 섬세하다. 파스텔 색상을 바탕으로 티셔츠, 셔츠, 반바지 같은 기본 아이템에 매료되는 멋진 실루엣, 화려한 글리터, 금빛 자수, 은색 시퀸··· 사춘기 소녀 같은 풋풋함이 살아 있어 정말 매력적이다. “섬세한 색조를 원했습니다.” 줄리앙이 설명을 이어갔다. “중첩의 개념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오염, 파동, 외부 공격에 점점 더 민감해지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재킷, 셔츠, 파카를 겹쳐 입는 가벼운 레이어링을 제안했습니다. 퍼프 페이스트리나 사탕 포장지처럼요. 옆구리, 다리 등 피부를 드러내는 방식을 통해 몸과의 상호작용을 연출했습니다. 피부와 소재가 대비를 이루도록 하는 거죠. 보호하는 동시에 드러내는 거예요. 취약함을 내면의 힘으로 표출하고 싶었습니다. 이 개념을 과소평가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죠.”

창립자가 사랑했던 전방위적 실험 정신도 여전히 계속된다. 줄리앙 도세나는 이를 ‘럭셔리’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다. 그는 산업 소재뿐 아니라 희소가치를 지닌 재료도 활용했다. 무라노의 유명 유리 공방 베니니(Venini)에서 제작한 유리 가방, 아스티에 드 빌라트(Astier de Villatte)의 세라믹 가방, 주얼리 브랜드 아르튀스 베르트랑(Arthus Bertrand)의 18K 금으로 만든 가방. 이 세 가지가 대표적인 예다. 가장 화제를 모은 골드 가방은 25만 유로(약 4억1,000만원)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가방으로 기록되었다. 걸을 때마다 황금빛 가루를 남기던 금박 드레스도 잊을 수 없다. “하우스의 아방가르드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연구실에서 실험하는 듯한 작업이죠. 그 장인 정신을 존중하고 다시 정의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줄리앙이 말을 이었다. “아방가르드는 이제 특수하면서도 럭셔리한 노하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장인들과 협력해 그들의 기술을 라반에 반영하는 것은 더 나은 시대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파코 라반도 그랬죠. 그는 모든 소재를 오뜨 꾸뛰르에 적용함으로써 그것을 귀한 것으로 승화시켰어요. 금박 드레스도 그랬고요. 전부 금으로 만들면 좋았겠지만, 얼마나 복잡한 일일지 상상이 되죠. 하지만 모델이 지나갈 때 금박 조각이 흩날리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매우 시적인 순간이었죠. 이런 부드러움을 향한 전환은 연약한 요소지만, 내겐 더 현대적인 여성성으로 다가옵니다. 또 다른 시적 감성을 불러일으키죠. 궁극적으로 파코 라반의 작품은 한 편의 시(詩)였어요. 그가 초현실주의자들과 어울린 것도 괜한 일이 아니죠. 우리는 지금 그의 신화와 신성함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줄리앙 도세나에게도 그만의 개인적 신화, 감정적으로나 정서적으로 깊이 새겨진 기억이 있다. 그의 본질적인 취향을 형성한 프루스트의 마들렌 같은 존재다. 그중 하나는 그가 가장 중요한 교육을 받았다고 밝힌 라 캉브르(La Cambre)다. 줄리앙은 그곳을 좋아했고, 당시 패션학과 학과장 토니 델캄프(Tony Delcampe)를 비롯해 함께 공부한 친구 니콜라 디 펠리체(Nicolas Di Felice)와 마티유 블라지(Matthieu Blazy)에게 여전히 애정을 품고 있다. “마티유 덕분에 정말 기뻐요. 그가 샤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 임명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두 번째는 그의 고향 브르타뉴. 현재 파리에서 디자이너로서 새로운 삶을 살면서도 때때로 억눌러야 했던, 하나의 낭만적인 이미지다. 그가 자란 르 풀뒤(Le Pouldu)는 피니스테르에 있는 작은 마을로, 어릴 적에는 그곳에서 벗어나 모험을 떠나는 것만이 유일한 목표였다. 10대 시절 줄리앙은 마을 신문 가판대에 <더 페이스> <i-D> <데이즈드 앤 컨퓨즈드> 등 낯선 제목의 잡지를 요청하곤 했다. 르 풀뒤는 작지만 자부심을 지닌 곳이다. 고갱이 몇년간 머문 곳이기도 하고, 줄리앙은 그와 같은 길을 걷는 것을 즐겼다. 브누아트 그루(Benoîte Groult)가 그곳에 살았으며, 전설에 따르면 로베르 바댕테르(Robert Badinter)가 사형제 폐지 연설문을 그곳에서 썼다고도 한다. “르 풀뒤에는 아주 특별한 장소가 있어요. 바닷가인데,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떠올리는 곳이죠. 기억 속에서 변치 않는 풍경입니다. 앞에 해산물 플래터까지 놓여 있다면, 그 순간 세상의 왕이 됩니다! 어린 시절의 순수한 기쁨과 연결되기 때문일 겁니다. 거기에는 특별한 분위기가 있어요. 일종의 로맨티시즘이죠. 분명 나를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입니다. 칼라의 주름 장식이나 재킷에서 튀어나온 레이스에서도 찾을 수 있어요. 그곳에서 시작된 것들이죠.”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는 행복에 대한 이야기다. “결국 우리는 자신이 경험하고 얻은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더 깊이 깨닫게 됩니다. 전에는 이런 취향을 거부하고 많이 맞서 싸웠지만, 이제 기꺼이 받아들이죠. 우리는 종종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근본적으로 어떤 사람인지 고민합니다. 열심히 고민해도 어차피 답은 거기에 있어요.” 여름휴가 기간에 발견한 몽포르라모리(Montfort-l’Amaury)와 포르멘테라(Formentera)의 시골은 그가 찾은 또 다른 ‘평온의 장소’. 앞으로도 계속 방문할 예정이다. 줄리앙은 알레산드로 멘디니(Alessandro Mendini), 가에타노 페셰(Gaetano Pesce) 등 가장 좋아하는 디자이너 가구로 지금 사는 아파트를 꾸밀 때도 어린 시절 자기 방을 정리했던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그의 뿌리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매혹적인 이야기를 지닌 놀라운 조상을 발견했다. “고조부인 알체오 도세나(Alceo Dossena)는 르네상스와 에트루리아 미술에 대한 열정을 가진 위대한 조각가였습니다. 미켈란젤로나 도나텔로의 작품과 비교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재능이 뛰어났다고 해요. 문제는 그의 작품을 헐값에 사들인 미술품 상인들이 이를 바탕으로 가품을 만들어냈다는 겁니다. 당시 감정가들조차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요. 사건이 터졌을 때 가난하게 살고 있던 그는 무죄를 주장하며 로마 감옥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학창 시절 수학여행을 갔을 때였어요. 그의 동상 중 하나가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 성당 왼쪽 건물에 있었죠. 최근 경매 전문가 친구 덕분에 대리석으로 만든 성모와 아기 예수상을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그 작품을 볼 때마다 엄청나게 행복해요.”

