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 같은 화장품 성분의 모든 것, 이것만 보면 됩니다
암호 같은 전성분표 앞에서 길을 잃은 당신에게. 롱제비티부터 뉴로글로우까지, 2026년 뷰티 월드를 횡단하기 위한 <보그>의 성분 가이드북.

화장품 쇼핑이 이토록 지적이고 어려운 적이 있었나? 착하고 순한 ‘클린 뷰티’의 깃발이 내려간 자리에, 이제 수명을 연장하고 뇌를 속이며 시술을 정교하게 모방하는 하이테크의 시대가 도래했다. 매달 쏟아지는 신제품의 상세 페이지는 PDRN, 엑소좀, NAD+ 같은 직관적이지 않은 성분명과 난해한 화학기호, 특허 번호가 줄을 잇는다. 이 혁신적인 성분은 분명 뷰티의 진보를 의미하지만 준비 안 된 소비자에겐 그저 혼란스러운 암호문일 뿐. 그래서 마케팅의 소음 속에서 과학적 진실을 찾아낼 수 있도록 성분 내비게이션을 준비했다. 지금 가장 주목받는 성분부터 조만간 당신이 피부로 느끼게 될 미래의 성분까지! 이것은 당신의 화장품 쇼핑을 단순한 소비가 아닌 ‘지적인 탐험’으로 바꿔줄 최신 성분 지도다.
시술, 화장대 위로 체크인
피부과 베드에 누워야만 가능했던 경험이 화장품 병 속으로 들어왔다. 그 선두에 선 것은 일명 ‘샤넬 주사’ ‘연어 주사’의 핵심 성분인 PDRN이다. 연어의 정소에서 추출한 이 강력한 재생 물질은 현재 뷰티계가 가장 사랑하는 성분이다. 물론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주사기와 손가락은 엄연히 다르니까. 피부과의 스킨부스터 시술은 입자가 큰 폴리뉴클레오티드(Polynucleotide, PN)를 진피층에 직접 찔러 넣지만, 화장품 원료인 PDRN은 아무리 저분자라 해도 그 영향력이 표피를 넘어서기 힘들다. ‘찐’을 구별하는 조건도 까다롭다. 소셜 미디어의 수많은 PDRN 쇼핑 가이드가 ‘고순도’ ‘고함량’ ‘흡수 기술’을 앵무새처럼 강조하는 이유다. 문제는 이것만 명심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것. 브랜드의 상세 페이지에도 가끔 함정 카드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김민경 JOD랩 소장은 원료의 순도와 함량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꼬집는다. “대부분의 연구원은 PDRN을 이미 희석된 형태로 공급받습니다. 그런데도 일부 브랜드는 ‘100% PDRN 원료를 썼으니, 배합 후에도 고함량’이라는 식으로 표기하죠.” 사실상 말장난에 가깝다. 그러니 ‘50% 함유’ ‘90% 함유’ 같은 모호한 숫자에 현혹되기보다 실제 유효 성분이 몇 피피엠 들어 있는지 명시한 제품을 고르는 것이 좋다. 또한 아무리 많은 양을 때려 넣었다고 해도 성분 특성상 흡수가 쉽지 않으니 스피큘, 리포솜, 니오솜 같은 침투 기술이 적용되었는지 확인하거나 MTS, 갈바닉 기기를 함께 사용하는 것이 유리하다.
PDRN과 함께 두각을 나타내는 또 하나의 루키는 세포를 깨우는 메신저, 엑소좀이다. 세포들이 서로 정보를 주고받을 때 사용하는 나노 사이즈의 소포체로, ‘세포 간의 택배 상자’ 역할을 한다. 앞서 말한 PDRN이 피부를 위한 보약이라면, 엑소좀은 둔해진 세포를 깨우는 알람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작은 주머니 안에 “콜라겐을 만들어라” “염증을 멈춰라” 같은 구체적인 지령과 이를 수행할 기술자, 즉 성장인자, 효소 등이 함께 담겨 있다. 무너진 건물을 복구하기 위한 설계도와 인부들을 한 번에 보내주는 셈이니, 듣기만 해도 이상적이다.
