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옷 짓는 디자이너, 애슐린 박

2026.01.06

옷 짓는 디자이너, 애슐린 박

여러 재료를 섞어 뭔가를 만드는 행위를 ‘짓는다’고 표현한다. 애슐린 박은 한국과 일본, 미국에서의 경험과 누군가의 아내이자 어머니, 디자이너로서의 삶을 촘촘하게 직조해 ‘애슐린’이라는 옷과 집을 지었다.

뉴욕 웨스트 38번가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만난 애슐린 박. 차분하고 다정한 모습으로 ‘보그’에 인사를 건넸다.

‘애슐린(Ashlyn)’의 디자이너 애슐린 박(Ashlynn Park)은 한국과 일본을 넘나들며 성장했다. 도쿄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요지 야마모토에서 패션 디자이너 겸 패턴 메이커로 커리어를 시작한 애슐린 박은 2011년 뉴욕으로 이주하며 알렉산더 왕과 캘빈클라인에서 차곡차곡 경력을 쌓았다. 코로나19가 세상을 장악했던 2020년, 그녀는 과감하게 본인의 이름을 딴 브랜드 ‘애슐린’을 론칭했다. 그녀가 일본에서 배운 패턴 제작 기법은 정교한 디자인으로, 서양의 드레이핑 기법은 자신감과 편안함을 불어넣은 실루엣으로 구현됐다. 강렬한 여성성과 시대를 초월하는 우아함을 기념하는 ‘애슐린’은 모든 제작 과정에서 폐기물 발생과 환경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며 럭셔리와 지속 가능성이 공존하는 방법을 찾았다. 2022년 LVMH 프라이즈 파이널리스트에 오른 애슐린 박은 2025년 CFDA ‘올해의 미국 신인 디자이너’로 선정되고 CFDA/보그 패션 펀드까지 수상하며 ‘애슐린’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세상에 대담하게 알렸다.

입체적인 패턴을 통해 달항아리의 뽀얗고 둥근 자태를 구현했다. 애슐린 고유의 드레이핑과 테일러링은 달항아리의 부드러움과 강인함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2020년 애슐린을 론칭하고, 2021년 봄 첫 번째 컬렉션을 공개했다.

코로나19가 극에 달할 무렵 캘빈클라인을 그만두자 갑작스러운 정적에 놓였다. 가족과 함께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고, 그 안에서 나는 손으로 뭔가를 계속 만들고 싶다는 강한 욕구를 느꼈다. 처음에는 단순히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집에서 드레이핑과 패턴을 잡기 시작했다.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 조각들이 작은 컬렉션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내 안에 오랫동안 묻어둔 꿈이 조금씩 떠올랐다. 일본과 미국에서 훌륭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과 함께 일하며 배운 것들을 이제 내 언어로 표현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 조용한 시간들이 애슐린을 시작할 용기를 주었다.

“우아하면서도 부드러운 것을 좋아해요. 요지 야마모토는 ‘옷은 나의 갑옷’이라고 말했죠. 저는 달라요. 옷을 통해 스스로를 보호하는 동시에 사람들을 환영해야 해요. 그게 제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예요.” 일렁이는 소재와 구조적인 형태가 돋보이는 애슐린 2026 봄 컬렉션.

애슐린을 론칭하기 전에는 요지 야마모토, 라프 시몬스와 함께 일했다.

나의 정체성은 패턴 메이커에서 출발한다. 패턴 메이킹은 지금도 내 디자인의 중심에 있다. 애슐린만의 차별점은 이 기술과 경험에서 비롯된다. 나는 디자인과 패턴을 동시에 만들기 때문에 스케치보다 패턴에서 실루엣이 탄생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디자이너는 패턴을 직접 만들지 않고, 패턴 메이커는 컬렉션의 개념이나 서사를 설계하는 역할을 맡지 않는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가장 강렬한 패션을 만든 디자이너들은 이 두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 사람들이었다. 나 역시 ‘안에서부터 밖으로 디자인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구조와 실루엣, 감정은 패턴을 통해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브랜드 고유의 건축적 언어가 만들어진다. 요지 야마모토와 라프 시몬스 아래서 한 경험은 극과 극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차이가 내 커리어에서 가장 큰 선물이 되었다. 요지의 스튜디오는 모든 것이 패턴에서 시작된다. 장인 정신에 대한 깊은 존중, 비대칭 구조와 볼륨, 조형적인 움직임을 바탕으로 ‘시(詩)’ 같은 옷이 탄생한다는 것을 배웠다. 반면 라프 시몬스가 이끌던 캘빈클라인에서는 정반대 훈련을 받았다. 완벽한 미니멀리즘, 현대적 테일러링의 정교함··· 그곳은 실수와 허점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절대적인 절제의 세계였다. 깨끗한 재킷 하나에도 모든 기술과 정확성이 필요했다. 두 세계는 나의 디자인 언어뿐 아니라 브랜드 운영 방식에도 큰 영향을 준다. 직관과 감성, 기술적 엄격함과 책임감. 나는 이 가치를 동시에 품고 애슐린을 이끌고 있다.