줄리앙은 미신을 믿는 편이다. 힘든 순간이면 할머니가 주신 종교 메달을 몸에 지닌다. 또한 니콜라 제스키에르가 서른 번째 생일에 선물한 빈티지 바쉐론 콘스탄틴 시계를 착용하고 있다. 그는 카레이서 아일톤 세나(Ayrton Senna)의 투지와 영화감독 폴 토머스 앤더슨(Paul Thomas Anderson)의 모든 영화를 좋아하고, 스티븐 마이젤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갖고 있다. “이탈리아 <보그> 컬렉션 전체를 갖고 있어요. 그의 이미지 중 참고하지 않은 부분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그는 분명히 내 패션 교육의 일부예요.” 그는 무엇보다 책이 엄청나게 많다. 독서광인 줄리앙은 종종 책에서 영감을 얻곤 한다. 기욤 뒤스탕(Guillaume Dustan)의 작품을 그의 컬렉션에 인용한 적도 있다. 프랑스 광역 전철 RER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삶을 묘사하고 상상한 아니 에르노(Annie Ernaux)의 <바깥 일기(Journal du Dehors)> 역시 그를 사로잡았다. “독서는 다른 어떤 것보다 내 예술적 접근 방식에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강력한 연상력, 단어의 정확성 같은 것들이죠. 내 작품에는 언제나 문학적 레퍼런스가 있습니다. 책 읽는 습관이 유지되는 이유는 독서가 ‘완전한 몰입의 순간’과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최악의 하루를 보냈더라도 좋은 책을 읽으면 전부 잊고 또 다른 이야기로 빠져들게 되니까요.” 그는 다음 컬렉션을 준비하며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의 <마리 앙투아네트>에 푹 빠졌다. “다섯 번째 다시 읽고 있는데, 여전히 같은 설렘을 느낍니다. 이제 거의 외울 정도예요! 이 극도의 섬세함은 거친 무언가와 섞여 있어요. 거대한 외투에 숨겨진 보물처럼 말이죠.” 그는 내면 깊은 곳에서 다시 떠오르는 것들, 그리고 자신의 일에 매달릴 수 있는 감각적이고 물리적인 경험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건 일종의 계시입니다.” 이것이 바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는 여정이다.

