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이고 광대하며 야심 찬 역사의 이어받기 ‘보이저’
이것은 별의 이야기, 별이 열어준 시간, 별이 보내온 메시지, 별을 향한 답가이다. 칠레의 여성 작가 노나 페르난데스의 자전적 에세이 <보이저>(2025, 가망서사)를 그렇게 말하고 싶다. 밤하늘에 떠 있는 무수한 별들이야말로 이 글의 시작, 역사의 저장고, 가능한 희망, 이어질 미래, 우연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아주 먼 과거, 수십 광년의 시간 전에 탄생해 이제야 우리 앞에 반짝이는 빛으로 현현하는 별들, 우주 먼지. 그 작디작은 존재들이 이곳의 작디작은 존재인 우리에게 소곤소곤 말을 걸어온다. 영원히 이어질 메아리, 셰에라자드의 계속될 이야기처럼. 또한 이것은 별들의 지도이자 연결이기도 하다. 이 글의 구성과 형식과 전개가 그러한 상태를 지향한다. 지금 이곳의 역사와 과거의 그것을 잇고, 작가와 그녀의 어머니, 어머니의 어머니, 작가의 아들이 겪은 일화를 연결하며, 개인사를 칠레의 역사와 접속하면서 시선의 지평을 넗힌다.

작가 노나는 이유도 없이 가끔 의식을 잃는 어머니의 뇌 속 신경세포 검사 화면을 보면서, 불현듯 하늘의 별들을 떠올린다. 신경세포의 활동이 모니터 화면 위에서 구조화되고 형상화되고 빛으로 이미지화될 때 만들어지는 장관이 별들의 깜빡임과 직관적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까마득한 시간 뒤에 우리 앞에 온 별, 어쩌면 이미 사라진 별들이 만들어내는 빛. 사라졌지만, 사라지지 않은 별들의 존재와 그 존재의 현현 사이, 어쩔 수 없는 그 시차. 그것은 없는 게 아니라 우리 안에 이미 쌓여 있다. 어딘가에는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믿음과 입장이다.
‘시상하부의 만화경 안에 수집된 그 모든 것이 우리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우리를 설명하고 우리를 드러낸다. 불연속적인 파편들, 깨진 거울 조각들의 무질서한 더미, 총체적으로 우리를 구성하는 누적된 과거… 냄새, 맛, 색깔, 질감, 온도, 감정. 별로 짠 가장 복잡한 태피스트리 같은 신경 회로. 우리 어머니의 뇌 속에 숱한 별이 있고, 그것들은 애정 어린 기억의 이름 아래 별자리를 이루어 빛난다.’(15~16쪽)
작가는 어린 시절 엄마가 들려줬다는 말과 별들의 기억을 잇는다.
‘어느 여름밤, 마당에 앉아 담배를 태우던 어머니는 저 멀리 밤하늘에 거울로 우리와 소통하려는 작은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일종의 빛나는 모스부호처럼 빛을 반사해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했다…. 확실히 기억나는 것은 그 작은 사람들이 하늘에서 내려보낸 빛이 안부 인사라고, 머나먼 거리와 컴컴한 어둠을 넘어 자신들이 거기 있음을 확인시키는 메시지라고 어린 내가 생각했다는 사실이다. 안녕하세요, 우리가 여기 있답니다. 우리는 작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를 잊지 마세요. 그들의 인사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낮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들은 항상 거기에 있었다.'(17~18쪽)
그리고 또다시 작가는 이 별들에 관한 기억을 1973년 칠레의 피노체트 독재 시절과 연결한다. 쿠테타 직후 군 특수부대를 조직해 반체제 인물들을 처형하고 범죄를 은폐하려 한 일. 별을 관측하기에 세계 최고의 장소로 꼽히는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서 당시 스물여섯 명의 칠레인이 처형된 사건. 여전히 희생자들의 가족은 그들의 유해를 찾아 헤매고 있다. 노나는 하늘의 별이 된 이들의 이름을 따서 하늘에 새로운 별자리를 만들려는 국제앰네스티 활동에 기꺼이 함께한다. 그녀는 희생자 중 한 명인 마리오의 이름이 붙은 별의 대모가 되고, 그의 아내 비올레타를 만나고, 어쩌면 그들이 함께 살았을 집을 방문하며,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애도하기 위해 아타카마 사막에 모인 이들의 여정에 동행한다.
‘많은 사람들이 물을 것이다, 왜 유골이 필요하죠?
나는 그의 유골을 사랑하니까요, 비올레타는 말한다.’(84쪽)
그러면 또 이 이야기는 다시 작가의 엄마와 할머니의 이야기와 이어질 것이다. 1971년생인 노라는 피노체트 쿠데타 2년 전에 태어나 유년기를 모두 피노체트 정권하에서 보냈고 성인이 될 때쯤에야 정권의 몰락을 목격했다. 피노체트 독재 시절을 보내온 모녀 3대 저마다의 운명을 별자리에 관한 오랜 신화적 역사와 연결해 설명하고, 독재 시절 행한 국민투표의 의미를 읽어낸다. 그녀들의 사적 역사가 칠레의 역사와 맞물리고 교차한다. 흩뿌려진 밤하늘 별들이 별자리로 연결되는 듯한 신기한 교직이다. 그럼 또다시 이야기는 작가의 2001년생 아들의 일화와도 연결될 수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민주화된 칠레만을 생각할지 몰라도, 아들이 학교에서 군사 쿠데타에 연루된 자가 체제 이행기에 대통령을 하는 게 맞느냐는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글을 썼다는 이유로 글의 수정과 삭제 요청을 받은 일화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여전히 남아 있는 지난 세월의 흔적은 생각보다 강고하다는 증거일 것이다.
우주, 별, 역사, 개인의 무한하고 무구한 연결성 앞에서 작가는, 그리고 독자인 우리는 겸허해질 것이다. 태어나는 순간을 기억하는 이는 아무도 없지만, 그와 같은 망각과 기억상실 없이는 이 세상에 나올 수 없을 것이다. 그 기억은 사라져 없는 듯하지만, 그 기억의 암흑은 우리의 몸과 피와 역사를 구성하며 그 안에 저장돼 있다.

