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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운자로 투여 이후, 마음에도 변화가 일었다

2025.12.08

마운자로 투여 이후, 마음에도 변화가 일었다

형벌처럼 체중계의 선고를 기다리는 나날. 주사형 비만 치료제를 배에 꽂으며, 자연법칙을 거스르고 있다. 이 싸움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The Artist’s Kiss’, 1977, FIAC, Grand Palais, Paris, France. ©Orlan

가산디지털단지의 한 의원 대기실. 밤 8시가 넘었지만 벤치가 꽉 차 있다. 이들은 거의 5분 만에 자리를 뜰 것이다. 우리 모두 처방을 빙자한 ‘허가서’를 받으려고 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주사형 비만 치료제 마운자로를 맞기로 결심한 이유는 64kg이어서가 아니다. 옆으로 누울 때 배가 흘러내려서 거북했고, 요가의 바카아사나(두 팔로 몸을 들어 올리는 자세)를 할 때 팔목이 끊어질 것 같아서다. 한마디로 일상이 찜찜했다. 그것이 64라는 숫자로 집약됐을 뿐. 영화에서 탈출을 위해 사람들을 욱여넣던 화물용 기차 같던 대기실에서도 나는 있어 보이는 명분을 찾고 있었다. 생활이 불편하니까 맞는 거야.

이 자리에 오기까지 유튜브로 마운자로와 위고비의 성능을 비교했다. 지난 1년 한국을 강타한 위고비의 2주 차 후기, 드라마틱한 변화, 부작용, 염려 등이 올라와 있었다. 대체 뺄 게 어디 있단 말인가 싶은 이들도 ‘뼈 말라’를 위해 맞고 있었다. 의사가 자신도 맞는다며 유튜브에 후기를 공유했다. 안과 의사는 하지 않는다는 라식 수술을 했던 2000년대 초처럼 불안하지 않았다. 의사도 맞는데 뭐. 마운자로는 최근 등장한 위고비의 라이벌이다. 출시되자마자 위고비 가격이 순식간에 내렸다. 어르신들이 그랬다. 뭐든 돈값 한다고. 그래서 더 비싼 마운자로를 맞기로 했다.

주변엔 위고비 크루가 많았다. 브랜드 관계자 10여 명과 함께한 연말 디너 모임 때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피부과 시술과 위고비로 이어졌다. 대부분 맞고 있었다. 수십, 수백을 들여 관리하는 재력이 부럽기보다는 이너 뷰티보다 겉모습을 가꾸는 그들에게 약간의 우월감을 느꼈다. 배우 문숙의 주름진 얼굴과 흰머리가 얼마나 멋진데요. 이런 재수 없는 말도 했던 것 같다.

나도 한때는 몸에 해방된 적 있었다. 2016년 라틴아메리카를 여행할 때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체형이 있었다. 페루와 볼리비아 원주민들의 몸은 작고 단단했다. 안데스산맥처럼 산소가 부족한 고지대에 오래 살아왔기 때문에 체표면적 대비 체적을 최소화한, 즉 키가 작고 몸이 단단해야 체온 유지와 에너지 효율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몸을 더 부풀리듯 대여섯 장씩 치마를 겹친 전통의상 포예라를 입고 어깨에 이크야라는 화려한 천을 두른 뒤 검고 긴 머리를 땋아 내렸다. 아름다웠다. 브라질 이파네마 해변에선 허벅지가 굵든 엉덩이가 크든 손바닥만 한 비키니를 입고 해수욕을 즐기는 이들의 호르몬과 자신감이 넘쳤다. 그 역시 아름다웠다. 몸에 대한 결정적인 기준이 없는 대륙에서 나는 자유로워졌다. 브라 톱 하나로 일주일을 났고(세탁을 줄이고자), 타인을 만날 때 옷 형태가 내 처진 가슴과 배 라인을 감추는지 돋보이게 하는지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시절에 행복은 몸매와 별개였다. 다양한 몸을 본 탓도 있지만 온수와 담요, 비리지 않은 음식, 전기(산맥 부근에선 전기가 자주 끊겼다)가 중요했다.