니콜라 제스키에르의 또 다른 팔, 니콜라 디 펠리체. 꾸레주를 통해 그가 단번에 이룩한 하이패션의 완벽한 부활.

파리를 돌아다니는 변화무쌍한 백색 큐브. 니콜라 디 펠리체(Nicolas Di Felice)가 4년간 이끈 꾸레주처럼 유기적인 동시에 견고한 큐브다. 꾸레주 쇼가 열리는 이 큐브는 어느덧 디 펠리체를 상징하는 요소로 거듭났다. 공간 디자인에도 재능을 보이는 그는 긴 역사를 지닌 하우스가 현대적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퓨처리즘을 앞세운 앙드레 꾸레주(André Courrèges)가 1960년대에 혁신을 일으킨 것처럼 말이다. 사실 꾸레주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본사 건물은 여전히 프랑수아 1세 거리에 있으며, 인접한 작은 아틀리에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빛을 반사하는 수많은 거울과 투명 플렉시글라스로 만들어진 가구 역시 그대로다.

백색 큐브는 니콜라 디 펠리체라는 사람을 완벽하게 대변한다. 디 펠리체의 첫 피지컬 쇼(데뷔 컬렉션은 팬데믹 기간 중 영상으로 공개했다)였던 2022 봄/여름 컬렉션을 위해 뱅센느 숲에 설치한 화이트 큐브는 그가 여러 차례 파티를 열고 약혼자에게 사랑을 고백한 감성적인 장소였다. 2024 가을/겨울 컬렉션에는 큐브 내부에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것처럼 보이는 세트를 설치했고, 그다음 시즌에는 수천 개의 금속 공으로 파도 소리를 완벽하게 재현하며 탄성을 자아냈다. “세트 디자인은 매우 중요합니다.” 디 펠리체가 설명을 이어갔다. “큐브의 분위기를 바꿔가며, 매번 다른 이야기를 전하죠. 2025 봄/여름 쇼에서는 파도 소리로 공간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때 나는 평소와 달리 약간 염세적이었거든요. 밀물과 썰물, 순환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금속 공이 놓인 판은 ‘오션 드럼’이라는 이름의 악기였습니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소리를 내죠. 다음 쇼도 백색 큐브 안에서 선보일 겁니다. 색채로 가득한 장관을 연출해볼까 생각 중이에요.”

니콜라 디 펠리체는 늘 지속 가능성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왔다. 친구 관계, 일상, 자신의 옷을 입을 때도 마찬가지다. 벨기에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그는 늘 콧수염을 길렀고, 청 재킷과 청바지만 고집했다. 니콜라 제스키에르와 함께 발렌시아가, 루이 비통에서 경험을 쌓을 때도 그 스타일은 변하지 않았다.

“꾸레주는 잘 성장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전히 배우고 있고요. 진심으로 발전을 추구하는 팀과 함께 일합니다. 잘 진행되고 있어요. 합류 초반에 스태프들이 내가 무엇을 바라는지 물어본 게 기억납니다. 행인들이 꾸레주를 입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답했어요. 4년이 지난 지금, 그 목표를 달성했다고 봅니다. 거리에서도, 파티장에서도, 콘서트장에서도 꾸레주를 입은 사람을 볼 수 있으니까요. 파리지엔, 미국인, 아시아 사람들까지 꾸레주를 입죠. 미션 컴플리트! 하지만 나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물질적인 것에는 큰 욕심이 없어요. 멋진 사진을 한두 장 구매했을 뿐입니다. 여전히 같은 동네에 살고,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친구들을 만나죠.”

꾸레주라는 ‘잠자던 거인’은 디 펠리체를 만나 4년 만에 완벽하게 부활했다. 이제 사람들은 과감한 커팅, 세련되고 페미닌한 감성, 날렵하게 재단된 바지, 포근한 번데기 모양 망토를 보며 꾸레주를 떠올린다. 디 펠리체는 앙드레 꾸레주 특유의 역동적인 에너지, 바이닐 재킷, 밝은 색채를 역시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하우스 창립자에게 충실하고 싶습니다. 벨기에 사람들 대부분이 충직하죠. 벨기에 패션은 원형을 유지하는 동시에 진화하고 있습니다. 드리스 반 노튼, 앤 드멀미스터, 월터 반 베이렌동크, 마르탱 마르지엘라를 떠올려보세요! 프랑스 디자이너들은 대부분 하나의 테마를 바탕으로 컬렉션을 선보입니다. 벨기에 디자이너들은 긴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걸 즐기고요. ‘이 디테일은 어떻게 할까?’ ‘디자인을 조금만 변주하는 방법은 없을까?’ 등을 고민하며 컬렉션을 완성하는 식이죠. 꾸레주 컬렉션도 마찬가지예요. 디자인이 갑자기 달라지는 일은 없을 겁니다. 결국 그게 니콜라 디 펠리체라는 사람인 거죠. 작은 나라에서 온, 호기심 많고 어딘가 로맨틱한 디자이너.”

