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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짓는 것이 아니라 크게 느껴지는 것이 중요하다“ – 박진희 건축가

2025.07.01

“크게 짓는 것이 아니라 크게 느껴지는 것이 중요하다“ – 박진희 건축가

건축은 시대를 반영한다. 미학과 실용, 사회적 책임의 조화로 도시 풍경을 바꾸고 있는 건축가들.

마이크로 어버니즘의 정의

박진희 SsD 대표

물질 과잉의 시대에 꼭 필요한 건축은 무엇일까? 박진희 건축가는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 좋은 건축이고, 좋은 환경은 지속 가능해야 한다고 말한다. 뉴욕과 서울을 오가며 활동 중인 그는 최소의 자원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두는 프로젝트에 집중해왔다. ‘마이크로 어버니즘’이란 주제로 말레이시아의 1700 유닛 하우징, 거제도의 마이크로 빌리지, 독일 카셀 하우스, 송파 마이크로 하우징 등 유닛 스케일의 공간을 실험 중이다.

마이크로 어버니즘 전시.

그간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에 다섯 번이나 초대받았다.

2014년부터 5회 연속 참여했다. 2016년에는 미국관에 초대되었는데,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다루는 자리였다. 2018년에는 한국관에 초대되어 송파 마이크로 하우징을 선보였다. 2021년에는 예술감독의 초대를 받아 아르세날레 본 전시에 작품을 출품했다. 당시 본 전시 주제가 ‘How Will We Live Together’였기에, 쿠알라룸푸르 유닛 하우징을 제안했다. 송파 마이크로 하우징의 그랜드 버전이다. 마이크로 하우징과 같은 개념이지만, 하이엔드 타깃으로 유닛을 더한 것이다.

송파 마이크로 하우징.

올해 처음 관람객으로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을 방문했는데 어떤 영감을 받았나?

그동안 전시 준비하고 설명하느라 다른 건축가의 작품을 보지 못했다. 이번에는 관람이 목적이라 즐기고 왔다. 올해 주제로는 IT 센서블 시티 랩 디렉터 카를로 라티(Carlo Ratti) 예술감독이 ‘지성적·자연적·인공적·집단적(Intelligens·Natural·Artificial·Collective)’을 제안했다. AI 기술의 발전과 여러 국가의 활약을 목도했다. 사실 나는 스마트 파밍(Smart Farming)에 관심이 있다. 세상에는 건물이 너무 많다. 더 좋은 환경을 위해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면 그것이 꼭 건물이어야 하는지 근원적인 고민이 있다. 산업 디자인에서 건축으로 전공을 바꾼 이유가 세상에 제품이 너무 많기 때문인데, 건축도 마찬가지로 제품 생산과 비교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문제를 만든다. 건축으로 인해 환경이 더 좋아져야 하기에, 많이 쓰는 것이 아니라 덜어내는 건축을 하고 싶다. 지형과 자연광, 바람을 이용해 만드는 건축을 고민한다.

서울과 뉴욕을 기반으로 하는 건축 회사 SsD의 대표다. 각각의 프로젝트 컨셉은 어떤 차이가 있나?

2005년 보스턴 인근 케임브리지에서 건축 사무소를 처음 차렸다. 운영해보고 안 되면 취직하려고 졸업하자마자 개소한 것이다. 하지만 젊은 중동 디벨로퍼가 제안한 첫 프로젝트가 호평을 얻어 상을 받았고, 보스턴 하이웨이를 허물고 지하 터널을 만드는 프로젝트에서 폐기된 고가 상판으로 만든 빅 딕 하우스 프로젝트가 인기를 얻어서 뉴스에 나오고 50분짜리 다큐멘터리도 촬영했다. 건축에 관심이 많은 배우 브래드 피트가 우리 다큐멘터리 진행을 맡았을 정도였다. 하지만 보스턴은 디자인에 대해 보수적이라 의뢰가 줄었고, 뉴욕에서 많은 제안이 와서 그곳으로 사무실을 옮겼다. 헤이리에 화이트블럭 갤러리를 건축하면서 2011년 서울에도 사무실을 열어, 그때부터 뉴욕과 서울을 오가고 있다. 둘 다 같은 팀이지만, 각 도시마다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클라이언트의 성향도 다르다. 미국 클라이언트는 처음 만나서부터 원하는 방향을 이야기하고 건축가의 의견을 물으며 적극 대화한다. 나라는 건축가를 좋아해서 의뢰했기에 나만의 설계 철학을 알고 의견을 존중한다. 한국 건축주는 놀라울 정도로 말이 없고 요구 조건도 없다. 그러다가 공사를 시작하고 나서야 여러 요구를 하는 경우가 많다. 건축주 요구로 추후 바뀌는 건물은 형태가 사라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거르지 말고 편하게 이야기해달라고 대화를 유도한다. 건축은 자신감을 부여하는 편안한 맞춤복과 같은 것이니, 건축가를 잘 이용해야 한다.

