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내 잘못이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지킨다” – 하마구치 류스케

2025.09.15

“‘내 잘못이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지킨다” – 하마구치 류스케

베를린영화제 은곰상 수상작 〈우연과 상상〉, 칸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한 〈드라이브 마이 카〉를 지나 지난해 베니스영화제 은사자상을 수상한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까지. 불과 3년 만에 세계 3대 영화제를 제패한 하마구치 류스케는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영화감독이다. 예술가의 빛과 그림자를 포착할 수 있는 질문 50개를 그에게 건넸다.

하마구치 류스케(Hamaguchi Ryusuke)에게 ‘악’이란 무엇일까?

흠,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는 것.

가장 잘 지은 영화 제목은? (일본어 버전으로 답해도 상관없다.)

켈리 라이카트 감독의 ‘퍼스트 카우’.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에는 주인공 오미카 히토시를 비롯해 배우가 아닌 일반인이 대거 출연한다. 캐스팅할 때 가장 중시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야기, 그리고 이야기 속 캐릭터와 어울리는 인물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거기에 이야기가 생각지도 못한 쪽으로 흘러갈 것 같은 인상을 주는 사람이면 최고다.

멋진 배우란?

정직한 사람.

일본 싱어송라이터 이시바시 에이코와 합작한 영상 작품 <GIFT>가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의 탄생에 영향을 준 것으로 알고 있다. 영화와 영상을 비교하며 감상하는 게 좋을까?

그래도 좋다. 하지만 완전히 다른 작품이다. 이시바시 씨의 완성도 높은 음악은 영화로, 즉흥적인 라이브의 묘미는 영상으로 즐겼으면 한다.

영화음악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영상에 너무 딱 들어맞지는 않는 것.

영화음악의 관점에서 크게 감명받은 작품은?

고등학생 때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을 보면서 ‘이런 조합의 영화음악도 가능하구나’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당신의 일상에서 음악은 빠질 수 없는 것인가?

그렇다. 집에서도 애플 뮤직으로 그날 기분에 맞춰 음악을 튼다.

최근 매료된 뮤지션은?

로버트 와이어트.

대사의 철저한 반복을 기반으로 한 연기를 ‘하마구치 메소드’라 표현한다. 당신도 철저한 반복을 통해 체득한 기술 혹은 능력이 있나?

거의 없지만, 꾸준히 영화를 보면서 영화 만드는 법을 터득했다고 할 수 있다.

촬영 현장에서 루틴처럼 반복하는 일은?

‘레디, 액션!’을 큰 소리로 외치는 것.

예술가로서 중시하는 당신만의 규칙은?

무리하지 않는 것. 애초에 그렇게 무리하지도 못하는 사람이지만, 가끔은 무리해야 할 때가 있다. 그렇더라도 스스로 ‘그만하자’고 되뇐다. 무리하지 않으려 한다.

영화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억은?

일곱 살쯤에 영화관에서 볼프강 페터젠 감독의 <네버엔딩 스토리>를 본 일. 주인공이 읽는 책 속에서 용사 아트레유의 말이 늪에 빠지는 장면이 나오는데, 현실과 상상을 잘 구별하지 못하던 때라 말이 늪에 빠져들 때 느낀 공포감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어릴 때의 모습을 한마디로 묘사한다면?

겁 많은 아이.

지금의 당신을 세 개의 해시태그로 표현하면?

#겁쟁이 #영화감독 #밥이좋아. 가라아게가 너무 좋다.

감독이 안 됐다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중학생 때 장래 희망을 공무원이라고 적었다. 안정적인 직업이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유난히 좋아하는 단어는?

없다.

일 외에 잘하는 것은?

집중해서 뭔가를 하는 것. 모든 것에 집중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고, 독서 정도? 아, 하지만 그것도 딱히··· 일 말고는 잘 못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잘 못하는 것은?

분위기를 읽고 눈치껏 반응하는 것.

가장 두려운 것은?

함정 같은 것.

담배는 피우나? 어떤 때 담배를 찾게 되나?

비흡연자다. 다른 사람들이 담배를 피울 땐 덩그러니 혼자 있곤 한다.

최근 들은 것 중 기분 좋았던 말은?

아주 최근은 아니지만, 라디오에 출연했을 때 진행자가 내게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엄청 평범하시군요. 평범한 분이 오셔서 놀랐어요.”

당신 영화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듣는다면?

그래도 괜찮다. 나도 잘 모르는 영화가 많다. 원래 그런 것이다.

최근 본 영화 중 흥미로웠던 작품은?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사랑은 낙엽을 타고>. 영화를 잘 찍고 싶은데, ‘일을 잘하기 전에 제대로 살자’는 생각을 갖게 한 작품이다.

최근 읽은 책 중 추천하고 싶은 것은?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1억3천만 명을 위한 탄이초>. 신란(일본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승려)의 제자 유이엔이 스승의 가르침을 기반으로 쓴 책 <탄이초>를 그가 현대 버전으로 옮긴 것이다. 원작에 비해 추가된 부분이 꽤 많고, 다카하시 씨의 해석이 많이 녹아들었지만, ‘다카하시 씨에게 이 부분은 이렇게 느껴졌구나’ 하고 납득이 갔다. 애초에 <탄이초>는 각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읽을 수밖에 없는 책이 아닌가 싶다.

언젠가 소설을 써볼 생각은 없나?

그런 능력이 있다면 써보고 싶다. 아니다, 미안하다. 안 쓸 것 같다.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사람은?

