틸다 스윈튼과 돔 페리뇽의 끝없는 여정
크리에이터가 양산되는 요즘, 창작 기준이 혼란스럽다. 돔 페리뇽이 새롭게 선보이는 챕터 ‘창작은 끝없는 여정’의 틸다 스윈튼에게서 힌트를 얻다.

나는 돔 페리뇽 빈티지 2008 플레니튜드 2(Dom Pérignon Vintage 2008 Plénitude 2, P2) 한 잔을 들고 런던 테이트 모던을 거닐고 있었다. 화제의 서도호 작가 개인전을 비롯해 모든 전시가 문을 닫은 저녁 7시. 이 P2의 소개와 함께 돔 페리뇽의 새로운 챕터 ‘창작은 끝없는 여정(Creation is an Eternal Journey)’을 공개하는 레벨라시옹(Révélations)이 준비되고 있었다.
그날은 모두가 샴페인 혹은 ‘창작’에 관해 이야기했다. 사실 크리에이터란 직함이 오늘날처럼 아무렇지 않게 소비된 적이 있던가. 이 시기에 ‘창작’의 정의는 난제다. 하지만 누구나 인정할 만한 과정과 결과를 보여주는 인물이 창작에 관해 말한다면 귀 기울여 들을 만하지 싶었다. “창작은 믿음의 도약이에요.” 전시장 한가운데 놓인 영상 속 틸다 스윈튼이 명료한 저음으로 말했다. 유연하게 움직이는 그녀를 내내 쳐다봤다. 틸다는 한번 보면 다른 데로 시선을 돌리기 어렵다. 영상은 다른 크리에이터로 이어졌다. 조 크라비츠, 앤더슨 팩, 무라카미 다카시, 클레어 스미스, 알렉산더 에크만, 이기 팝. 7인 모두 서 있는 자세부터 달랐지만 ‘창작’을 말하고 있었다. 영상은 작가이자 감독 카미유 서머스 발리(Camille Summers-Valli)가 촬영했고, 사진가 콜리어 쇼어(Collier Schorr)가 촬영한 사진도 함께 전시됐다.


샴페인 한 잔을 비우기 전에 현실의 틸다 스윈튼이 몸을 타고 흐르는 푸른색 드레스를 입고 테이트 모던에 들어섰다. 그녀의 밝은 금발과 대비되어 푸른색은 더 짙어 보였다. 그날 밤 틸다는 직접 쓴 시를 낭송했고, DJ 피 위(앤더슨 팩)가 복고풍의 바이닐 세트로 파티를 하는 밤 10시까지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녀가 출연한 영화 <비거 스플래쉬>에서 봤던 자유로운 춤이었다. 돔 페리뇽의 셰프 드 카브인 뱅상 샤프롱(Vincent Chaperon)이 곁에 있었다. 얼마 전 그와 함께 오빌레르(Hautvillers)에 방문한 그녀는 돔 페리뇽 빈티지 2008 플레니튜드 2를 시음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돔 페리뇽은 놀라운 작품이에요.” 그녀는 여러 매체를 통해 자연의 산물 그리고 인간의 열정과 감수성에 존경을 표해왔으며, 이번에는 돔 페리뇽이었다.

돔 페리뇽은 앞서 언급한 7인의 크리에이터와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창조적 여정을 이어가고자 한다. 뱅상은 그 여정이 나선형이라고 말한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오가기 때문이다. “17세기 돔 피에르 페리뇽(Dom Pierre Pérignon)이 브랜드를 설립한 후 오늘날까지 창작은 이어지고 있어요. 오늘 그 새로운 순환을 시작합니다.”
캠페인은 돔 페리뇽이 추구해온 다양성을 적극적으로 보여주며 ‘공동의 감정과 창작’을 강조한다. “와인은 절대 혼자 만들 수 없어요. 집단 구성원의 헌신과 공감, 예술적 테크닉과 숙련도가 조화를 이루는 어려운 도전이기에 겸손해질 수밖에 없죠. 무엇보다 시간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시간은 측정할 수 있는 개념 같지만 실제로는 각자의 감각과 경험에 따라 달라지죠. 와인을 만드는 과정도 마찬가지예요.” 이 공동 작업에 함께하는 크리에이터의 선정 기준은 뱅상의 표현에 따르면 “복잡하면서도 단순”했다. “돔 페리뇽에 진심으로 관심 있는 진짜 예술가여야 하니까요. 단순히 광고 캠페인의 얼굴 역할만 하는 이는 원치 않아요.”

