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프라발 구룽 “무거운 대화를 우아하게 나누는 것이 내 방식입니다”

2025.07.28

프라발 구룽 “무거운 대화를 우아하게 나누는 것이 내 방식입니다”

프라발 구룽의 감동적인 회고록에서 냉혹한 진실과 마주했다.

지난 5월 출간한 회고록 ‘Walk Like a Girl’ 속 프라발 구룽의 앳된 모습. 제임스 딘처럼 입고, 마돈나처럼 춤을 추는 순간을 포착했다.

뉴욕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프라발 구룽(Prabal Gurung)은 초창기에 지녔던 자신의 야망을 떠올렸다. “브랜드를 시작할 것”이 리스트의 시작이었다. 그 뒤로도 줄줄이 이어졌다. “몇몇 매장에 입점할 것. 오프라 윈프리, 미셸 오바마, 글로리아 스타이넘에게 옷을 입힐 것. <보그>에 실릴 것. ‘CFDA/보그 패션 펀드’에 지원할 것. ‘CFDA/보그 패션 펀드’ 수상자가 될 것. 멧 갈라에 갈 것. 샤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될 것. 재단을 설립할 것.”

남아시아 태생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에서 영향을 받은 축제 분위기의 드레싱으로 잘 알려진 구룽은 사회 운동가이자 자선가로도 유명하다. 그는 자신이 바라던 거의 모든 것을 이뤘다. 샤넬이 아직 위시 리스트에 남아 있다고 해도 말이다. 새로운 회고록 <Walk Like a Girl>은 미국에서 이민자로 지낸 경험부터 새로운 고향의 문화, 관습, 정치와 씨름한 일, 그리고 과거의 복잡한 감정적 소용돌이에 이르기까지 모든 여정을 담고 있다. 또한 이 제목은 카트만두에서 보낸 어린 시절과 뉴델리의 학교에서 들은 모욕적인 말을 당당히 마주하는 선언과도 같다. 이야기는 낙관적이고 공감이 가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때로는 그를 홀대한 사람들에게도 관대하다. 하지만 어떤 것도 미화하진 않았다. “언제나 무거운 대화를 우아하게 나누는 것이 내 방식입니다.” 구룽의 설명이다.

“네팔에서든, 이곳 뉴욕에서든 사람들은 내가 모든 걸 정말 쉽게 해낸다고 여깁니다.” 구룽은 자신의 커리어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하지만 그건 내가 밖에 나가 정말 힘들다고 투덜대지 않기 때문이죠. 늘 웃는 얼굴을 유지합니다. 그게 내가 자란 방식이거든요. 하지만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사람들을 속이는 건가? 그냥 말해야 하는 게 아닐까?”

지난 5월 바이킹에서 출간한 <Walk Like a Girl>은 오늘날 독립 디자이너의 현실을 알리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2009년 본인 이름을 딴 브랜드를 론칭한 그는 한때 100만 달러의 빚을 갚는 데 성공했다. 7년 가까이 집필하는 동안, 구룽은 어떤 것도 빠뜨리지 않겠다는 각오였다. 가장 고통스러운 부분은 그가 열한 살 때 네팔 학교에서 겪은 성적 학대에 대한 것이었다. 그 일을 글로 쓰기 시작하면서 지금의 자신은 희생자가 될 수 없고, 과거에 벌어진 일에 사로잡혀서도 안 된다고 여겼다. “무엇보다, 나는 모든 것을 견뎌낼 수 있었던 그 어린아이에게 빚을 진 거예요.”

가족들은 그가 책을 완성하고 말해줄 때까지 그런 일이 있었는지 모르고 있었다. 집필을 끝냈을 때, 그는 계속 울었다고 했다. 회고록 전반에 걸쳐, 그의 가족은 정서적 중심축이자 도덕적 나침반으로 등장한다. 때로는 유쾌한 방식으로 말이다. 형 프라베시 구룽(Pravesh Gurung)과 누나 쿠무디니 슈레스타(Kumudini Shrestha)는 구룽 자신보다 먼저 그를 이해하고 있었다. 어머니 두르가 라나(Durga Rana)는 자기 사업을 운영하며 홀로 가족을 키워낸 인물로 그의 인생에 등불 같은 존재로 남아 있다.

“사람들은 패션계가 피상적이라고 보지만, 내가 여전히 이 자리에 있는 이유는 우정과 충성심 때문입니다.” <Walk Like a Girl>을 작업하면서 구룽은 자신이 미국에 온 후 패션계에서 얼마나 많은 지지를 받았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우리가 서로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방식은 자주 전해지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당신을 믿고, 당신의 꿈을 믿어주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VK

    Mark Holgate
    사진
    Courtesy of Prabal Gur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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