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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 스릴러와 로맨스의 불완전한 공존 ‘착한 여자 부세미’

2025.10.24

복수 스릴러와 로맨스의 불완전한 공존 ‘착한 여자 부세미’

<착한 여자 부세미>(ENA)는 제법 묵직한 분위기로 시작한다. 주인공 김영란(전여빈)은 중학생 때 생리대를 훔쳤다가 전과자가 되었다. 어머니는 그에게 5억 빚을 지우고도 모자라 걸핏하면 찾아와서 돈 달라고 행패를 부린다. 무술 유단자인 영란은 경호원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지만 사정이 이러니 취업이 어렵다. 그런데 가성그룹 회장 가성호(문성근)는 영란의 조건이 마음에 든다. 돈 때문에 뭐든 할 것 같고 쉽게 죽지도 않을 것 같아서.

ENA ‘착한 여자 부세미’ 스틸 컷.

가 회장은 자신이 3개월 시한부 환자인데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전처의 자식들에게 유산을 주기가 싫고, 그들 중 한 명은 과거 자기 친딸을 죽이기까지 했다며 영란에게 복수를 부탁한다. 자신과 혼인신고를 해서 회사 지분을 확보한 다음 주주총회까지 살아남아서 가씨 형제를 응징하라는 것이다. 영란은 그 청을 받아들이고, 회장은 사망한다. 영란이 자신의 사망에 조력해야 유산을 상속해준다는 조건이 담긴 회장의 유언장은 법적으로 하자투성이처럼 보인다. 그래도 이 대목까지는 그럭저럭 차갑고 웅장한 복수 스릴러의 서막 같은 분위기다.

영란은 가씨 형제의 추적을 피해 시골로 숨어들어 명문대 출신 어린이집 교사 부세미로 위장한다. 그러면서 <착한 여자 부세미>는 아기자기한 귀향 힐링 드라마로 전환된다. 영란/부세미는 주민들과 어울리고, 하숙집 주인과 플러팅을 하고, 아이들과 놀면서 점차 마을에 젖어든다. 서막에 몰입해서 사건의 전개를 궁금해하는 시청자들이라면 이야기가 늘어진다고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니 악덕 지주 때문에 벌어지는 마을의 소동이나 인정 많은 주민들의 모습에 관심을 갖기 어렵다. 어린이집 교사 부세미 환영식에서 주민들이 노래를 부르고 주정을 하는 장면에 이르면 작품의 산만함이 극에 달한다. 영란을 추적하는 동시에 회사를 차지하기 위해 여러 공작을 꾸미는 악당 가선영(장윤주), 회장 사망 후 저택을 차지하고 영란의 첩자 노릇을 하는 집사(김재화)와 운전수(황재열), 영란과 선영 중 더 돈 되는 쪽에 붙으려고 간을 보는 영란의 엄마 소영(소희정) 등 복수 스릴러에 할당된 캐릭터들도 이야기에 유기적으로 섞여들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ENA ‘착한 여자 부세미’ 스틸 컷.
ENA ‘착한 여자 부세미’ 스틸 컷.

작품 후반에 이르면 가선영이 영란의 은신처를 알아내서 자객을 보내고, 영란 측이 반격에 나서면서 또 한 번 분위기가 전환된다. 이 과정에서 명색이 무술 유단자에 경호원 출신인 영란은 번번이 암살자와의 싸움에 져서 하숙집 주인 전동민(진영)의 도움을 받는다. 로맨스를 위해 배치된 이런 클리셰는 이 작품의 야망이 그리 크지 않다는 걸 다시 확인시켜준다. 언제 뒤통수 칠지 모르는 어머니를 떼어내지 못하는 영란의 모습도 불안하다. 하지만 스릴을 포기하고 ‘불행한 여자 김영란’의 인생역전 스토리에 주목하면 이 작품에는 여전히 즐길 거리가 많다.

가 회장 저택의 청소부 백혜지(주현영)는 영란이 룸메이트로 들어오자 ‘친구가 되자’며 영란에게 들러붙는다. 영란이 ‘사모님’으로 일약 신분 상승한 뒤에도 끈질기게 그를 따라다닌다. 심각한 애정 결핍인지, 다른 쪽으로 정신이 나간 건지 알 수 없다. 곧 배신할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면서 매번 영란을 돕는다. 영란의 주요 조력자인 회장의 변호사 이돈(서현우) 역시 그렇게까지 회장의 유지를 받드는 이유가 뭔지 의심하면서 지켜보게 되는 캐릭터다. 전과자인 영란을 무서워하면서도 작전에 성공하면 어린이집을 사주겠다는 영란의 약속을 믿고 협력하는 원장 이미선(서재희)은 저 어수선한 무창 마을 에피소드에서 독보적으로 눈에 띄는 캐릭터다. 이들 조연진의 능청스럽고 순발력 있는 연기가 곳곳에서 집중력의 부표가 되어준다. 로맨스가 끼어들면서 김영란의 성공 보상은 더 커졌고, 악당이 어떤 모습으로 파멸하는가 하는 궁금증도 여전히 유효하다.

ENA ‘착한 여자 부세미’ 스틸 컷.
ENA ‘착한 여자 부세미’ 스틸 컷.

돈, 사랑, 스릴은 한국 재벌-신데렐라 드라마의 세계관을 지탱하는 근본 욕망 3종 세트다. <착한 여자 부세미>는 여기서 스릴을 강화한 형태다. 하지만 자극적 소재로 힘 있게 시작한 것과 달리 이야기의 밀도와 긴장감이 높은 드라마는 아니다. 참신한 아이디어와 클리셰가 혼재하고, 어려운 문제가 싱겁게 해결되는 구도가 자주 펼쳐진다. 정통 장르물보다 해피엔딩이 보장된 안락한 로맨스를 기대할 때 더 만족스러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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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A '착한 여자 부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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