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세계 최초의 안토니 곰리 상설관
다양한 사람과의 대화가 좋은 건축의 필수 조건이라 믿는 안도 다다오에게 흥미로운 친구가 생겼다. 뮤지엄 산에 들어선 조각가 안토니 곰리의 세계 최초 상설관을 설계한 그에게 즐거운 동행을 마무리한 소회를 물었다.

2년 전, 뮤지엄 산(SAN) 개관 10주년을 맞아 열린 기획전 <안도 다다오-청춘> 기자 간담회에 유난히 많은 취재진이 운집했다. 건축 및 예술 분야에서 오랜 시간 활약한 원로 기자들과 장르 불문, 이슈를 놓치지 않는 발 빠른 웹 매거진 에디터들까지 총출동한 현장은 후덥지근한 열기로 가득했다. 모두가 단 한 사람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안도 다다오(Tadao Ando)였다. 단정한 수트에 가벼운 스니커즈를 매치한 그가 보여준 확신과 에너지는 그날 그 자리에 모인 모두를 매료했다. 아무리 까다로운 의뢰인이라도 그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금세 마음이 흔들릴 것 같았다.
현대미술의 아이콘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도 분명 그 열의를 감지했을 것이다. 11월 30일까지 뮤지엄 산에서 열리는 곰리의 국내 최대 규모 개인전<Drawing on Space>와 함께 곰리와 다다오가 공동 설계한 그라운드(Ground)도 공개됐다. 작품인 동시에 장소로 기능하는 이곳은 곰리의 세계 최초 상설관으로도 화제였다. 이 작업을 위해 한동안 지속한 동행에서 다다오는 곰리의 강인함과 깊이, 슬픔과 근심, 분노를 모두 느꼈다고 터놓는다. “저와 곰리의 삶과 예술에 대한 강한 의지가 대지의 깊은 곳에서부터 서서히 스며 나오는 장소가 탄생한다면, 정말 근사하지 않을까 기대했습니다.” 마침내 모든 비하인드 스토리에 대해 낱낱이 물을 수 있게 된 지금, 나는 안도 다다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2023년에 뮤지엄 산 개관 10주년을 맞아 열린 기획전 <안도 다다오-청춘>을 위해 원주를 찾았고, 올해는 이곳에 조각가 안토니 곰리의 세계 최초 상설관을 선보입니다. 뮤지엄 산과 또 하나의 추억을 쌓는 셈이군요.
종종 건축의 목적이 ‘완성’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관점이라면 건물은 완성된 순간이 곧 정점이며, 이후에는 점점 낡아가는 존재가 되고 말죠. 저는 이 사고방식에 강한 위화감을 느낍니다. 건축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시간과 함께 성장하는 생명체로 바라봐야 합니다. 아름답게 나이 먹을 수 있도록 애정을 갖고 키워나가야 해요. 손상되면 고치고, 때로는 리노베이션으로 새로운 자극도 불어넣으면서요. 그렇게 건축은 계속 살아갑니다. 물론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한 작업이고, 모든 일을 감당해야 하는 건물주에게도 부담이 되겠죠. 그런 점에서 건축가로서 뮤지엄 산 프로젝트를 만난 것은 정말 큰 행운입니다. 뮤지엄 산의 설립자 고(故) 이인희 고문을 만난 것은 2000년대 초였습니다. 2009년 금융 위기를 극복한 후 5년 만에 미술관을 완공했죠.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2019년에 명상 공간, 2023년에 빛의 공간, 올해는 안토니 곰리와의 협업을 통해 그라운드를 공개하는 식으로 뮤지엄 산은 계속 확장 중입니다. 제게는 이것이 건축입니다. 지형, 기후, 그리고 프로젝트와 관련된 다양한 사람과의 대화를 기반으로 공간에 유일무이한 생명을 불어넣으며 단순한 ‘개발’로는 얻을 수 없는 강인한 건축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너무 익숙해진 개념인 지속 가능한 건축 역시 단순히 소재나 설비에 의존할 게 아니라 사람과 건축의 관계성 위에서 탄생한다고 믿어요. 뮤지엄 산은 지난 10여 년간의 행적을 통해 그런 믿음을 증명해왔습니다.
그라운드의 경우 당신의 건축에서 익숙하게 본 콘크리트 회색빛이 아닌 붉은빛 실내가 눈에 띄더군요. 화성처럼 미래적인 분위기가 느껴지고요. 이곳을 설계하며 새롭게 시도한 것이 있나요?