사실 피부과에서는 인체 유래 줄기세포 배양액에서 엑소좀만 고순도로 분리해 시술한다(킴 카다시안도 서울에서 이 시술을 받고 큰 만족감을 표했다). 그렇다면 화장품의 엑소좀은 어떨까? 법적으로 인체 유래 성분을 쓸 수 없어 식물이나 유산균 엑소좀을 사용하기에 시술의 흡수율과 효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시중에는 단순한 배양액을 섞어놓고 엑소좀이라 부르는 ‘물타기’ 제품도 존재한다. 박지호 태강머트리얼즈 대표는 “엑소좀 역시 순도와 입자 사이즈 감별이 핵심”이라 강조하며, 품질 평가가 확실한 원료를 사용했는지 꼼꼼히 따져보라고 조언한다.
실 리프팅도 바를 수 있다. 윤지은 코스맥스 책임 연구원은 콜라겐 자가 부스터 역할을 하는 PLGA 성분을 히든카드로 꼽았다. 실제 피부과에서 녹는 실이나 봉합사로 쓰이는 생분해성 고분자를 화장품 제형으로 구현해낸 것이다. PLGA는 효과가 확실하지만 분자가 커서 화장품으로 만들기 까다로운데 이것을 미세한 캡슐 형태로 가공한 결과, 바르는 것만으로 피부 속에서 콜라겐 생성을 자극하는 ‘자가 부스터’를 완성할 수 있었다. 경험해보고 싶다면 바이오힐 보 ‘프로바이오덤 3D 리프팅 바이오톡실 PLGA 세럼’을 추천한다.
물광 주사의 원리도 화장품 병 속에 담겼다. 라네즈 ‘워터뱅크 아쿠아 페이셜 세럼’은 특수 관리에서 사용되는 가교 히알루론산을 주 무기로 삼는다. 수분 자석인 히알루론산 분자를 다리 놓듯 서로 묶어 그물망 구조로 만듦으로써, 단순한 보습 이상의 탱글 광채를 연출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일반 히알루론산이 피부에 물 한 컵을 붓는 것이라면, 가교 히알루론산은 견고한 수분 댐을 건설한 듯 도톰한 수분막이 유지된다.
다시 바이오
초하이테크 성분인 PDRN과 엑소좀이 화장품 병에 담길 때 발견되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출처가 비건이라는 것. 바이오 비건 성분은 전 세계 어디나 제약 없이 유통되기 유리하며, 브랜드만의 고유한 스토리를 입히기에도 최적의 전략이다.
지구상에는 약 40만 종의 식물이 존재하고, 매년 수천 종의 식물이 새롭게 학계에 보고된다. 화장품 연구원들은 이 방대한 자연의 도서관에서 남들보다 더 효과적이고 더 유니크한 원료를 찾아내기 위해 실험을 반복한다. 760년 세월을 견디고 흙탕물에서도 기어이 꽃을 피운다는 아라연꽃에서 PDRN을 추출한 한스킨처럼 말이다. 장미 PDRN, 병풀 PDRN, 인삼 엑소좀, 락토 엑소좀… 익히 아는 원료라도 파면 팔수록 새로운 보물이 쏟아져 나온다.
물론 논란은 존재한다. 제아무리 효과가 좋다 해도 연어의 DNA나 인간의 소포체와 구조가 완벽히 일치할 순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이름만 빌려온 ‘컨셉 성분’이라 비판한다. 하지만 식물성 바이오 성분은 강력한 항산화 능력을 갖추고 있거나, 분자량을 컨트롤하기 쉬워 흡수율을 높일 수 있다는 독자적인 강점을 지닌다. 무엇보다 오리지널 성분의 피부 기작과 놀라운 싱크로율을 보이는 성분이 속속 발견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호노키올!
