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아이디어 뮤지엄, 만지고 감각하라!

2025.12.19

아이디어 뮤지엄, 만지고 감각하라!

너와 나, 사물, 환경은 어떻게 관계 맺을까? 샤넬 컬처 펀드와 리움미술관의 아이디어 뮤지엄은 ‘만지고 감각하기’부터 시작했다.

키보드를 두드리면서 손가락에 닿는 촉감을 새삼 인지해본다. 단단하지도, 물컹거리지도 않는 단면이 기분 좋게 손끝을 튕긴다. 잠시 읽던 것을 멈추고 천천히 침을 삼켜보자. 침의 달큼함, 코 안쪽으로 슬며시 올라오는 냄새, 부드럽지만 축축한 촉감을 느껴보는 것이다. 이 ‘감각하기’는 내가 명상을 어려워하자, 한마디로 자꾸 졸자 요가 인스트럭터가 권한 방법이다. 밖으로 향한 시선을 나에게로 돌리는 연습이다. 감각하기는 나를 넘어 타인, 사물, 환경을 보는 시선을 변화시킬 수 있다. 키보드의 촉감을 인지하는 순간, 이 사물과 내가 관계를 맺는다고 믿는다.

이를 더 심화하고 구체적으로 다루는 행사가 있었다. 먼저 생경하고 흐뭇한 사진이 도착했다. 세계적 인류학자 팀 잉골드(Tim Ingold)가 한국의 어르신들과 까슬까슬한 짚풀을 꼬면서 소년처럼 웃고, 참가자들은 들판의 찬 바람을 호흡하며 연을 날리고, 물컹물컹한 찰흙을 주무르며 동물 인형을 빚는다. 모두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즐거워하며 손끝에 느껴지는 감각에 집중하고 있다. 아이디어 뮤지엄(Idea Museum)이 보낸 장면들이다.

기후 위기, AI 윤리, 삭막해지는 인간관계 등의 사회문제는 단일한 학문이나 접근으로는 해석할 수 없다. 여러 분야의 시각을 한데 모아야만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이런 다학제 심포지엄과 행사가 많아지는 가운데, 2023년부터 샤넬 컬처 펀드(Chanel Culture Fund)의 후원으로 열리는 아이디어 뮤지엄도 그중 하나다. 아이디어 뮤지엄은 리움미술관이 추구하는 핵심 가치인 포용성, 다양성, 평등, 접근성을 예술적 상상력을 통해 탐구하는 중장기 연구 프로그램이다.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라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려 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2023년 첫 번째 아이디어 뮤지엄은 ‘기후 위기와 지속 가능성’이 주제였고, 2024년엔 ‘젠더와 다양성’을 이야기했다. 2025년 11월 25일 개막한 세 번째 프로그램 <In the Middle Voice: 다섯 개의 움직임>이 2026년 7월 31일까지 이어진다. 먼저 ‘배움과 관계’를 주제로 4일간 워크숍이 열렸고, 팀 잉골드와 참가자들의 해맑은 사진이 현장의 모습이었다.

팀 잉골드는 인간과 환경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자다. 인간을 환경 위에 선 존재가 아니라 환경과 함께 나아가는 존재로 보았으며, 사람과 사물, 동물이 서로 관계 맺으며 교류하는 방식을 탐구해왔다. 그의 기조 강연은 ‘중동태의 자리에서 성찰하기: 대를 잇는 삶, 지각, 그리고 배움’이라는 주제로 시작했다. 중동태(Middle Voice)는 무엇인가? 능동과 수동의 이분법을 넘어 행위와 변화가 공명하는 과정으로,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앎을 탐구한다. 어려워 보이지만 이 학자는 이렇게 일괄한다. 세상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경험하라고 권고한다. 또한 교육은 혼자 쌓는 것이 아니라 서로 나누며 함께하는 과정(커머닝, Commoning)이다.

그 과정의 첫 단계는 움직이고 감각하기다. ‘만들기’ 워크숍이 리움미술관, 남산, 한강공원, 파주 직천리 짚풀문화마을 등에서 열렸다. 앞서 사진에서 본 흙과 짚풀, 연 등을 만들고 움직이면서 몸과 재료의 관계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참여한 인류학자 황희선은 잉골드 교수가 위대한 학자임에도 다정하고 소탈하게 사람들을 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사람들의 추상적인 관계를 흙이라는 매체로 구현해 만져보는 워크숍이 잉골드의 강연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인상 깊었어요.”

<In the Middle Voice: 다섯 개의 움직임>은 더 적극적인 움직임으로 이어진다. 춤추기, 연주하기, 합창하기, 듣기를 중심으로 한 워크숍, 퍼포먼스, 예술가 협업 프로젝트를 마련한다. 안무가 안은미, 첼리스트 겸 작곡가 이옥경, 즉흥 음악가 필 민턴(Phil Minton) 등이 안내자가 될 것이다. 한 번의 감각하기, 움직이기가 즉답을 주진 않을 거다. 하지만 정체된 현실을 조금이라도 흔들 거라 믿는다. VK

    피처 디렉터
    김나랑
    COURTESY OF
    CHAN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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