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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 나게 가깝고 슬프도록 먼 가족이란 존재에 관하여 ‘러브 미’

2026.01.10

짜증 나게 가깝고 슬프도록 먼 가족이란 존재에 관하여 ‘러브 미’

<러브 미>(Jtbc)는 독특한 명암비를 가진 드라마다. 수다스러운 도시 여성 연애담으로 시작해 어두운 가족 드라마를 거쳐 가족 구성원의 로맨스로 넘어가는데, 뒤로 갈수록 유머의 비중이 높아지지만 그늘이 온전히 걷히지는 않는다. 가족 사이에 쌓인 피로와 침침한 기운을 이성과의 독점적 연애 관계에서 위로받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나의 해방일지>와 닮았다. 그러나 시선을 집중시키는 스타가 많지 않아서 훨씬 미니멀하고 현실적인 인상을 준다. 연애도 시청자에게 대리 만족을 안겨주는 예쁘장한 것이 아니고, 영상마저 로우키에다 관조적인 시선이라 독립 영화 같다는 평도 나온다.

Jtbc ‘러브 미’ 스틸 컷

작품이 무거워 보여서인지 시청률은 높지 않다. 하지만 이웃의 스캔들 같은 은근히 자극적인 사건이 이따금 터져주고, 진지한 인물들이 웃긴 상황에 처하는 순간을 재치 있게 포착해 코드가 맞는 소수의 시청자에게는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한 작품이다. <제3의 매력>의 박은영, 박희권 작가가 스웨덴 드라마를 리메이크했고,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사랑의 이해> <은중과 상연>의 조영민 PD가 연출했다.

첫 장면은 주인공 서준경(서현진)의 소개팅이다. 상대 남성은 준경의 ‘스펙’을 줄줄 읊어댄다. 36세, 산부인과 의사, 부모님, 남동생 하나… 소개팅이 망했다는 걸 눈치챈 남성은 준경과 섹스라도 해서 실속을 챙기려 한다. 준경은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 다음 날 준경은 상대가 매력적인 사람이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친구에게는 자기가 어차피 결혼에 관심이 없었다며 결혼과 가족 제도의 단점을 줄줄 읊는다. 친구는 “그런 애가 소개팅하려고 옷과 구두를 샀냐” 놀려댄다.

서준경은 그런 사람이다. 남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쓰고 외로움을 수치스러워하는 사람. 연애, 결혼, 가족을 냉소하지만 은근히 인연을 기대하는 사람. 기대했다 상처받는 게 두려워서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척하는 사람. 아픈 엄마(장혜진)에 대한 죄책감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서서히 드러난다.

Jtbc ‘러브 미’ 스틸 컷

엄마의 생일 때문에 모처럼 가족이 모인 자리. 서준경과 엄마는 서로에게 차갑고, 서준서(이시우)는 누나 준경을 나무라고, 아빠 서진호(유재명)는 분위기를 무마하려고 아내의 학대에 가까운 충동적인 요구를 받아들인다. 이 숨 막히고 민망한 장면이 곧 벌어진 엄마의 갑작스러운 죽음 후 남겨진 세 사람의 미묘한 상황을 잘 설명해준다. 그들의 슬픔에는 상실감, 미안함, 그리움뿐 아니라 해방감이 섞여 있다. 타인에게 함부로 들켜서는 안 되고 이해받기도 어려운 복잡한 감정이다.

이후 드라마는 세 유족이 새로운 사랑을 만나고 좌충우돌하면서 조금씩 변화하는 과정을 그린다. 이들을 비롯해 <러브 미>의 캐릭터들은 가끔 놀랍도록 미숙하고 이기적이다. 서진호는 아내와 가기로 했던 제주도 패키지 여행을 혼자 떠나서 가이드 진자영(윤세아)과 눈이 맞는다. 진호는 죽은 아내에 대한 미안함, 벌써 연애를 하면 남들이 어떻게 볼까 하는 고민으로 전전긍긍한다. 그의 고해성사를 듣던 신부가 시청자를 대신해 진호에게 잔소리를 퍼붓는 장면이 통쾌하다. 이후 진호는 아내에게 쏟던 애정을 자영에게로 옮기는데, 한번 마음을 정하고 나니 첫사랑에 빠진 소년처럼 너무 부주의해져서 또 문제가 된다.

준경은 이웃집 남자와 사랑에 빠지지만 그에게 사춘기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경악한다. 상대남은 “말할 기회가 없었다”고 변명하지만 시청자들이 보기엔 그렇지도 않다. 준경도 이상하긴 매한가지다. 그는 산부인과 의사라면서 섹스 얘기를 민망해하고, 사귄 지 며칠 안 된 애인이 아들이 있다고 고백하는데 사정이 궁금하지도 않은지 펄쩍 뛰면서 대화를 끊어버리고, 진호와 데이트하다가 잘못한 것도 없이 봉변을 당한 자영에게 “안 창피하세요?”라고 비아냥거린다. 소양강 처녀도 아니고 열여덟 딸기 같은 이 순진함과 결벽증은 대체 뭔가?

Jtbc ‘러브 미’ 스틸 컷
Jtbc ‘러브 미’ 스틸 컷
Jtbc ‘러브 미’ 스틸 컷

준경의 동생 준서는 진로를 갈팡질팡하면서 누나 돈으로 대학원을 다닌다. 그러면서 누나에게 버르장머리라곤 없다. 아버지가 제주 여행을 갈 때는 “엄마 죽은 지 얼마나 됐다고 ‘호캉스’를 가냐” 대든다. 그래놓고 아버지가 떠나자마자 집에서 여자 친구 생일 파티를 연다. 이 철없고 버릇없고 한심한 ‘여미새’는 애인한테 차였다고 상심해서 취업 기회까지 차버려서 가족을 기함하게 만든다. 그에게 대학원 리포트도 써주고 가족 행사도 대신 챙겨주면서 오매불망 구애하는 여자(다현)가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주인공들의 미숙함은 역설적으로 이 드라마가 그리는 치유와 성장을 궁금하게 만든다. 이 가족은 과연 행복에 도달할 수 있을까? 이 방황의 끝에 그들이 발견하는 가족의 의미는 뭘까?

Jtbc ‘러브 미’ 스틸 컷

<러브 미>는 울음과 웃음을 강요할 수 있는 순간에도 침착함을 잃지 않는다. 진호가 전처의 물건을 갖다 버렸다가 후회하는 장면, 준경이 애인의 못돼먹은 아들을 통해 자영을 이해하게 되는 에피소드, 서로 데면데면하던 가족이 각자의 연애 상황을 고백하고는 예상치 못한 반응에 당황하는 모습 등이 그렇다.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드라마고, 인물의 감정선, 메시지, 연출 의도 등을 능동적으로 해석하기 좋아하는 사려 깊은 시청자에게 더 매력적으로 다가갈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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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러브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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