레티놀은 피부과 전문의와 연구원들이 꼽는 가장 확실한 안티에이징 성분 중 하나다. 묵은 각질을 탈락시키고 새로운 피부를 밀어 올리는 ‘턴오버’의 제왕이니까. 단,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니 붉어짐, 따가움, 각질 부각 같은 자극 때문에 ‘격일로 소량만, 적응 기간을 거쳐서…’ 같은 까다로운 조건이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 그동안은 이를 보완하기 위해 식물성 레티놀이라 불리는 ‘바쿠치올’을 섞어 쓰곤 했다. 하지만 바쿠치올은 어디까지나 ‘유사’할 뿐 레티놀의 드라마틱한 효과를 그대로 대체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때 혜성처럼 등장한 것이 목련나무 껍질에서 추출한 호노키올이다. 윤지은 코스맥스 책임 연구원은 이 성분을 레티놀의 ‘게임 체인저’로 지목한다. “호노키올은 합성 레티놀의 피부 작용 기전을 거의 완벽하게 수행합니다. 그러면서도 자극은 없고 안정성은 뛰어나죠. 레티놀의 효능은 탐나지만 자극이 두려웠던 이들에게 가장 완벽한 차세대 안티에이징 성분이 될 것입니다.”
보습 영역에서도 ‘상위 호환’ 성분이 존재한다. 히알루론산의 자리를 위협하는 ‘흰목이버섯’이 그 주인공. 양귀비가 미용을 위해 즐겨 먹었다는 이 버섯은 자기 무게의 500배에 달하는 수분을 머금는다. 결정적인 한 방은 사용감이다. 히알루론산 특유의 끈적임이나 밀림 현상 없이 산뜻하게 스며드는 데다 화학 합성물에는 없는 보타닉 에너지까지 갖췄다. 아직은 높은 가격 탓에 소량만 사용되지만, 하이엔드 수분 시장을 잠식할 잠재력은 충분하다.
박지호 대표는 또 다른 원료인 ‘수분 갑옷’ 엑토인에 높은 점수를 준다. 엑토인은 이집트 소금 호수나 사막, 끓는 온천 같은 극한 환경의 미생물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낸 천연 스트레스 방어 분자다. 진정, 항염, 항산화 효과가 탁월해 업계에서는 판테놀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도 관심을 받고 있다. 판테놀이 자극 없이 편안하게 입는 ‘코튼 티셔츠’라면, 엑토인은 총알(외부 자극)도 막아내고 체온(수분)도 지켜주는 최첨단 ‘방탄조끼’에 가깝다. 유일한 아쉬움이라면 역시 사악한 가격 때문에 ‘만년 라이징 스타’에 머물러 있다는 것. 하지만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누군가 총대를 메고 한번 터뜨려주기만 한다면, 2026년은 엑토인의 해가 될지도 모른다고.

바이오해커의 킥
이제 눈에 보이지 않는 뇌파와 세포의 시간을 다룰 차례다. “노화는 질병이며, 치료할 수 있다”는 데이비드 싱클레어 박사의 도발적인 선언은 뷰티계에도 거대한 불을 지폈다. 우리 몸의 에너지 공장인 미토콘드리아를 다시 뛰게 만드는 NAD+와 그 전구체인 NMN은 현재 연구원들에게 가장 뜨거운 감자이자 동시에 희망이다. 물론 이 성분을 검색해보곤 의문이 들 수도 있다. LG생활건강이나 아모레퍼시픽 같은 거대 레거시 그룹이 아니더라도 성분에디터, 바이오힐 보, 넘버즈인 등 올리브영 매대의 접근성 좋은 브랜드에서도 이 ‘세포 엔진’을 탑재한 제품을 쉽게 발견할 수 있으니까. 그 대단하다는 리버스 에이징의 열쇠가 고작 히알루론산 급으로 흔해진 걸까 싶어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공언컨대, NAD+와 NMN은 절대 만만하지 않다. 빛과 열에 취약해 다루기 까다롭고, 어떻게 가공해 어떤 전달체에 태워 보내느냐에 따라 효능이 천차만별이다. NAD+와 NMN을 맹신하기보다는 냉철한 ‘얼리 어답터’의 태도로 접근해야 하는 이유다. 그러니 상세 페이지에서 안정화 특허 기술을 확인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기술력이 담보되지 않은 NAD+는 그저 비싼 물에 불과하지만, 제대로 설계된 제품은 당신의 피부 시간을 멈출 강력한 컨트롤러가 될 수도 있다.
