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 아이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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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5

by 이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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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존 틀에 안주해온 향수 시장을 ‘힙’하게 만들며 모든 규칙을 깬 남자. 천부적 비즈니스 감각의 벤 고햄이 뷰티 아웃사이더 이사마야 프렌치와 바이레도 색채의 세계를 창조했다.

    “획일화된 미의 기준에 신물이 났어요.” 향 남자 벤 고햄(Ben Gorham)이 메이크업에 손을 댄 이유는 단호하고 명쾌하다. “아름다움의 기준이 보정 속옷 브랜드 스팽스에서 ‘이렇게 하세요! 이렇게 보여야 해요!’라고 광고하는 획일적 기준에 맞춰져 있었죠.”

    10월 6일 바이레도 첫 번째 메이크업 라인이 탄생한다. <보그>를 보는 여자라면 먼저 디자인에 대해 ‘감’이 올 것이다. 약품 패키지를 연상시키는 향수병과 향초는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북유럽 감성의 대명사다. 하지만 바이레도 메이크업 라인은 추종자들의 기대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벤은 메이크업 라인을 ‘컬러의 창조적 향연’이라 소개했다. 맨 먼저 발표하는 제품은 ‘컬러 스틱’이다. 늪지가 연상되는 카키 그린부터 1970년대 유행했을 법한 오렌지 컬러까지 16가지 색채로 구성된 다용도 멀티 스틱이다. 그뿐 아니다. 리퀴드 아이라이너, 마스카라, 15종의 립스틱이 구조적 디자인을 뽐내는데 깎아 내린 듯한 레드 마스카라 케이스는 1980년대 멤피스 스타일의 벽난로 장식에 쓰일 듯하다. 바이레도식 미니멀리즘이 뷰티 은하계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자 그는 뷰티의 미래야말로 ‘자기표현의 극대화’에 달려 있다고 확신했다. 파트너 이사마야 프렌치(Isamaya Ffrench)는 보형물을 이용한 작업과 아름다움의 유한함에 몰두하는 비주얼 아티스트로 유명하다. 웰니스를 강조하는 일반적 뷰티 관점과 180도 다른 독특한 시각을 지녔다. 특히 카일리 제너는 AI를 활용한 그녀의 작업에서 얼굴이 녹아내리는 듯한 파격적 메이크업으로 변신한 적 있다. “한 가지 수식어로 정의되지 않기 위해 오랜 시간을 투자한 재원이죠.” 벤의 설명이다.

    © Josh Wiks

    © Josh Wiks

    이사마야는 벤의 뷰티 비전을 세계적 화장품 연구소와 협업해 그야말로 환상적인 컬러 컬렉션으로 완성했다. “우리의 컬러 접근 방식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과 다름없어요. ‘바이레도’와 어울리는 색을 채집했죠. 화학 원료도 최소화했습니다.” 반짝임이나 지속력처럼 주요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 연구소를 제집처럼 드나들던 때를 떠올리며 그가 덧붙여 설명했다. 립스틱 라인은 피부 톤을 초월한 컬러로 구성되는데 여기에 은은한 향까지 겸비한 점은 다분히 ‘바이레도’적 선택이다. 이사마야는 벤에게 제품뿐 아니라 패키징과 이미지 메이킹에도 신경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녀의 의견에 동의한 벤은 자신의 말을 증명하듯 메이크업 라인을 SNS에 처음 공개할 무렵, 비주얼 아티스트 제시 칸다(Jesse Kanda)가 작업한 컴퓨터 그래픽 이미지를 함께 포스팅했다. 광고에 제품을 드러내지 않는 꼼데가르송의 선구적 작업을 떠올리며 감정을 전달할 캠페인을 이사마야가 비로소 완성한 것이다.

