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긍정인, 공명
어떤 상황에도 공명의 방향키는 긍정.
<전지적 참견 시점(전참시)>에 나올 땐 어쩔 줄 몰라 하더니, <바퀴 달린 집> 시즌 3에선 편안해 보여요. 전보다 예능 프로그램에 적응했나 봐요.
<전참시>는 카메라가 코앞까지 오는 관찰 예능 프로그램인 데다 혼자서 뭘 하려니 어색했어요. <바퀴 달린 집>은 성동일, 김희원 선배님이 함께해주셔서 확실히 마음이 놓여요.
초면인데도 쉽게 친해지더군요. 선배에게 살갑게 다가가는 편인가요?
낯가림이 크게 없어서 사람들과 빨리 친해질 수 있어요. 한편으론 내성적이면서도 관계를 맺을 땐 외향적이거든요.
사회생활은 인간관계에 치이기 마련인데, 오히려 공명은 사람에게서 에너지를 얻나요?
저 김동현(공명의 본명)은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받고 그만큼 돌려주고 싶어요. 배우로서도 마찬가지예요. 사랑받는 직업이니 그만큼 힘을 드리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바퀴 달린 집>에서 “마라톤처럼 오래 이 직업을 하고 싶다”고 했어요. 최근 87세의 배우 이순재가 3시간 20분간 연극 <리어왕>으로 무대에 올랐죠. 그만큼 오래 현역에 있고 싶다는 소망인가요?
마라톤을 예로 든 건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고 내 페이스대로 뛰고 싶다는 의미예요. 선생님처럼 오랜 연기 생활이 골인 지점이지만, 거기까지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가고 싶어요.
지난 9년여간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거의 쉬지 않았어요. 20여 작품이니 매년 두세 편을 했네요. 이 정도면 초반 레이스는 꾸준히 뛰었네요.
직업 특성상 발자취가 남잖아요. 돌아보면 이렇게까지 해온 내가 뿌듯하고 앞으로도 들뜨지 않고 해온 대로 가자며 되새김해요.
웹 드라마 <방과 후 복불복>(2013)이 데뷔작으로 알려졌지만, 촬영은 영화 <얼음강>(2012)이 먼저죠. <혜화,동>(2011)으로 주목받은 민용근 감독 작품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밝은 공명이 아니라 처연한 얼굴을 볼 수 있어요. 양심적 병역 거부자 역할이죠. 영화 <수색역>(2014)에서도 욕망이 들끓는 재개발 지역에서 궁지에 몰린 청년을 연기했어요. 욕을 하는 공명이라니, 다소 새로웠어요. 공명은 선한 이미지가 강한데, 반대 역할로 변신하고 싶은 마음이 있나요?
당시 <수색역>이나 <얼음강>이나 “찍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열심히 했죠. 이미지 변신을 목표로 배역에 다가가지 않아요. 그때나 지금이나 가리지 않고 작품을 하고 싶고, 그 안에서 자연스레 다양한 모습이 보인다면 좋겠죠.
특히 자신과 완전히 다른 <수색역>의 청년 상우를 연기할 때 어땠나요?
촬영할 땐 오히려 재밌었어요. 휠체어를 타고 온 친구에게 욕을 하는 장면에선 희열마저 일었죠. 내 안의 깊은 곳에 있던 욕망, 그 작은 불씨를 활활 키워서 표현하니까요. 하지만 영화를 끝내고는 연유도 모른 채 힘들었어요. 왜 이럴까 싶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나와 반대되는 캐릭터를 연기했기 때문인 거 같아요.
다른 작품에서 그런 후유증을 얻은 적 있나요?
<수색역> 이후에는 드라마 <화정>(2015) <아름다운 당신>(2015~2016)처럼 저와 비슷한 결의 역할이어서 괜찮아졌어요. 이 분야에 경험이 쌓이면서는 내게 없는 무언가를 꺼내 연기해도 해낼 수 있게 되었어요. 아직 부족하지만요.
<수색역>에는 같은 서프라이즈(배우 그룹)였던 배우 이태환도 함께 출연했죠. 서강준, 유일, 강태오, 이태환 등 서프라이즈 멤버들과 여전히 친한가요?
지금도 단톡방에서 활발히 대화해요. 시국이 이래서 다섯 명이 한꺼번에 못 보지만 시간 날 때마다 따로 만나고 있어요. 여전히 힘을 받고 편안하죠.
