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생각을 글로 정리하고 스케치하고 모형을 만들어야 한다” – 유이화 건축가

2025.07.01

“생각을 글로 정리하고 스케치하고 모형을 만들어야 한다” – 유이화 건축가

건축은 시대를 반영한다. 미학과 실용, 사회적 책임의 조화로 도시 풍경을 바꾸고 있는 건축가들.

예술성과 쓰임새의 조화

유이화 ITM건축사사무소 대표

시호재와 유동룡미술관으로 국내외 건축 어워드를 휩쓸고 있는 유이화 건축가. 그는 건축가의 개성을 살리면서 쓰임에 충실한 공간을 지향한다. 최근 한남동 복합 문화 공간 페즈(FezH)가 오픈했고, 제주 동쪽 하도리에 채플을 짓고 있다. 페즈는 개관하자마자 주목받는 도심 문화 공간이 되었고, 7월 말 개관하는 엠제이 채플은 역동적이면서도 제주답다. 그녀가 관장을 맡고 있는 제주 유동룡미술관은 세 번째 전시를 시작했다.

시호재. 사진 김용관

시호재와 유동룡미술관으로 여러 상을 수상했다.

시호재는 독일 디자인 어워드와 IF 디자인 어워드를, 유동룡미술관은 IF 디자인 어워드와 한국건축가협회상 등을 받았다. 건축가 커리어에서 중요한 작품인데 상까지 받아 감사하다. 시호재의 건축주도 아주 기뻐했다. 우리나라는 건축가가 존중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데, 시호재 건축주는 첫 미팅에서 용도와 프로그램 목적만 언급하고 디자인을 하나도 바꾸지 않고 지지했다. 시호재는 동대구역에서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칠곡 문화 공간인데, 많은 이가 건축을 보기 위해 찾고 있다. 그만큼 건축 콘텐츠에 관심이 높고, 즐기는 이들이 늘고 있다.

유동룡미술관.

올해 개소 24주년을 맞았다. “자연과 어우러지는 건축, 사람을 이해하는 건축을 하고 싶다”는 설립 당시 건축 철학에 새로운 변화가 있나?

건축은 시대의 요구에 의해 만들어지는 산물이다. 그 안에 움직이는 사람들도, 건축을 대하는 내 태도도 바뀌었다. 요즘 시대는 친환경적이며 디지털적인 요소를 요구하고, 공간의 목적에 따라 이를 적절히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24년 전에는 없던 옵션이 많이 생겼다. 지금은 건축 허가를 받으려면 태양광이나 단열 조건 등을 골고루 반영해 에너지 점수를 따야 한다. 미학적으로도 아름다워야 한다. 이는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라 기후 환경 변화에 따른 필요성이다.

제주를 대표하는 핀크스 포도호텔과 파빌리온, 방주교회 등 여러 프로젝트가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애정이 가는 프로젝트는?

나는 여전히 자라고 있는 건축가이고, 죽을 때까지 성장하는 것이 건축가다. 아무래도 최근작일수록 애정이 깊다. 시호재는 클라이언트가 특별해서 의미 있었고, 유동룡미술관은 나를 가장 고뇌하게 했다. 평소 직관적 어프로치로 디자인을 전개하기에, 사이트에 처음 방문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을 찾았다.그러다 보면 즉시 아이디어 스케치가 나온다. 하지만 유동룡미술관은 수십 번 디자인을 바꿔가면서 설계했다. 그만큼 조심스럽고, 마음대로 안 되고, 끊임없이 잠재의식 속의 아버지(유동룡(이타미 준))를 연상하고 여쭈어가면서 작업했다. 아버지의 이름을 명명한 미술관이기에 잘하고 싶은 부담이 그만큼 컸다. 거의 아버지에게 바치는 작품이다. 건축가 유이화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건축가 이타미 준을 담는 그릇으로서 이곳 건축의 밸런스를 잡기 위해 고민을 많이 했다.

“유동룡의 건축은 정적인 덩어리의 건축이고, 유이화의 건축은 동적인 물의 건축”이라고 표현한 장용순 건축가의 글이 흥미로웠다. 부친과 유이화의 건축 세계는 어떤 점에서 일맥상통하고, 어떤 점이 다른가?