이번 전시에서 크리에이터의 영상과 사진은 돔 페리뇽의 ‘현재’를 담당한다. 과거 부문에는 메종의 창립자 돔 피에르 페리뇽 이후 교류해온 아티스트의 아카이브가 전시됐다. 제프 쿤스가 만든 조각, 데이비드 린치가 촬영한 영상 등이다. 미래 부문에는 포도 재배에서 양조, 블렌딩에 이르는 순환 과정을 전시했다.
이날 저녁 메뉴는 크리에이터 7인 중 한 명으로 미쉐린 3스타 셰프인 클레어 스미스가 과거, 현재, 미래로 구성했다. 특히 버섯을 사용한 ‘미래 음식’이 인상적이었다. “버섯은 미래 식량일 뿐 아니라 철학적으로도 의미 있는 접근이었어요. 우리는 결국 미생물로부터 왔고 미생물로 돌아가니까요. 미생물, 발효, 효모에서 나오는 돔 페리뇽의 생명력 또한 이 개념과 연결되죠.” 뱅상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돔 페리뇽 빈티지 2008 플레니튜드 2의 잔을 놓지 않았다. 뱅상은 이 샴페인을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에 비유했다. “1년 반 전쯤, 팀원들과 시음하다 그 그림을 봤어요. 시각적으로 강렬했고 감정적으로도 깊이 와닿았죠. 둘 다 파도의 진폭, 생명의 움직임, 자연의 힘이 담겨 있어요.” 나는 그 진심을 느끼기 위해 한 모금 더 들이켰다.
틸다 스윈튼의 창작론

‘창작은 끝없는 여정’을 기념하는 행사가 테이트 모던에서 열렸어요. 파티 막바지까지 앤더슨 팩의 디제잉을 즐기더군요.
진심이 담긴 멋진 밤이었어요. 무엇보다 돔 페리뇽의 놀라운 친구들 이기 팝, 앤더슨 팩, 조 크라비츠, 알렉산더 에크만 등과의 만남이 특별하잖아요. 진정한 예술가들이죠.
현장에서 직접 지은 시 ‘Notes for Radical Living’을 낭송했어요. 이 순간의 존재, 공감, 변화, 돌봄을 이야기했죠.
뱅상과 함께 오빌레르 포도원을 방문해 돔 페리뇽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시에 대한 영감을 얻었죠. 행사 전날 밤까지 시를 다듬었어요. 우리가 무엇을 위해 여기 있는지, 돔 페리뇽이 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는 자리니까요. 돔 페리뇽은 놀랍도록 고급스러운 작품임에도 겸손합니다. 억지스럽지 않은 ‘오 아자르(Au Hasard,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움)’죠. 돔 페리뇽을 만들기 위해선 기적적인 도움이 필요해요. 날씨, 토양, 포도 상태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어야 하죠. 매우 위태롭게 외줄타기하는 느낌이겠죠. 그것들이 와인 생산자를 겸손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장담할 수 있는 일이라곤 없으니까요. 심지어 그해에 생산한 결과물에 만족하지 않으면 와인을 출시하지 않아요. 정말 놀랍죠. 와인 맛을 보고 나서 ‘이건 내보낼 수 없어’라고 말하기는 어렵잖아요. 자신이 만드는 것에 진심이 있어야 가능하죠. 바로 그런 점이 무언가를 시사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 느낌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찾아야 했죠. 다행히 적절한 시어를 발견했고, 함께 나눌 수 있어서 영광이에요.

