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을 파리의 아파트에 담아낸다면
몽마르트르 전망을 품은 푸른 실내와 공들여 수집한 오팔 유리그릇까지, 패션 디자이너 펠리페 올리베이라 밥티스타는 2021년 겐조를 떠난 후 아내와 함께 파리 저택을 디자인했다.

펠리페 올리베이라 밥티스타(Felipe Oliveira Baptista)의 3층 규모 아파트에서는 파리 힙스터들 사이에서 각광받는 생조르주 지역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탁 트인 거실에는 세 층 높이를 가뿐히 뛰어넘어 천장까지 이어지는 프랑스식 창문이 시원하게 나 있는데 그 전망의 아름다움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다. 실크처럼 얇은 오스트리아산 커튼과 천진난만한 줄무늬로 칠한 벽난로, 군데군데 놓인 파릇파릇한 스킨답서스, 마리오 벨리니(Mario Bellini)의 갈색 ‘카말레온다(Camaleonda)’ 소파가 안착한 공간에 빛이 스며들기 시작하자 밥티스타의 살롱은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그윽한 분위기를 발산했다. 그 광경을 잠시 넋 놓고 감상하다가 이윽고 광장에 모인 사람들을 구경하며 느긋한 오후를 보내기 딱 좋아 보이는 아담한 테라스로 나가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정말 멋진 풍경은 해가 지고 나서야 찾아왔다. 분홍빛으로 물든 하늘이 점차 어두워지면서 몽마르트르의 야경이 살아나기 시작했고, 밝게 빛나는 사크레쾨르 대성당의 양파 같은 지붕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워졌다.

패션 디자이너이자 예술가인 펠리페 올리베이라 밥티스타는 일조시간이 연평균 3,000시간에 달하는 리스본의 일조량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다가 열여덟 살에 고향을 떠나고 나서야 그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 깨달았다. 르메르에서 경력을 쌓기 시작해 라코스테와 겐조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며 빠르게 자리 잡았지만 ‘빛의 도시’ 파리에서는 고향에서처럼 햇살을 풍요롭게 누리지 못했다. 파리에 정착한 지 20년이 흐른 후 아내와 함께 살 첫 보금자리를 마련했을 때, 밥티스타가 커다란 창을 집의 필수 조건으로 내세운 이유다.

밥티스타는 파리지엔인 아내 세브린(Séverine) 덕분에 이런 보물 같은 집을 찾을 수 있었다. 인생의 동반자일 뿐 아니라 2003년에 함께 패션 브랜드를 론칭한 경험이 있을 정도로 일할 때도 훌륭한 파트너십을 발휘하는 부부는 처음엔 아파트보다 주택을 원했다. 둘 다 집에서 느긋하게 일하는 것을 좋아하고, 10대 아들 둘을 키우고 있는 만큼 넉넉한 크기로 가는 게 좋겠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러나 부동산 전문가들과 몇 차례 실망스러운 미팅을 진행한 후 이들은 무엇보다 전망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얼마 후, 발코니 쪽 거실을 촬영한 사진을 내건 지금 집을 인터넷에서 발견한 부부는 곧바로 방문 약속을 잡았다.
밥티스타와 세브린은 이 집에 발을 들이자마자 자신들이 찾던 곳이었음을 깨달았다. “우리를 안내한 중개업자가 등을 돌린 순간, 마주 보며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른 기억이 나요.” 밥티스타가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미소 지었다. “더 신기한 건, 20년 전 이 집에서 모퉁이만 돌면 바로 보이는 친구 집에 저녁 초대를 받아 다녀오던 길에 세브린과 함께 광장을 걸으며 눈여겨봤다는 사실이죠. 제가 이 집을 가리키면서 ‘언젠가 이런 집에서 살면 정말 좋겠다’고 말했대요.” 심장을 가장 뛰게 한 것은 사진으로 봤을 때부터 심상치 않던 이곳의 전망이었다. “영화관 스크린을 앞에 두고 사는 기분이에요.”

그렇게 2016년 밥티스타 부부가 이곳을 처음 매입했을 때, 모든 것이 황홀한 건 아니었다. 특히 전망이 아름다운 곳 주변은 여러 시대의 물건이 중구난방 섞여 있어 오히려 지저분한 인상을 줬다. 그 예로 고딕 스타일 벽난로는 지나치게 거창해 보였고, 1920년대 디자인의 거울로 장식한 복도는 군데군데 금이 간 데다 ‘뻔하고 뻔한’ 오스만 시대 장식으로 가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곡선형 벽과 둥글둥글 우아하게 위로 솟구친 계단은 밥티스타에게 훌륭한 영감을 안겼다. 부부는 그 공간을 과감하게 트기로 결정하고, 불필요한 문을 없앤 뒤 개방감 있는 아치형 입구를 만들어 집 전체에서 곡선 모티브를 반복했다. “하지만 모든 걸 다 뜯어고치진 않았어요.” 9개월이나 걸린 리모델링을 총지휘한 세브린이 설명했다. “처음부터 이런 모습인 것 같은 느낌을 원했죠.”
차분하고 고요해 꿈속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곳 분위기는 카푸치노 브라운으로 마감한 부엌과 카키빛 욕실을 제외하고 집 전체에 칠한 파우더 블루의 존재감에 압도당한 모습이었다. 세브린이 ‘마음을 진정시키면서도 기분을 북돋우는 차분한 파랑’이라고 묘사한 이 특별한 색이 탄생하기까지 여러 번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다. 오크 바닥재를 한 겹 정도 더 어둡게 칠하고 나자 이번에는 벽이 심심해 보였다. 늘 푸른 집에서 살아온 부부는 이번에도 집 안 곳곳을 과감하게 푸른색으로 칠했다. 손보기 가장 까다로운 것은 벽난로였다. 높이 솟은 벽난로 굴뚝은 북프랑스에 자리한 로베르 말레 스테방스(Robert Mallet-Stevens)의 유명한 맨션 빌라 카브루아(Villa Cavrois)에서 볼 수 있는 굴뚝 같은 모습으로 이미 한 번 개조한 상태였다. “굴뚝은 파란 페인트에 새카만 모조 목재를 엉성하게 덧댄 모습이었어요.” 세브린이 회상했다. “하지만 이젠 산뜻한 노란색 줄무늬로 바뀌어서 좋아요. 펠리페를 설득하기가 너무 어려웠지만 결과적으로는 우리 마음에 쏙 들죠.”