안토니 곰리 씨가 맨 처음 한 말은 “내 작품을 감싸는 동굴 같은 공간을 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그의 마음 깊은 곳에 인도의 엘레판타 석굴이나 중국의 둔황 석굴 같은 원시적이고 영적인 공간에 대한 이미지가 존재하는 듯했습니다. 제 일은 현대 건축의 관점에서 그 이미지에 최대한 가깝게 접근하는 것이었죠. 그 장소에 흐르는 맑은 공기, 매서움과 부드러움이 공존하는 자연환경에 호응하며, 땅과 하나가 되면서도 곰리의 조각에 묻히지 않고, 대화를 이끌어내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 끝에 떠오른 아이디어가 ‘순수한 기하학적 공간을 품은 인공 언덕’입니다. 석굴처럼 바깥에서는 건축 형태가 거의 보이지 않지만 안에는 인간의 이성을 상징하는 뚜렷한 기하학 요소가 존재하고, 머리 위에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빛이 스며듭니다. 생태학적 지형 안에 매몰된 인공적인 공간 안으로 자연의 숨결이 흘러들면서 자연과 인공물 사이의 긴장감과 조화가 교차되게 유도하겠다는 계획이었죠. 그라운드는 안토니 곰리라는 세기의 예술가와 만났기에 탄생할 수 있었던 공간입니다. 이곳에서만 실현할 수 있는 건축이었고요. 규모로만 본다면 건축이라기보다 토목 구조물에 가깝지만요.(웃음) 다소 난해할 것 같았는데, 놀랍게도 처음 구상한 그대로 완공됐습니다. 관장님을 비롯한 미술관 관계자들의 열정과 끈기에 진심으로 감사와 존경의 뜻을 전합니다.

“건축과 예술의 이상적인 관계는 서로 독립적인 존재로서 공존하며 서로를 자극하는 것”이라고 말한 적 있습니다. 이곳에서 안토니 곰리의 예술과 안도 다다오의 건축은 어떻게 서로를 자극하나요?
그건 방문한 사람이 어떻게 느끼는가에 따라 달라지겠죠. 다만 건축가와 예술가라는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진 두 사람이 각자의 믿음을 기반으로 공간을 창조하는 과정에서 마찰이나 충돌은 당연히 생길 거라 예상했습니다. 저도 ‘에고’가 무척 강한 사람이지만, 곰리 씨 역시 긴 시간 동안 예술의 최전선에서 활동해온 사람이기에 분명 저와 같은 강인한 면을 갖고 있을 테니까요.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강하게 맞부딪친 두 사람의 의지가 대지의 깊은 곳에서부터 서서히 스며 나오는 장소가 탄생한다면, 아주 흥미로운 일이 벌어질 거라 기대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안토니 곰리의 예술을 자세히 들여다보았죠? 그의 예술에서는 어떤 영감과 인상을 받았나요?
지난해에 곰리 씨가 오사카에 있는 제 작업실을 방문했습니다. 그때 최근 작업 중 하나라며 보여준 것이 영국 노퍽주 호턴 홀에서 공개한 설치 작품이었죠. 끝없이 펼쳐진 초원에 실물 크기의 철제 인물 조각 100개가 보이지 않는 ‘지평선’에 맞춰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지형의 기복에 따라 어떤 조각은 땅 위에 서 있고, 어떤 조각은 가슴까지 묻힌 것처럼 보였죠. 그는 이 작품이 “인간의 존재와 시공간의 관계를 묻는 작품”이라고 했습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그렇게 장소와 긴밀히 조응하길 바라면서도 작품을 상설 전시가 아닌, ‘여행하는 조각’으로 선보였다는 점입니다. 작품을 특정한 공간에 묶어두지 않고, 다양한 장소를 오가도록 변화를 긍정하는 태도, 거기에서 곰리 씨의 예술이 지닌 깊이를 느꼈습니다. 그와 대화를 나누는 중에 사회에 대한 조용하지만 단호한 분노를 감지하기도 했습니다. “역사와 인간의 직감을 통하지 않고 AI에 창조의 모든 행위를 맡겨버리는 사회에 미래가 있을 리 없다”고 말할 때, 그의 표정에는 깊은 슬픔과 근심이 잔뜩 서려 있었죠. 비단 AI만 문제인 것은 아닙니다. 기후변화와 전쟁, 분열 등 지금 세계는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여러 난제를 직면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면서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가 어디인지조차 잊어가고 있습니다. 그런 시대에 곰리 씨의 작품은, 강인하면서도 꼿꼿하게 앞을 밝히는 작은 불빛처럼 느껴집니다.
