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브루넬로 쿠치넬리가 꿈을 영화 같은 현실로 만드는 방법

2025.12.22

브루넬로 쿠치넬리가 꿈을 영화 같은 현실로 만드는 방법

삶으로 증명한 낙관의 가치. 온화한 꿈이 영화적 현실이 될 때.

브루넬로 쿠치넬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대지와 빛이다. ‘캐시미어의 제왕’이나 ‘촉감의 럭셔리’ 등 브루넬로 쿠치넬리의 캐시미어를 지칭하는 수식어도 있지만, 내게는 직관적인 느낌이 그렇다. 이 브랜드는 자연을 닮았다. 색감이나 소재도 그렇지만 브랜드 성격 자체가 자연스럽고 즐겁다. 밀라노 패션 위크마다 열리는 프레젠테이션은 늘 새로운 브루넬로 쿠치넬리 컬렉션을 입은 모델들 사이에서 샴페인을 기울이고 음식을 양껏 먹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진지하고 근엄한 자세로 새로운 컬렉션을 일방적으로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옷을 입은 모델들에게 포즈를 요구하고 옷에 대한 감상을 자유롭게 물어볼 수 있는, 함께 어울리는 분위기다. 빼곡한 패션 위크 스케줄 속에서도 많은 프레스들이 브루넬로 쿠치넬리 프레젠테이션 현장을 빼놓지 않고 찾는 건 브랜드에 대한 애정은 물론 이벤트 현장이 주는 심리적 편안함, 휴식 같은 시간 때문일 거다.

그리고 우리는 지난 12월 4일, 브루넬로 쿠치넬리가 지닌 특유의 아늑함과 여유의 근원, 그러니까 브루넬로 쿠치넬리의 개인적이고 직업적인 역사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브루넬로 쿠치넬리의 삶과 철학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Brunello: the Gracious Visionary>를 통해서 말이다. ‘브루넬로, 온화한 비전가’라는 제목의 의미 그대로, 영화는 야심 차지만 세상을 낙천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쿠치넬리 삶의 온도를 담았다. 프리미어의 장소도 상징적이었다. ‘이탈리아 영화의 심장’이자 ‘유럽의 할리우드’라고 불리는 로마의 영화 스튜디오 치네치타(Cinecittà). 페데리코 펠리니, 마틴 스콜세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등 세계적 감독들이 상상력을 현실로 구현해낸 이곳에서 브루넬로 쿠치넬리의 첫 번째 영화가 최초 공개된 것이다. 영화는 <시네마 천국>의 주세페 토르나토레(Giuseppe Tornatore)가 감독과 각본을 맡았고, <인생이 아름다워>로 오스카상을 수상한 니콜라 피오바니(Nicola Piovani)가 음악을 구성했다. 영화를 보기 전부터 감독과 음악감독의 이름만으로도 믿음이 갔다. 영화는 따뜻할 것이다. 12월에도 얇은 코트 하나면 충분한 로마의 포근한 겨울처럼. 정말 영화는 로마와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고대와 현대가 절묘하게 섞인 로마의 풍경은 현실에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데, 이 영화가 꼭 그랬다. 현실적이면서 이상적이었다. 주세페 토르나토레는 감독 노트에서 이렇게 밝혔다. “이 작품은 다큐멘터리도, 극영화도, 광고도 아니다. <Brunello: the Gracious Visionary>는 세 장르가 서로 얽혀 하나의 직조물처럼 완성된 작품이다.” 그 말처럼 영화는 쿠치넬리의 내밀한 회고 혹은 친구와 가족의 증언과 함께, 배우들이 그 시절을 연기하는 극영화적 장면이 교차하는 형식이다. 한 인물을 주제로 한 영화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방식으로 그의 생을 형성한 장소와 결정적 순간들을 다시 찾아간다. TV나 전기 없이, 자연과 교감하며 살았던 농촌에서의 유년 시절부터 10년 동안 같은 바를 드나들며 사람들과 소통했던 자유로운 청년기, 브랜드의 세계관이 담긴 마을 솔로메오에 이르기까지 개인의 기억, 주변인의 이야기, 아카이브 영상을 기반으로 한 스토리가 담겨 있다. 영화 제작에는 총 3년이 소요됐는데, 편집을 마친 후 아직 완성본을 보기 전 쿠치넬리가 토르나토레 감독에게 소감을 묻자 “나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기자회견에서는 유머러스하게 말했지만 감독 노트에는 “시간이 흐르며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라는 두 형식은 단순히 공존하는 것을 넘어 서로 교차하고 침투해 위험을 감수하는 실험적 구조를 만들어낸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명백히 실험 영화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라고 적었다.