당신의 이름에서 브랜드명이 탄생했다.

애슐린은 내 이름 ‘Ashlynn’에서 마지막 ‘n’을 하나 덜어서 만든 이름이다. 이 부분에는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철학이 담겨 있다. 나는 비움의 미학, 즉 덜어내는 디자인을 믿는 사람이다. 디자이너로 일하다 보면 누구나 뭔가를 더하는 데 집중하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작업을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는 여유와 큰 그림을 보는 능력이 생긴다. 요지 야마모토에서 일하며 배운 가장 큰 교훈도 바로 절제의 미학이었다. 재킷 한 벌의 모든 요소는 반드시 합리적이고 필연적인 이유가 있어야 하며, 목적 없는 장식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뭔가를 더하기보다 덜어낼 때 비로소 또 다른 힘이 생긴다고 믿는다.

데뷔할 때부터 지금까지 제로 웨이스트를 강조하고 있다.

나는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을 시도하는 데서 기쁨을 느낀다.(웃음) 럭셔리와 지속 가능성은 공존할 수 없다고 다들 말하지만, 나는 그 두 가지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오히려 더 의미 있다고 여겼다. 지속 가능성을 위해 데드 스톡 원단이나 리사이클링 원단 같은 요소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지만, 내게는 패턴, 재단 방식, 생산 과정 등에서 발생하는 지속 가능한 선택이 더 중요하다. 내가 추구하는 제로 웨이스트는 장식적인 개념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창의적인 실험으로 이어진다. 선주문 방식(Pre-order)을 적극 활용해 불필요한 재고와 폐기물을 줄이는 것도 지속 가능성을 위한 또 하나의 방법이다. 앞으로도 스스로에게 ‘럭셔리는 어떻게 지속 가능성을 품을 수 있나?’라는 질문을 계속 던지고 싶다.

한국에서는 여러 재료를 섞어 뭔가를 만드는 행위를 ‘짓는다’고 표현한다. 특히 밥이나 옷, 집을 만들 때 ‘짓는다’는 표현을 쓴다. 당신의 옷은 ‘짓는다’는 표현이 잘 어울린다.

‘옷을 짓는다’는 표현은 내가 사랑하는 한국어 표현 중 하나이며, 내 작업의 근간을 이루는 좌표다. 나는 옷을 단순히 드로잉으로만 표현하거나, 완성된 형태에 장식을 더하는 방식으로 디자인하지 않는다. 건축가가 집을 짓듯 나 역시 기둥을 세우는 과정, 즉 구조와 실루엣을 설정하는 일부터 작업을 시작한다. 그 위에 어떤 옷이 서 있을 수 있는지, 패브릭과 실루엣의 물리적 관계를 수없이 연구하며 형태를 완성한다. 적합한 소재 선택, 계산된 각도와 비례, 그 사이에서 작용하는 물성과 탄성, 중력까지 고려하다 보면 때로는 디자이너라기보다 과학자에 가까운 마음으로 작업할 때도 있다.(웃음) 나는 건축을 좋아한다. 건축가가 건물의 외형만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하나하나 ‘지어 올리는’ 태도를 존중한다. 그래서 내가 옷을 짓는 방식 또한 그것과 자연스럽게 닮아가길 바란다.

달항아리는 과거·현재·미래가 하나의 형태에 담기는 존재다. 애슐린 박은 곡선과 둥근 실루엣, 부드러운 볼륨으로 몸이라는 또 하나의 그릇을 표현하고자 했다.

당신이 추구하는 기술적이고 미학적인 목표가 궁금하다.

나이가 들수록 옷의 무게에 더 민감해진다. 물리적인 무게뿐 아니라 정서적이고 감각적인 무게까지 말이다. 어떤 소재는 몸을 짓누르고, 어떤 소재는 몸을 받쳐준다. 옷 한 벌이 주는 편안함, 자신감, 안정감은 모두 이런 무게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나는 디자인 과정에서 몸의 움직임, 시간의 흐름, 옷의 수명까지 함께 감안한다. 기술적으로는 조형적인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유연함을 잃지 않는 것이 목표다. 완성도 높은 테일러링과 감정적인 곡선이 공존하는 실루엣을 만들고 싶다. 소재는 구조를 잘 지탱하면서도 피부에 닿는 감촉이 부드러운 것, 과장되지 않으면서 존재감이 있는 것을 우선으로 선택한다.