둘은 함께 일할 때도 그렇듯 의견을 적극적으로 주고받으며 이 집을 지금 모습으로 완성했다. “패션은 남편이 주도권을 갖고 있죠. 그걸 전제로 서로 의견을 주고받고요.” 세브린이 다정하게 말을 건넸다. “그러나 집에 관해서는 완전 반대예요. 물론 그렇더라도 서로 많은 대화를 주고받는다는 건 똑같지요. 우리는 대화를 정말 많이 나누는 부부랍니다. 그 과정 덕분에 혼자였다면 절대 만들어내지 못할 결과가 나오죠.” 그러면서도 각자의 개성은 한 공간에서 특별한 조화를 이룬다. 각 방에 생동감을 일으키는 밥티스타의 그림과 사진 작업처럼 말이다. 2021년 여름 겐조를 떠난 밥티스타는 그 후 18개월 동안 회화 작업에 몰두했고, 2022년에는 파리에서 다수의 석판화와 목판화를 아우르는 전시를 열었다. 그가 그린 나른한 분위기의 인물화는 이 집의 벽난로와 찬장 문 등을 장식하고 있다.


한편 세브린은 온라인에 강하다. 온갖 웹사이트와 SNS에서 1970~1980년대 보물 같은 소품을 기가 막히게 발굴하는 세브린 덕분에 이 집에는 마리오 보타(Mario Botta)의 천장 조명, 에토레 소트사스(Ettore Sottsass)의 테이블, 세르지오 로드리게스(Sergio Rodrigues)의 다이닝 체어가 공존한다. 세브린도 밥티스타와 마찬가지로 디테일을 중시한다. 미셸 뒤카로이(Michel Ducaroy)의 ‘토고(Togo)’ 소파를 라프 시몬스가 크바드라트를 위해 디자인한 패브릭으로 감싸고, 영국의 한 중고 시장에서 아보카도색 욕실 가구 세트를 공수한 것, 부엌에 뉴욕의 유명 앤티크 숍 엔드 오브 히스토리(The End of History)를 몇 년 동안 드나들며 수집한 푸른색 오팔 유리그릇과 조화를 이루도록 ‘가장 저렴한’ 포르투갈산 푸른색 타일을 깐 것에서 세브린의 집요한 미감이 포착된다.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공들여 꾸민 집이지만 부부는 이 집을 보물처럼 애지중지하진 않는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큰아들의 열여덟 살 생일 파티를 집에서 열도록 허락해줄 정도이니 말이다. “그날 우린 바로 옆 호텔에 묵었어요.” 밥티스타가 말했다. “솔직히 걱정됐죠. 10대 애들이 60명이나 몰려왔으니까요! 새벽 1시쯤 상황이 어떤지 보려고 호텔에서 나와 바깥에서 몰래 집을 살펴보는데 다들 소리 지르며 춤을 추고 난리도 아니더군요.”(웃음) (“하지만 파티가 끝난 후 아들이 최선을 다해 집을 말끔히 치웠어요.” 세브린이 덧붙였다.) 이들 가족은 크리스마스를 맞아 집을 꾸미고, 저녁 식탁을 차리고, 파티를 열어 패션 디자이너 파스칼 움베르(Pascal Humbert)나 도예가 칼루 뒤뷔스(Kalou Dubus) 같은 예술적인 파리지앵 친구 초대하길 즐긴다. 그런 날엔 주로 밥티스타가 요리를 책임진다. “포르투갈 출신인 만큼 포르투갈의 국민 간식 바칼랴우만큼은 기가 막히게 만들거든요.”

하지만 당분간 파티는 없다. 리스본으로 이주를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밥티스타는 개인 작품 활동을 계속 이어가며 컨설팅에 집중하고, 세브린은 인테리어 디자인을 시작하는 방향으로 앞으로 두 도시를 기반으로 살아가는 삶을 계획하고 있다. 부부는 이미 정원이 딸린 20세기 초에 지은 집을 개조하는 작업에 착수한 상태였는데, 세브린은 벌써부터 온라인 경매에서 빈티지 가구와 소품을 속속 낙찰받고 있었다. “집이 우리 인생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전시장 같은 공간이길 바랍니다.” 밥티스타가 이야기했다. 그러나 집 안 가득 스미는 햇살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런 그림 같은 파리 전경을 품은 집은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 세브린이 동의하며 덧붙였다. “볼 때마다 새로운, 지나치게 아름다운 풍경이죠.” (VL)
- 피처 에디터
- 류가영
- 글
- ELLIE PITHERS
- 사진
- MATTHIEU SALVA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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