뎀나가 찍는 가족사진, 구찌 2026 S/S 컬렉션
당신은 아빠입니까, 할머니입니까? 아빠도 할머니도 아니면 누구입니까?

“나는 모두를 놀라게 할 거예요.” 지난 7월 <보그> 인터뷰에서 뎀나가 말한 그대로였죠. 구찌는 잃어버린 문화적 연결성(Culture Relevance)을 단숨에 획득했습니다. 그것도 공식적인 쇼를 진행하지 않은 상태로요.
구찌는 쇼 대신 선보인 영화 <더 타이거(The Tiger)>의 시사회를 하루 앞둔 9월 22일 ‘구찌: 라 파밀리아(Gucci: La Famiglia)’ 컬렉션을 기습 공개했습니다. 메일로 사진을 확인하는 도중에 구찌 인스타그램에 새로운 컬렉션이 떴다는 소식으로 메신저에 불이 났죠. 전날 인스타그램을 말끔히 밀어버린 것(사진을 삭제한 것)을 보고, 밀라노 사진이 올라오겠거니 하던 이들을 당혹과 즐거움의 세계로 밀어 넣었죠.

컬렉션명이 ‘라 파밀리아’, 즉 ‘가족’인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업로드된 사진 38장에는 지난 시절 구찌 가족의 초상화가 늘어서 있었죠. 뎀나는 전임 디자이너들의 시그니처 룩을 재해석했습니다. 톰 포드의 섹시하고 다크한 매력부터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맥시멀 로맨티시즘, 꽃을 사랑했던 프리다 지아니니의 유산, 구찌의 기원인 여행용 트렁크 발리제리아까지, 하우스의 역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하나 되짚었죠. 룩을 보면 어깨선은 강했고, 화려함과 절제미를 오가는 실루엣으로 극적인 무드를 자아냈습니다. 가죽과 모피, 실크, 시폰, 크리스털 등 다양한 원단을 마음껏 주무르며 구찌 특유의 관능미와 우아함을 표현했고요. 그가 좋아하는 높은 칼라도 눈에 띄었죠. 하지만 특정 시대에 매몰되지도, 누군가의 후예가 되길 선택하지도 않았습니다. 인카차타(Incazzata, 분노한 여자), 너드(Nerd), 나르시시스타(Narcisista) 등 스토리텔링 실력을 발휘해 룩에 이름을 붙였을 뿐이죠.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폭탄 룩, ‘라 봄바(La Bomba)’는 톰 포드일까요? 아니면 미켈레일까요? 확실한 건 그는 구찌에 어떤 미적 기준도 세우지 않았다는 겁니다. 풍자적인 시각은 만연했지만요. 모든 것은 구찌다움(Gucciness)이었죠.
이건 패션계에 던진 하나의 사인이 분명합니다. 모두가 아이콘이 되고 싶어 하는 이 시대의 욕망과 자기표현 방식을 정확히 짚어낸 것입니다. 우리는 메가트렌드 없이 굴러가는 이 세계를 받아들일 수 없어 ‘혼돈의 커스터마이징’ 시대라 명명했죠. 196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이어진 마이크로트렌드 앞에서 무엇을 취하고 내려놓아야 할지 감도 잡지 못한 채 거대한 파도가 일기만 바랄 뿐이었고요. 여기서 뎀나는 구찌를 ‘다양한 페르소나를 담아낼 수 있는 세계관’으로 재설정합니다. 이제 소비자는 옷을 사는 것이 아니라 구찌 속에서 자신의 이름을 찾게 되겠죠. 뎀나처럼 소년이 될지, 아니면 심장을 훔치는 자가 될지, 혹은 드라마 퀸으로 남을지는 소비자의 선택에 달렸어요. 그리고 23일 공개된 영화 <더 타이거(The Tiger)>에서 말하더군요. 그건 집단 속에서 더 쉽게 발견할 수 있다고요.

