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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우치아 프라다가 고른 책으로 독서 모임하기, ‘미우미우 문학 클럽’!

2025.12.02

미우치아 프라다가 고른 책으로 독서 모임하기, ‘미우미우 문학 클럽’!

뒤늦게 해소되는 감정이 있습니다. 특히 소설이 내 마음을 꼭 짚어줄 때 그렇지요. 주인공이 나와 전혀 성격이 다르고, 거리가 먼 환경에 처해 있더라도 그가 느낀 감정을 통해 내 감정을 보듬게 됩니다. 그 감정은 바다를 건너고, 시대를 건너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미우치아 프라다 여사가 여성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기 위해 문학을 선택한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요. ‘여성을 응원한다’라는 백 마디 말보다 이런 모녀 관계, 친구 관계, 연인 관계도 있다고 보여주는 게 더 와닿으니까요. 밀라노에서 시작된 ‘미우미우 문학 클럽’이 이번엔 상하이로 건너갔습니다. 프라다 여사가 직접 고른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눴더군요. 미국<보그>의 시니어 라이프스타일 에디터, 리암 헤스(Liam Hess)가 다녀온 현장을 살펴보시죠.

Courtesy of Miu Miu

최근 몇 년간 패션계가 문학을 다루는 일이 급격히 많아졌습니다. 모델은 북 클럽을 열고, 디자이너는 의상 위에 소설 구절을 인쇄하고, 브랜드는 고전 소설 표지를 새긴 토트백을 내놓았죠. 하지만 프라다 여사는 언제나 남들이 ’지그(Zig)’할 때 ’재그(Zag)’합니다. 남들보다 한 박자 빠르게, 다른 각도로 움직이죠.

미우미우가 오랫동안 이어온 여성 영화감독 지원 프로그램 ‘우먼스 테일스(Women’s Tales)’처럼 말이죠. ‘문학 클럽’ 역시 그 의미를 이어가는 행사입니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여성 작가들과의 대화를 주최하죠. 여름 한정 프로그램 ’서머 리드(Summer Reads)’ 행사에서는 엄선한 여성 작가의 책을 팝업 스토어에서 나눠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상하이 ‘미우미우 문학 클럽’은 어땠을까요? 금빛 기와가 인상적인 고대 사찰 너머로 인파가 북적이는 난징시루(南京西路) 쇼핑 거리 사이, 상하이 전람 센터 기둥 아래를 걷다 보면, 파스텔 톤 테이크아웃 컵을 들고 말쑥한 차림으로 형형색색의 책 무더기를 품에 안은 사람들이 보입니다. 분수대 주변이나 웅장한 계단에 삼삼오오 모여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죠. 이들의 옷차림을 자세히 보면 익숙한 로고가 눈에 들어옵니다. 바로 미우미우죠.

Courtesy of Miu Mi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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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우미우 문학 클럽’은 매년 봄 밀라노에서 열리는 살로네 델 모빌레 기간에 꾸준히 주목받아온 행사입니다. 이번엔 2년 만에 상하이에 상륙했죠. 프라다 여사가 직접 고른 여성 작가들의 책을 주제로, 작가와 지식인이 모여 대화를 나누는 패널 토크는 물론, 시인과 뮤지션의 퍼포먼스까지 이어졌습니다. ‘여성의 교육’이라는 주제로 구성된 지난 4월 밀라노 프로그램에 이어, 상하이에서는 시몬 드 보부아르의 <둘도 없는 사이(The Inseparables)>, 엔치 후미코의 <기다림의 세월 (The Waiting Years)>, 장아이링(張愛玲)의 비교적 덜 알려진 작품, <파고다의 몰락(The Fall of the Pagoda)>을 다뤘습니다. 20세기 중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장아이링은 동명의 영화 원작 <색, 계>의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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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행사는 퉁지대학교 인문대학의 장핀징(Zhang Pinjing) 교수가 기획했습니다. 장핀징 교수는 중국 현대문학과 페미니즘 문학 이론 연구자로서, 상하이 지역 문학계를 대표하는 학자입니다. “장아이링은 근현대 중국 문학을 상징하는 저자”라며 “그의 책은 반드시 읽어야 할 고전”이라고 언급했죠. 저도 상하이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파고다의 몰락>을 읽었는데요. 몰락하는 귀족 가문 출신 소녀가 1920~1930년대 격동의 상하이에서 성장해가는 이야기입니다. 흡입력 있는 스토리에 빠져들면서도, 묘하게 현시대와 겹쳐 보이는 기시감을 느꼈죠. 시몬 드 보부아르와 엔치 후미코의 책처럼, 이 작품도 저평가된 숨은 보석, 그러니까 ‘잊혔지만 다시 꺼내야 할 보물’ 중 하나입니다.

