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웃고 진저리 치면서 계속 막장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이유
금요일 밤, 친구 셋이 모여 ‘피자-마스크 팩-영화’ 삼합을 완성했습니다. 피자 고를 때보다 영화 선택할 때 더 빨리 의견이 통일되더군요. 셋 다 한목소리로 ‘이게 뭐야’ 소리가 절로 나올 ‘망작’을 골랐습니다. 제목은 생략하겠습니다. 누군가에게 상처 주고 싶진 않으니까요. 황당한 장면을 같이 비웃고, 민망한 장면에 눈을 질끈 감는 재미를 예상했죠. 그 기대는 배신당하지 않았고요.

말도 안 되는 스토리, 과장된 연기, 이해할 수 없는 연출이 차고 넘치는데도 우리는 자꾸 그런 콘텐츠를 클릭합니다. 욕하면서도 보게 되는, 이른바 ‘헤이트 워칭(Hate Watching)’이죠.
뻔히 알면서도 플레이 버튼을 누르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뇌는 자극에 약하거든요. 심리학자 엘레나 다프라(Elena Dapra)가 그 원리를 설명해주더군요. “싫든 좋든 그 자극 때문에 뇌가 즉각적으로 각성하고, 불안을 잠시나마 잊게 만들죠.” 머리를 안 써도 되는 콘텐츠는 ‘즉시, 예측 가능한, 몰입감’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감정이입이나 해석이 필요 없는 ‘자극의 덩어리’는 스트레스 지수가 최고치에 이른 날 특히 달콤하게 다가옵니다. 라면 끓이기조차 피곤한 날, 편의점 삼각김밥을 찾는 것과 비슷합니다. 맛있어서가 아니라 지금 당장 위로받고 싶기 때문이죠.

문제는 그런 위로가 반복될수록 진짜 보기 좋은 것보다 떠들어재낄 것을 택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친구에게 DM으로 ‘야, 이건 선 넘었다’고 보내는 그 짜릿함이 헤이트 워칭의 핵심이죠.
한국의 막장 드라마나 자극적인 예능 프로그램이 살아남는 이유도 같습니다. 이야기 완성도보다는 리액션의 맛이 우선시되기 시작한 거죠.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말합니다. “비판하면서 우리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확인받기도 해요. ‘난 쟤처럼은 안 살아’라는 감정이 도리어 자기 정체성을 강화하죠.” 그렇기에 사람들은 더 열심히 씹고, 퍼 나르고, 공감하는 사람을 찾습니다. 실시간 반응을 나누기 좋은 플랫폼, 예컨대 X(전 트위터), 틱톡, 유튜브 댓글 창 등이 이 감정의 무대를 열어줍니다. 나만 느낀 게 아니었구나 싶은 순간, 우리는 좀 더 안심하죠.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분노도 에너지를 끌어올립니다. 어이없어하고 분개하는 그 감정 자체가 뇌에 자극을 주고, ‘나는 저들과 달라’라는 도덕적 우월감도 슬며시 얹어주죠. 그러니 이 감정은 꽤 유용한 탈출구가 됩니다. 오히려 깊은 감정을 마주하지 않게 하거든요.
심리적 쾌락 외에 기술 발전도 한몫합니다. ‘알고리즘’이죠. 콘텐츠 플랫폼은 우리가 어떤 영상에서 오래 머무는지, 어떤 콘텐츠에 댓글을 남기는지 계산합니다. 문제는 ‘좋아해서 본 것’과 ‘어이없어서 끝까지 본 것’의 차이를 시스템이 모른다는 거죠. 결국 보면서 좋았든 싫었든 또 추천받고 다시 클릭하는 무한 루프가 발생합니다.

이쯤 되면 정말 묻고 싶습니다. 누가 이기고 있는 걸까요? 어이없게도, 우리가 싫어한다고 말한 그 콘텐츠가 계속 승자입니다. 물론 모든 헤이트 워칭이 해롭다는 뜻은 아닙니다. 친구들과 같이 보며 웃고 수다의 양념이 된다면 좋은 스트레스 해소 수단이 될 수도 있죠. 하지만 전문가들은 경고합니다. 그 감정이 일상에서 유일한 분출구가 되거나 무분별한 비난으로 이어질 땐 분명 문제라고요.
그러니 콘텐츠가 내 기분을 나쁘게 만들기 시작할 때 멈춰보세요. ‘내가 지금 이걸 굳이 봐야 하나?’ 그 한 문장이 더 건강한 시청 루틴을 만들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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