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현대미술가 김수자와 안디아모의 동행

2025.07.24

현대미술가 김수자와 안디아모의 동행

현대미술가 김수자의 삶은 이동 그 자체다. 어린 시절 자주 이사 다녔던 경험을 바탕으로 비디오 퍼포먼스 작품 ‘떠도는 도시들: 보따리 트럭 2727킬로미터’(1997)를 완성했을 때, 김수자는 그것이 자신의 과거를 예술적으로 해석한 결과물일 뿐 아니라 앞으로의 미래와 예술가로서 자신이 짊어진 운명을 암시하는 장면이라는 사실을 짐작했을까? 이 영상 작품으로 이름을 알린 후 김수자는 보따리를 가득 실은 트럭을 타고 이동하는 영상 속 모습 그대로 노마드 예술가가 됐다. 그리고 환영받았다. 얼마 전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 예술 공로 훈장 오피시에를 받은 그가 <보그>가 5인의 컬처 아이콘과 함께 진행하는 ‘안디아모와의 동행: ICONIC JOURNEY’의 네 번째 주인공으로서 <보그> 카메라를 응시했다.

이번 만남에서 보테가 베네타 의상을 입고 <보그>와 마주했다. 첫 퍼포먼스 비디오 ‘Sewing into Walking – Kyungju’(1994)부터 총천연색을 앞세운 작품을 선보일 때도 늘 검은색 옷차림으로 카메라를 응시해왔는데 검정 의상을 고수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이 선택을 통해 드러내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작업에서 오방색에 근거한 한국의 전통적인 이불보를 자주 사용해왔기에 나의 작품 세계를 총천연색으로 인지하는 이들이 많다. 오방색을 다루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지점은 이 색상들이 세계의 구조와 물질의 특성, 방향성, 심지어 계절이나 맛, 젠더, 개인의 성격과도 관련지을 수 있는 동양철학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작품이 널리 알려지며 사람들은 늘 검은색 옷만 고수하는 내게 그 이유를 묻곤 했다. 나는 “모든 색이 섞이면 검정이 되지요”라고 답해왔다. 농담을 얹은 말이었지만 검은색이야말로 나의 아이덴티티를 가장 잘 표현하는 색이다. 또한 검정으로 둘러싸여 있을 때 안정감을 느낀다.

지난해 당신의 손길에 의해 거대한 거울의 방으로 탈바꿈한 피노 컬렉션처럼 당신의 설치미술은 전 세계의 구조물, 정원, 사막, 교회와 사원, 운하, 원자력발전소 등을 점령해왔다. 서로 다른 맥락과 환경, 공간에 따라 작품을 선보일 때 가장 먼저 혹은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은?

시각적이고 구조적인 요소를 가장 먼저 파악한다. 그런 다음 그 부지의 지형적 특성이나 쓰임새, 역사적이고 예술적인 문맥 등을 이어서 고려한다. 때로 역사적 맥락에서 의미가 두드러지는 공간이 있는데, 그런 경우라도 작업에서는 구조적인 특성이 중요하게 활약하는 경우가 많다.

당신의 예술과 마찬가지로 당신 역시 여정과 이동을 즐기는 편인가? (혹은 예술가로서 불가피한 선택이라 여길까?)

어린 시절부터 나와 우리 가족의 삶은 이동의 연속이었기에 삶을 공간적 이동의 연장선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바느질과 마찬가지로 이동의 여정은 이제 내게 아주 자연스러운 호흡처럼 여겨진다.

안디아모는 이탈리어로 ‘가자!’ ‘떠나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번 촬영을 함께한 보테가 베네타 안디아모 백은 당신의 여정에 잘 스며들 만한 아이템인가?

패션 하우스의 가방이 익숙진 않지만, <보그> 촬영을 통해 만져보고 들어본 안디아모 백의 부드러운 촉감과 유연한 형태가 인상적이었다. 특히 직조된 가죽의 조직이나 매듭이 그리 낯설지 않은 형식이어서 반가웠다. 늘 안디아모 백 같은 편하고 큼지막한 가방을 보면 뭔가를 가득 담아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진다.

당신의 첫 예술 행위는 무엇이었나? 맨 처음 예술가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가 궁금하다.

처음으로 드로잉을 했던 것은 일곱 살 즈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족과 함께 철원의 어느 초가에 세 들어 살 때였다. 겨울에는 방에 난로를 피우고 자는데도 아침에 일어나면 어김없이 무늬 벽지에 성에가 하얗게 서려 있곤 했다. 그걸 본 나는 반사적으로 벽에 다가가 손가락으로 차가운 성에를 녹이며 드로잉을 했다. 문창호지에 손가락으로 구멍도 많이 냈는데, 돌이켜보면 어렸을 때부터 호기심이 많았던 것 같다. 무엇이든 직접 알아내고 경험하고 싶어서 여러 가지 활동도 많이 했다. 하지만 결국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에는 오랫동안 삶을 관조하며 해나갈 수 있는 직업으로서의 예술, 그중에서도 시각예술을 선택하게 됐다.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한 후 6개월간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에서 석판화를 배운 후 유년 시절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떠도는 도시들: 보따리 트럭 2727킬로미터’(1997)라는 비디오 퍼포먼스 작업으로 예술가로서 처음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보따리, 바느질, 달항아리 등을 앞세운 당신의 작품은 지극히 한국적이지만 실은 아주 개인적인 기록물이다. 자전적인 생각을 예술로 확장할 때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내 작품이 자전적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보다는 나의 예술을 통해 타인의 입장에서 타인의 삶을 대신 행위하고 대변한다는 것에 집중해왔다. 나에게서 출발한 이야기라도 타인에 대한 연민이나 공감대가 결여되면 예술로 인정받기 힘들다. 나만의 독백으로 끝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내 보따리 역시 타인의 아픔에 기대어 얹어놓은 많은 보따리 중 하나이며 내 몸이 그것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워낙 많은 작품을 선보여왔고, 그 틈에 프랑스 문화 예술 훈장 슈발리에, 옥관문화훈장, 후쿠오카상 등 다양한 영예의 기쁨도 뒤따랐다. ‘Bottari’, ‘To Breathe’, ‘A Needle Woman’ 등 사람들이 당신의 대표작으로 꼽는 작업도 제각각이다. 당신에게 가장 아이코닉한 순간은 언제였나?