서프라이즈가 결성된 2013년에 멤버들을 인터뷰했어요. 반지하 숙소에서 한 방에 다섯 명이 김밥처럼 잔다는 얘기가 기억나네요. 지금은 그 시절이 추억이겠어요.
정말 힘들었기에 “그때가 좋았다”란 말은 나오지 않아요. 다들 시작하던 때라 설렘과 불안을 함께 가지던 시기죠. 시간이 참 빨리 흐르네요.
영화 <극한직업>(2018)을 터닝 포인트로 들곤 하죠. 전후 무엇이 바뀌었나요?
함께 출연한 선배들이 인생의 터닝 포인트예요. 인생 경험자들에게 배운 삶의 방식 덕분에 내가 성장했어요.
천만 흥행작이라 배우 생활에 편해진 면이 있나 했죠.
물론 작품 자체도 의미가 있지만, 사람이 더 커요. 예를 들어 (이)하늬 누나는 쉬지 않고 삶의 원동력을 찾아내는 사람이에요. 계속 도전하면서 앞으로 나갈 힘을 키워내는 태도를 배웠죠. (진)선규 선배는 선함의 끝판왕이라, 나도 그처럼 되고 싶어졌어요. (류)승룡이 형, (이)동휘 형 모두 인간적인 면을 배웠고요. 내 삶에서 결정적인 사람들이에요.
김한민 감독의 <명량>과 더불어 이순신 3부작 중 하나인 <한산: 용의 출현>에 이억기 수군절도사로 나옵니다. 박해일, 안성기, 손현주, 변요한 등이 이순신 장군과 조선 수군으로 출연, 한산해전을 그리죠. 전에 “박해일 배우처럼 감동을 주고 싶다”고 소망했는데, 함께 연기하면서 어땠나요?
박해일 선배의 <국화꽃 향기>를 보고 좋아하기 시작했어요. 필모그래피 하나하나 파헤쳐가며 롤모델로 삼아왔죠. 저도 언젠가는 그런 연기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기다리면서요. 이번에 정말이지 선배 옆에서 가만히만 있어도 영광이었어요.
박해일 배우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했어요?
아니요. (웃음) 앞서 제가 선배들에게 살갑게 다가간다 했지만, 너무 떨려서 아무 말씀 못 드렸어요. 다른 대선배님들도 많아서 긴장의 연속이었어요. 긴장한 만큼 배우는 점이 많기에 소중한 시간이었죠. 숙소에 돌아가 누워선 ‘아, 오늘도 많이 깨우쳤다’면서 잠들었어요. 촬영 후에 선배들과 밥집에서 맥주 한잔까지 하고… 아직도 실감 나지 않아요.
악조건에도 배울 점을 찾는 성격이라 주변에서 부러워하겠어요.
‘넌 스트레스 안 받아서 좋겠다’란 말을 들을 정도지만 이런 성격이 형성된 지는 3~4년밖에 안 됐어요. 물론 어릴 때도 긍정적인 면이 있었지만 배우 일을 하면서 점점 더 굳어졌어요. 열여덟 살 때부터 회사에 들어가서 열아홉 살에 촬영을 시작하고 스무 살에 데뷔했죠. 자아 정립을 사회생활 안에서 했고 다행히 괜찮은 쪽으로 들어선 거 같아요.
이 직업에서 생존하기 위해 낙천적인 성격을 만들어간 건가요?
무의식적으로 그런 면도 있겠네요. 하지만 배우를 하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의 가르침 덕에 지금의 내가 됐을 거예요. 인연들이 저를 이끌어줬죠.
믿고 실천하는 연기론이 궁금해요.
직접 경험하는 데 한계가 있으니 캐릭터를 대할 때 마음을 다해 공감하고 이해하려 해요. 그 사람처럼 생각하고, 글로 남겨요. 연기론이라 할 순 없지만 문자로 쓰면서 캐릭터를 분석하고 정리하는 편이에요.
역할을 잘해내려고 이 정도까지 해봤다는 것이 있다면요?
<얼음강>은 병역을 거부하는 여호와의 증인 신자 역이어서, 감독님과 그 종교 집회에 갔어요. 거기에 모인 사람들 얘기도 듣고, 병역 거부로 감옥에 간 사람도 만났죠. 당시 열아홉 살이었으니 꽤 인상적인 경험이었어요.
배우를 평생 직업으로 삼은 만큼, 어떤 사명감을 느끼나요?
사명감이라기보다 연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사랑을 드리고 싶어요. 제가 그만큼 많이 받았고, 평생 하고 싶은 직업이니만큼 계속 드릴 수 있는 배우였으면 해요.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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