행사장은 중세 밀라노 도서관에서 영감을 받아 조성했습니다. 환한 햇살이 들어왔고, 보석처럼 반짝이는 노란색 소파, 마르셀 브로이어 체어, 주름진 붉은 벨벳 커튼이 어우러졌죠. 첫 번째 세션은 보부아르의 <둘도 없는 사이>로 시작됐습니다. 10대 소녀 둘의 열정적인 우정을 그린 반자전적 소설로, 2020년에 뒤늦게 출간됐죠. 프랑스 문학 연구자인 위안 샤오이(Yuan Xiaoyi)가 패널로 참석했습니다. “이 소녀들이 벗어나고자 했던 구조, 그들이 도망치고자 했던 상황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보부아르가 소설을 써도 여전히 리얼리스트인 이유죠.” <둘도 없는 사이>의 중국어 번역가 차오둥쉬에(Cao Dongxue)도 참석해, 보부아르와 장 폴 사르트르가 1955년 신중국 수립 후 가장 먼저 중국을 방문한 서구 학자 중 하나였다는 일화를 전했습니다. “그러니 그녀는 우리의 오래된 친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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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은 동서양을 조화롭게 섞은 메뉴였습니다. 미니 와규 샌드위치, 애호박 치아바타, 아이스티와 네그로니가 준비됐고, 밴드 하이퍼슨(Hiperson)의 프런트우먼 천쓰지앙(Chen Sijiang)이 무대를 장식했습니다. 오후 세션은 장아이링의 <파고다의 몰락>으로 이어졌습니다. 올해는 장아이링 타계 30주년으로, 소설 낭독은 배우이자 미우미우 앰배서더인 자오진마이(Zhao Jinmai)가 맡았습니다. 비간(Bi Gan) 감독의 <부활(Resurrection)>(2025) 주연으로, 올해 칸 영화제에서 주목받았죠.

@jinmai_z
Courtesy of Miu Mi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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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을 이끈 리쯔수(Li Zishu) 작가는 장아이링 작품에 대한 솔직한 비판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특히 주인공 어머니에 대한 묘사가 불만이라고 밝혔죠. 소설가 디안(Di An)은 주인공의 여정과 자신의 경험이 겹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여성의 해방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원만하게 마무리된 이혼 이야기, 기자라는 안정된 직업을 내려놓고 작가의 꿈을 좇기로 한 결정까지요. “나 자신의 꿈을 추구하는 게 이기적인 건 아니에요. 그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줄여주고 싶었습니다.”

앞줄에서 진지하게 경청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니, 메시지가 꽤 뚜렷하게 가닿은 듯했습니다. 학생이든, 배우든, 뮤지션이든, 은발의 교수진이든 마찬가지였죠. 장핀징 교수는 “작가이자 지식인인 여성들”을 중심으로 연사를 섭외했다고 밝혔습니다. 보부아르처럼 저마다 인생의 다른 챕터를 걷는 여성들을 골고루 대변하는 이들이길 바랐다고요. 특히 젊은 세대 여성들이 보부아르와 사르트르의 관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인상 깊었다고 전했습니다. “이런 시선의 변화가 감동적이었어요. 관계에 대한 여성들의 인식이 확실히 진화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Courtesy of Miu Mi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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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우미우 2026 봄/여름 컬렉션과 이번 문학 클럽의 접점도 흥미로웠습니다. 컬렉션에서 앞치마, 원피스, 하우스 코트 등 집안의 사적인 삶을 상징하는 아이템들이 두드러졌는데요. <기다림의 세월> 속 등장인물들, 특히 주인집 남편에게 순응하며 살아가는 하녀와 첩들의 내면을 표현한 장면과 자연스럽게 겹쳐 보였습니다. 일상 속 억압과 그 속의 미학이라는 주제가 패션과 문학 모두에 스며 있는 셈이죠.

Miu Miu 2026 S/S RTW
Miu Miu 2026 S/S RTW
Miu Miu 2026 S/S RTW
Miu Miu 2026 S/S RTW

이 점이야말로 미우미우 문학 클럽과 우먼스 테일스 프로그램이 사랑받는 이유일 겁니다.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데 ‘좋은 이야기’만 한 촉매가 없으니까요. “텍스트에서 출발해 그 너머로 나아가고 싶었어요. 소설에서 시작해 지금 우리의 현실로 이어지는 거죠.” 장핀징 교수는 말했습니다.

그날 밤, 문학 토크가 열린 공간은 또 다른 클럽으로 변신했습니다. 천장엔 디스코 조명이 반짝였고, 뮤지션 렉시 리우(Lexie Liu)의 공연이 열렸죠. 열띤 환호 속에서 히트곡을 연이어 불렀습니다. 하지만 복도로 나와보니, 한쪽에 마련된 조용한 라이브러리 공간에서는 아직도 10여 명의 사람들이 책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음악이 들려오는 가운데서도 말이죠. “책을 해석하는 게 목적은 아니에요. 책을 다리로 삼는 거죠.” 장핀징 교수의 말처럼 정말 책을 통해 서로를 연결하고, 그 너머의 대화로 나아가는 자리였습니다.​​​​​​​​​​​​​​​​

Liam Hess
사진
Courtesy of Miu Miu, Instagram, GoRunway
출처
www.vogu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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