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9년 개관한 브레라 미술관에서 ‘패션 황제’ 조르지오 아르마니(Giorgio Armani)의 50년을 조명한다. 화보에서 착용한 의상과 액세서리는 조르지오 아르마니 컬렉션으로, 이 역사적인 인물의 찬란한 삶을 담았다. 화려한 꽃무늬 자수 장식을 더한 상의와 스커트는 2002 봄/여름 컬렉션, 스트랩으로 고정한 검정 플랫 슈즈는 2011 봄/여름 컬렉션.
몸에 꼭 맞는 엠보싱 텍스처의 블루 재킷은 1988 봄/여름 컬렉션, 비즈 장식이 쇄골까지 길게 내려오는 싱글 귀고리는 2006 가을/겨울 컬렉션.
가로로 입체적인 주름 장식을 더한 검정 새틴 재킷은 1992 가을/겨울 컬렉션, 검정 벨벳 소재의 트루퍼 모자와 단정한 발레리나 플랫은 2002 가을/겨울 컬렉션.
흰색 실크 조젯 소재의 턱시도 셔츠는 2025 가을/겨울 컬렉션, 검정 벨벳 바지는 2019 가을/겨울 컬렉션, 미니멀한 빨강 플랫 슈즈는 2002 봄/여름 컬렉션.
시퀸으로 동양적인 무늬를 화려하게 수놓은 미니 드레스는 2010 가을/겨울 컬렉션, 독특한 꼬임 장식이 돋보이는 레진 목걸이는 2025 가을/겨울 컬렉션, 스트랩 플랫 슈즈는 2011 봄/여름 컬렉션.
“밀라노는 내가 살아가고 일하기 위해 선택한 도시입니다.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도시죠. 나의 생활 방식, 관점과 매우 유사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어요. 밀라노가 내 일부인 것처럼, 나 역시 밀라노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낍니다.”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의 주도 밀라노에 대해 남긴 말이다. 최근 세상을 떠난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자신의 50년 커리어를 기념하기 위해 밀라노를 상징하는 브레라 미술관(Pinacoteca di Brera)을 택했다. 그는 이곳에서 9월 24일부터 가장 상징적인 룩 150점으로 구성한 전시 개최 외에도, 28일에 2026 봄/여름 컬렉션을 발표하기로 했다.
1934년 7월 11일 피아첸차(Piacenza)에서 태어난 아르마니는 고등학교를 마친 뒤 의과 대학에 등록했던 1950년대부터 줄곧 밀라노에서 살았다. 1957년 대학을 중퇴하고 리나 셴테 백화점에서 바이어로 일하던 중 남성복 브랜드 히트맨(Hitman)을 운영하던 니노 세루티(Nino Cerruti)의 눈에 띄어 그곳에서 일하게 되었다. “당시 세루티는 나를 ‘내 디자이너’라고 소개했는데, 그러면 사람들이 이렇게 물었어요. ‘그게 뭔가요?’” 히트맨에서 7년 동안 일하면서 아르마니는 시장이 작동하는 메커니즘과 고객의 요구를 이해했고, 원단과 의상 디자인에 대한 지식을 갈고닦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1975년에 그는 사업 파트너이자 1985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인생의 동반자였던 세르지오 갈레오티(Sergio Galeotti)와 함께 자기 이름을 내건 브랜드를 탄생시켰고, 이내 새롭게 떠오르는 ‘메이드 인 이탈리아’의 가장 빛나는 별로 자리매김했다.
“내 이름을 붙이고 싶었던 첫 번째 대상은 재킷이었습니다.” 아르마니는 처음부터 재킷에 관심을 두었다. “격식에서 벗어나 편안하고 느슨하게 만들고자 했습니다. 몸과 그 관능미를 드러내고 싶었죠.” 그의 재킷은 미적인 차원뿐 아니라 심오한 변화를 필요로 하는 시대를 기적적으로 보여주었는데, 이는 1960년대에 수전 손택이 예견한 것이기도 했다. 그녀는 <캠프에 관한 단상> 9번 항목에 이렇게 썼다. “가장 세련된 형태의 성적 매력은 당사자 본래의 성을 거스르는 데 있다. 남자다운 남성에게서 가장 매력적인 것은 여성적인 무언가이고, 여자다운 여성에게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남성적인 어떤 것이다.” 아르마니는 바로 그것을 해냈다. 그는 의복이 지닌 사회적 기준을 전복해 경직된 전통적인 남성 재킷을 더 부드럽게 만들었고, 여성에게는 새로운 유니폼을 선사했다. 재킷 내부에 갑옷처럼 들어 있던 모든 형태의 심지를 제거해 가볍고 유연한 형태로 말이다.
