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아이템

슬리퍼야, 로퍼야? 매일 신고 다녀봤습니다

2025.12.15

슬리퍼야, 로퍼야? 매일 신고 다녀봤습니다

찬 바람이 거세던 어느 날, 제니퍼 로렌스가 발목까지 내려오는 롱 코트에 네이비 컬러 슬립온 뮬을 신은 채 뉴욕 거리를 걷는 모습이 포착됐습니다. 몇 년 전이었다면 “저게 뉘 집 신발이지?”라는 생각부터 들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번엔 괜히 화면을 확대하게 되더군요. 어쩌면 나도 조금은 투박하고 담백한 저런 슬립온 뮬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오전 6시 15분부터 슬립온 뮬을 검색하기 시작했습니다.

Getty Images

슬립온 뮬, 혹은 밑창이 두꺼우면 ‘클로그’라 불리는 이 신발의 유행은 요란하지 않았지만 분명했습니다. 몇 달 전, 동료 조이 몽고메리(Joy Montgomery)가 반짝이는 미니멀한 가죽 클로그를 신고 책상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서야 확신이 들었죠. 실용적인데도 묘하게 단정해 보이는 신발이었습니다. “라운드 토 덕분에 내가 즐겨 입는 배기 진의 볼륨이 과하지 않게 정리된다”고 말하더군요. 여기에 헐렁한 테일러드 팬츠나 펑퍼짐한 가죽 재킷을 매치하면, 힘들이지 않고도 사무실에서 충분히 말끔한 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덧붙였죠. 투박해 보이는 신발이 오히려 전체 룩의 균형을 잡아준다는 얘기였습니다.

©Joy Montgomery

지난달에는 프랑스식 가드닝 클로그가 패션 피플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더군요. 장화를 종아리 중간에서 잘라낸 듯한 모양이라 솔직히 저는 스물한 살에 양보하고 싶지만, 뉴크로스에서 라임 자전거(따릉이)를 타고, 펍을 오가고, 집에는 미드 센추리 모던 바이닐 선반을 들여놓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미 수요가 많다고 하더군요. 거리에서도 슬립온 뮬은 심심찮게 눈에 띕니다. 얼마 전에는 런던 달스턴의 마트에서 소렐과 프로엔자 스쿨러가 협업한 카리부 뮬을 신고 식물성 우유 코너를 둘러보는 사람도 봤고요.

@annatwyford

이렇게 미니멀한 신발이 주목받은 정확한 출발점을 꼽기는 어렵습니다. 몇 가지 흐름이 맞물렸죠. 먼저 몇 년 전, 더 로우가 ‘꾸민 듯 안 꾸민 멋’을 성공적으로 전파했죠. 그러니 보헤미안 트렌드를 타고 등장한 클로그가 금세 얌전한 모양새로 변했습니다. 모양도 무난하고 착용감도 편하니 스니커즈의 대안을 찾던 사람들 눈에 띄었고요.

특히 가드닝 클로그의 경우, 패션 에디터 다니엘 로저스(Daniel Rodgers)는 보디의 2020 가을/겨울 컬렉션을 중요한 분기점으로 짚습니다. 런웨이에 등장한 이후 브루클린에서 ‘안티 잇 슈즈’로 소비됐고, 뉴욕 패션 매거진에서 집중적으로 다루며 지금은 런던까지 퍼졌다는 설명입니다. 여기에 지난해 벨라 하디드가 소렐과 프로엔자 스쿨러의 카리부 뮬을 신은 모습이 포착되며 흐름은 더 확실해졌죠. 하디드가 신은 신발이 어떻게 되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Getty Images

저는 사실 많은 신발 트렌드를 거부합니다. 예를 들면 메시 발레 플랫이요. 절대 신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냥 발에 씌우는 그물망이잖아요? 하지만 이 트렌드는 다릅니다. 편안함과 단순함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에게 슬립온 뮬은 꽤 설득력 있는 선택이죠. 발을 조이지 않고, 신고 벗기 쉽고, 디자인은 최대한 덜어냈습니다. 대신 앞코 형태와 소재의 질감으로 룩의 균형을 잡아주죠. 바지통이 넓어지고, 겨울 아우터가 길어질수록 이런 ‘단순한 마침표’ 같은 신발은 더 필요합니다.

겨울이라고 해서 굳이 두껍고 복잡한 신발을 고집할 이유는 없습니다. 매일 신어도 부담 없고, 그렇다고 집 앞 슬리퍼처럼 보이지 않는 신발을 찾고 있다면 슬립온 뮬이 합리적인 답입니다. 하디드 자매에게 어울렸다면, 우리 일상에도 크게 무리 없을 테니까요.

Daisy Jones
사진
Getty Images, Instagram, Courtesy Photos
출처
www.vogue.co.uk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