디 펠리체의 꾸레주가 다소 반복적이고 강박적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그의 재능은 앙드레 꾸레주의 선구적 정신과 우리가 사는 시대의 실용주의 스타일 사이에서 드러난다. 그는 피부, 몸, 곡선처럼 관능적인 요소를 즐겨 활용한다. 디 펠리체의 옷은 배꼽 부분이 늘 드러나고, 허리는 움푹 들어가도록 설계된다. 바지는 늘 슬림하고, 네크라인은 언제나 틀어져 있다. “이것을 ‘선의 관능미’라고 부릅니다. 하우스 아카이브에서 영감을 받았죠. 앙드레 꾸레주가 신체 노출을 어떻게 활용했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게 없습니다. 원이나 사각형, 투각 등을 활용한 그의 에로티시즘은 기하학적이었죠.”

그는 언제나 프랑수아 1세 거리에 위치한 깔끔한 사무실로 출근한다. 그리고 일주일에 4일 혹은 5일은 옷감에 둘러싸여 재봉에 집중한다. “디자이너는 잦은 회의에 시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결국 바늘과 실, 핀을 활용하는 일입니다. 멋진 음악을 틀고, 사랑하는 팀과 모여 패턴을 만드는 게 제일 즐겁죠. 일을 사랑합니다. 내 자유는 아틀리에에 있어요.”

니콜라 디 펠리체의 비밀 여덟 가지

용기
“내 첫 번째 메시지입니다. 프랑스 일간지 뒤표지를 장식했죠. 우리는 브랜드를 상징하는 단어 ‘용기(Courage)’로 도시의 벽 세 군데를 도배했습니다. 단순하면서 아름다웠죠. 희망을 지키고 함께 살아가자는 바람이 담긴, 2021년 새해 메시지였습니다.”

백색 큐브
“마법의 큐브! 벨기에와 프랑스는 하얀 큐브를 사용해 18세 미만 시청 금지 영화를 표기합니다. 누군가가 볼 수 없는 것이라면 분명 흥미로운 영화겠죠.”

편지지와 봉투
“꾸레주에 도착하자마자 만든 첫 번째 주얼리입니다. 한 통의 편지를 받은 뒤 꾸레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됐거든요.”

할아버지들의 사진
“알렉상드르와 미셸은 아빠 쪽이에요. 정말 멋진 분들이셨죠. 벨기에 석탄 광산에서 일하기 위해 이탈리아를 떠났습니다. 그들은 친구였습니다. 그렇게 부모님이 만나셨어요.”

향수
“새롭게 좋아하게 된 영역이에요. 향수는 한 편의 짧은 소설이나 다름없다고 느낍니다. 후각에 관한 기억력이 뛰어난 편이에요. 최근 선보인 향수 ‘Le Messager’는 어린 시절에 썼던 펠리칸 만년필 카트리지의 잉크를 떠올리게 하죠.”

사진
“저의 또 다른 열정입니다. 존 디볼라(John Divola) 작품을 좋아하는데, 그의 ‘Zuma’ 시리즈에 나오는 사진이 있어요. 이 시리즈는 바다 끝에 버려진 집이 시간이 지나며 붕괴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꾸레주 캠페인에 자주 참여하는 스파이로스 렌트(Spyros Rennt)도 빼놓을 수 없죠. 그가 촬영하는 애프터 파티 사진에는 애정이 담겨 있습니다. 마이클 라빈(Michael Lavine)도 있군요. 윌 맥브라이드(Will McBride) 사진은 한 편의 시를 닮았고요.”

영화
“로이 앤더슨(Roy Andersson)의 1970년 작 <스웨덴 러브 스토리(En Kärlekshistoria)>. 젊음의 순수함과 어른들의 냉소주의가 마주하는 영화입니다.”

뮤직 페스티벌
“꼭 필요합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시끄러운 음악을 즐기며 춤출 수 있으니까요. 소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에너지입니다. 종종 파티에서 돌아올 때면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느낄 때가 있어요.” (VK)

    SYLVIA JORIF
    사진
    MATTHIEU SALVAING, BILAL EL KADHI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