    협업으로 시작한 둘의 인연은 우정으로 이어졌다. 파리에서 처음 나눈 대화에서 그들은 서로가 스포츠 팬이란 사실을 감지했다. 알다시피 벤은 실제 유럽 프로 농구 팀에서 뛴 경험이 있는 데다 이사마야는 다이빙과 춤 실력이 수준급이다. “둘이서 화장에 관해 얘기하다가, 느닷없이 전기 바이크를 타보자고 제안할 수도 있는 거죠.” 벤이 말했다. “그녀를 대신할 인물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군요.”

    Vogue Korea 메이크업 라인을 선보이는 결정적 계기는 뭔가요?
    Ben Gorham 3년 전 우연히 만난 이사마야 프렌치의 ‘아웃사이더’ 성향에 완전히 매료됐어요. 바이레도 메이크업 라인의 적임자라 여겼죠. 아니나 다를까, 우리는 비주류적 시선으로 하나가 됐습니다. 공통 비전 아래 ‘컬러’라는 요소가 바이레도에서 중요한 터닝 포인트로 작용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VK 뷰티 월드는 수많은 브랜드와 제품으로 포화 상태입니다. 이토록 치열한 경쟁 가운데 바이레도의 생존 전략은 뭔가요?
    BG 트렌드를 좇지 않습니다. 이미 존재하는 다른 모든 브랜드가 다루는 흔한 유형의 것들을 선보이지 않겠다는 의미죠.

    VK 독특한 형태의 기하학적 디자인이 일품입니다.
    BG 디자인은 제품의 기능과 활용도를 반영합니다. 저는 이사마야의 독특한 세계관을 이러한 물리적 형태의 물체로 재해석했죠. 고대 유물, 개인적으로 아주 현대적으로 느끼는 것 그리고 이것을 어제 디자인한 것인지, 3000년 전에 디자인한 것인지 알아차리기 힘든 물체로부터 힌트를 얻었어요. 한마디로 말하자면 ‘미래 기억 이론(Future Memory Theory)’.

    VK 아이섀도 팔레트 ‘사이먼서(Sciomancer)’는 손안의 작은 예술 작품 같아요.
    BG 굴 껍데기 안으로 흘러 들어가는 금빛 액체를 표현했어요. 촉감도 끝내주죠. 선반에 툭 올려두는 것만으로도 그림이 됩니다.

    VK 실버(컬러 스틱), 골드 & 실버(립스틱), 레드(마스카라), 그린(아이라이너), 블랙(립밤) 등 카테고리별 패키지 컬러가 다릅니다. 의도한 부분인가요?
    BG 그렇진 않아요. 패키지 컬러와 디자인의 조화가 가장 중요했고, 그다음은 손안에 딱 맞게 설계하는 것이었죠. 그런 의미에서 반짝이는 메탈 소재와 잠금장치는 탁월한 선택이었어요.

    VK 심오하면서도 허를 찌르는 작명 센스는 당신의 특기입니다. 메이크업 라인에서도 유효한가요?
    BG 이사마야와 컬러 이름을 지으며 아주 유쾌한 시간을 보냈어요. 꽤 복잡한 과정이었는데, 이사마야는 먼저 광범위한 색채의 집합체인 컬러 칩을 제작한 뒤 이미지와 사진을 통해 바이레도와 어울리는 컬러를 채집했습니다. 해당 색깔의 픽셀을 확인하고 폴더에 추가하는 식이었죠. 그런 뒤 나란히 앉아 우리에게 의미 있고 맘에 드는 색을 고른 다음 서로에게 이 색깔이 어떤 것을 연상시키는지 물으며 이름을 지었습니다.

    VK 기능성과 더불어 천연 원료를 강조하고 있어요. 클린 뷰티 트렌드의 일환인가요?
    BG 프로젝트 시작에 앞서 고려 사항이 몇 개 있었어요. 그중 하나가 원료였죠. 저라면 결코 함유하고 싶지 않은 재료와 화학물질이 시중엔 꽤 많으니까요. 그래서 이번에 론칭한 립밤은 약 99.8%가 자연원료로 이뤄집니다. 더한 건 비타민 E가 전부죠. 또 모든 성분은 유전자 변형과 살충제 등 농약이나 화학 비료로부터 자유롭습니다. 다시 말해 글루텐 프리(Gluten-Free) 화장품이죠.