‘이 모든 것을 통해 분명히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우연의 딸아들이라는 사실뿐이다. 우리는 우리의 시작이었던 대폭발의 에너지에 떠밀려 시간 속을 나아간다. 그 거대한 첫 분출의 계속되는 저류에 휩싸여 가는 것이다…. 이 모든 과거의 경험,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심연의 경험은 우리 몸의 기억으로 저장되어 있다. 우리는 그것을 유산처럼 지니고 다니며, 매일 실행한다. 알든 모르든 인정하든 아니든, 그 덕분에 우리는 아침에 깨어난다. 그 덕분에 우리는 걷고 뛴다.’(62쪽)
책 말미에 실린 편집자의 ‘출간 배경’에는 노나와 칠레의 역사를 지금 여기의 역사와 잇는 또 하나의 중요한 연결점이 나온다.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 수상하며 했던 말, 한강 소설의 원류라고 해도 좋을 그 말의 의미가 시공간을 뛰어넘어 공명한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189쪽)
밤하늘 별이 반짝이는 한, 생성과 소멸은 거듭될 것이다. 잇기는 계속될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작가 노나는 다음 문장을 썼을 것이다.
‘오늘 나는 우주 탐사선이자 기록 장치의 소명을 다해, 바로 이 사진을 구출한 후 별로 날려 보낸다. 시공간 사이를 정처 없이 떠돌도록. 그러다가 어쩌면 어느 날, 내가 결코 알지 못할 미래에, 다른 인생에서 누군가 이 사진을 발견하고 기억의 바통을 이어받아 계주를 계속해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170쪽)
그렇다. <보이저>는 우주와 지상, 여기와 저기, 과거와 현재가 이어받아 계주하듯 연결되기를 바라는 이의 지극히 사적이고 광대하며 야심에 찬 잇기의 작업이다.

보이저노나 페르난데스
(2025, 가망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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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tty Images,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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