딱 잘라 말하기가 어렵다. ‘Bottari’와 ‘To Breathe’, ‘A Needle Woman’은 각각의 작품이지만 결국 하나의 작업인지도 모른다. 보따리 안에 바늘이 있고, 호흡도 있으며, 바늘 안에는 보따리와 호흡의 관계성이 자리한다. 예술가는 자신의 삶을 통해 결국 하나의 작업만 남기게 되는 듯하다. 그것이 내가 이해하는 ‘총체성(Totality)’이다. 그리고 나는 아직 ‘나의 단 하나’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물론 ‘Bottari’와 ‘A Needle Woman’은 개인적인 예술사에서 결정적인 임곗값 역할을 했다. 그리고 ‘To Breathe’는 그 사이를 넘나드는 빛과 공기, 즉 실과 같은 작품이었다.

최근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또 하나의 문화 예술 공로 훈장 오피시에를 받으며 이슈가 됐다. 당신에 대한 프랑스의 지지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

지난 40년 동안 내 예술을 사랑하고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준 프랑스 예술 관계자들과 다양한 영감과 감동을 나누며 수많은 기념비적 프로젝트를 선보여왔다. 그러면서 프랑스를 나의 두 번째 고향처럼 여기게 됐다. 2017년 슈발리에 훈장에 이어 이번에 오피시에 수훈을 받은 것에 깊은 감사를 느낀다. 나의 작업을 이해하고 사랑해준 프랑스와 예술에 대한 프랑스인의 오랜 사랑과 열정이 나를 오늘의 영광으로 인도해준 것으로 여긴다.

성악을 전공한 어머니와 작곡을 공부한 동생 등 음악인이 많은 가정에서 성장했고, 과거 존 케이지의 음악이 품은 ‘부재’의 힘에 충격을 받았던 경험을 터놓기도 했다. 미술뿐 아니라 음악, 문학, 공연, 춤, 영화 등 다른 종류의 예술에서도 영감을 받는 편인가?

어렸을 땐 책을 많이 읽었는데, 여러 제약이 많아 책을 읽지 않은 지 꽤 오래됐다. 하지만 더 깊은 세계관을 갖도록 도와주는 철학 서적에서는 여전히 많은 영감을 받는다. 또 너무 게으른 탓에 매번 좋은 기회를 놓치지만 영화나 연주, 퍼포먼스에서도 감동을 받곤 한다. 모든 예술은 결국 자연과 우리 삶에서 기인하는 것이니 모든 영감은 결국 돌고 돈다고 할 수 있겠다.

올해 선보일 예정이거나 집중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늘 개인적인 질문에 천착하는 예술가이기에, 그런 작업을 통해 어떤 질문에 골몰하고 있는지도 묻고 싶다.

암스테르담의 가장 오래된 건축물인 구 교회(Oude Kerk)에서 개인전 <To Breathe-Mokum>이 11월 9까지 열린다. 암스테르담 도시 건립 75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로 유럽에서 가장 다채로운 배경의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도시의 온갖 커뮤니티에서 수집한 옷, 이불보, 패브릭 등으로 완성한 보따리와 빛 설치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현재 현대미술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이 교회의 독특한 역사와 바닥 전체를 덮고 있는 검은 비석에 담긴 사회경제학적 의미, 그 위에서 꽃핀 문화적 다양성을 상징하는 천으로 감싼 보따리 작품을 만날 수 있다. 9월 초에는 프리즈 서울 기간에 맞춰 오랜만에 서울에서 장소 특정적인 설치 작품을 선보일 것이다. 이 외에도 유럽과 아시아 각지에서 다수의 프로젝트와 그룹전을 준비 중이다. 작업 자체가 예술가의 삶을 이끌어간다고 믿기에 지금 열중하는 작업을 통해 앞으로 어떤 묘한 인연이 발생할지 설렘을 안고 지켜보고 있다.

당신이 가장 편안하게 ‘호흡’하는 장소는 어디인가?

하루 일과를 마치고 스튜디오에서 집으로 향할 때 타게 되는 차. 나만의 시간 여행과 명상을 즐기곤 한다. 혹은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 현재와 결별하게 되는 그 찰나의 시공간도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5인의 컬처 아이콘과 진행하는 <보그>와 보테가 베네타의 협업 프로젝트 ‘안디아모와의 동행: ICONIC JOURNEY’. 이탈리아어로 ‘가자(Let’s go)’라는 뜻이 담긴 안디아모(Andiamo) 백을 서로 다른 컬처 아이콘의 시선으로 재해석한 특별한 콘텐츠를 매월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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