아르마니 손에 들어간 원단은 해방되었다. 그가 만든 옷은 착용자의 신체와 완벽하게 하나가 되었다. 옷의 유연성은 그가 선호하던 색채와 이상적으로 일치했으며, 서로 흐르듯 섞여들었다. “중립적인 색조를 사랑합니다. 평온함과 차분함을 불어넣는 것은 물론 우리 각자가 정체성을 구축할 수 있는 토대를 대표하기 때문입니다. 색을 서로 결합하고 조화시키는 방식을 지녀 결코 유행처럼 일시적인 현상이 될 위험이 없죠. 때로는 원하는 이미지를 구현할 수 있는 확고한 기준점이 됩니다.” 폴 슈레이더(Paul Schrader) 감독의 1980년 영화 <아메리칸 지골로>에서 리차드 기어가 입은 의상은 바로 이런 개념을 보여주는 선언문과 같았다. 구조를 해체한 수트, 회색과 베이지의 조화는 새로운 우아함의 상징이 되었다. 이탈리아 미술 평론가 제르마노 첼란트(Germano Celant)는 이 새로운 남성상을 ‘대중적 댄디’라고 명명했다.
<아메리칸 지골로>는 영화계와 오랜 협업의 출발점이다. 아르마니는 50년간 수백 편의 영화 의상을 디자인하며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페드로 알모도바르,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마틴 스콜세지 같은 영화감독과 함께 작업했다. “영화의 즉각성에 매료되었습니다. 영화는 육체적이고 지적인 몰입을 가능케 하는 힘이 있으며, 광활한 표현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미국 서부극, 히치콕의 추리물, 전쟁 영화를 늘 좋아했어요. 그리고 로베르토 로셀리니, 비토리오 데 시카, 초기 루키노 비스콘티와 함께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영화의 마법 같은 순간이 찾아왔죠.”
1990 봄/여름 컬렉션의 시작이 된 알레산드로 블라세티(Alessandro Blasetti)의 <철관 (La Corona di Ferro)>(1941), 구로사와 아키라(Akira Kurosawa)의 <카게무샤>(1980)에서 출발한 1981 가을/겨울 컬렉션과 같이 특정 영화에 대한 오마주도 있었다. 그러나 아르마니의 상상력은 본질적으로 1930~1940년대와 연결되어 있다. 그가 의상 작업을 가장 즐겼던 영화 중 하나가 브라이언 드 팔마(Brian De Palma)의 <언터처블>(1987)인 것도 우연이 아니다. “실험을 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였습니다.” 그는 이 영화에 대해 이렇게 회상했다.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동시에 현실적인 방식으로 그 시대(1930년대)의 복식을 해석했습니다. <언터처블>을 통해 내 스타일의 특정 경향을 극단적인 지점까지 밀어붙일 수 있었어요.”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그의 스타일에서 되풀이되는 기준점이 되었다. 1980~1990년대 광고 캠페인을 떠올려보자. 알도 팔라이(Aldo Fallai)가 촬영했던 그 광고 말이다.