와이너리를 방문해 눈물을 흘렸다고 들었어요.
돔 페리뇽 빈티지 2008과 돔 페리뇽 빈티지 2008 플레니튜드 2를 함께 맛보았어요. 같은 해에 탄생했지만, 다른 시간을 거치면서 별개의 이야기를 갖게 됐어요. 그래서 특별하죠. 한 잔은 와인을 감싸는 특유의 끝 맛이 감미로우면서도 죽음의 불가피함이 있었고, 다른 한 잔은 끝없는 가능성이 살아 있었죠. 물론 둘 다 훌륭했어요.
같은 해에 탄생했지만 서로 다른 인생을 사는 것과 비슷하군요.
우리는 유한한 세계에서 발버둥 치면서 살아가잖아요. 겪어내는 순간들의 현현은 각각의 아름다움이 있죠. 뱅상은 그 일을 해냈어요. 어떻게 그런 감각을 갖췄을까요? 그는 정말 미스터리한 인물이에요. 아마 감수성을 키웠기 때문일 거예요. 기술로는 되지 않거든요.

샴페인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샴페인은 보통 축하와 연관 있잖아요. 결혼, 출산, 졸업 등 축하할 일에는 변화 혹은 전환의 의미가 깃들어 있죠. 진짜 샴페인은 고정되지 않고 변화무쌍한 에너지를 갖고 있어요.
창작의 의미를 묻자 “믿음의 도약(Leap of Faith)”이라고 했어요.
창작에는 대답보다 질문이 필요해요. 돔 페리뇽으로 모인 일곱 명의 창작자 모두 공감할 거예요. 반드시 답을 찾으려 하기보다는 탐구에 의의를 둬야 하죠. 그게 예술이에요. 다시 말해, 감응할 줄 알아야 해요. 제 경험에 비추어보면, 창작보다는 감응이란 표현을 쓰고 싶어요. 제가 주로 하는 영화 일은 여러 사람과 함께 하는 집단 예술이에요. 서로에게 감응해야 가능한 작업이죠. 혼자 글을 쓸 때조차 저는 여전히 무언가에 감응하고 있어요. 이때 유연함을 지니는 것이 중요해요. 계획을 세우지만 일이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려 한다면 ‘어, 알았어’라고 받아들여야죠. 억지로 한 방향을 고집할 필요 없어요. 특히 시간이란 요소는 돔 페리뇽이나 제게 매우 중요한데요, 예를 들어 2020년에 영화를 완성하겠다고 2010년에 계획을 세우지만, 10년 사이에 동료도 세상도 변해요. 그래서 유연해야죠. 이것이 바로 믿음의 도약이에요. 계획에 없는 것이든, 방향이 달라졌든, 그게 무엇이든, 언젠가는 당신의 자양분이 될 거라는 믿음 말이죠.

창의력을 유지하기 위해 일상에서 어떤 노력을 기울이나요?
세 가지가 떠오르는군요. 첫째, 자연에 머무르려 해요. 다행히 저는 그런 곳에 살고 있어요. 바다, 너른 하늘, 나무 하나하나가 제게 소중해요. 자연은 매우 귀한 존재이자 친구예요. 또 하나는 제 동료이자 친구들이죠. 마지막으로 절대 버릴 수 없는 하나는 예술이에요. 저를 계속 나아가게 하고 인내심을 갖도록 도와줘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순간이 있거든요. 그럴 때면 자연에서 치유받고 동료에게 힘을 얻고 예술에서 동력을 얻어왔어요.
창작 과정에서 마주하는 장애물은 주로 무엇인가요?
정말 좋은 질문이에요. 제가 말한 것과 정반대의 것들이 장애물이죠. 그중 하나가 데드라인! 물론 인간적인 데드라인이 필요할 때도 있어요.(웃음) 하지만 서두르고 심하게 몰아세우는 비인간적인 데드라인을 너무 많이 겪었어요. 또 멀티태스킹을 하지 않으려 해요. 제 꿈은 한 번에 하나에만 집중하는 거예요. 물론 이루기 힘들죠. 쌍둥이 엄마니까요. 수년간 아이를 키우면서 영화를 촬영하고 글을 썼죠. 멀티태스킹을 할 수밖에 없지만 좋아하지 않아요. 성찰의 적이거든요. 끊임없이 문제를 처리하고 급한 불을 끄느라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고 자기 목소리를 듣지 못해요. 특히 도시는 방해 요소가 많죠. 며칠 정도는 어린아이처럼 도시를 흥미롭게 흡수할 수 있지만 결국 지쳐서 시골로 돌아가야 해요.