한 명을 꼽기는 어렵지만, 오노 가즈코(小野和子)라는 민담 채록자를 말하고 싶다. 사실 책을 추천해달라는 아까 질문의 대답으로 오노 씨의 저서 <보고 싶고 듣고 싶어서 여행을 떠난다>를 말하려고 했을 정도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그 지역에서 다큐멘터리를 촬영한 적 있는데, 당시 오노 씨가 직접 출연해준 인연도 있다. 40년 가까이 곳곳에서 민담을 듣고 기록해온 분으로, 성실하고 꾸준한 작업 방식에 큰 영감을 받았다.

인생 최고의 조언은?

아카데미상 홍보 활동 자리에서 올리버 스톤 감독이 해준 말이 기억에 남는다. 아마 내 영화를 보신 것 같은데, “앞으로 수많은 사람이 당신을 칭찬할 것이다. 하지만 믿지 마라”라고 말씀해주셨다. 아직까진 그것이 최고의 조언이다.

사람들이 조금 놀랄지도 모르는 당신만의 습성이 있다면?

“좀 더 씹어 먹는 게 어때?”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아무래도 잘 씹지 않는 모양이다. 남자 형제들과 함께 자라서 그런지, 만두 같은 걸 뺏기지 않으려고 빨리 먹는 습관이 생긴 것 같다.

최고의 휴일을 보내는 법은?

아침 산책으로 시작하기. 아침이 가장 예쁘지만, 계절에 따라서는 너무 추울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침 풍경이 제일 멋진 것 같다.

빈칸을 채워달라. ‘난 ○○이 없으면 하루를 시작할 수 없다.’

평범하지만, 최근에는 커피. 블랙으로.

가장 행복한 순간은?

결국은 집중하고 있을 때다. 영화를 촬영하거나 각본을 쓸 때, 자료를 자세히 읽을 때 등 뭐든 집중할 때가 좋다. 그 순간엔 행복하다고 느끼진 않지만 돌이켜봤을 때 ‘집중했구나’라고 느껴지면 흡족하다.

성공이란?

‘오늘은 좋은 하루였다’고 느끼며 잠드는 것? 그럴 일이 별로 없다.(웃음) 만족스럽게 잠들 수 있는 하루를 보내는 것이 목표다.

낙관주의자와 현실주의자. 굳이 따지자면 어느 쪽인가?

낙관주의자.

기분을 전환하는 최고의 방법을 알고 있나?

애초에 그리 심하게 우울해지지 않는 편이다. ‘내 잘못이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지킨다.(웃음) 그러다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반성하게 된다.

눈앞에 깊은 슬픔에 빠진 사람이 있다. 어떻게 할 건가?

어떤 관계인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있을 것 같다. 그렇게 그 사람이 ‘아주 슬픈’ 상태에서 빠져나올 때까지 옆에서 기다릴 것이다.

도시와 시골 중 어느 곳에서 살고 싶나?

그 중간.

집을 구할 때 가장 먼저 살피는 조건은?

답답하지 않을 만큼의 넓이. 그러면서도 (집값이) 너무 비싸지 않은 곳.

성별이나 연령 불문하고 끌리는 사람의 공통점은?

결국 정직한 사람. 온화하고 정직한 사람이 좋다.

살면서 가장 용기가 필요했던 순간은?

글쎄, 그렇게까지 용기를 내지 않고 살아온 것 같다.

예상과 다르다는 이유로 타인이 당신에 대해 놀라는 점이 있다면?

목소리 톤이 높다는 말을 듣곤 한다. 상대가 생각한 것보다는 높은 모양이다.

자신에 대해 가장 좋아하는 면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은연중에 많이 소지하고 있는 아이템이 있나?

블루레이 디스크가 아닐까 싶다. 그래도 100장은 안 될 거다.

운전을 즐기는가?

안 한다.

가지고 싶지만 아직 갖지 못한 것은?

넓은 집.

해외 영화 현장을 경험하며 일본과 가장 다르다고 느낀 부분은?

요즘 일본 영화계는 스케일과 예산에 대한 감각, 혹은 시간과 돈에 대한 감각이 일그러졌다고 느낀다. 해외였다면 제지당할 만큼의 예산과 규모로 덜컥 제작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 여파는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간다. 이 균형 감각을 개선하지 않으면 일본의 영화 현장은 점점 더 피폐해질 것이다.

그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일단은 청년들이 충분히 잘 수 있는 스케줄을 전제로 제작 환경을 세팅하는 것.

10년 후에는 어떤 모습이고 싶나?

영화를 만들고 싶다.

지금 세상에 가장 필요한 것은?

세상이라··· ‘노(No)’라고 말하는 것. 누구나 싫은 건 싫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그러려면 그걸 들어줄 사람도 필요하다.

영화의 가장 멋진 점은?

‘이건 뭐야?!’ 싶은 뭔가와 맞닥뜨리게 된다는 것.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세계와 가장 안전한 방식으로 맞닿을 수 있는 방법이다. VK

J ISSUE

한국과 일본이 수교 60주년을 맞았다. 가깝고도 먼 우리지만 대중문화에서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상생해왔다. 〈보그〉가 주목한 동시대 일본 문화 예술인들이 간극을 더 좁혀가리라 믿는다. 배우 안도 사쿠라, 영화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배우 히다카 유키토, 종합 격투기 선수 미우라 코타, 뮤지션 크리피 너츠, 소설가 무라타 사야카, 아트 디렉터 요시다 유니, 패션 디자이너 이와이 료타가 K에 보내는 J 컬처.

피처 에디터
류가영
사진
Akihito Igarashi
Yaka Matsum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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