효율성을 넘어 가변성과 다양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우리 건축 회사 이름 SsD는 Single speed Design의 약자다. 싱글 스피드 자전거에서 유래했는데, 기어가 없어도 더 효율적인 자전거를 만들 수 있는 것처럼, 군더더기 없이 효율성을 살리면서 미를 추구한다. 예를 들어서 나의 대표작 송파 마이크로 하우징의 각 유닛은 12㎡로 작지만, 갤러리와 카페도 있고 밤에는 공연장으로 쓸 수 있다. 다양한 기능을 넣은 이유는 작은 공간은 크기에서 오는 압박감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다양성이 완화한다. 뭔가를 추구할 때는 늘 반대도 고려해야 한다. 효용성을 높이기 위해 작게만 만들면 슬럼화될 수 있다. 마이크로 하우징 안의 다양한 기능이 서로 연결되면 도시처럼 서로 교류하며 관계성이 생겨 지속적인 주거가 가능해진다. 원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유닛을 합쳐 투 유닛, 트리플 유닛도 만들 수 있는 다양성이 중요하다.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도 이 작품을 높이 평가해 전시를 열었고, 진행 중인 쿠알라룸푸르 프로젝트는 1,700개 유닛이 결합되는 확장 버전이다.

최소한의 물질과 최대한의 환경으로 도시를 개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건축가의 사회적 책임과 연계된 지점인가?

마이크로 하우징 유닛 개념의 옵션이 있으면 다양한 사람이 같이 살 수 있다. 여러 환경을 조성하면 임대 아파트 문제도 덜 수 있다. 모두들 돈을 벌면 더 넓은 곳으로 이사하는데, 좋은 동네는 주민이 만들어야 한다. 공간에 투자하고 가꿔야 하고 관계를 맺어야 한다. 다양성과 가변성이 사회문제를 보완할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의 많은 이가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아파트에 산다. 아파트 다음의 주거 타입에 대한 고민에서 나온 것이 다양성과 가변성이다. 그래서 내 모든 프로젝트는 최소의 수단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것이 목표다. 크게 짓는 것이 아니라 크게 느껴지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 공간과 본인이 느끼는 공간은 다르다. 작은 공간이라도 최대한 확장해 쓸 수 있다. 예를 들어 요즘 벽이 두꺼워지고 있는데, 벽이 두꺼우면 공간이 줄고 환기에 에너지를 많이 써야 한다. 이를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보자. 벽을 얇게 만들어 내외부를 완전히 차단하지 않고, 그 안에 또 다른 공간을 만들어 활용할 수 있다면 심리적으로 크게 느껴질 것이다.

첨단 기술의 발전이 현대 건축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

AI를 적극적으로 쓰고자 한다. 예를 들어서 문서 작업이나 누구나 하고 싶지 않은 법규 검토 등을 AI를 활용한다면 오히려 건축가에게 나을 수 있다. 창작을 하기 전에 반드시 검증해야 하는 사회적 행위에 이전보다 시간을 많이 안 써도 된다. 건축가 본연의 역할에 더 집중할 수 있다. 건축 문외한은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건축이라고 보는데, 그것은 건축가의 역할이 아니다. 사회가 바뀌고 환경과 조건이 바뀌면서 어떤 공간이 필요한지 가치 판단을 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다. 셰프가 음식 맛을 평가하는 것과 같다. 건축가가 직접 쓸 공간은 아니지만 이런 조건에서 적당한 공간을 결정하는 것은 건축가의 경험과 감각에서 나온다. 그것은 절대 AI가 할 수 없다. 윤리적인 판단도 마찬가지다. 디벨로퍼는 건축 상품을 만들어 판매해야 하기 때문에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잘 팔리는 것이 늘 옳지도 않고, 그 가치 판단은 건축가가 해야 한다. 건축가는 어떤 것이 좋은지 알아야 하고, 시장의 논리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

좋은 건축이란 무엇인가? 좋은 건축의 기준이 시대에 따라 달라지나?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 좋은 건축이고, 좋은 환경은 지속 가능해야 한다. 앞으로 건축가는 건축을 넘어 다채로운 장르에 참여해서 임팩트를 만들어야 한다. 건축가 혼자 활동하지 않고 사회 곳곳에 건축적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포진해야 좋은 건축이 나온다. 전 프리츠커상 디렉터인 마사 손이 한국에서 프리츠커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는 이유는 “건축적 맥락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배경과 맥락을 알아야 그 나라의 건축에 대해 이야기하고 가치 판단을 할 수 있는데,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 건축은 부족한 면이 있다. 건축에 대한 사회적 이해도가 높아져야 좋은 건축이 나올 수 있으니 건축가 혼자만의 일이 아니다. 앞으로 오피니언 리더와 디벨로퍼 교육을 통해 좋은 건축을 위한 움직임에 일조하고 싶다. (VK)

    피처 디렉터
    김나랑
    이소영(미술 전문 칼럼니스트)
    사진
    김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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