최근 당신에게 영감을 준 타인의 창작물이 있나요?
잠시 시간을 주세요.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훌륭한 것들이 섞여 있거든요. (틸다는 고개를 숙인 채 1분 정도 가만히 있었다.) 아, 생각났어요. 늘 팬이었는데 어떻게 잊겠어요. 지금 테이트 모던에서 전시를 열고 있는 도호 서!
지난 5월 1일 테이트 모던에서 개막한 서도호의 <Walk the House> 전시를 봤군요.
그럼요! 감동이었어요. 그는 특별한 방식으로 ‘충돌하는 세계’를 다뤄요. 그의 작품을 볼 때마다 어떤 형태로든 충돌과 마주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는 걸 깨닫죠.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서도호 작가는 베를린, 뉴욕, 한국 등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제 남편은 독일인과 뉴질랜드인 혼혈이죠. 그런 삶은 큰 충돌을 경험할 수밖에 없어요. 제가 ‘충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그의 작품 속 집은 부서져서 서로 얽혀 있으면서도 혼종된 정체성을 드러내기 때문이에요. 서도호 작가의 작품이 감동적인 이유가 거기 있어요. 다양한 정체성은 초능력임을 보여주죠. 하지만 우리 사회는 그것을 초능력으로 받아들이지 않아요. 어릴 적에 우리는 “하나의 정체성만 지녀야 한다”고 배워요. 부모님의 출신 국가도 같아야 하고, 남자나 여자 중 명확히 하나여야 하며, 특정한 직업을 가져야 하죠. 그렇게 제한된 틀 안에서 살아가요. 그러다 보니 다양성을 인정하기 힘들죠. 정말 안타까워요. 어쨌든 서도호 작가는 여러 측면에서 그런 점을 잘 표현하고, 그게 마음을 건드려요.

배우 틸다 스윈튼의 창작론은 무엇인가요?
굉장하고도 거대한 질문이에요. 사실, 그 질문을 1년 전에 받았다면 지금과는 다른 의미로 다가왔을 거예요. 앞서 우리가 이야기 나눈 부분과 관련 있는 답을 해야겠군요. 결과물보다는 과정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해요. 유연한 것, 감응하는 것, 협업하는 것에 역량을 모으려 하죠. 만약 인간의 경험에서 이들을 빼면 어떻게 될까요? 비참하죠. 지금 고도로 발전했다고 자부하는 일부 사회가 권력과 힘으로 횡포를 일삼고 있어요. 그것은 인간의 능력을 박탈하는 거예요. 다양할 수 있는 능력, 미완성으로 남을 수 있는 능력, 유연할 수 있는 능력,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능력, 변화할 수 있는 능력을 뺏는 거예요. 이 같은 일은 역사적으로 반복됐어요. 그래서 역사를 배워야 합니다. 더없이 중요한 이 시기에 우리는 창의성과 예술을 옹호하고 강력히 주장해야 해요. (VK)
경고 : 지나친 음주는 뇌졸중, 기억력 손상이나 치매를 유발합니다. 임신 중 음주는 기형아 출생 위험을 높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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