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패션 피플은 ‘부자 할머니’ 신발을 신습니다

올 초, 저는 숄의 샌들에 대한 찬가를 썼습니다. 런던의 한 갤러리 오프닝 때부터 에게해 연안 휴가까지 저와 함께했던 많은 샌들에 관한 칼럼이었죠. 하지만 발가락이 얼어붙을 만큼 급격히 기온이 떨어지면서, 저는 다른 종류의 낡은 구두를 갈망하게 됐습니다. 바로 페라가모의 바라(Vara)입니다. 제 바라는 수년간 신발장 구석에 박혀 있었지만, 빈티지 구두를 찾는 패션 피플 덕분에 갑자기 재평가를 받게 됐습니다. 블록 힐과 리본 장식 토캡이 달린 심플하고 우아한 펌프스인 바라는 ‘할머니 슈즈’에 대한 제 집착의 부산물이라기보다는, 패션 자체가 성숙한 종류의 시크함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처럼 느껴집니다.
영국 <데이즈드> 패션 피처 디렉터 엠마 데이비슨(Emma Davidson)처럼 어떤 이들은 2000년대 인디 슬리즈와 트위드가 만난 향수를 떠올립니다. “클로에 세비니나 알렉사 청, 피치스 겔도프가 바라를 신고 돌아다니는 걸 보고 바로 푹 빠졌던 것 같아요”라고 그녀는 말합니다. “하지만 2009년에는 제 예산으로 살 수 없는 슈즈였죠. 그래서 브릭 레인의 빈티지 스토어를 뒤지며 가품과 레플리카 슈즈를 셀 수 없을 정도로 사들였어요. 티 드레스(Tea Dress, 짧은 소매의 허리선이 잘록하게 들어간 미디 길이 드레스로 20세기 초 티타임에 입었다)의 밑단을 잘라 외설적일 만큼 짧게 만든 뒤 타이츠나 발목 양말을 매치하고 바라를 신었어요.”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스타를 위한 신발’을 디자인한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마릴린 먼로, 소피아 로렌, 주디 갈랜드가 모두 그의 디자인을 신은 것으로 알려졌죠. 하지만 ‘바라’는 살바토레의 딸 피암마 페라가모의 1978년 작입니다. 본래는 가죽 소재의 납작한 리본 장식이 달려 있었지만, 생산에 들어갔을 때 제작자들이 실수로 그로그랭 리본(Grosgrain Ribbon, 현재 장식과 동일한 골이 들어간 단단한 리본)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피암마는 그걸 마음에 들어했고요.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콘택트 하이(Contact High)의 설립자 카르멘 홀(Carmen Hall)은 최근 페라가모의 바라 재발매 작업을 진행하면서, 바로 그 디테일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문자메시지를 통해서 “편하고 우아하고, 리본 장식이 정말 마음에 들어요”라고 말했죠. “실수를 디자인 과정의 일부로 받아들인 좋은 예죠.” 할머니에게 첫 바라를 물려받은 팔로마 엘세서처럼, 카르멘 또한 첫 바라를 이웃에게서 물려받았고요. 제 첫 페라가모 펌프스도 물려받은 것이었습니다. 로마에서 리서치 어시스턴트로 일하던 열여덟 살 무렵, 동료의 아내가 한 번도 신지 않은 아껴둔 신발 한 켤레를 선물했고 그것이 제 첫 페라가모가 되었죠. 몇 달 전 우연히 갤러리 오프닝에서 그녀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바로 그 신발을 신고 있었습니다. 제가 여전히 신발을 아낀다는 것을 보여주면 그녀가 감명받을 거라 여겼고요. 하지만 제 낡은 펌프스를 본 그녀는 코를 찡그리며 요즘 작가들이 돈을 얼마나 버는지 궁금해했습니다.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이베이를 스크롤하며 두 번째 바라를 구입했습니다. 대체 이 신발의 어떤 매력이 저를 끌어당기는지 궁금해졌죠. 글쎄요, 이번 시즌 제 무드보드는 <뉴욕의 진짜 주부들>의 맨해튼 여성으로 가득합니다. 그리고 저는 다큐멘터리 영화 <그레이 가든(Grey Gardens)>을 오랜 스타일 바이블로 삼아왔습니다. 미국의 로열패밀리 에디스 부비에 빌과 에디스 빌 모녀를 관찰한 영화에서 ‘바라’가 등장하는 건 아니지만, 분위기는 확실하죠. 어쩌면 이 가느다란 아몬드 토 펌프스가 <섹스 앤 더 시티>의 사만다나 샬롯과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단정하면서 어딘지 엉뚱하고 그러면서도 세련됐죠. 공통점은? 제가 되고 싶은 여성이면서, 다면적이고, 특정 나이대의 여성이며,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특정한 세금을 내고 있는 부자 여성입니다.
엠마 데이비슨 역시 가짜 페라가모를 접할 때부터 이를 직감했습니다. “옛날 할머니의 시크한 스타일에 섞인 그런지한 느낌이 제 마음을 사로잡은 것 같아요.” 이베이 중독자인 그녀는 올해 경매에서 처음으로 정품을 샀습니다. “이번에는 할머니 스타일보다는 어퍼 이스트 사이드의 부유한 괴짜 여성으로 스타일링하고 있어요. 아디다스 트랙 팬츠나 빈티지 레이서 반바지, 슬로건 티셔츠와 매치한 다음, 그 위에 거대한 인조 모피를 얹는 걸 좋아해요.”

카르멘 홀도 바라에는 타고난 고상함이 있다는 데 동의합니다. “최근까지만 해도 이렇게 여성스러운 신발에는 관심이 없었어요. 이 신발을 선택한다는 건, 지금 더 여성스러워진 까닭이 아닐까요? 어릴 때는 말괄량이였거든요.” 그녀 역시 비싼 것과 저렴한 것을 섞는 하이-로우 스타일링을 선호하는데, 더 로우의 재고 원단으로 친구 소피아 피시(Sophia Fish)가 만든 실크 팬츠와 매치합니다. “작은 굽이 달린 바라와 제가 정말 자주 입는 아워레가시 후디를 같이 매치하는 걸 좋아해요.” 그녀는 “셀카 찍는 여자는 아니에요”라며 사진 요청을 거절했고, 그래서 사진이 없습니다.
클래식 슈 리페어 행사에 가져갈 때까지 오래된 검은색 바라는 쉬게 하고, 저는 새로 산 중고 스웨이드 제품으로 브라운 컬러 스타일링을 하고 있습니다. 그 바라는 제 스타일이 성숙해졌음을 보여주는 아이템과도 무척 잘 어울립니다. 크리스토퍼 케인의 플라스틱 레오파드 프린트 맥 코트와 착용해도 근사하고, 마린 세르의 오페라 글러브, 브라운 컬러의 레이스 타이츠, 이세이 미야케의 플리츠 플리즈와도 잘 어울립니다. 아까 말했다시피 약간은 단정하고, 약간은 엉뚱한 느낌이죠.

엠마도 페라가모를 통해 더 혼란스럽고 개성 있는 옷차림을 완성하고 있습니다. “패션 커리어 초기, 지루하게 옷을 입으며 시간을 허비했지만, 이제는 옷을 통해 개성을 표현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바라는 지금 그 과정에서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죠. 앞으로도 로테이션에서 빠질 일은 없을 것 같아요. 제 궁극의 클래식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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