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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 트렌드, 화장대가 부활했다

2025.06.10

인테리어 트렌드, 화장대가 부활했다

자신의 초상화를 새긴 퐁파두르 부인의 커스텀 화장대부터 서랍장에 꽃무늬 테이블보를 씌운 화장대까지, 침실의 필수 가구였던 화장대를 다시 소환하다.

“화장대는 미적으로나 디자인적으로 인테리어에 언제나 도움이 되는 가구입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플로라 솜스가 꾸민 화장대.

1965년 영화 <007 선더볼 작전>의 대본 초고에는 포함됐지만 끝내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은 제임스 본드와 팜므 파탈 피오나 볼프(Fiona Volpe)의 시퀀스가 있었다. 피오나가 드라마틱하게 립스틱 뚜껑 안쪽에 은밀히 숨겨둔 칼을 꺼내 본드의 목에 들이대는 장면으로 피오나의 화장대 근처에서 촬영할 계획이었다. 화장대, 할리우드 황금기에 제작된 영화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이 거울 달린 가구는 화려함과 여성성을 상징함과 동시에 묘한 아름다움을 뿜어내는 소품이었다. 당시 화장대는 각종 화장품을 담아둘 수납함과 가만히 앉아 그것을 펴 바를 수 있는 스툴, 러브 레터나 일기 등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물(혹은 무기)을 담아두는 서랍 등으로 구성됐다. 한때는 중요한 가구로 여겨졌으며 1961년 영화 <티파 니에서 아침을>에서 세간이 거의 없다시피 했던 주인공 홀리 골라이틀리(Holly Golightly)도 화장대는 갖고 있었을 정도였다.

그러나 18세기 시인 알렉산더 포프(Alexander Pope)가 ‘자부심의 재단’이라고 묘사했던 이 화장대가 침실에서 슬금슬금 자취를 감춘 시기도 있었다. 어떤 경우에는 더 확장했고(카다시안 패밀리의 저택에는 ‘글램 룸’이라는 꾸밈 전용 방이 있다), 드레스 룸에 편입되기도 했다. 그러다 아예 자취를 감춘 적도 있었다. 런던의 인테리어 디자이너 크리스찬 벤스(Christian Bense)가 말하길, 화장대가 ‘디자인적 허영’으로 여겨지고, 보습 크림이나 마스카라는 서서도 바를 수 있다는 합리주의적 생각 때문이었다. 물론 화장대를 둘 충분한 공간이 없다는 사실과 누군가와 함께 쓰는 침실에 나만 사용하는 가구를 두는 것을 꺼리는 경향도 영향을 미쳤다. 또한 루시아나 팔루치, 오드리 헵번 같은 배우에게 푹 빠져 있었던 소녀들이 시간이 지나 완전히 다른 인격체로 성장했고, 과거에 들인 화장대는 어느 순간 구식으로 보였다. 촌스러운 꽃무늬 패브릭을 덧씌운 할머니의 화장대나 연극 분장실에 더 어울릴 법한 거대한 전구로 둘러싸인 화려한 화장대는 더는 매력적인 가구로 느껴지지 않게 된 것이다.

역사적으로 다양한 디자인의 화장대가 등장했지만, 일설에 따르면 화장대의 특정 모습과 스타일이 대중에게 처음으로 분명히 각인된 것은 1975년경 루이 15세의 정부로 엄청난 영향력을 과시했던 퐁파두르 부인(Madame de Pompadour)이 맞춤 제작한 화장대 때문이었다. 매일같이 치장에 소요되는 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진 퐁파두르 부인은 가구 디자이너 장 프랑수아 외벤(Jean-François Oeben)을 불러, 치장받는 동안 앉아서 편지를 쓰거나 손님들과 수다를 떨고, 왕실을 효과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할 수 있는 가구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화장대가 매우 마음에 들었던 부인은 당대 유명 화가였던 프랑수아 부셰(François Boucher)에게 부탁해 화장대에 자신의 초상화를 새겨달라고까지 했다. 그 후 몇십 년 동안 화장대는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며 꾸준히 사랑받았다. 고딕 스타일이 유행하는가 하면 다시 로코코 스타일이 유행하기도 했다. ‘하리코(Haricot)’라고 불리던 콩 모양(키드니 형태)의 화장대는 가장 꾸준히 인기를 끌었던 스타일이다(당시 버전은 지금처럼 천으로 감싼 형태는 아니었다). 19세기 말에는 침실의 필수 요소로 자리 잡았고, 인상주의 화가들이 즐겨 그리는 소재가 될 만큼 흔했다. 이어 1940년대에는 아르데코나 할리우드 리젠시(리젠시 모던이라고도 칭하며 대담한 색상대비와 금속과 유리를 앞세운 반짝이면서도 편안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스타일이 가미되었고, 그 후에는 모든 것이 꽃무늬 천으로 뒤덮인 시대가 찾아왔다.

