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경 각본에서 박찬욱 영화까지

최근에 출간된 박찬욱 영화의 각본을 읽었다. ‘영화’의 태생적인 일시성을 무한대로 확장시키고 박제된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되살리는 ‘전지전능함’의 쾌감을 맛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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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은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박쥐>, 이 세 편을 두고 ‘정서경 3부작’이라고 칭했다”고 한다. 여기에 지난해 개봉하여 미국판 <보그>가 ‘가장 패셔너블한 영화’ 중 한 편으로 꼽은 <아가씨>까지, 박찬욱의 대표작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공통점 중 하나는 바로 정서경이라는 이름이다. 두 사람의 인연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대 철학과를 때려 치고 영상원 시나리오과에 입학한 정서경은 모 단편 제작 공모전에 <전기공들>이라는 영화를 내면서 심사위원이었던 박찬욱과 처음 만났다. “특유의 이상야릇하고 동화 같은, 묘하게 멜랑콜리한 느낌에 매료된” 박찬욱은 그 이후 미국에서 제작한 <스토커>를 제외한 모든 각본을 정서경에게 맡겨왔다. 이번에 그책 출판사가 출간한 네 편의 각본은 그 역사의 기록이기도 하다.

10여 년 전 정서경 작가와 인터뷰 했을 때, 그녀는 작업 과정을 이렇게 전했다. “결말도 모른 채, 감독님과 대사를 하나씩 주고 받으면서 써 내려가요. 마치 탁구공을 주고 받듯이 말이에요.” 그리곤 “너나 잘 하세요~” 같은 명대사는 “모두 감독님의 것”이라며 엉덩이를 뺐지만, 이건 시나리오를 쓰는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영화를 만드는 태도의 문제다. 감독과 작가와의 관계, 영화와 각본의 관계를 재고하도록 만드는 새로운 태도. 이를테면 감독의 의도가 이해되지 않으면 이해한 척하지 않고 이해가 안 된 대로 그냥 쓴다는 말은 인상적이었다. 작가의 그 혼란한 상태야말로 캐릭터를 몇 겹 더 풍성하게 한다고, 감독이 아니라 관객에게 더 가깝게 만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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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의 영화들에 대한 호오(好惡)가 홍해처럼 갈라질지언정 영화 자체가 무난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특히 그가 만든 여성 캐릭터를 떠올려 보라. 섬세함과 담대함을 각기 다른 방향으로 끝까지 밀어 붙여, 결국은 세상 어디쯤에서 만나게 하는 이 범상치 않은 여성들은 함께 ‘대화하고 싶은’ 이들이었다. 그러니까 정서경 작가는 한 문장으로 정의될 수 없는 이 남다른 여자들의 탄생을 가능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가장 처음으로 이해하고 사랑한 여자인 셈이다.

어떤 영화의 각본을 읽는다는 것은 꽤 내밀한 행위다. 영화를 최초로 활자화한 감독과 작가의 의도와 이 영화가 세상에 나올 수 밖에 없었던 명분을 지지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흥행성적과 별점과는 상관 없이 ‘성공한 상업영화’의 관습과 규칙에 균열을 내는 박찬욱의 영화라 더욱 즐거웠다. 네 편의 영화 각본은 하드보일드 소설 같기도, 기이한 멜로 같기도, 골 때리는 일기 같기도, 동성친구끼리의 비밀편지 같기도 했다. 그렇게 ‘박찬욱 월드’를 내 마음대로 읽는 과정에서, 정서경 작가가 지난해의 문제작 <비밀은 없다>의 각본을 썼음을 새삼 알게 되었다. 박찬욱이 있든 없든, 이제 정서경은 정서경이라는 기대가 차 올랐다.

“<아가씨>를 좋아하는 젊은 여성들을 보면 손을 꼭 잡고 싶어진다. 그 젊은 여성들은 나에게 ‘대화의 대상으로서의 관객들’의 존재를 알려주었다. 사실 나는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나면 한동안 대사들이 한 줄 한 줄 기억이 나서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속으로 동시에 재생하곤 했다. 아주 오랫동안 그것은 나 혼자서만 하는 놀이였다. 그런데 그 놀이를 다른 여자아이들이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얼마나 기뻤는지.”
– <아가씨 각본> 정서경의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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