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디아모와 미디어 아티스트 김희천의 동행
안디아모(Andiamo)는 이탈리아어로 ‘가자(Let’s go)’라는 뜻이다. 이동의 정신을 기반으로 2023년 탄생한 보테가 베네타의 안디아모 백은 여행과 움직임, 낯선 장소에서의 영감을 긍정하며 하우스의 가장 아이코닉한 핸드백으로 거듭났다. 그 가치를 기리며 <보그>가 5인의 컬처 아이콘과 함께 ‘안디아모와의 동행: ICONIC JOURNEY’ 프로젝트를 이어간다. 두 번째 주인공으로 나선 미디어 아티스트 김희천이 안디아모 백과 함께 어느덧 10년을 넘어선 자신의 예술 여정을 되짚었다.
지난해 선보인 ‘스터디'(2024)에 대한 반응이 뜨거웠다. 전국체전을 앞둔 고교 레슬링 팀에서 선수들이 사라지는 불가사의한 일을 독특한 디지털 기법으로 다룬 40분 분량의 극영화로 처음 연출에 도전한 것이었다.
그 전까지는 일상에서 촬영한 사진과 영상을 편집해 나만의 내러티브를 만들어내는 일에 몰두했다. 그런데 지난해에는 왠지 영화를 만드는 것처럼, 연출을 가미한 작업을 시도할 때가 됐다고 느꼈다. 내 영상 작업은 영화와는 다르다. 대본이나 콘티가 따로 없고, 그때그때 직감과 흥미를 따라 움직인다. 무엇이 맞는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내가 재미를 느끼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스터디’는 지침을 필요로 하는 배우와 다른 스태프가 존재하는 상황에서도 그런 소신을 지켜낼 수 있는지 확인하는 기회였다. 물론 묘한 얼굴에 반해 ‘스터디’ 외에도 두 번의 작업을 함께 한 이찬종 배우를 만났기 때문에 가능했던 도전이기도 하다.
도전해보니 어땠나?
나만의 가능성이 보였다. 예를 들어 아무것도 정해진 것 없이 전남 함평에서 첫 촬영을 진행했을 때, 촬영 결과물보다 테스트 컷에서 더 큰 흥미를 느꼈다거나, 이전처럼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촬영한 장면을 인위적으로 편집하는 방식도 얼마든지 시도할 수 있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을 ‘스터디’라고 이름 붙였다. 파리에서 본 로댕과 안토니 곰리의 스토리보드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들었다.
습작은 작가들이 현실적인 선택을 하기 전에 지녔던 순수한 의도를 더 선명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최근 어디선가 “예술품을 감상한다는 것은 예술가의 재능과 표현 형식, 문화적 맥락이 어떻게 교차하면서 특정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지 생각하는 것”이라는 말을 접하고 크게 공감했다. 예술가가 된 후 그 세 가지 요소를 더욱 면밀히 들여다볼 수 있어 즐겁다.
비슷한 시기에 ‘커터 3’(2023)와 ‘더블 포저’(2023)도 연달아 선보이며 게임 엔진을 실험했다. 이 역시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고 회상한다.
아무래도 2023~2024년에 창작 욕구가 뜨거웠던 모양이다.(웃음) 게임은 한 번 만들면 끝인 다른 영상 작업과 달리 사용자의 선택에 맞춰 실시간으로 반응하고 변화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 무척 까다로웠다. 그 과정에서 작은 것 하나가 꼬이면 연쇄 작용을 일으켜 금세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되곤 했다. 당시에는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때마다 깃털로 탑을 쌓는 느낌이었다.
페이스 스왑, 게임과 VR, 이미지 생성 인공지능 ‘DALL·E’와 2D 데이터를 3D 데이터로 변환하는 ‘인스턴트 NeRF’ 등 온갖 신기술을 실험하며 여기까지 왔다. 기술을 통해 더 멀리 전진할 수 있다고 믿나?
기술은 그 자체로 매력적이지만, 기술이 지닌 매력에 기대서는 안 된다. 기술은 사회를 보는 도구이자 필터일 뿐, 기술의 매력이 곧 작업의 매력이 되지 않도록 경계하는 편이다. 기술의 발전이 빠를수록, 작가들은 그것을 갖고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술이 작동하는 방식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그에 따라 사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파악하는 일이다.
GPS 정보와 구글 지도 데이터를 통해 아버지의 살아생전 행적을 추적한 첫 작업 ‘바벨’(2015) 이후 10년이 지났다. 당신의 삶에서 가장 아이코닉한 순간을 꼽는다면?
‘더블 포저’를 선보인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에서의 개인전은 특별한 성과다. 출국하는 날까지 밤을 새워 작업하고, 도착해서도 작업이 마음에 안 들어 절반 이상 새롭게 작업하고, 개막 3분 전에 문제가 발견돼서 파일을 한국으로 보내 디버깅 작업을 진행해야 했던 고통스러운 작업이었지만 결과물이 만족스러워서 행복했다. 예술가로서 내 선택과 고집이 뿌듯했고, 그 과정에서 큰 용기를 얻었다. 아직 한국에서 소개하지 못해 아쉽다.
