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봄/여름 런던 패션 위크 DAY 4
런던 4일 차는 개성으로 가득했습니다. 날것 그대로 던진 이야기는 세상과 부딪히며 새로운 생명을 얻었죠. 아집이 아닌 개성으로 인정받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번에 오른 네 브랜드 역시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도,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습니다. 시몬 로샤는 나 자신을 처음 의식하기 시작하는 사춘기를, 에르뎀은 직접 가보지 못한 세계를 체험하는 상상력을, 파올로 카자나는 바다와 공동체의 상징을, 딜라라 핀디코글루는 세계로 뻗어나가려는 포부를 무대에 담았죠. ‘런던 패션 위크 위기론’을 뒤로하고, 자신만의 화음을 다듬은 네 목소리를 들어보시죠.

시몬 로샤(@simonerocha_)
이번 시즌 시몬 로샤는 사춘기의 복잡하고 불편한 감정을 꺼내 보였습니다. 세상 앞에서 숨고 싶지만 드러날 수밖에 없는 다 커버린 몸집이 컬렉션 곳곳에 스며들었죠. 한껏 강조한 허리와 엉덩이의 곡선, 팔꿈치까지 올라오는 긴 장갑, 그리고 품에 안은 베개의 부조화가 ‘어색한 무도회 데뷔’ 풍경을 완성했습니다.
시몬 로샤는 WWD와의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 엄마의 스커트를 드레스처럼 올려 입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컬렉션에서 ‘어른을 흉내 내는 아이’의 시선으로 성숙을 탐구했죠. 시폰이나 시어 소재 같은 친숙한 소재를 반복하면서도, 샤 스커트를 코트 아래에 숨기는 방식으로 신선한 변주를 보여주었습니다. “기본기를 다시 밀고 당기고 싶었다”는 그녀의 말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에르뎀(@erdem)
에르뎀은 19세기 스위스 영매 헬렌 스미스(Hélène Smith)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녀는 최면 상태에서 마리 앙투아네트의 궁정에 방문하고, 인도의 공주가 되고, 심지어 화성을 여행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걸 회화로 옮겼죠. 이번 컬렉션은 바로 그 환영을 옷으로 형상화했습니다.
앤티크 레이스와 크리스털 자수로 장식한 코르셋 미니드레스, 블랙 레이스로 완성한 실루엣은 팽팽한 긴장감을 연출했습니다. 사이사이 인도 전통 의상 ‘사리’를 연상시키는 네온 그린과 핫핑크 드레스, 그리고 코트로 자유분방함을 더했습니다. 엄숙함과 방종이 교차하는 순간이었죠. 에르뎀 모랄리오글루는 소용돌이처럼 혼잡한 여러 모티브를 직접 현대적인 질서로 엮어냈습니다. 직접 가보지 못한 세계를 체험할 수 있다는 발상은, 물리적으로 닿지 않아도 미디어로 세계를 경험하는 지금 시대의 감각과 겹칩니다.









파올로 카자나(@paolocarzana)
처음엔 도서관을 배경으로 부둣가 사람들을 연상시키는 옷차림이 낯설었습니다. 하지만 무대가 된 영국 도서관(The British Library)이 배 구조를 본떠 설계됐다는 사실을 알고 보면, 곳곳에서 선상 디테일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축가 콜린 세인트 존 윌슨(Colin St. John Wilson)이 해군 중위 시절 경험을 건물에 녹여냈고, 이번 쇼는 그 이야기를 다시 끌어올렸습니다. 배경 음악으론 데이비드 애튼버러(David Attenborough)의 해양 다큐멘터리 사운드가 흘렀죠.
런웨이에 오른 옷들은 도롱뇽, 도마뱀, 천산갑 같은 멸종위기 동물에서 영감을 받아 지구의 초자연적인 아름다움을 전했습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의 수면과 깊고 맑은 물에 사는 해초를 닮은 빈티지 톤의 팔레트는 카자나의 오가닉한 정체성을 이어갔습니다. 상업화를 우려하는 일부 여론을 의식한 것일까요? 팬츠와 롱스커트에서 이전보다 현실적인 실루엣을 볼 수 있었습니다. 유기농 소재와 식물성 염색을 다루는 공예적 밀도는 그대로 지키되 입을 수 있는 옷으로 대중에게 다가가려는 변화가 이번 시즌 가장 큰 성과였습니다. 수줍은 미소로 무대를 마친 그의 모습은, 1년 전 컬렉션에서 건넨 “허울과 거울을 완전히 벗어던지고, 자신만의 기적을 만들어내는 거죠”라는 말 그대로 진심을 보여주었습니다.








딜라라 핀디코글루 (@dilarafindikoglu)
“언젠가 딜라라 로고가 찍힌 흰 티셔츠도 나오겠지만, 아직은 아니에요.” 딜라라 핀디코글루는 이번 쇼를 분명한 확장의 무대로 삼았습니다. 기본은 여전히 고스 무드였습니다. 코르셋 실루엣, 러플 커프스, 시스루 등 꾸뛰르 장치를 통해 그녀 특유의 긴장감을 유지했죠. 하지만 어둠 일변도로 흐르지 않았습니다. 지난 시즌부터 시도한 화이트, 핑크, 살구 같은 밝은색을 이번에도 이어가며 팔레트를 확장했고, 체리 장식을 단 드레스처럼 으스스한 재치로 환기했죠. 블랙 고스의 세계를 유지하면서도 균열을 내어 넓혀갔습니다.
브랜드 전략도 일관성과 확장을 동시에 지향합니다. 이번에는 처음으로 가방 컬렉션도 선보였습니다. WWD와의 인터뷰에서 딜라라 스타일을 원하는 사람에겐 머리부터 발끝까지 실현시켜주고 싶다고 밝혔죠. “제 꾸뛰르와 예술성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싶어요. 딜라라 방식으로 상업화하는 거죠.” 지금도 매출의 절반 이상을 꾸뛰르에서 유지하고, 걸출한 스타들이 선택하는 브랜드라는 사실이 그 가능성을 뒷받침합니다. 찰리 XCX, 리사, 케이트 블란쳇, 카일리 제너, 킴 카다시안 등 국적도 장르도 다양하죠. 드레스 브랜드라는 평가에 핀디코글루는 이렇게 응수합니다. “내게 기성복은 흰 티셔츠와 청바지가 아니라, 내가 만드는 이 옷들이에요.” 쇼의 피날레, 컬렉션에 등장한 듯한 옷차림을 하고 환히 웃으며 인사하는 그녀의 모습에 자신감이 가득해 보였죠.












#2026 S/S LONDON FASHION W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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