또 하나, 전 세계적인 트렌드지만 모두가 미심쩍은 눈초리를 보내는 영역이 있다. 바로 ‘뇌와 신경’을 건드리는 화장품이다. 김민경 소장은 “지난해 파리와 서울의 인-코스메틱스 박람회장을 가장 뜨겁게 달군 이슈는 단연 ‘뉴로글로우’와 ‘정신피부학’이었다”고 전한다. 트렌드 분석 기관 민텔의 예언대로, 이제 원료사들은 주름 개선 등의 1차원적 효능을 넘어 뇌와 피부의 연결축을 겨냥한다. 단순히 “향이 좋아서 기분이 나아졌다”와 같은 관념적인 위로가 아니다. 바르는 성분이 피부의 감각 수용체를 자극해 뇌에서 베타 엔도르핀과 도파민 같은 긍정적 신호를 만들어낸다는 걸 생물학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피부가 느끼는 스트레스를 뇌 레벨에서 원천 차단하는 진짜 뉴로코스메틱 시대가 열린 것이다. 스위스의 원료 명가 미벨 바이오케미스트리는 스트레스를 받아도 피부가 늙지 않도록 코르티솔의 생성을 억제하는 원료를, 향료 기업에서 기능성 원료 강자로 거듭난 지보단은 행복 호르몬과 비타민 D 생성을 유도해 태양 없이도 건강한 광채를 만드는 ‘뉴로글로우’ 성분을 선보였다.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현대인의 생체리듬을 동기화하는 성분도 있습니다.” 김민경 소장이 주목한 것은 푹 잔 듯한 생기를 부여하는 성분, 다우너지 펩타이드! 물론 법적 문제가 남아 있다. 한국은 유독 ‘신경(Neuro)’이라는 수식어를 허락하는 데 인색하다. 전 세계에 CBD 열풍이 불 때도 한국만은 고요했던 것처럼, 보수적인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이 ‘느낌적인 느낌’을 쉽게 승인할 가능성은 낮다. 아마도 올해 하반기나 내년부터 해외에서 먼저 상용화될 테니, 여행지에서 먼저 경험해보는 편이 빠를 것이다.
원료는 뷰티 칼럼니스트에게 가장 까다로운 주제다. 같은 성분을 두고 원료사와 제조사의 입장이 다르고, 화장품 기획자와 마케터의 시각에도 간극이 있다. 무엇보다 과학은 매일 전복되기에 어제의 진실이 오늘의 오류가 되기도 한다. PDRN, 엑소좀, NAD+, 리포솜, 니오솜, 세놀리틱스 테크놀로지… 성분의 가치가 제아무리 위대하다 한들 ‘그래 봤자 화장품은 피부 위에 바르는 것일 뿐’이라는 회의론 또한 꼬리표처럼 늘 따라다닌다. 그럼에도 원료에 대한 탐구와 그로 인해 얻어낸 특허, 변화의 입증 등을 단순한 상술이나 마케팅 수사로 치부해선 안 되는 이유가 있다. 집의 외벽 컨디션이 실내의 습도와 온도, 나아가 거주자의 삶의 질을 결정짓듯, 표피의 컨디션은 진피를 넘어 혈관, 신경계, 그리고 뇌와 긴밀하게 연결되기 때문이다.
기적은 단번에 일어나지 않지만, 기술은 매일 조금씩 진보하고 있다. 아직 대륙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해서 항해를 멈추는 어리석은 왕은 없다. 함량과 특허 번호, 흡수 기술을 꼼꼼히 따져보는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내하길. 과학을 예찬하고 기술을 누리다 보면, 그 지적인 여정의 끝에서 피부 운명을 바꿀 진짜 ‘인생템’을 만나게 될 테니까.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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