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은 블루 북 속의 바다, 티파니
“바다가 너무 아름답기 때문에, 나는 그 바다를 사랑해.” ─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中

지난 2023년 새롭게 문을 연 뉴욕 5번가 727번지. ‘랜드마크(The Landmark)’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티파니(Tiffany&Co.) 플래그십 매장은 4년간의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거쳤다. 3개 층을 추가해 4개 층의 매장과 ‘티파니 블루’로 꾸민 ‘블루 박스 카페’, 프라이빗 쇼핑을 위한 VIP 층으로 구성된 티파니 메종의 메카. 장 미셸 바스키아부터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 등 40여 점이 전시된 거대한 허브는 실버 오브제와 테이블웨어까지 단순한 주얼리 매장을 넘어 예술과 럭셔리 쇼핑이 결합된 특별한 공간이다. 바로 이곳에서 지난 4월 말 2025년 하이 주얼리 컬렉션 ‘블루 북(Blue Book)’의 첫 번째 챕터가 공개됐다. 글로벌 프레젠테이션 전날 <VOGUE Time & Gem> 8호 커버 촬영을 위해 나는 피터 마리노가 디자인한 가구로 꾸며놓은 VIP 전용 공간에 하루 종일 머물긴 했지만, 거대한 랜드마크를 제대로 마주했을 땐 감탄이 절로 나왔다.
티파니 하면 자동으로 떠오르는 영화와 아이콘이 있으니, 바로 1961년 작 <티파니에서 아침을>과 주인공 오드리 헵번이다. 영화에서 헵번이 인적 드문 이른 아침, 커피와 크루아상을 들고 5번가 매장 앞에 서 있던 장면은 영화 사상 최고의 오프닝 신으로 꼽힐 만큼 유명하지만, 나는 늘 오프닝 장면보다 화려한 신분 상승을 꿈꾸는 뉴요커 홀리가 남자 친구 폴과 함께 약혼반지를 고르던 5번가의 1층 매장이 더 기억에 남았다. 확 트인 넓은 매장의 규모와 질서 정연한 쇼케이스의 완벽한 진열 구조는 영화가 완성된 그 시절 미국에서 티파니가 단순한 보석상이 아니라 상류사회의 상징이자 꿈을 파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듯 어린 내게 미국에 대한 로망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그녀는 영화에서 우울할 때면 티파니 매장에 간다. “거기 무언가 진정시켜주는 게 있어”라고 말하며 극 중 홀리는 티파니가 자신에게 정서적 안식처임을 드러내곤 한다. 영화 속에서 티파니는 홀리가 그토록 갈망하는 안전하고 안정적인 세계를 상징한다. 그런 곳에서는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는 홀리의 환상이 담긴 고급스러운 질서와 영속성의 상징과 함께.
티파니는 성공, 우아함, 클래식한 부를 상징한다. 중산층에겐 언젠가는 가질 수 있는 꿈의 주얼리로 여겨지며 약혼, 졸업, 승진 등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기념하는 브랜드다. 주인공 홀리뿐 아니라 미국인에게 티파니는 단순한 보석 브랜드가 아니라 아메리칸 럭셔리의 상징이자 문화적 아이콘이다. 또 상징적인 블루 박스는 열기 전부터 설렘을 자극하는 희망의 오브제라고 할 수 있다. 이 모든 상징을 집약해놓은 5번가 매장은 브랜드와 도시의 문화적 융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메종의 전설적인 디자이너였던 쟌 슐럼버제(Jean Schlumberger)의 해양 테마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블루 북 컬렉션을 소개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장소! 매년 봄, 여름, 가을 세 차례, 매번 새로운 테마로 선보이는 블루 북 컬렉션은 브랜드의 예술성과 장인 정신을 보여주는 메종의 하이 주얼리 라인이다.
1845년 티파니는 미국 최초의 우편 주문용 카탈로그인 블루 북을 발행하며 주얼리 세계에 발을 들인다. 독특한 블루 컬러 커버는 이후 ‘티파니 블루’로 브랜드를 대표하는 상징이 된다. 프랑스 출신 디자이너 쟌 슐럼버제의 합류와 함께 티파니의 예술성이 정점에 달한 1930~1960년대는 해양을 비롯해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그의 디자인이 블루 북 컬렉션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았다. 장인의 유산을 계승하며 다이아몬드와 희귀 원석, 정교한 세공 기술을 바탕으로 한 주얼리를 선보여 고객 맞춤형 하이 주얼리 주문도 병행한 1980~2000년대를 거쳐, 2010년부터 블루 북은 ‘The Art of the Sea’ ‘The Four Seasons of Tiffany’ ‘Nature’s Jewels’ ‘The Art of Transformation’ 등 매년 새로운 주제와 크리에이티브 비전을 보여주며 아트 피스 수준의 독창적인 주얼리를 출시했다. 그리고 2021년 LVMH 그룹에 인수된 후, 블루 북은 더 현대적이고 국제적인 감각으로 재탄생한다.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쟌 슐럼버제의 예술적 유산을 이어받아 조각, 건축, 회화를 융합한 하이엔드 주얼리를 선보이는데, 이는 슐럼버제뿐 아니라 엘사 퍼레티, 팔로마 피카소 등 메종의 전설적 디자이너들의 빛나는 전통을 잇는 일이다.
