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필립스 “메이크업 트렌드를 주도하는 건 제 일이 아닙니다”
메이크업 마에스트로이자 디올 메이크업을 총괄하는 피터 필립스는 여성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고, 늘 작업에 즐거움을
더한다. 그리고 많은 뷰티 지지자에게 영감이 되는 비전을 제공한다.

우아한 취향, 관능적인 매력을 뿜어내는 동시에 높은 활용도를 자랑하는 페이스 차트와 제품으로 이제 하나의 고유명사가 되어버린 ‘피터 필립스(Peter Philips)’는 정제된 컬러 활용과 유행을 타지 않는 미니멀한 패키지 제작, 브랜딩 능력으로 명성이 높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의 명성을 드높이는 것은 여성이 스스로를 특별하게 느끼게 만드는 능력을 지녔다는 사실이다. 그의 작품은 패션계 종사자뿐 아니라 전 세계 모든 남녀에게 끊임없는 영감의 원천으로 기능한다. 디올 하우스에서 일하기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크리스챤 디올 뷰티의 부티크는 피터 필립스의 미적 감각에 사로잡힌 팬들의 발길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9월 선보일 10종의 새로운 립스틱은 피터 필립스가 이룩한 글로벌 뷰티 왕국의 핵심적인 스타일과 혁신을 오늘날까지도 가장 잘 보여주는 제품으로, 세계 곳곳의 전문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여성으로부터 환대받을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제품 출시에 앞서 서울을 찾은 이 전설적인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평생 이어온 뷰티에 대한 열정, 립스틱이 언제나 클래식인 이유, 그리고 다가올 미래에 그가 이루고자 하는 꿈은 무엇일까?

앤트워프 왕립예술학교 재학 당시 패션을 전공했습니다.
어릴 적 새아버지가 앤트워프에서 정육점과 음식점을 운영하셨는데, 우리 가족은 학교 근처에 살았죠. 10대 시절에는 제가 화려한 ‘극락조(Birds of Paradise)’라 일컫는 앤트워프 재학생들에게 빠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새아버지 가게에 와서 점심으로 먹을 샌드위치나 음식을 사 가곤 했죠. 학생들은 하나같이 개성 넘쳐서 속으로 ‘정말 굉장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점에서 더 끌렸고 “나도 저 세계의 일부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죠. 정말 좋은 학교였어요. 사진 촬영, 세트 디자인, 광고 캠페인 컨셉, 프린팅 등 모든 것을 배울 수 있었죠.
그런데 어떻게 뷰티에 관심을 갖게 됐나요? 터닝 포인트가 궁금하군요.
패션 디자인을 공부하면서 잡지를 보면 늘 얼굴만 봤고, 스타일링을 좋아했지만 패션에 열정적이진 않았죠. 졸업 학기 중 벨기에의 크리에이터, 디자이너들과 함께 파리에 가서 ‘드레서’로 백스테이지를 드나들면서 그 마음이 확고해졌습니다. 패션 위크 시기가 되면 20명 정도의 학생들이 버스를 타고 파리에 가서, 백스테이지에서 인턴으로 일하면서 패션쇼를 도왔죠. 그곳에서 헤어와 메이크업 팀과 모델들이 들어오는 걸 봤고 뭔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범해 보이는 한 여성이 헤어와 메이크업을 받고 화려한 모델로 변신하는 모습을 본 거죠.
급변하는 시대에 당신만의 강점은 뭘까요?
메이크업 분야는 점차 발전하고 변화해왔습니다. 소셜 미디어가 생겼고 메이크업은 누구나 자유롭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분야가 되었습니다. 20년 전만 해도 메이크업은 극히 일부 계층의 것이었고, 주로 부유한 고객이나 배우, 여배우, 특별한 이벤트에 참여하는 엘리트 계층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오늘날은 누구나 쉽게 메이크업을 즐길 수 있어요. 메이크업 트렌드를 주도하는 건 제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제 일은 아름다운 컬러와 아름다운 포뮬러로 대중이 사용하고 싶은 제품을 만드는 것이죠.
세르주 루텐과 티엔 시대의 디올 뷰티를 떠올려보죠.
두 분은 제 우상이었습니다. 정말 놀라웠죠.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를 보내는 동안 세르주 루텐의 사진을 정말 좋아했습니다. 그의 작품은 미술관에 전시해도 될 정도로 뛰어난, 예술 그 자체였어요. 그가 디올과 시세이도에서 보여준 작품이 그랬습니다. 놀랍고 독특하고 눈에 띄는, 시간을 초월한 걸작이었죠. 테크닉과 창의성은 충격적이기까지 했어요. 티엔 역시 매우 과감한 메이크업 아티스트입니다. 그는 디올의 가장 상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냈고, 디올만의 스타일을 창조해냈죠. 두 분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거장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저는 샤넬에서 경력을 쌓은 후 디올에 입사했습니다. 샤넬에서는 10년 동안 칼 라거펠트와 함께했죠. 공식적으로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5~6년 정도 일했지만 그 전에는 컨설팅을 맡았습니다. 높은 명성을 지닌 탄탄한 브랜드에서 일한 경험이 있었던 거죠. 그런 경험이 없었다면 디올에 입사해서 루텐과 티엔의 뒤를 잇는 데 두려움을 느꼈을 겁니다. 거장들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두 분 모두 당시 시대 상황에 맞는 분들이었다는 겁니다.
해마다 디올의 새 얼굴이 우릴 반깁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은 누구였나요?