수지 멘키스는 이런 글을 쓴 적 있다. “그의 밀라노 아파트에서 어린 시절 해변에서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본 적이 있다. 그때 그의 개인적 미학과 영감의 원천이 어디에서 비롯 되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그는 머리가 작고, 날씬하며, 깔끔하고, 호리호리한 1930년대 실루엣에 깊이 빠져 있었다.” 캐서린 헵번과 크로스드레싱의 여왕 마를렌 디트리히의 중성적인 모습을 연상시키는 실루엣이다. “<푸른 천사>를 비롯해 <상하이 익스프레스>, <모로코>, <몬테카를로 스토리>, <외교 문제>, <가든 오브 알라>를 보고 또 보았고, 앞으로도 몇 번이고 다시 볼 겁니다.” 아르마니는 자신의 영화 취향을 고백한 뒤 말을 이었다. “마를렌은 독보적이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세련됐어요. 시대를 타지 않죠. 그 매력은 육체보다는 정신에서 훨씬 더 많이 기인한, 타고난 재능입니다. 그녀의 중성적 성향은 변장한다고 없어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녀는 삶의 개척자였습니다. 나는 그걸 패션에서 이뤘고요.” 과거에 대한 아르마니의 사랑은 언제나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석되었다. “나는 기억을 믿습니다. 우리 자신이 지닌 기준이죠. 하지만 복고는 믿지 않습니다. 흥미롭지 않아요. 기껏해야 그림자, 향기, 베일로 덮은 존재일 뿐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하고, 미래를 건설해야하며, 현재를 살아야 하기 때문이죠.”
그 사이 ‘Giorgio’s Gorgeous Style’이란 언어유희적 제목과 함께 1982년 <타임> 표지를 장식하며 그의 국제적 입지가 확고해졌다. 아르마니는 ‘킹 조지(King George)’가 되었고, 여성들은 그에게 열광했다. 그는 보답으로 우아함의 비밀을 알려주었다. “정말 간단한 세 가지 규칙이 있습니다. 첫째, 스스로를 알아야 합니다. 위장해서는 안 돼요. 둘째, 적절한 순간을 선택해 그에 맞는 방식으로 옷을 입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옷을 입는 것은 자신이어야 하며, 옷에 끌려다녀선 안 됩니다.”
아르마니 덕분에 성별의 구분을 넘어서는 태도가 자리 잡았다. 그 안에서 여성은 개성을 당당하게 드러내고, 진정성을 자유롭게 느끼며, 남성과 동등하게 욕망을 누릴 자유를 갖게 되었다. “모두를 위한 패션을 원했습니다.” 아르마니는 자신의 초창기를 회상하며 말했다. “당시에는 쉽고 현대적인 옷차림이 부족했습니다. 그리고 남성과 마찬가지로 특정 유형의 의상을 원하는 여성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편하게 움직일 수 있고, 제2의 피부처럼 착용할 수 있는 재킷 말이에요.”
1988년 새로운 여성성의 관찰자로 나선 프랑카 소짜니는 자신이 편집장으로 합류한 첫 번째 이탈리아 <보그> 7·8월호에서 ‘woMAN’이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의 화보를 실었다. 이 화보에서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남성복 재단을 적용한 여성 의상을 선보이며 모든 고정관념을 넘어선 미학을 주장했다. 이는 성별 전복에 근거했으며, 2015년 이탈리아 패션 저널리스트 지우시 페레(Giusi Ferré)는 아르마니를 다룬 뛰어난 평전에서 그것을 ‘급진적 젠더’로 정의했다.
아르마니가 이탈리아 <보그>와 얼마나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 보여주는 증인이 있다. <보그>를 비롯해 <아미카>, <노비타> 같은 세계적인 잡지와 협업하는 천재 아트 디렉터 플라비오 루키니(Flavio Lucchini)다. 그는 2018년 출간한 자신의 회고록 <운명>에서 1974년의 일을 기억했다. 다른 브랜드를 위한 컨설팅에 지친 아르마니가 세르지오 갈레오티와 함께 탈출구를 찾기 위해 그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것이다. 루키니는 그에게 독립할때가 되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브랜드가 없어요.” 아르마니는 하소연했다. 루키니는 그 자리에서 <보그>의 오리지널 보도니(Bodoni) 서체로 조르지오 아르마니 로고를 만들었고, 그것은 지금까지도 사용되고 있다.
아르마니는 본질과 해체, 유동성을 향한 열망을 가지고 지난 1975년부터, 정확히 말해 50년 전부터 우리를 현재로 이끌었다. 어떤 면에서는 폴란드 철학자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이 이론화한 ‘액체 근대(Liquid Modernity, 현대사회는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해 액체처럼 끊임없이 흘러가는 시대라는 개념)’를 예견한 것이다. VK
- 포토그래퍼
- Paul Wetherell
- 스타일리스트
- Luca Galasso
- 글
- Sofia Gno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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