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

독보적 스토리텔러의 홈 컬렉션

2023.03.06

by 류가영

    독보적 스토리텔러의 홈 컬렉션

    사랑스러운 일러스트레이션으로 버버리와 간트, 딥티크의 러브콜을 받은 1989년생 아티스트 루크 에드워드 홀(Luke Edward Hall). 타고난 스토리텔러인 그의 행보가 멈출 줄 모른다. 서울에 당도한 그가 지노리 1735와 함께 선보인 홈 컬렉션 ‘프로푸미 루키노’에 대해 들려준 흥미로운 이야기.

    두 번째로 한국을 찾은 루크 에드워드 홀. 논현동 크리에이티브랩에서는 그와 지노리 1735가 함께 완성한 모든 컬렉션을 만날 수 있다.

    지노리 1735와 두 번째로 함께 완성한 컬렉션 ‘프로푸미 루키노(Profumi Luchino)’는 당신이 사랑하던 여행과 장소에 얽힌 기억을 모티브로 삼았다. 아이디어의 시작이 궁금하다.

    2019년 선보인 첫 번째 협업에서는 테이블웨어에 집중했다면 이번 컬렉션의 핵심은 다섯 가지 향으로 나뉜 캔들이다. 홈 프래그런스를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은 오래전부터 갖고 있었다. 여행을 좋아하기에 공간에 얽힌 향기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하며 조금씩 아이디어를 다듬어가던 중 첫 번째 협업을 선보인 직후 지노리 1735에 아이디어를 전달했다. 드디어 꿈꾸던 컬렉션을 함께 선보일 수 있게 되어 기쁘다. 라인업 중에는 익숙한 형태의 캔들과 접시 외에도 가니메데스(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트로이 왕자) 석고상 형태의 캔들 같은 위트 있는 아이템도 있는데, 지노리 1735의 오랜 아카이브와 노하우 덕분에 실현할 수 있었다.

    컬렉션 이름을 직역하면 ‘루키노의 향기’라는 뜻이다. 루키노는 누구인가?

    루크의 이탈리아어 버전으로 생각하면 좋겠다(웃음). 컬렉션 이름을 뭘로 할지 고민할 때 문득 남편이 ‘그냥 루키노로 해버려!’라고 말했다. 듣자마자 와닿았다. 발음도 예쁘고, 내가 워낙 이탈리아를 좋아하기도 하고.

    남다른 탐험가인 당신이기에 각각의 향기를 대표할 다섯 가지 장소를 꼽는 일이 꽤 까다롭게 느껴졌을 것 같다.

    어려울 것 같았는데 한편으로는 수월했다. 지금 살고 있는 코츠월즈(Cotswolds)와 가장 사랑하는 여행지 베니스가 곧바로 생각났다. 그다음으로 처음 방문하자마자 사랑에 빠진 인도의 라자스탄(Rajasthan)과 빅서(Big Sur), 마라케시가 차례차례 떠올랐다.

    신화와 전설, 역사를 비롯한 오래된 이야기는 당신에게 가장 꾸준한 영감이 되고 있다.

    어릴 때부터 신화나 전설이 품은 판타지에 본능적으로 마음이 이끌렸다. 특히 신화 속 영웅들을 정말 좋아했다. 센트럴 세인트 마틴에서 선보인 졸업 컬렉션은 엔디미온(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엘리스의 왕으로 영원한 젊음과 잠을 상징한다)에서 영감을 받아 완성했고, 지노리 1735와의 지난 컬렉션은 포세이돈의 얼굴을 플레이트 곳곳에 새겨 넣었다. 하지만 고리타분한 작업은 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과거의 영감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려 노력한다. 오래된 책을 뒤적이다가 아주 미래적인 음악을 듣는다거나 인테리어할 때 디자인 가구와 빈티지 가구를 어울리게 하는 등 이질적 요소를 믹스 매치할 때 탄생하는 전환과 긴장감을 추구한다. 옷을 고를 때도 마찬가지다.

    아름다운 색감과 패턴, 타이포그래피 아트는 이번에도 눈길을 끈다. 인테리어 디자인부터 지난해 론칭한 당신의 패션 브랜드 샤토 올란도(Chateau Orlando)에 이르기까지, 디자인할 때 특히 공들이는 지점은?

    내 주특기는 핸드 드로잉이다. 손 글씨와 일러스트레이션 작업 등 핸드메이드 요소에 특히 신경 쓴다. 여러 색을 조화롭게 쓰는 것, 패턴 작업과 패키지 디자인도 중요하다. 이번 컬렉션을 준비하면서는 타임리스 디자인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모든 캔들은 초를 다 태우고 나서도 훌륭한 오브제로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연필꽂이든, 화병이든, 인테리어 소품이든, 각자만의 방식으로 오래오래 사랑해주길.