어려운 질문이군요. 한 명도 빠짐없이 디올 패밀리로서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지수와 같은 매력적인 앰배서더가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이죠. 지수는 특별합니다. 나탈리 포트만과 일하는 것도 무척 즐겁습니다. 그런가 하면 안야 테일러 조이는 보석 같은 존재입니다. 정말 멋지고 재밌는 여성이죠. 만화처럼 큰 눈을 가진 유니크한 얼굴이 인상적입니다. 제나 오르테가는 정말 유쾌하고 재밌어요. 작고 귀여운 소녀 같죠. 아담스 패밀리의 ‘웬즈데이’ 그 자체로 제나에게는 매 순간이 새로운 발견이고 그 순간을 진심으로 즐기고 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현재 이야기를 들어보죠. 탁월한 제품 개발의 비결은 무엇인가요?
사람들이 사용하고 싶은 탁월한 제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예를 들면 몇 년 전에 컬렉션에 필요하다고 여겼던 립 글로우 오일을 출시했습니다. 감촉이 매우 좋고 혁신적인, 귀여운 제품이었죠. 단 한 번도 “이제 트렌드가 될 립 제품을 개발해야겠다”고 생각해보지는 않았어요. 그런 생각을 하게 되면 기존 트렌드에 영향을 받고, 기존 트렌드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너무 늦습니다. 트렌디한 제품을 만들려면 제품이 좋아야 합니다. 제품이 좋고 많은 사람에게 주목받으면 그 제품을 트렌드로 만드는 사람들을 통해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작업합니다. ‘포에버 스틱 파운데이션’을 예로 들면, 6년 전쯤 스틱 파운데이션의 기본 컨셉을 공개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출시 일정이 바뀌면서 몇 차례 론칭이 연기되었습니다. 저는 제품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정말 좋은 제품이었고 디올에서도 훌륭한 포뮬러였고 새로운 시도였죠. 그리고 출시 직후에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트렌드가 되었습니다. 품질을 갖추고 나면 사람들은 자연히 제품에 반응하고 또 제품을 사랑하게 돼요. 역시, 사용하는 사람들이 트렌드를 만드는 거죠.
수많은 제품 중 딱 하나만 추천해야 한다면?
이 역시 어려운 질문이군요.(웃음) 제가 출시 이후 늘 메이크업 키트에 넣고 다니는 제품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바로 ‘디올 백스테이지 글로우 맥시마이저 팔레트 #001 유니버셜 글로우’인데요, 화이트, 골드, 핑크, 브론즈 네 가지 셰이드로 이루어진 제품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한 대부분의 메이크업에 사용되었습니다. 눈꼬리 안쪽이나 양 볼에 하이라이터는 물론, 핑크나 골드 펄을 원할 때도 탁월하죠.
최신작 ‘루즈 디올 온 스테이지’의 관전 포인트는요?
잘 알다시피 ‘루즈 디올’은 디올의 아이코닉 립스틱입니다. 클래식한 제품이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여동생’ 같은 사이드 제품을 추가합니다. ‘루즈 디올 포에버 리퀴드 시퀸’처럼 말이죠. 루즈 디올의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새로운 챕터를 추가했습니다. 우리는 디올 연구소에 “루즈 디올은 이미 리퀴드로도 선보였고 스틱도 있습니다. 두 제품의 장점을 모두 살리면 어떨까요?”라고 의견을 전했습니다. 클래식 스틱은 수많은 립 케어 성분을 넣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왁스, 플라워 에센셜 같은 다양한 종류의 성분은 메이크업 결과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립 케어 효과까지 전달합니다. 반면에 리퀴드는 지속력이 뛰어나고 쉽게 묻어나지 않으며, 강렬한 매트 피니시나 탁월한 광택을 연출해줍니다.
텍스처와 포뮬러를 거듭 강조합니다.
립 케어 성분의 장점과 리퀴드의 장점을 결합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디올 연구소는 환상적인 구조의 훌륭한 포뮬러를 만들어냈습니다. 입자가 정말 섬세해요. 또 텍스처 덕분에 리퀴드처럼 가볍게 발라도 선명하게 발색됩니다. 바른 후에는 천천히 두 번째 단계로 나아가 광택을 띱니다. 광택이 드러나고 한층 더 선명해지는 것이 이 포뮬러의 장점이죠. 립스틱을 바른 후에는 천천히 광택이 살아나죠. 광택은 점차 뚜렷해지고 오래 밝은 광택을 유지합니다. 이런 점이 루즈 디올 온 스테이지의 장점이자 차별점입니다. 젤이나 펄 에센스가 아니라, 투명한 래커처럼 얇게 피부에 밀착되어 광택을 더하고 메이크업을 완성해줍니다.
조나단 앤더슨이 디올에 합류했습니다. 어떤 변화를 예상하나요?
모두 큰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면 누구나 브랜드를 재창조하고 말 그대로 새로운 룩을 탄생시킬 수 있는 기회를 누릴 수 있어요. 마르크 보앙, 지안프랑코 페레, 라프 시몬스, 존 갈리아노,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를 비교해보면 모두 그들만의 고유한 스타일을 가진 인물들이었고 디올 전시를 통해 각자의 개성이 확인됩니다. 모든 분이 각자의 고유한 스타일과 감성을 지니고 있지만 결국 모두 ‘디올’입니다. 이처럼 디올 하우스의 DNA는 매우 견고하고 창의성을 표현하는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모든 도전은 새로운 룩이 될 수 있어요. 다시 말해서 디올의 본질이죠. 디올 하우스는 조나단 앤더슨과 손잡고 하나의 비전을 통해 남성과 여성 컬렉션을 창작하는 혁신의 순간을 앞뒀습니다. 성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남성 패션과 여성 패션이 공존하는 요즘 세상에 딱 어울리는 적임자죠. 그와 함께하는 디올의 미래가 매우 화사하고 다채로우며 흥미진진할 거라고 확신합니다. 늘 그렇듯이 말이죠.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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