다른 이들의 평가를 듣고 나도 새로이 발견한다. 작품을 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 아버지는 MBTI가 ‘I’에 가까우셨다. 조용하고 정적인 성격이기에 작품에서도 그런 부분이 있을 것 같고, 나는 정반대다. 나이가 들면서 드러나는 ‘I’ 성향이 내 작품에서도 정적인 면을 부여하는 듯하다.

이제 건축가뿐 아니라 유동룡미술관 관장이자 건축문화재단 이사장으로도 활동한다. 이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것은?

메시지의 건축을 해야 하는데, 여러 역할도 수행해야 하니 긍정적인 의미에서 하루가 버겁다. 아버지는 건축의 존재 이유에 대해 사회에 메시지를 던진 분이다. 부친은 현대 건축에서 결핍된 것은 야성미와 인간의 온기라고 봤고,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글을 썼다. 그는 1970~1980년대 일본 경제 버블 시대의 반짝이는 합리주의 건축에 반대해, 자연 소재의 아름다움에 주목했다. 매끄러운 대리석이 아니라 거친 돌의 질감을 보여주기 위해 깨뜨린 벽돌을 사용하기도 했다. 시대가 바뀐 요즘은 환경이나 기후변화에 대해 건축가로서 책임감을 갖는 것이 소명이다.

부친의 조언으로 여전히 아날로그식 설계를 한다.

요즘은 대학생 때부터 컴퓨터 안에서 움직이고 컴퓨터적 사고를 하는 건축이 심화되고 있다. AI 도입으로 문제가 더 심각해졌다. 생각을 글로 정리하고, 스케치하고, 모형을 만들어야 한다. 물론 컴퓨터도 사용하지만 창의적인 사고의 수단으로 쓰면 안 된다. 많은 학생이 모형을 직접 만들지 않고, 컴퓨터로 가볍게 만들고 그것에 의존하며 생각의 밸런스를 깨뜨린다. 그래서 나는 모형을 만들면서 생각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미술관, 주택, 사무실, 종교 시설 등 다채로운 공간을 만들었다. 특히 관심을 가진 장르는?

요즘은 리노베이션에서 신축까지 교회 건축을 많이 하고 있다. 한 개인을 위한 공간도 중요하지만 모두를 위한 공간, 의미 있는 세상에 의미 있는 쓰임을 남기는 공간을 건축하고 싶다.

나를 덜 드러내면서도 작가성을 잃지 않는 것, 쓰임새에 충실한 공간을 만들려고 노력한다고 들었다. 반대 개념의 결합이라 흥미롭다.

건축가는 건축주가 일을 줘야 작품을 만들 수 있다. 건축가와 건축주의 취향과 생각의 결이 비슷해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 예를 들어 시호재는 기능성과 효율성만 따졌다면 완성될 수 없는 작품이다. 가운데 정원을 살짝 비껴서 흐름을 만들고, 최대 용적률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 효율성을 살짝 포기했다. 이렇게 여러 부분에서 건축가와 건축주의 의견이 잘 맞아야 컨셉을 살릴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근린생활시설이나 아파트는 최대 용적률을 극대화해서 최대 수익을 내야 하기에 그러기 어렵다. 사람이 각자 개성이 있는 것처럼 건축도 독창성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건축주를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종교 시설과 미술관은 처음부터 퍼스널리티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작품성을 펼치기 쉽다.

우리나라에는 여성 건축가가 많지 않아 이 길을 부친이 반대했다.

결혼과 출산을 하면서 건축가로 활동하는 부침을 누구보다 잘 아시니까. 막상 내가 건축가가 되자 좋아하시며 의지하셨다. ‘한국의 세지마 가즈요’가 되라고 말씀하셨다. 28세부터 건축 사무소를 운영했고 클라이언트가 건설 회사다 보니 현장을 견디기 쉽지 않았다. 괄괄해서 차별에도 굴하지 않는 성격 덕을 봤다. 우스갯소리로 술이 세니까 견뎠다고 말한다. 남성 위주의 보수적 세계인 건축 필드에서 소외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제 나를 여자로 보지 않아 편하다. 여성 건축가의 장점은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아우르는 섬세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 구조, 설비, 정비, 기계, 건축주, 사무소 직원들 의견이 다 다른데, 이를 모으고 조율하는 역할은 여성에게 유리하다. 여성의 유연함이 현장에서 좋은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 (VK)

    피처 디렉터
    김나랑
    이소영(미술 전문 칼럼니스트)
    사진
    이우정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