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전, 모마(MoMA)에서는 ‘옷은 현대적일까?(Are Clothes Modern?)’라는 질문을 던지는 획기적인 전시가 열렸습니다. 보그 런웨이의 최근 컬렉션을 돌아보고 나자 이번에는 이런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꾸뛰르는 현대적일까?’ 7월 파리에서 열린 2025년 가을 시즌 꾸뛰르 쇼들을 살펴본 바에 따라 그 질문에 답하자면, 드물기는 하지만 현대적인 꾸뛰르도 있다는 겁니다. 놀라운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이렇게 빠르게 바뀌는 디지털 세상에서도 많은 사람들은 향수에 빠져 있으며 사회 역시 점점 보수적으로 변하는 게 요즘 추세니까요. 슬로우 패션을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꾸뛰르는 2025년에는 시대착오적인 존재입니다. (공예와 기술에서의 전문성과 수완을 아우르는) 메티에(Métier)는 비용, 기교, 환상 등 여러 면을 극한까지 추구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에 따라 꾸뛰르는 여성성의 이상을 과장해서 보도록 만듭니다.
지난 5월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가 디올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보여준 컬렉션은 직선적인 실루엣을 통해 강인함과 낭만주의를 번갈아가며 표현한 균형 잡힌 꾸뛰르 룩이었습니다. 이번 가을 시즌 런웨이에서는 여성스럽거나 공포 영화를 코스프레한 듯한 스타일들이 눈에 띕니다. 그 가운데에는 무드보드를 현실로 옮겨놓은 듯한 룩도 있습니다. 킴 카다시안은 발렌시아가의 런웨이에서 영화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나 <버터필드 8>에 등장한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스타일을 재현했습니다. 엘리 사브의 쇼에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닮은 모델들이 등장했고, 스키아파렐리의 모델들은 낸시 쿠나드처럼 팔에 뱅글을 잔뜩 차고 나타났습니다. 마른 모델들이 특히 가슴과 힙에 패드를 대고 풍만한 여성적 특징을 표현한 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것도 오젬픽 효과라고 봐야 할까요? 이들의 런웨이에 등장한 많은 실루엣들은 프티 팔레에서 열린 찰스 프레데릭 워스 회고전에 나온 ‘천을 둘둘 휘감은’ 옷들만큼이나 드라마틱했습니다. 물론 오늘날의 꾸뛰리에들이 이렇게 부풀린 느낌을 만들어내는 방식은 워스의 시대와는 근본적으로 다르지만 말입니다. 게다가 일부는 의학과 기술을 통해 몸을 변형시키는 것에 관한 메시지를 담기도 했습니다. 빅터앤롤프가 선보였던 한 쌍의 드레스가 그 예입니다. 빅터앤롤프는 2개의 동일한 드레스 중 하나의 속을 채워 부풀렸는데, 이는 피부에 필러를 주입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상징적 표현이었습니다.
발렌시아가의 런웨이에서도 비슷한 충돌이 눈에 띄었습니다. 전형적인 상류층 타입과 보디빌더들이 함께 등장한 것이죠. 보디빌더들의 뛰어난 체격에 맞게 테일러링한 옷을 그다지 근육질이 아닌 남성들이 입은 모습은 마치 바람 빠진 풍선을 입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 컬렉션은 스트리트적 요소를 최고 수준의 메티에로 끌어올렸다고 인정받는 뎀나가 발렌시아가에서 선보인 마지막 컬렉션이었습니다. 요즘의 꾸뛰르 트렌드에는 레디투웨어 컬렉션과 남성복 런웨이의 트렌드가 반영됩니다.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여성용 수트는 스마트하고 현대적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현대적’이었죠. 이리스 반 헤르펜이 살아 있는 조류의 발광을 활용해 만든 빛나는 드레스는 그야말로 미래지향적인 옷이었습니다.
2025 꾸뛰르 가을 시즌의 하이라이트는 글렌 마틴스의 메종 마르지엘라 데뷔 무대였습니다. 마틴스는 정반대 방향에서 현대성을 보여줬습니다. 반 헤르펜이 조류를 키워 옷으로 만들었다면, 그는 정물화와 팔고 남은 재고로 만든 브리콜라주 디자인을 참조한 옷들로 쇠퇴의 이미지를 활용하며 가치라는 개념에 도전했습니다.
마틴스는 마르지엘라의 역사를 적극적으로 탐구하는 방식을 통해 시간의 흐름이 선형적이라는 일반적인 생각에 저항했습니다(쇼에서 흘러나온 스매싱 펌킨스의 곡 속 ‘내 안의 어둠이 곧 네 안의 어둠(The killer in me is the killer in you)’이라는 가사처럼). 기존의 소재를 ‘부활’시킴으로써 과거와 현재가 공생함을 인지했으며, 마르지엘라, 더 폭넓게는 중세 북유럽 등 지난 시대의 것들과 연속성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는 인류 창조 활동의 기념비라 할 고딕 성당과 첨탑에서 영향을 받았고, 그 과정을 주저 없이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많은 옷이 가슴 아릴 정도로 아름다웠던 만큼, 쇼는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기념성과 유한성을 모두 다루었으며, 깊이 있고 생명력이 넘치는, 살아 숨 쉬는 듯한 컬렉션이었습니다.
테일러, 혹은 쿠나드처럼
무드보드가 꾸뛰르에서 새로운 차원으로 올라섭니다.
한여름의 로맨스
하늘하늘한 화이트 드레스와 톱의 등장.

위험한 관계
로코코풍 드레스를 입은 현대판 앙투아네트, 혹은 프록코트를 걸친 현대판 앙투안들.
벨 에포크 스타일
워스 회고전부터 런웨이까지, 대세는 커브입니다.

새로운 형태
몸의 형태를 재정립하는 꾸뛰르.
런웨이로 날아온 새들
노래하는 작은 새들부터 발톱 달린 맹금류까지.

식물을 닮은 옷
블랙 & 화이트로 가득한 이번 시즌에 등장한 그린은 희망과 새로운 시작을 상징하는 듯합니다.
황금 옷을 입은 여인
디자이너들은 이번 가을 시즌, 구스타프 클림트에게 빠졌습니다.
스코틀랜드의 미
고전의 창의적인 재해석.
당당히 고개를 들고
얼굴로 시선을 유도하는 근사한 칼라들.
몸을 휘감는 아우라
구름을 닮은 멋진 드레스들.
백 버튼의 귀환
패션 포인트는 뒷모습에 있습니다.

미완의 미학
완성되지 않은 듯 만드는 과정이 드러난 옷들.
장미의 화원
파리의 전시장과 런웨이를 물들인 장미들.

풍성해진 실루엣
스커트 안에서 발을 굴러도 될 만큼 볼륨감 있는 드레스들이 등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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