사회는 더 많이 팔기 위해 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미디어가 흔히 포장하는 행복은 젊음, 날씬함, 팽팽한 피부, 스타일리시한 패션으로 대변되는 ‘아름답다’는 허상이다. 수전 손택은 <여자에 관하여>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상업화된 행복과 개인적 안녕의 이미지가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진짜 기쁨을 주는지에 대한 인식을 좌우하게 놔둔다.”

공감하면서도 나는 마운자로를 받으려고 대기실에 있다. 사전에 받은 질문지를 작성했다. “그 전에 다이어트 약을 복용한 적 있습니까?” 있다. 중학생 때 다이어트 약이 유행했다. 키가 더 크지 못한 건 그때 무리해서라고 지금도 탓한다. 나에게 불법 약물을 판 약사는 대체 어떤 인간인가. 한심한 어른은 예나 지금이나 많다. 스물일곱에도 다이어트 약을 먹었다. 이상형을 만난 것처럼 내내 가슴이 뛰었다. 밤에도 낮에도 벌렁거려서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편집장이 빨간 펜으로 얼룩진 원고를 들고 조용히 나를 찾아왔다. “약 그만 먹으면 안 되니?” 그 후론 임산부석을 양보받을 때도 나는 약의 힘이 아니라 운동으로 어떻게든 해보려 했다. 수술 후엔 건강이 더 중요했다. 전신마취를 하기 전 차가운 병실에서 떠는 나를 덮어준 홑이불의 꺼끌꺼끌한 감촉을 느끼며 다짐했다. 만약 다시 깨어난다면 다른 건 필요 없어요, 건강하게만 살겠습니다. 과거에서 마흔의 현실로 컴백. 질문지에 ‘오래전 약 복용 경험이 있음’이라고 적었다.

의사를 대면한 시간은 10초였다. 그녀는 마운자로 1단계 혹은 2단계를 맞힐지 고민했다. “다이어트 세게 하신 적은 없으니까···”라면서 1단계를 처방했고, 접수처에서 바로 주사제를 받았다. 이 의원을 택한 이유는 하나였다. 별도로 약국에 들르지 않고 현장에서 받을 수 있다는 것. 우리 할머니는 게으른 나를 두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렇게 귀찮으면 숨은 어떻게 쉬냐?” 하긴 이렇게 움직이기 싫어하는데 살이 빠지겠나.

그날 밤 배에 직접 주사기를 꽂았다. 딸깍. 주사 윗부분을 누르니 약이 1초 만에 들어갔고 따끔했다. 너무 쉬웠다. 너무 쉬워서 이렇게 해도 빠지나 싶었다. 찌른 자리를 소독하면서 익은 과일의 꼭지 같은 배꼽을 봤다. 배꼽에서 10cm는 떨어져야 한댔는데 뭔가 가까이 맞은 것 같다. 내 친구는 오래 난임 시술을 받았다. 축복을 기다리다 지친 친구는 자신의 배에 배란 유도 주사를 놓을 때마다 동물이 된 것 같다고 슬퍼했다. 그녀는 생명을 위해서였지만··· 빈 거실에 홀로 배를 까고 있는 나는 공허해졌다.

마운자로 투여 이후에도 여전히 먹고 싶은 것이 많았다. 퇴근 후 보상형 식욕도 그대로였다. 하지만 조금만 먹어도 배가 찼다. 이게 얼마짜린데, 라면서 스스로 자제한 면도 있다. 마감 기간 한바탕 야식을 시켜 먹던 <보그> 편집부 동료들은 먹지 않는 내게 ‘식단 하는지’ 물었다. 정확히 식단은 아니니 “그럼 이런 걸 먹겠어?”라면서 손에 든 ‘아이스 초코’를 보여주었다. 몇 모금에 더부룩해진 나는 얼음이 다 녹을 때까지 책상에 내버려뒀다. 이때까지 외부에 마운자로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다. 뭔가, 내가 추구하는 이미지와 달라 부끄러웠다.