예술에 꽤 진심인 건축가입니다. 지중미술관과 이우환미술관 등을 건립하며 나오시마를 예술 섬으로 탈바꿈하는 프로젝트에 30년 넘게 전념해왔죠. 나오시마 신미술관 역시 마침내 개관했습니다. 예술의 중요성에 대한 확신이 강해진 계기는 무엇인가요?
저는 1941년생입니다. 1960년대를 온전히 20대로 보냈죠. 그 격동의 시대를 상징하는 사건 하나를 꼽자면, 1968년 파리에서 일어난 5월 혁명일 것입니다. 생애 두 번째 유럽 여행 중이었는데 그곳에서 새로운 시대를 끌어당기는 시민들의 에너지에 압도당한 기억이 납니다. 정치 운동이나 서브컬처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진 않았지만 제 주변에는 늘 사회 운동가들보다 더 급진적인 정신으로 무장한 채 기존 틀을 깨고 새 시대를 열고자 했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요시하라 지로(일본 전후 아방가르드 예술의 선구자)를 중심으로 아시야에 결집한 전위예술가 그룹 구타이(Gutai) 미술협회 작가들이 그랬죠. 오사카 재즈 카페 체크(Check)에 처음 방문해 공간을 빼곡하게 채운 문양에 압도당한 때가 떠오릅니다. 무카이 슈지의 설치 작품이었죠. 오사카 나카노시마에 있던 창고를 개조한 전시 공간 구타이 피나코테카도 즐겨 찾았는데요. 도발적인 퍼포먼스와 이벤트를 아우르는 그들의 예술은 “이것이 과연 예술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유의 질문이죠.(웃음) “남을 따라 하지 마라(Don’t copy anyone)!” “자유로워라(Be free)!” 진로를 고민하던 시기, 그들의 확신에 찬 메시지는 마음속을 강하게 파고들었습니다. 그때 만난 예술가 대부분이 세상을 떠났지만, 무카이 슈지를 비롯해 지금도 계속 교류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드는 행위를 멈추지 않는 창의적인 예술가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저도 제 방식대로 도전을 계속해온 셈이죠. 그러고 보니 나오시마 프로젝트도 벌써 30년이 넘었군요. 처음 설계한 베네세 하우스 미술관과 지중미술관은 단순한 전시장을 넘어 자연과 예술과 건축이 긴장감을 일으키는 장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결과였습니다. 최근 개관한 나오시마 신미술관을 만들면서는 “만든다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에게 예술은 어떤 의미인가?” 하는 본질적인 질문에 다시 천착했죠. 젊은 시절에 만났던 구타이 예술가들이 평생에 걸쳐 씨름해온 질문과 동일합니다. 건축도, 예술도, 결국 삶의 방식을 묻는 작업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오시마 프로젝트는 구타이와 끝없는 대화를 이어가는 저만의 방식이라 설명할 수 있겠군요.
당신의 가슴이 뛴 건축물은 르 코르뷔지에가 롱샹에 지은 노트르담 뒤 오, 로마의 판테온,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이죠. 어떤 건축이 예술의 경지에 오를까요?
방금 언급한 세 건축물은 오래도록 사람들의 마음에 남을 만한 강력한 보편성을 띠고 있습니다. 각각 만들어진 시대와 장소가 달라 일반화하긴 어렵지만, 그런 힘의 원천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기능을 넘어 공간 자체가 지닌 힘을 발견하게 되죠. 그런 공간은 공통적으로 인간이 자기 자신을 마주하게 되는 ‘시원적인 공동(空洞,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는 굴)’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그런 공동에는 빛과 바람 같은 자연이 자유롭게 스며들고 생명이 깃들죠. 그 생명은 설명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우리의 깊숙한 내면에 호소하고요.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관한 깊은 사색이 건물의 배후에서 아주 순수한 형태로 역동할 때, 건축은 시대와 문화를 초월해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자연과의 어우러짐을 끈질기게 강조해왔습니다. 자연광만 들어오도록 설계한 지중미술관에서는 해가 지는 오후 4시경이면 작품을 감상하기 힘들어지죠. 빛과 바람이 고스란히 스며드는 ‘빛의 교회’의 십자가 벽에 유리가 설치된 이유도 인간의 편의를 위한 조치였는데요. 자연과 진정한 조화를 이루는 공간을 짓기 위해 감수하고 포기해야 할 부분에 대해 클라이언트를 어떻게 설득했나요?