당신은 뉴욕을 기반으로 한 한국인 패션 디자이너이자 두 딸의 어머니다.

나는 두 개의 삶을 동시에 살고 있다. 뉴저지에는 두 딸의 엄마이자 아내로서의 삶이 있고, 뉴욕에는 완전히 다른 세계, 창작과 압박, 에너지로 가득한 패션 디자이너의 삶이 있다. 이 두 세계를 매일 오가면서 균형을 배웠다. 집에서는 요리를 하는데, 요리는 재료의 조합과 향, 온도, 시간 등 서로 다른 요소가 하나의 결과물로 탄생한다는 점에서 디자인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나에게 주어진 두 개의 삶, 나의 정체성이 애슐린을 더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브랜드로 만들어준다. 두 세계가 서로 지탱하며, 나는 그 중심에 있다. 하루를 거의 1분 단위로 쪼개가며 살지만 더 의미 있게 사용하기 위해 늘 고민한다. 일과 완전히 분리된 적은 없지만, 일이 나를 지배하는 걸 원치 않는다. 그래서 일주일에 두 번은 오후 3시에 아이들을 직접 데리러 가고, 내 손으로 꼭 저녁을 차린다. 이것은 내게 가장 중요한 루틴이다. 하루 중 유일하게 일을 완전히 잊을 때는 한국 드라마를 보는 시간이다.(웃음)

애슐린 2026 봄 컬렉션은 애슐린 박이 늘 지니고 다니는 분청사기와 달항아리에서 영감을 받았다. 분청사기의 은은한 푸른 빛과 유려한 곡선을 표현한 드레스가 아름답다.

‘보따리’ ‘감’ ‘달항아리’ ‘청자’ 등 한국적인 정서가 담긴 주제로 컬렉션을 전개한다.

각 시즌 테마는 내 삶의 한 챕터이기도 하다. 최근 몇 시즌 동안 한국적인 주제를 택한 이유도 내가 그 시기에 느낀 감정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었다. 달항아리는 과거·현재·미래가 하나의 형태에 담긴 존재다. 완전함과 불완전함이 동시에 깃든 아름다운 구조다. 나는 곡선과 둥근 실루엣, 부드러운 볼륨으로 몸이라는 또 하나의 그릇을 표현하고자 했다. 문화적 요소는 장식으로 소비되지 않고, 구조와 형태, 감정으로 드러난다.

2022년 LVMH 프라이즈 파이널리스트에 오른 후, 2025년 CFDA ‘올해의 미국 신인 디자이너’로 선정되고 CFDA/보그 패션 펀드까지 수상했다.

개인적으로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자 나의 긴 여정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런 일이 나에게 찾아올 거라고 상상해본 적이 없었기에 더 소중한 경험이었다. 브랜드 차원에서는 큰 변곡점이 되었다. 세계적인 인지도가 크게 높아졌고, CFDA와 <보그>의 지원, 멘토십은 지금의 애슐린에 매우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단순한 수상이 아니라 브랜드가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는 구조적인 힘을 갖게 된 것이다.

애슐린 박은 2026 봄 컬렉션을 통해 본인의 인생을 그릇에 빗댔다. 그녀는 이 그릇에 경험과 기억을 담아두고 필요에 따라 꺼내 쓰거나 더해나간다. 단단한 형태와 부드러운 질감에서 느껴지는 대비가 인상적이다.

2026년은 애슐린 창립 6주년이 되는 해다.

지난 6년은 롤러코스터 같았다. 기쁨도, 불안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많은 배움이 있었다. 내가 어떤 디자이너이고 어떤 방식으로 일하고 싶은 사람인지 더 깊이 이해하게 된 시간이었다. 앞으로의 시간은 더 예측하기 어렵지만, 나는 여전히 희망적이다. 거창한 목표보다는 브랜드의 미학을 더 견고하게 다듬고, 책임감 있게 성장하며, 의미 있고 오래 남는 작업을 하고 싶다. VK

    패션 에디터
    신은지
    포토그래퍼
    Peter Ash Lee
    포토
    Yvonne Tnt(BFA.com, Shutterstock), GettyImagesKorea
    모델
    Emmanuelle Lacou(New York Model), Heather Diamond Strongarm(The Society), Skye Blendermann(Women)
    헤어
    Nero(Ma+Group)
    메이크업
    Sena Murahashi(Ma+Group)
    캐스팅
    Shawn Dezan(SD Casts)
    프로덕션
    박인영(Inyoung Park@Visual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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