보통 한 인물에 대한 전기 영화는 3인칭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Brunello: the Gracious Visionary>는 쿠치넬리 본인의 목소리가 영화를 주도한다. 상영회 다음 날 열린 기자회견에서 쿠치넬리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이 영화를 만들기로 결정한 건 어느 정도 ‘삶 이후’에 대해 생각할 나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보통 전기 영화는 사후에 제작되기 마련이지만, 저의 의견은 조금 달랐습니다. 세상을 떠난 뒤 누군가 제 이야기를 엉망으로 재구성하는 걸 원치 않았어요. 꼭 제가 살아 있을 때, 저의 목소리로 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쿠치넬리는 이야기의 흐름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그건 온전히 토르나토레, 창작자의 몫이었다. 토르나토레는 농담 섞인 말로 그 점을 확실히 강조했다. “쿠치넬리는 단 한 번도 서사에 간섭하거나 방향을 바꾸려 하지 않았어요. 촬영본을 보여달라고 한 적도 없었고, 완성되고 난 뒤에야 처음으로 영화를 보았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처럼 지나칠 정도로 조용했어요.(웃음)”

쿠치넬리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핵심은 ‘꿈’이다. 자유, 반항, 방황 같은 모든 젊은이의 이야기가 영화 속에 존재하지만 쿠치넬리가 강조한 대로 영화는 결국 “끈기와 열정의 서사”다. 처음으로 캐시미어에 컬러 염색을 시도한 일, 자신만의 오렌지색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사건, 자연과 가까웠던 어린 시절을 반영한 친환경적 캐시미어 생산법(카슈미르 염소를 빗질해 수확한 섬유로 제작한다), 팀원 중 하나가 “그는 모든 제작 과정에 참여해요. 어쩌면 너무 많이요”라고 농담을 던질 정도로 여전히 일에 열정적인 지금까지, 브루넬로 쿠치넬리 성공의 역사가 촘촘히 펼쳐진다. 결국 영화는 평범한 이야기를 비범하게 바꾸는 건 집요한 몰입과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약간의 운이라는 걸 깨닫게 한다(처음 캐시미어 염색을 시도했을 때 지불할 능력이 없던 쿠치넬리에게 흔쾌히 “나중에 달라”고 말했던 공장장을 비롯해 쿠치넬리 주변에는 늘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영화 속에서 쿠치넬리의 부인 페데리카 벤다(Federica Benda)가 쿠치넬리에 대해 묘사한 그대로다. “그는 늘 원하는 걸 해내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브루넬로 쿠치넬리의 가장 중요한 철학인 ‘인문학적 자본주의’가 영화를 관통한다. 인간의 존엄과 아름다움, 사회적 정의가 브랜드의 기반이자 기본임이 내포되어 있다. 실제 그는 직원을 ‘협력자’라 부르고 14세기에 지어진 작은 중세 마을 ‘솔로메오’를 복원하면서 그저 멋진 본사를 짓겠다 정도가 아니라 ‘인간을 위한 마을’이라는 슬로건 아래 프로젝트에 접근했을 정도다. 그는 분명 성공한 기업가지만,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같은 철학자의 가르침 아래 여전히 인간에 집중한다. 쿠치넬리의 삶은 자본에 지배되는 우리 시대에서 품위와 아름다운 삶에 대한 이상적 질문을 던진다.

결국 <Brunello: the Gracious Visionary>는 어쩌면 이상이 현실로 실현될 수 있다는, 용기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특히 불투명한 미래 속에서 삶을 사랑하고, 끝없이 도전하며, 결국 이루어낸 쿠치넬리의 이야기는 영감을 건넨다. “용기가 있다면 꿈이야말로 운명을 움직이는 진짜 엔진”이라는 쿠치넬리의 믿음은 삶으로 증명됐고, 그의 삶은 우리에게 희망을 더한다. 감독 토르나토레의 말처럼, 특히 이 시대의 젊음에 말이다. “이건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젊은 세대를 위한 것입니다. 브루넬로 역시 방향을 잡지 못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의 이야기가 지금의 젊은이들을 포용할 수 있길 바랍니다. 그리고 착하다는 것, 온화하다는 것의 가치를 알려줄 수 있길 바랍니다. 행복은 또 다른 행복을 불러옵니다.” VK

    디지털 디렉터
    권민지
    COURTESY OF
    BRUNELLO CUCINELLI
    SPONSORED BY
    BRUNELLO CUCINEL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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