2025년 첫 번째 챕터 ‘씨 오브 원더(Sea of Wonder)’ 컬렉션은 신비로운 바다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주얼리가 주를 이룬다. 해마, 불가사리, 바다거북, 파도 등을 모티브로 다양한 색상의 투르말린과 에메랄드 등 진귀한 블루·그린 톤의 희귀 원석과 화이트·옐로 다이아몬드를 활용해 바다의 빛과 생명을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이번 블루 북 컬렉션의 핵심은 말미잘에서 영감을 받은 ‘Sea Anemone’ 팔찌, 1956년 불가사리 형태를 입체적으로 표현한 ‘Starfish’ 브로치와 해마 모양의 ‘Seahorse’ 브로치 등 쟌 슐럼버제의 다양한 해양 모티브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디자인에 담아냈다. 1956년부터 티파니와 함께한 슐럼버제는 티파니 역사상 가장 독창적인 디자이너로, 독립된 디자인 스튜디오와 수공 제작 팀을 직접 운영하며 동화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자연 친화적 영감을 주얼리에 반영한 것으로 명성이 높다.
주얼리를 넘어 예술적 가치와 상징성을 지니며,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는 슐럼버제의 유산을 계승한 티파니의 주얼리 디렉터 나탈리 베르데유(Nathalie Verdeille)는 구상에서 추상으로 이어지는 신비로운 여정을 통해 깊은 바닷속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수중의 빛이 만들어내는 오묘한 반짝임, 해양 생물이 뿜어내는 경이로운 움직임에서 영감을 받은 감각적인 팔레트는 환상적이고 무한한 바다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각각의 주얼리는 바다와 그 경이로움을 이야기할 뿐 아니라 늘 한계를 뛰어넘고자 하는 티파니 하우스의 정신, 새로운 도전, 1837년부터 이어진 장인 정신의 전통까지 담고 있습니다. 쟌 슐럼버제가 남긴 경이로운 유산을 현대적 시각으로 재해석해 메종의 개척 정신도 같이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베르데유의 말처럼 각 챕터마다 생동감 넘치는 해양식물부터 신비로운 생물, 역동적인 파도의 움직임까지 수중 세계가 그대로 담긴 블루 북 컬렉션은 미지의 바다로 여행을 떠나는 듯한 풍부한 스토리텔링으로 우리를 매료한다.
먼저 슐럼버제의 ‘Leaves’ 네크리스에서 영감을 받아 파도의 움직임을 형상화하고 바다의 역동적인 파동과 에너지를 17캐럿 이상의 비비드 블루 쿠프리안 엘바이트 투르말린과 다이아몬드를 세팅해 조형적으로 표현한 ‘Wave’, 해체와 재구성을 통해 불가사리의 섬세한 실루엣을 살리기 위해 18K 옐로 골드에 모잠비크산 루비, 로즈 컷 다이아몬드와 파베 세팅 다이아몬드를 입체적으로 조각한 ‘Starfish’를 들 수 있다. 장인 정신의 정수인 ‘Sea Turtle’은 정교한 인그레이빙, 숨겨진 메커니즘을 적용해 바다거북의 여정과 강인함을 나타냈다. 슐럼버제가 되살린 19세기 파요네 에나멜링 기법을 활용해 성게의 가시와 빛나는 질감을 표현한 ‘Urchin’, 1968년 슐럼버제의 아이코닉 브로치에서 영감을 받아 해마의 우아한 형태와 신비로움을 담아낸 ‘Seahorse’, 녹색 잠비아산 에메랄드로 바닷속 식물의 유려한 움직임과 생명력을 수중 정원 느낌으로 표현한 ‘Ocean Flora’까지 여섯 가지 테마, 총 63개 하이 주얼리가 이번 컬렉션을 완성한다.
미지의 영역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생물체의 가치와 더불어 자연의 무한한 신비, 창의성, 장인 정신뿐 아니라 지구환경에 대한 경각심과 지속 가능성을 다시 한번 일깨운 ‘씨 오브 원더’를 통해 깊고 푸른 바다의 아름다운 울림을 예술적 영감으로 자유롭게 경험할 수 있었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주인공 홀리는 단지 보석이 아니라 영원히 갖고 싶은 순간을 형상화한 감정의 상표라고 티파니에 대해 말한다. 역사와 전통, 장인 정신과 예술성 등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블루 북의 가치를 직접 마주한다면 영원히 갖고 싶은 감정이 격렬히 솟아오를 것이다. (VK)
- 패션 디렉터
- 손은영
- 사진
- COURTESY OF TIFFANY&CO.
- SPONSORED BY
- TIFFANY&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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