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애마’, 1980년대 에로 영화와 여배우들의 숙명
<애마부인>(1982)은 한국 영화사에서 가장 유명한 ‘야한’ 영화다. 1982년 심야 영화로 개봉해 서울에서만 약 30만 관객을 모았다. 작품의 힘은 여배우였고, 그녀의 노출이었다. 이후 <애마부인>은 무려 13편까지 이어졌고, ‘애마’를 붙인 아류작과 수많은 에로 영화가 쏟아졌다. 1980년대는 영화, 스포츠와 함께 섹스를 장려한 정부 기조 속에서, 여배우의 노출로 영화 산업이 수익을 올리는 시대였다.

넷플릭스 시리즈 <애마>는 그 출발점이 된 <애마부인>의 탄생 과정을 다루지만, 단순히 정인엽 감독과 배우 안소영·김애경·임동진·하명중이 출연한 작품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1980년대의 영화 제작 환경, 그리고 여배우들이 감수할 수밖에 없었던 숙명까지 포괄한다. <애마>는 <애마부인>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면서, 그 위에 새로운 여성 연대의 서사를 덧입힌다. 한국 영화사에서 가장 유명한 에로 영화를 바탕으로 여성 연대의 이야기를 만든다는 점에서, <애마>의 상상력은 과격하면서도 도발적이다.

<애마> 속 영화 제작자는 여배우의 ‘가슴’을 원한다. “가슴 한 번 까면 타는 차가 바뀌고, 두 번 까면 사는 집이 바뀌어. 세 번 까면 인생이 바뀌는 거지.” 그러나 <애마>는 <애마부인>을 단순한 ‘돈벌이 기획’으로만 보지 않는다. 배우 지망생에게 <애마부인>은 “가슴을 까더라도” 포기할 수 없는 일생일대의 기회다. 이 ‘누군가에게는 포기할 수 없는 기회’라는 맥락이 <애마>를 움직이는 가장 큰 동력이다. 결국 <애마>는 그런 야한 영화라도 어떻게든 만들어내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애마부인>은 하나의 모티브지만, <애마>에서 직접적으로 인용되기도 한다. 실제 영화의 저열한 부분을 조롱하기도 하고, 과감히 해체해 재구성하기도 한다. 특히 여배우의 역할을 확장해 상상하는 방식이 눈에 띈다. 극 중 제작자와 감독에게 주어진 미션은 검열을 피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배우가 노출하지 않고도 노출한 것 같은 장면을 만들 수 있을까. 이때 결정적 힌트를 찾아내는 것은 신인 배우 신주애(방효린)다. 이런 영화에 출연한 배우가 노출과 베드 신을 난처해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도적으로 이끌었다는 설정을 밀어붙이면서 새로운 서사를 부여하는 것이다. 실제와 무관하지만, ‘그 시절 배우들도 분명 치열하게 고민했을 것’이라는 시선을 담아낸 가상 역사극적 상상력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애마>가 <애마부인>을 낭만적으로만 인용하는 것은 아니다.

<애마>의 세계관에서 1970년대부터 스타였던 정희란은 “영화한테 당했다”는 감정을 고백한다. 이어지는 장면은 제작자와 감독의 저속한 편집으로 배우가 착취당하는 모습이다. “한 작품에 배우가 쏟는 몫이 있고, 열심히 임하다 보면 인생의 한 부분을 도려내서 바칠 수밖에 없게 되는데… 아, 나의 피와 땀이 이렇게 이용당했구나. 극장에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거지.” <애마> 속 여배우들은 영화에서뿐 아니라 권력층의 연회에 불려 다니고 언론에도 희생된다. <애마부인>으로 섹스 심벌이 된 신인의 삶도 냉혹하다. 감독조차 ‘쓰레기’라 부른 영화에 출연한 그녀는, 친구들에게 “부끄러운 영화”라는 말을 듣는다. 실제 그 시절 여배우들은 세상의 시선 속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관객은 불편하게나마 그들의 심정까지 상상하게 된다.

이처럼 <애마>는 <애마부인>의 안과 밖을 오간다. 여배우들이 치열하게 싸우는 전쟁터이자, 동시에 세상의 이중적 시선을 드러내는 매개다. 지나치게 억지스러워 보이지만, 오히려 새로운 상상을 가능케 하는 텍스트이기도 하고, 때로는 오마주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실제 <애마부인>에서 주인공 애마(안소영)는 성적 희열을 느낄 때 말을 타고 달리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런데 <애마>는 당시 가장 열광을 불러일으킨 이 장면을 전복하며, 가장 통쾌한 순간을 만든다. 결국 세상의 시선과는 별개로, 그런 영화들을 통과해야 했던 배우의 인생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메시지다. <애마>는 한국 영화사를 반추하는 시대극이자, 그 시대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가상 역사극이다. 이 작품을 경험한 관객은 그 시대 여배우들에 대해 새로운 질문을 던지게 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애마부인>은 여전히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에로 영화로 남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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