고백합니다. 처음에는 이 단편영화에 이렇다 할 메시지는 없을 거라 여겼습니다. 물론 지금 생각은 다릅니다. 23일 밀라노 증권거래소였던 팔라초 메차노테(Palazzo Mezzanotte) 앞에선 영화제 느낌이 풍겼습니다. 스파이크 존즈와 할리나 레인이 공동 연출하고 데미 무어, 에드워드 노튼, 에드 해리스를 비롯해 엘리엇 페이지, 케케 파머, 앨리아 쇼캣까지 화려한 출연진이 참여한 구찌의 단편영화 <더 타이거> 프리미어 시사회가 쇼 대신 진행되었기 때문이죠.
구찌 관문에 이르는 계단으로 브라운 톤 카펫이 깔렸고, 검은색 세단에서 내린 손님들은 광장을 메운 사람들의 환호성을 들었죠. 그 사이 컬렉션 룩을 입은 모델들은 의상 이름처럼 공주나 미술관 주인을 연기하며 포토 타임을 가졌고요. 모두 컬렉션 룩을 입고 있었기에 누가 영화 캐릭터인지 구별할 수 없게 만든 것이 포인트였죠. (당연히 방탄소년단 진은 한눈에 알아봤습니다.) 먼저 영화 주인공 바바라 구찌로 분한 데미 무어는 라 메체나테(La Mecenate, 후원자) 룩으로 등장했습니다. 얼굴을 제외하고 목과 손, 발끝까지 황금빛 시퀸으로 물들어 주연배우이며 이름처럼 부유하다는 게 드러났죠. 그녀의 아들로 분한 에드워드 노튼과 엘리엇 페이지는 둘 다 네이비 수트로 등장했고요. 이 외에도 GG 모노그램 블라우스와 스커트 차림의 기네스 팰트로, 깊이 파인 화이트 셔츠에 트라우저를 매치한 진과 하늘색 모피 코트로 귀부인이 된 박규영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습니다. 스포트라이트를 비켜선 뎀나는 건물 안에서 이들을 맞이했습니다. 그저 “영화를 통해 메시지를 담고 싶었다”며 <지큐> 에디터에게 “영화를 만들면서 그 메시지를 거의 스스로 깨달아야 했는데, 바로 통제권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라고 털어놨죠. 이는 영화의 전권 대부분을 스파이크 존즈와 할리나 레인이 부여받았다는 의미면서, 자신 또한 한발 물러서서 영화의 메시지를 이해했다는 의미였죠.
불이 꺼지고 나서 약 30분, 우리는 영화에 몰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용은 간단합니다. 구찌 인터내셔널 대표이자 캘리포니아 회장(?)인 바바라 구찌, 즉 데미 무어가 그녀의 자녀들, 자녀의 여자 친구, 매거진 <베니티 페어> 에디터와 생일을 기념하는 이야기죠. 이상한 아편이 축하 샴페인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그렇습니다. 환각 속에서 춤을 추거나 수영을 하거나 소리치며 불안과 괴로움 등 속마음을 털어놓습니다. 그리고 종국에는 완벽한 여성이자 엄마, 기업가, 사람이고 싶었던 바바라 구찌가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다고 고백하죠. 영화가 끝난 후 뎀나 또한 “내려놓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습니다. 바바라 구찌처럼요. 영화는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자신을 놓고, 호랑이에게 잡아먹힘으로써 자유를 되찾을 수 있다 말합니다. 그리고 가족 안에서 약한 자신을 그대로 인정할 때 비로소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해방되고 자유를 얻으며, 결국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자신이 어떤 모습인지는 결국 가족, 내가 속한 집단 안에서만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요. 구찌도,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거죠.
결국 구찌는 옛 모습을 돌아보는 동시에 그리움 없이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재도약의 순간을 맞이합니다. 모든 가족이 그런 것처럼요. 물론 내년 2월 선보일 뎀나의 첫 구찌 쇼를 봐야 확실할 겁니다. 일단 ‘라 파밀리아’는 9월 25일부터 10월 12일까지, 구찌 10개 매장(서울, 뉴욕, 로스앤젤레스, 베이징, 상하이, 싱가포르, 도쿄, 런던, 밀라노, 파리)에서 독점 판매합니다. 우리는 기다리면서 자신을 찾기만 하면 됩니다. 구찌 가족 중에서 누가 될 것인지를.
추천기사
-
워치&주얼리
에디터 푼미 페토와 함께한 불가리 홀리데이 기프트 쇼핑
2025.12.04by 이재은
-
엔터테인먼트
영화와 드라마에서 가장 부끄러웠던 남자 친구 12
2025.12.10by 박수진, Daniel Rodgers
-
패션 아이템
2026년 트렌드를 주도할 6가지 새로운 청바지 착용법!
2025.12.09by 김현유, Alexandre Marain
-
패션 뉴스
샤넬 2027 크루즈 컬렉션, 비아리츠로 향한다
2025.12.11by 오기쁨
-
패션 아이템
1분 만에 스타일 반전시키는 과소평가된 겨울 액세서리!
2025.12.05by 황혜원, Nuria Luis
-
푸드
최현석부터 강민구까지, 3월의 미식 팝업
2025.03.12by 이정미
인기기사
지금 인기 있는 뷰티 기사
PEOPLE NOW
지금, 보그가 주목하는 인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