    캔들을 활용하는 당신만의 방식이 있나?

    지금 같은 환절기에 달라지는 미묘한 공기를 느끼고 싶을 때 애용한다. 새로운 공기를 느끼든, 추억에 잠기든, 순식간에 특정 분위기에 휩싸이게 만드는 것이 향기의 가장 강력한 힘 아닌가.

    코츠월즈에서 보내는 일상은 어떤가? 런던에서 차로 2시간 거리인 이 작고 소박한 동네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궁금하다.

    4년 전쯤 주말 여행을 위해 방문했다가 매우 마음에 들어 아예 눌러살고 있다. 마침 던컨과의 결혼을 앞두고 살 집을 찾기 위해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던 참이었다. 아름다운 자연과 몇백 년 전에 지어진 고풍스러운 집이 이루는 조화로운 풍경이 언제나 마음을 평화롭게 만들어주는 곳이다. 큰길도, 번쩍번쩍한 건물도 없다. 하지만 신선한 먹거리와 재미있는 사람은 많다. 요즘은 힙스터들이 차린 펍과 레스토랑도 많아지고 있어서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일이 있거나 친구를 만날 때는 런던에 머물지만 최대한 코츠월즈에서 지내기 위해 노력한다. 반려견 멀린과 나만의 장미 정원까지, 돌봐야 할 것이 아주 많다(웃음).

    당신이 생애 마지막 식사로 먹고 싶은 것은? 샤토 올란도의 홈페이지에 업로드되는 인터뷰 시리즈 ‘Chit-Chat-Eau’에서 건네곤 하는 공통 질문을 당신에게도 하고 싶다.

    그건 실제로 내가 심심하거나, 피곤하거나, 딱히 할 얘기가 없을 때 친구들에게 갑작스럽게 던지곤 하는 질문이다! 음, 아마도 이탤리언 음식이 아닐까 싶다. 알맞게 구운 모차렐라 치즈와 홍합, 파스타, 또 다른 파스타, 또 다른 파스타…(웃음) 티라미수까지 최대한 느긋하고 알차게 즐길 거다. 식탐이 있는 편이라 먹는 것도, 요리하는 것도 정말 좋아한다. 그래서 마지막 한 끼가 너무 아쉬울 것 같다.

    가장 좋아하는 색깔, 꽃, 노래 그리고 소설은?

    색깔 중에서는 초록색을 가장 좋아한다. 꽃은 장미와 튤립 중에 고민되는데 그래도 매혹적인 향을 지닌 장미로 택하겠다. 음악은 디페쉬 모드(Depeche Mode)의 ‘Shake the Disease’가 딱 떠오른다. 평소 쿨하고, 재치 있고, 스타일리시한 1980년대 영국 록을 즐겨 듣는다. 책은 도나 타트의 <비밀의 계절(The Secret History)>. 그리스어를 배우는 대학생들의 삶과 꿈과 섬세한 대화로 가득한 우아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로, 반복해서 읽어도 결코 지루하지 않다.

    이번 한국 여정에서 기념품으로 가져가고 싶은 것을 찾았나?

    책이든, 그림이든, 세라믹이든, 항상 뭔가를 챙겨서 집으로 돌아가는데 아직은 여정의 시작 단계라 적당한 것을 찾지 못했다. 샤토 올란도가 입점한 분더샵과 10 꼬르소 꼬모를 둘러보고 북촌 한옥마을, 리움미술관을 포함한 몇몇 갤러리도 방문할 계획이다. 그때 뭔가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물론 한국 음식을 좋아해서 오리지널 한국 바비큐를 맛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울 것이다. 요즘 영국에서 한국 음식이 정말 인기다.

    당신의 다음 행선지는 어디일까? 계획 중인 또 다른 여정과 프로젝트가 있다면 귀띔해달라.

    지금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건 조만간 떠날 10일간의 이집트 여행이다. 디자이너 친구들과 함께 보트를 타고 나일강을 따라 카이로를 탐방할 것이다. 이집트 신화도 좋아하는데 아마 그곳에서 떠오른 영감으로 새로운 뭔가를 선보일 수 있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올해는 일을 너무 많이 벌이지 않는 것이 목표인데 진척되고 있는 것들도 많다. 봄과 여름에 연달아 선보일 샤토 올란도의 새로운 컬렉션과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맡은 신간 출간이 기다리고 있다. 9월에는 전시를 위해 뉴욕으로 향한다. 사랑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다는 건 굉장한 행운이기 때문에 모든 여정을 충분히 즐기며 전진하려고 한다. (VK)

    포토그래퍼
    박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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