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 포인트

개 같은 내 인생 #그 옷과 헤어질 결심

2023.02.10

by 이소미

    개 같은 내 인생 #그 옷과 헤어질 결심

    어젯밤에는 옷장 앞에 서서 이 생각만 했다. 내가 옷을 왜 버려야 하지. 버려야 할 옷을 들었다 놨다 하며 버리지 못하는 핑계를 만들었다. 마감이 내일인데…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창고에 가 쌓여 있는 옷 박스를 하나하나 커터 칼로 뜯어보기 시작했다.

    6년 전 나를 포함해 다섯 명의 친구 그리고 개 한 마리와 함께 살던 곳은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 집이었다. 하지만 밝았다. 우리가 살기 전에는 미혼모와 아가들이 모여 살던 집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집 상태와는 별개로 늘 오손도손하고 상냥한 기운이 감돌았다.

    하지만 여름만큼은 그 따뜻함이 버거웠다. 에어컨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망할 누진세 때문에 100만원이 넘는 금액이 청구된 고지서를 받은 뒤로는 그 누구도 에어컨을 자신 있게 틀지 못했다. 개의 건강이 걱정될 정도로 덥거나 생일과 같은 특별한 밤을 제외하고는 선풍기에 의지해 살았다. 이때만큼은 남자들은 웃통을 벗고 팬티만 입었고, 여자들은 큼지막한 티셔츠에 역시나 팬티만 입고 돌아다녔다. 털 빠진 두더지들처럼… 그 여름 그 집에서 가장 봐줄 만한 생명체는 우리의 사랑스러운 개뿐이었다.

    개의 주인은 함께 살던 친구 중 한 명이었지만 그 집에 살 때만큼은 모두가 그 개의 주인이었다. 쫑긋 선 귀, 억울한 듯 씩씩하게 생긴 얼굴,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몸. 상처도 사연도 많았지만 늘 활력과 사랑이 넘쳤다. 모두를 공평하게 사랑했고 갈구했다. 그 집엔 손님이 많았는데 처음 놀러 온 이에게도 무턱대고 달려가 안기고 핥으며 애정을 드러냈다. 같이 사는 우리가 서운할 정도로, 가끔은 손님들이 우릴 의심할 정도로… 우리끼리 수다를 떨 때면 슬며시 옆으로 다가와 무릎에 머리를 비비거나 품에 파고들었다. 가끔 집에 온 손님이 오늘은 아끼는 옷을 입고 와 털이 묻으면 안 된다며 개를 완강하게 거부할 때면 함께 살던 친구들끼리 속상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투견종이자 단모종이었던 그 개는 털이 많이 빠졌다. 그 집에서만큼은 우리가 마시는 숨에 산소와 질소 말고도 개털도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집을 한 바퀴 둘러보면 그 개가 간밤에 어딜 돌아다녔는지, 누구 방문 앞에서 잤는지 곳곳에 소복이 쌓인 털 뭉치로 그 행적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당시 우리 옷이 전부 개털로 뒤덮인 건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어차피 다시 붙을 거, 떼어낼 노력도 하지 않았다. 밖에서 무심코 그날 입은 옷에 묻은 개털을 발견할 때면 반갑고 보고 싶었다. 옷에 묻은 개털은 우리가 함께 살고 있다는 증표 같은 것이었다. 가끔은 속눈썹이나 혓바닥이나 콧구멍에도 붙어 있었지만…

    그나마 친구들의 여름옷엔 개털이 덜했다. 오래 안아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안으면 개는 금세 지쳐 했다. 몇 초만 안아주어도 혀를 빼고 헉헉대기 시작했고 우리 몸도 진득한 땀으로 뒤덮였다. 자기를 위할 줄 모르는 개는 기어코 살을 맞대겠다며 달려들었지만 무릇 인간이라면 가끔은 상대방을 위해 사랑을 밀어낼 줄도 알아야 하는 법.

    당시 주말 아르바이트를 제외하고는 아무 할 일이 없었던 나는 낮 시간을 종종 그 개와 둘이서 보냈다. 모두가 학교에 가거나 오전 출근을 하면 개가 내 방문을 긁는다. 이제 네가 날 사랑할 차례란 소리다.

    너무 더운 날에는 (친구들 몰래) 에어컨을 틀기도 했다. 집에 냉기가 돌기 시작하면 소파에 이불을 가져가 옆으로 누운 뒤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포즈로 개를 안은 채 다시 잠에 들었다. 투박한 겉모습과 다르게 ‘밍밍밍밍’ 소리를 내며 잠꼬대를 하기도 했고 앞다리로 가끔 달리는 시늉도 했다. 개가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배의 움직임이 내 배에도 전해졌다. 내 배인지 개의 배인지 모를 곳에서 나는 정체불명의 꼬르륵 소리와 미세한 진동, 뒤척이며 들이미는 엉덩이와 푸드득 코 고는 소리. 얇은 소재의 여름옷 한 겹을 사이에 두고 개의 평온한 생명력을 온전히 느꼈다. 일어나면 내 옷에는 털이 한가득 묻어 있었다.

    우리나라와 다르게 ‘개 같다’는 표현은 스웨덴에서 ‘사랑스럽다’와 같은 좋은 의미로 쓰인다. 함께 살던 친구들 모두 나처럼 개와 함께 보낸 그들만의 개 같은 시간이 있다. 모두 개 같은 인생을 살던 시절이었다. 몇 년 뒤, 그러니까 개가 떠나고 몇 달 뒤 개의 주인이었던 친구와 동네 산책을 하는 중이었다. 우리는 그때 개의 이야기도 하지 않았고, 길에서 개가 보이면 피했고, TV에 개가 나오면 아무 말 없이 채널을 돌렸다. 동네 서점 유리창에 붙은 이달의 추천 도서 목록을 들여다보는데, 하필 두 번째 목록에 써 있던 책이 찰스 부코스키의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였다. 못 본 척을 하기엔 너무 늦었고 무슨 말을 꺼내기엔 할 말이 없었다. “개는 지옥에서 살지 않아.” 친구의 입에서 ‘개’라는 단어가 나온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맞아, 개는 지옥에서 살지 않지. 그리고 다시 갈 길을 갔다.

    두 번째로 연 박스에 담긴 건 개털이 잔뜩 묻어 있는 그 시절 여름옷이었다. 헤어질 결심을 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 개를 추억하는 데 옷이 그렇게 큰 힘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에디터
    이소미
    포토
    IMDb, 공식 스틸 컷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