클라이언트는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에서 얻는 작은 감동, 그리고 일상의 편리함 중에 무엇을 우선할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이는 가치관의 문제로, 의뢰인이 지금껏 어떤 삶을 살아왔으며, 어떤 체험을 축적해왔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사안이죠. 그래서 저는 설계할 때 의뢰인과 가능한 한 많은 대화를 나누려 합니다. 프로젝트를 맡기 전에 상대방이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으며 나와 궁합이 잘 맞을지에 관해 작업 규모나 입지 조건만큼 신중하게 살피는 편이고요.
특히 빛은 당신이 가장 중시해온 자연 요소입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빛의 속성은?
건축에서 빛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르 코르뷔지에나 루이스 칸 같은 거장들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답을 남겼습니다. 다만, 건축이라는 틀을 넘어 한 인간으로서 이야기하자면, 저는 건축에서도, 인생에서도, 언제나 빛을 좇으며 살아왔습니다. 제게 빛은 희망을 상징하고요.
우리는 당신의 건축이 지닌 스케일에 대해 자주 이야기합니다. 반대로, 당신의 건축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장 사소한 디테일은 무엇인가요?
사용자의 손이 닿는 부분의 촉감입니다. 요즘은 유지 보수가 필요 없는 소재가 유행이지만, 저는 오히려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손상되고 부식되는 소재에 매력을 느낍니다. 그런 재료를 손길로 길들이는 과정 속에서 건물에 대한 애정이 생기죠. 동시에 건물에는 아름다운 시간의 흔적이 새겨지고요. 그런 식으로 인간과 건축이 차곡차곡 관계를 쌓아가도록 유도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건축은 혼자 해낼 수 없는 일입니다. 당신의 확고한 비전 아래 수많은 이들을 결속시킬 수 있는 비결이 있을까요?
단순해요. 나는 이렇게 여긴다, 그래서 이런 것을 만들고 싶다, 솔직하게 말할 뿐입니다. 그리고 그 말에 공감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죠. 물론 제가 주장하는 방식이 좀 거칠지도 모르겠어요. 누군가는 ‘폭력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고요.(웃음) 아무래도 전직 복서 출신이라 저도 모르게 평소에도 그런 기질이 나오는 듯합니다.
대학 교육을 받지 않은 것, 복서가 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 삶의 모든 순간이 당신을 독특한 건축가로 성장시켰습니다. 세대, 문화, 환경에 상관없이 좋은 건축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자질은 무엇인가요?
현실은 생각대로 풀리지 않을 때가 훨씬 많습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긴장감을 잃지 않은 채 계속 달려나가는 끈기와 지속력이 중요합니다. 거기에 하나를 추가한다면 긍정적인 마음 같아요. 자신의 삶을 즐기지 못한다면, 타인을 위해 근사한 공간을 만들 수 없습니다.
이제까지 맡은 프로젝트 중 가장 행복하게 작업한 것,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건 가장 ‘괴로웠던’ 작업을 꼽는다면?
모든 작업마다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고, 그때만의 기쁨과 고통이 있기 때문에 하나를 고르기는 어려워요. 그러니 여기서는 그냥 뮤지엄 산이라고 해두겠습니다.(웃음)
제 주변에는 ‘나만의 집을 짓겠다’는 로망을 가진 사람들이 거의 없어요. 집 건축은 인생의 버킷 리스트라고 할 만큼 매력적인 일일까요?
일본과 한국은 주거 문화와 사정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신선한 질문이군요.(웃음) 일본에는 오래전부터 “내 집을 가져야 비로소 어른”이라는 분위기가 있거든요. 제가 주택 설계에서 강조하는 것은, 주변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가치관과 형편에 맞는 집을 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집은 좁으면 좁은 대로, 그 안에 풍요로움이 깃들거든요. 사실 그러면 된 거죠. 나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어떤 것들이 행복을 가져다줄지 헤아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남의 집을 빌려 산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아요. 어떤 집의 형태가 좋을지, 어떤 인테리어를 시도할지, 오래된 집을 사서 리노베이션하는 것도 좋습니다. 아파트든, 단독주택이든 자신만의 공간을 꾸리는 일은 누구에게나 의미 있고,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일입니다.
저는 이따금 뮤지엄 산을 이유 없이 방문하고 싶어집니다. 그곳에서 느껴지는 너그러운 포용력이 좋거든요. 당신의 건축을 통해 사람들에게 무엇을 선사하고 싶나요?
지금 말씀하신 그대로, 가끔 이유 없이 가고 싶은 곳, 그 정도면 더할 나위 없겠군요. 건축은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니까요. (VK)
- 피처 에디터
- 류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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