아침이면 의식처럼 체중계에 올라가 형벌을 기다렸다. 오늘 내게 내린 선고는 무엇인가요? 3주간 2kg이 줄었으나 마의 60을 내려갈 생각은 없어 보였다. 몸에서 자유로워지고자 마운자로를 맞았는데, 오히려 매일 체중에 집착했다. 나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나의 우쭐했던 과거를 포기한 대가를 체중계의 숫자로 보상받고 싶었다.

옷을 벗고 ‘눈바디’도 체크했다. 팔다리에 비해 몸통이 두껍다. 모든 살과 지방이 배를 타워팰리스로 여기나 보다. 이곳으로 입주하기 위해 달려든다. 나이 들수록 체지방 분포가 몸통으로 이동하기 마련이다. 폐경 전후로 더 심해질 것이다. 나는 이 자연법칙과 싸우고 있다. 그래서 피곤하다.

며칠 후 후배와 가진 술자리. 와인을 좋아하는 그녀는 마리아주를 권했다. 마운자로 때문인지 술을 마시면 간에 알코올이 똬리를 틀고 앉았기에 거절했다. 주량이 약한 사람들을 처음 이해하게 됐달까. 후배에게 주사형 비만 치료제를 맞느라 그렇다고 양해를 구했다. 그녀가 슬픈 눈동자로 말했다. “그럼 인생을 무슨 재미로 살아요?” 우리가 마감 때마다 만나서 마신 수많은 생맥주와 소주, 와인 잔들이 부딪쳐 애가를 부르는 것 같다.

내가 무슨 영광을 보자고 이러고 있지. 애주가는 슬프다. 하지만 다이어트를 위해 주사 중인 모든 동지를 응원한다. 우리는 사회가 만들어낸 이미지를 추종하길 넘어서, 거기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해진 반감과 싸우는 중이니까. 주름을 없애고 염색하고 날렵한 옷맵시를 살리려 애쓰면서. 한 회사에서 새로운 직원을 뽑기 위해 SNS를 살핀다는 얘기를 들었다. 지원자의 취향을 알고 싶어선가 했지만, 인사 담당자의 한마디는 이랬다. “우리가 미스코리아를 뽑자는 건 아니지만···” 그는 외모 체크를 하고 있었다. 이력서 사진의 관상으로 어느 정도 걸러낸다는 괴담 이후로 충격이었다. 우리는 사회가 내건 이미지에 턱걸이하기 위해 부단히 움직인다.

그렇다고 나는 마운자로를 멈출까? 냉장고에 보관된 남은 한 대의 주사기를 꽂으면, 다시 접견을 신청할까? “3kg이 뭡니까? 이번엔 2단계로 세게 주세요”라면서? 편집부에서 12월호를 마감하는 와중에도 나는 병원 예약을 할지 말지 고민 중이다. 마감 기간에는 교정 선배에게 자신의 기사를 빨리 봐달라는 에디터들의 아부가 이어진다. 오늘도 한마디가 들려온다. “선배, 요즘 왜 이렇게 예뻐져요? 여기서 살 조금만 빼면 장난 아니겠다. 마운자로? 위고비? 그런 거 맞아봐요.” 나는 모르는 척 앉아 있다. 나중에 따로 교정 선배에게 마운자로 후기를 들려줘야겠다. 하지만 그 전에 몇십 년째 구색 맞추느라 고생하는 몸에 속은 괜찮은지부터 물어봐야 할 거다. 췌장은? 간은? 너 괜찮은 거니? 이랬으면 저랬으면 말만 걸지, 몸의 속내를 들어본 지 오래니까. 몸과 대화를 나눈 후에 뭐든 결정해야겠다. VK

    피처 디렉터
    김나랑
    포토
    Courtesy of ORLAN Studio, Ceysson & Bénétiè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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