요즘 당신의 레이더망은 어디를 향해 있나? 새롭게 몰두 중인 작업은?
한국에서 살고 있는 이주민의 삶에 관심이 있다. 취미로 레슬링을 꾸준히 하면서 중앙아시아나 러시아에서 온 이주민들이 레슬링 대회를 중심으로 일종의 커뮤니티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체육관에서 친해진 우즈베키스탄 친구와 정말 흥미로운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데, 우리 부모님 세대보다 더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가치관과 세계관을 갖고 있다는 게 놀라웠다. 친구의 증언을 통해 지방의 서비스직 종사자 중에 이주민이 정말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이미 수많은 이주민들이 존재하는 한국의 현실, 특히 레슬링 세계에서 그들이 성공적으로 형성한 커뮤니티, 지금 한국 사회에서 남성성이 갖는 의미를 연결하다 보면 흥미로운 뭔가가 나오지 않을까?
<보그>는 보테가 베네타와의 협업 프로젝트 ‘안디아모와의 동행: ICONIC JOURNEY’를 통해 영감을 찾아 거침없이 이동하며, 자신만의 분야에서 상징적인 흔적을 남긴 예술가를 조명하려 한다. 두 번째 주인공인 당신은 어디에서 영감을 얻는 편인가? 외부로의 여행 혹은 내면으로의 침잠 중 더 선호하는 쪽은?
내면인 것 같다. 고민도 많은 편이고, 논리와 상관없이 발동하는 직감에 대해서도 집요하게 파고든다. 아주 오래전에 써놓은 메모를 읽고 ‘그때 이런 것에 관심이 있었지’ 하며 새로운 것을 구상하기도 한다. 그렇게 돌고 돌면서 작업을 지속해왔다.
요즘 국민대와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에서 진행하는 수업 역시 신선한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기회일 것 같다.
국민대에서는 영상디자인학과 1학년을 대상으로 ‘기초영상디자인실습’이라는 수업을 진행하고, 한예종에서는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기술연구’라는 워크숍을 진행한다. 국민대 수업에서는 학생들의 패기에서 좋은 에너지를 느끼고, 실습생을 대상으로 하는 한예종 수업에서는 덩달아 나도 공부를 많이 하게 된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신선한 자극을 많이 얻는 요즘이다.
다양한 공간과 환경을 횡단하는 삶은 예술가의 특권 아닐까.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장소가 있다면?
언제부턴가 비행기를 타는 일이 버겁게 느껴져서 팬데믹 이후에는 국내 여행 위주로 다니는데 그래도 멕시코시티에 있는 아나우아카이 박물관(Museo Anahuacalli)은 정말 좋았다. 수많은 토기를 비롯해 디에고 리베라의 방대한 소장품 컬렉션을 볼 수 있는 곳으로 공간은 물론 그 주변을 둘러싼 자연까지 아름다웠다. 브랜드 키코 코스타디노브에서 패션쇼를 열기도 했는데, ‘돈이 많으면 이런 공간 하나 짓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좋았다.
예술가이자 기록자, 관찰자로서 당신의 삶에 늘 동행하는 것은 무엇인가? 특별히 안디아모 백과 동행한다면 어떤 여정이 상상되나?
카메라는 웬만하면 지참한다. 원래는 소니 알파 7이라는 미러리스 카메라에 팬케이크 사이즈의 단일 렌즈를 장착해서 다니다가 지금은 아버지가 옛날에 쓰던 소니 RX100이라는 카메라를 들고 다닌다. 전시를 보게 되면 리플릿도 넣어야 하고, 여행지에서 이것저것 챙기는 것이 많아 평소 큰 가방을 선호하는 편이다. 안디아모 백 라지처럼 넉넉한 사이즈라면 레슬링화와 용품까지 넣고 다닐 것 같다.
익숙한 일상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는 비결은?
산책만으로도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평소 집 근처에 있는 성미산이나 홍제천을 자주 거니는데 그러면서 많은 생각이 정리되고, 작업에 몰두하느라 놓친 나만의 호흡을 되찾게 된다. 최근 새를 관찰하는 취미가 생긴 후로는 탐조용 망원경을 갖고 다니며 눈에 띄는 새를 휴대폰 카메라로 찍어 기록하고 있다. 덕분에 근처에서 자주 들리는 목탁 소리가 실은 딱따구리가 내는 소리였다는 사실과 직박구리가 꽃의 꿀을 아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5인의 컬처 아이콘과 진행하는 <보그>와 보테가 베네타의 협업 프로젝트 ‘안디아모와의 동행: ICONIC JOURNEY’. 이탈리아어로 ‘가자(Let’s go)’라는 뜻이 담긴 안디아모(Andiamo) 백을 서로 다른 컬처 아이콘의 시선으로 재해석한 특별한 콘텐츠가 매월 공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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