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멋지기만 한 공공 미술은 제안하고 싶지 않다” – 김사라 건축가

2025.07.01

“멋지기만 한 공공 미술은 제안하고 싶지 않다” – 김사라 건축가

건축은 시대를 반영한다. 미학과 실용, 사회적 책임의 조화로 도시 풍경을 바꾸고 있는 건축가들.

예술과 건축의 무경계

김사라 다이아거날 써츠 대표

김사라 건축가는 건축 설계는 물론 비엔날레와 미술관에서의 건축 전시를 넘나든다. 모든 건축이 다이내믹하고 재미있기에 경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에게 건축은 곧 삶의 태도이기에, 이 일을 시작하고부터 행복해졌다고 말한다. 정보와 상품의 과잉 시대에 물욕을 덜어낸 간결한 건축을 추구하며, 트렌드나 사회적 기준에 따르기보다는 소외된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자 한다. 환경문제가 디폴트가 된 지금, 그는 공공 미술의 제작과 폐기의 순환을 어떻게 주도할지 고민 중이다.

건축가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는?

공간이 사람에게 주는 영향이 크다. 막연하게나마 공간을 다루는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었다. 디자인을 전공한 대학 시절엔 가장 큰 공간이 자동차였는데, 그 후 10여 년이 지나고 유학을 가서야 건축으로 확장돼 건축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윈스턴 처칠이 의회 건물을 재건하면서 이런 명언을 남겼다. “우리가 건축을 만들지만, 그 건축이 우리를 다시 만든다(We shape our buildings, thereafter they shape us).” 물론 그에게는 정치적 스테이트먼트였겠지만, 몇 년 전에야 그 말의 의미를 절감했다.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본다는 의미인 ‘다이아거날 써츠(Diagonal Thoughts)’로 회사 이름을 정하고 이 나이에도 계속 방황 중이지만, 건축에 임하고부터 삶에 집중하며 행복해졌다. 건축은 나에게 축복이다.

당신만의 독특한 건축적 특징은?

아직 대표작은 없는 듯하다. 여전히 성장 과정에 있고, 건축 경력이 10년이면 짧다. 작은 건물 하나 짓는 데도 최소 1년은 걸리기 때문이다. 건축사 사무실을 개소하고 초창기 5년 동안은 다채로운 장르에 참여해 무엇을 이야기하는 건축가가 될지 연구하는 시간을 가졌다. 2018년 문을 연 레스토랑 ‘PPP’로 건축계에 내 이름이 알려졌으니, 그 작품이 터닝 포인트다. 의도적으로 건물 출입구를 숨기고 내부로 들어오는 긴 출입 동선을 만든 작업이었다. 영상 작품 ‘남이 설계한 집’도 특별하다.

서울무용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남이 설계한 집’ 같은 영상 제작, 미술관 전시 등 여러 예술 활동도 펼친다.

서울문화재단 다원예술 창작 지원에 당선돼 건축 영상 작품을 여러 아티스트와 함께 만들었다. 누군가가 설계했지만 오랫동안 철근 콘크리트 구조체만 남겨진 건물의 여러 공간을 다른 시각으로 재해석하고 발현하는 설계 작업인데, 제4회 서울무용영화제에서 수상해 의미 있다. 코로나19 이후 많은 이들이 집에 관심이 많아져서 건축 인테리어 문화가 융성했지만 여전히 한국 건축은 건설 한쪽에 자리하며, 많은 이가 부동산 가치로만 본다. 건축가는 무엇을 짓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한데, 그렇다 보니 건축이 완공되기 전의 상당한 레이어를 가진 다층 과정이 공유되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것도 짓지 않으면서도, 선언하듯 공간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영상을 제작했다. 건축은 긴 호흡의 직업이라서 어떤 건축 사무소가 될지 숙려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조급하지 않았다. 건축 전문지에 작품을 기고하고, 이름을 알려야 한다는 기존 루트를 고려하지 않았다. 지금 내가 고민하지 않는다면 나중이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철학 없이 건물만 짓는 직능인으로서 건축을 하고 싶지 않았다. 남들이 보기에는 특이했겠지만 이것이 나의 성향이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설치한 반영구 프로젝트 ‘쓸모없는 건축과 유용한 조각에 대하여’. 사진 박수환

