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 생존자인 할아버지와 그의 재킷에 대한 이야기
* 해당 기사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저의 할아버지 모리스 크라코프스키(Morris Krakowsky)는 제가 아는 사람 중 패션에 가장 관심이 없는 분이었습니다. 어느 정도로 관심이 없냐면, 할아버지가 남긴 옷 대부분에 코스트코 브랜드인 커클랜드(Kirkland) 라벨이 붙어 있을 정도였죠.
할아버지가 원래 옷에 관심이 없진 않았던 모양입니다. 유품을 정리하던 중 우리 가족은 195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촬영한 필름 상자를 발견했죠. 현상한 사진 속에는 제가 본 적 없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당시 할아버지는 금색 버튼이 달린 근사한 검은 블레이저에 허리까지 높이 올라오는 체크무늬 바지를 즐겨 입었습니다. 멋스러운 1970년대 스타일이었죠. 하지만 제가 태어났을 무렵부터 할아버지는 거의 똑같은 옷을 입고 다녔습니다. 연한 노란색 폴로 셔츠 혹은 하늘색 버튼 다운 셔츠에 카키색 바지, 뉴발란스 스니커즈와 네이비색 폴로 랄프 로렌 윈드브레이커였죠.
2018년에는 할아버지가, 이듬해에는 할머니 돌로레스(Dolores)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할머니는 저에게 보석 몇 점과 립스틱 케이스, 그리고 런던 여행에서 산 버버리 트렌치 코트를 남겼죠. 하지만 할아버지는 제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19년간 저와 할아버지가 함께 이 땅에 존재했음을 떠올리게 해줄 물건은 하나도 없었죠.

기억이란 참으로 얄팍한 것이라, 실재하는 물건이 없으면 할아버지와 함께한 시간을 쉽게 잊고 말 듯했습니다. 할아버지의 나지막하고 굵은 목소리, 할아버지가 저를 위해 만들어준 미네스트로네(채소로 만든 이탈리아 전통 수프)의 맛, 그리고 저와 남동생에게 주던 동전의 무게 등을 잊고 싶지 않았기에, 저에게는 할아버지의 존재를 증명해줄 무언가가 필요했습니다.
할아버지를 잊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지만, 홀로코스트 생존자 모리스의 이야기가 세상에서 잊히지 않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80년 전인 1945년 4월, 모리스는 독일 바이마르의 부헨발트(Buchenwald) 강제수용소를 벗어났습니다. 출소 당시 몸무게는 80파운드(약 36kg)에 불과했어요. 말 그대로 죽기 직전의 상태였던 거죠.
“해방되었다고 해서 딱히 크게 기뻐하거나 환호한 기억은 없습니다.” 할아버지가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시청각적 증언을 만들고 보존하는 미국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USC)의 쇼아 재단(Shoah Foundation)에 보낸 회고록 중 일부입니다. 사형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그는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요? “거의 6년 내내 저는 당장 오늘이라도 사형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살았습니다. 함께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살아서 나갈 거라는 기대 자체를 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할아버지의 여동생 하니아(Hania)는 폴란드의 트레블링카(Treblinka) 나치 수용소에서 살해됐고, 어머니 차나(Chana)는 현재 안네 프랑크의 무덤이 있는 베르겐 벨젠(Bergen-Belsen) 나치 수용소에서 숨을 거뒀죠.

저는 유대인으로서 우리 가족의 역사 그리고 홀로코스트에 대해 알 만큼 알고 있습니다. 끔찍한 만큼, 깊이 있게 공부하고 기억해야 한다고 결심했거든요. 하지만 할아버지에게 당신의 이야기를 직접 들은 적은 없습니다. 할아버지는 자기 경험을 가족과 나누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손주들과는 더더욱 그랬죠.
“어떻게 아이들에게 홀로코스트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요? 그건 아이들의 남은 삶에 독을 퍼뜨리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생존자의 후손이 지옥을 겪지 않은 이들의 후손보다 무거운 짐을 짊어져야 합니까?” 제가 13세였을 때, 엄마는 할아버지가 쇼아 재단에 보낸 회고록을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회고록 속에서 제가 알던 할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사람을 만났습니다. 잔혹한 학대를 당하고 인간성이 박탈돼 생존 자체에 대한 희망을 잃어 무력해진 피해자. 다정다감하고 사랑 가득한 나의 할아버지가 회고록 속 피해자와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무척 가슴이 아팠습니다. 할아버지가 손주들에게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지 않은 것도 아마 이런 충격을 예상했기 때문이었겠죠.

2020년 1월 1일, 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생전에 살던 집을 마지막으로 방문했습니다. 유월절 만찬, 로쉬 하샤나(유대인 설날) 저녁 식사, 가족의 생일 축하 파티가 수없이 열렸던 익숙한 공간과 이제는 완전히 작별해야 할 때였죠. 한 바퀴 둘러보며 추억에 잠긴 저는 별 생각 없이 할아버지의 옷장 문을 열었습니다. 그 속에 가지런히 걸려 있던, 할아버지가 매일같이 입은 네이비색 폴로 랄프 로렌 윈드브레이커와 마주했죠. 저는 자연스럽게 그 옷을 옷걸이에서 빼냈습니다. 마이크로파이버 소재 윈드브레이커는 손에 닿는 순간 벨벳처럼 부드럽게 느껴졌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96세 노인이 입던 윈드브레이커를 제가 잘 소화할 수 있을지 확신하진 못했습니다. 입어보니 의외로 잘 어울리더군요. 다들 멋지다고 입을 모아 칭찬했죠. 재미있는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젊은 남자들 사이에서 할아버지의 유니폼-뉴발란스 스니커즈, 버튼 다운 셔츠, 폴로 윈드브레이커-이 유행했다는 겁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모리스코어’라고 부른 패션이죠. 브루클린에서 가장 트렌디한 청년들이 죄다 ‘모리스코어’를 입은 모습을 확인한 날 저는 큰 소리로 웃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할아버지를 만난 것처럼 기뻤거든요.
할아버지와 저의 관계는 완전히 무형의 존재만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죠. 그저 어깨를 으쓱하거나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행동 등으로 모든 마음을 표현했죠. 지금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제 손을 잡아주던 크고 단단한 손의 감촉 그리고 전화기 너머 들려오던 “우리 강아지!(Hi, sweetie!)”라는 목소리가 떠오릅니다.
할아버지는 6년간의 수용소 생활과 이어진 고문 그리고 상상할 수 없는 공포에 대해 27페이지가 넘는 글을 남겼습니다. 아마 줄이고 압축하고 또 덜어냈겠죠. 저는 그저 그 경험 일부를 상상해볼 뿐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악의 시대에 대한 이야기이자, 제가 결코 알 수 없는 가족의 이야기죠. 저는 할아버지 삶의 잃어버린 조각들이 안타깝고 슬픕니다.
할아버지의 윈드브레이커는 그래서 제게 소중합니다. 그의 유산을 이어가는 것이 손녀로서 제가 짊어져야 할 책임이자 역할임을 상기시켜주니까요. 그의 윈드브레이커를 꺼내 입는 건, 이제는 할아버지를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저는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몇 년간은 그 윈드브레이커를 꽤 자주 입었습니다. 이제는 그의 해방 기념일과 생일, 그리고 기일(Yahrzeit) 무렵에 꺼내 입죠. 어떤 날은 그저 할아버지가 그리워서 입기도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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