런던의 인테리어 회사 시빌 콜팩스 앤 존 파울러(Sibyl Colefax & John Fowler)의 디렉터 재니 머니(Janie Money)는 말한다. “기분 좋게 씻고 나온 후 다시 바깥세상으로 나가기 전까지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그곳에서 충분한 준비 시간과 휴식을 누리는 것은 생각보다 삶에서 큰 행복일지 모릅니다.” 스스로를 가꾸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다용도로 화장대를 사용했던 퐁파두르 부인처럼, 드 로제 사(De Rosee Sa)는 책상으로도 활용할 수 있는 화장대를 디자인했다. 책상을 겸하는 화장대를 들이면 “침실을 침실 이상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크리스찬 벤스는 말한다. 거주 공간이 협소한 공간에서 재택근무를 할 때 화장대의 존재는 더없이 소중하다. 최근 SNS에서 “바닥에 큰 바구니를 두면 고데기와 헤어드라이어를 보관하는 데 용이하다”는 아이디어가 소소한 이슈를 일으켰는데, 사실 화장대 하나만 두면 말끔하게 해결될 일이다. 마지막으로 장식적인 이점도 빼놓을 수 없다. “화장대는 미적으로나 디자인적으로 인테리어에 언제나 도움이 되는 가구입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플로라 솜스(Flora Soames)의 말이다. 또 다른 인테리어 디자이너 사라 반레넨(Sarah Vanrenen)은 원하는 화장대를 구입한 다음, 그에 맞춰 방 전체 인테리어를 했다고 터놓았다.

플로라 솜스가 강조한 것이 또 하나 있다. “빛이 잘 들도록 하는 게 중요해요. 이왕이면 자연광과 인공조명 둘 다요.” (이런 관점에서 꽤 많은 호텔 화장대가 점수를 깎아먹는다.) 또한 앉아 있기에 편해야 한다. (화장대에서는 정말 화장만 하는 게 아니다.) 온라인 가구 쇼핑몰 마스터 더 아트(Master the Art)의 케이트 엘웰(Kate Elwell)은 자기 화장대에서는 정원이 내다보인다면서, 멋진 뷰를 거느린 화장대일수록 개인 시간이 더 풍요로워진다고 이야기했다. “거울도 잘 선택해야 해요. 벽에 걸 수도 있고, 화장대 위에 놓을 수도 있죠.” 재니 머니가 말했다. 경첩으로 연결한 세 면짜리 거울을 원하는지(머리 손질에 진심인 이들에게 특히 유용하다), 아니면 심플한 거울을 원하는지에 따라 화장대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진다. 또한 화장대는 반드시 ‘화장대’여야 할 필요는 없다. “테이블이나 콘솔을 화장대로 활용해도 좋죠.” 크리스찬의 제안이다. 꽃무늬 천으로 뒤덮을 게 아니라면 테이블 다리가 매력적인 것을 들이는 것을 추천한다. 짧은 다리가 달린 옷장 형태로 한때 화장대를 대체하는 가구로 각광받은 로우보이(Lowboy)는 지금도 경매나 앤티크 숍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어떤 가구건 간에 독립된 화장대 거울을 올려두면 근사한 화장대가 탄생한다. 예쁜 테이블보만 있으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손쉽게 가릴 수 있다. 플로라는 테이블보를 잘 활용할 것을 추천했고, 사라 반레넨은 ‘자잘한 프린트가 있는 것’을 선택하면 더 모던한 분위기가 난다고 조언한다. “규칙적인 주름이 잘게 잡힌 테이블보를 씌우면 훨씬 정갈한 느낌이 나요. 1980년대 천을 덧씌운 화장대보다 확실히 단정한 느낌이죠.”

물론 화장대는 조명과 의자, 스툴이 딸린 가구에 불과하지만, 그것을 얼마나 아끼고 좋아하며 잘 꾸미느냐에 따라 더 의미 있는 사물이 될 수 있다. 누군가와 함께 쓰는 침실에 슬그머니 둔 것일지라도, 오로지 나만의 공간을 갖게 되는 것이다. 케이트 엘웰은 어머니가 화장대 유리 상판 아래 가족사진을 넣어뒀고, 가끔은 꽃이나 라디오, 음료 트레이, 조개껍데기나 성냥갑 같은 추억의 물건을 올려둔 것을 여전히 기억한다. 이는 애초에 화장대의 존재 이유, 신성시되거나(물론 이런 과장에도 얼마간의 진실이 담겨 있다) 꼭 필요한 ‘장비’로서 존재 이유를 논하기도 전의 이야기다. 우리는 화장대에서 6단계나 되는 피부 보습 루틴에 몰두할 수 있고, 오래전에 쓴 일기를 다시 읽으며 추억에 잠길 수 있고, ‘Moon River’를 들으며 가만히 창밖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작지만 부족함 없는 공간에서 꼭 필요한 자유를 만끽하면서 말이다. (VL)

    피처 에디터
    류가영
    FIONA MCKENZIE JOHNSTON
    사진
    SIMON UP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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