비엔날레와 미술관에서의 건축 전시로도 잘 알려져 있다. 전시와 건축 프로젝트는 표면적으로 달라 보이는데, 공통으로 추구하는 방향이 있나?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는 기획자로,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는 주로 작가로 참여했다. 내가 건축가 중에서 작업 스펙트럼이 넓긴 하다. 개소 2년 차부터 문화역서울284 전시를 준비하며 영혼을 끌어모았다. 전시와 현장은 기능 유무에 따른 구분이 아니며, 두 작업의 프로세스는 같다. 매체와 조건이 달라질 뿐 작업 방식은 비슷하다. 건물은 클라이언트의 니즈를 반영하지만, 전시는 미술관의 니즈를 반영한다는 점은 다르다. 경중은 있지만 미술관은 좀 더 자유롭고, 구조 검토와 같은 행정 절차는 어떤 장르에서도 어차피 치러야 한다. 프로젝트마다 대지와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다 재미있다. 모든 건축 작업은 다이내믹하고 새롭다. 이렇듯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도전적인 활동이 흥미롭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예술버스쉼터 작업을 비롯해 그동안은 여러 분야에 늘 도전해왔다. 하지만 요즘은 도전하지 않음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런 마음이 문득 전근대적인 것 같아서다.(웃음)

2022년 완공한 금속공예가 김현성의 집 ‘열린 결말’.

다채로운 건축 전시 경험이 설계 프로젝트에 도움이 될 것 같다.

건축은 외부를 다루기 때문에 현재 프로젝트가 자양분이 되어 다음 프로젝트로 나아가게 한다. 창작자라면 어느 정도 자기 복제를 하는데, 그 부분을 경계해왔다. 내 작업의 반작용이 다음 작업의 동력이 돼야 하며, 이번에 했던 것에 익숙해지지 않아야 한다. 프로젝트마다 사이트가 다르기 때문에 예전 것을 답습하는 태도를 자각한다. 그러다 전문가로서 노하우가 쌓이지 않으면 어쩌나 고민도 한다. 한 가지만 집중 연구하는 달인도 있는데, 난 그런 적은 없으니까. 이와 연계해 2022~2023년 금속공예가 김현성 작가의 작업실이 있는 집을 만들며 많은 생각을 했다. 작가의 정체성을 집에 담기 위해 물받이 조명까지도 작가의 공예품을 쓰며 나는 밑바탕을 작업하려 애썼다. 아주 작은 공간인데, 기본 건축 자재 모듈을 활용해 설계했다. 작가가 그곳에서 행복하게 작업하는 것을 보고, 미래의 내 집도 상상해봤다. 내 집을 내가 설계하는 것은 너무 무거운 일이지만, 사옥에 대한 계획도 있다. 내 공간은 나의 성격이나 스테이트먼트가 드러나지 않게 설계하고 싶다. 객관화하기 매우 어려운 나의 바람이다.

화성 우음도 지질공원 내 사운드 파빌리온 ‘파러웨이’.

진행한 작업 중 현대 건축의 흐름을 잘 보여준 프로젝트는?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면 안 된다. 그러나 사회 속 개인이 트렌드를 따르지 않으려 해도, 그 안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정보와 상품이 넘치는 과잉 시대기에 오히려 물욕 없이 덜어낸, 간결한 건축을 하고 싶다. 사람이 공간을 만들지만, 공간이 사람을 형성하기에 건축의 기본에 가까워야 한다. 사무소를 시작하면서 나를 건축계에 알려야 했기 때문에 자극적인 제안을 고려한 적도 있지만 이제 마음이 달라졌다. 디자인을 위한 디자인은 하고 싶지 않다. 얼마 전 아날학파(École des Annales) 강연을 듣고 흥미로웠다. 아날학파는 소외된 주변과 개인 서사를 통한 역사를 연구한다. 그들의 이론에 깊이 공감했고, 획일적 중심을 다시 고심했다. 내가 현대 건축의 흐름을 말할 수도 없지만, 관심도 없다. 여러 사회적 기준이 허상일 수 있기에 소외된 이야기를 더 알고 싶다. 내 프로젝트 중에서 우음도 파빌리온 설계가 이와 일맥상통한다. 소다미술관의 지명 공모전에 당선되어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는데, 18억 년의 역사를 가진 지질 공원을 보는 순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건축가라면 땅에 매료될 수밖에 없다. 바람 소리를 경험하게 만들고 싶어서 보청기의 증폭되는 원리를 이용한 작품을 만들었다. 소외된 주변의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에서도 유의미했다.

건축가로서 드림 프로젝트는?

자연 속 문화 공간을 만들고 싶었는데 드디어 기회가 왔다. 미술관 부지에 추가로 야외 전시장을 설계하기로 했다. 미술관은 보통 화이트 큐브의 실내 공간 위주로 쓰이는데, 야외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싶다. 그러면서 공공 미술이란 무엇인지 고뇌에 빠져 있다. 결론 없이 계속 생각이 바뀐다. 그간 내가 참여한 공공 미술 작품은 대부분 제작·유지되는 기간이 짧았다. 멋지기만 한 공공 미술은 제안하고 싶지 않다. 도심의 벤치나 다리와 같은 인프라스트럭처를 건축 문화로 바라본다.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도시 환경이 바뀌기에 이를 의도적으로 인프라스트럭처라고 명명하고 있다. (VK)

    피처 디렉터
    김나랑
    이소영(미술 전문 칼럼니스트)
    사진
    김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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