    VK 가장 애착이 가는 제품이 궁금하군요.
    BG 아이섀도 팔레트.

    VK 바이레도식 메이크업은 어떤 의미일까요?
    BG 한 사람을 위한 향수를 창조하는 것 혹은 한 가지 해석으로 스스로를 가두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아요. 여자와 남자가 서로 다른 향수를 쓰는 행위를 이해할 수 없었어요. 컬러와 메이크업 역시 같습니다. 말하자면, 모두를 위한 메이크업 컬렉션입니다.

    © Jesse Kanda

    Vogue Korea 전 세계 수많은 뷰티 브랜드와 협업하고 있습니다. 바이레도 뷰티만의 차별점은 뭔가요?
    Isamaya Ffrench 컨셉부터 디자인, 캠페인까지 모든 것을 관통하는 예술적 철학이 있다는 사실이죠.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서로 융화했을 때 더 극대화되는 특별함!

    VK 스웨덴 뷰티 레이블과 영국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만났습니다. 의견 충돌은 없었나요?
    IF 전혀요! 끝내주게 멋진 과정이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벤과 친구처럼 일하고 열정을 공유하기에 어떤 트러블도 없었죠.

    VK 캠페인 이미지는 비주얼 아티스트 제시 칸다의 솜씨입니다.
    IF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단순히 립스틱 짙게 바른 여자 이미지로 바이레도 메이크업을 알리고 싶지 않았어요. 이 프로젝트는 꽤 예술적이며 패키지 디자인 역시 창의적으로 접근했죠. 제시에게 의뢰한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VK 전반적으로 톤 다운된 딥한 컬러 구성입니다. ‘이 색은 오직 바이레도에만 있다’고 자부할 만큼 특별한 컬러가 있나요?
    IF 화이트와 골드가 가미된 홀로그램 느낌의 카키 그린. 블루와 실버가 어우러진 미드나잇 퍼플. 골드와 화이트 베이스의 톡톡 튀는 오렌지. 또 멋진 컬러를 창조하는 것만큼 피부에서 표현되는 방식도 중요하기에 모두 다른 느낌을 지녔습니다. 립스틱도 마찬가지죠.

    VK 도쿄 로즈(Tokio Rose), 차이나 플럼(China Plum) 등 아시아에서 영감을 받은 컬러가 눈에 띕니다. 당신도 여행을 즐기겠죠?
    IF 즐기는 것을 뛰어넘어 사랑해요! 주로 외국에 머물 때 아이디어를 얻는 편이고, 이 부분에서 벤과 저는 야외 활동과 자연이라는 교집합 덕분에 더 친밀해졌죠.

    VK 쿠마토(Kumato), 소스(Sauce) 등 식재료에서 비롯된 컬러도 흥미로워요. 요리도 잘하나요? 아니면 마켓 쇼핑 애호가?
    IF 세상에! 저의 첫 직업이 요리사였어요. 케임브리지에 머물 때 미슐랭 스타 셰프 수하에서 5년간 일했죠. 요리는 맛, 식감, 색깔 등 수많은 창의력을 필요로 하기에 당시 경험이 큰 도움이 되죠.

    VK 당신이 창조한 바이레도 컬러 팔레트 중 가장 흡족한 컬러를 골라주세요.
    IF 카인다 블루(Kinda Blue). 오묘한 청록색이 그리스 섬을 둘러싼 바다를 떠올리게 합니다. 카키 그린의 쿠마토(Kumato) 역시 추천할게요. 스웨덴의 축축한 숲이 생각나고, 또 빈티지 감성도 불러일으켜요.

    VK 사용법이 따로 없는 ‘컬러 스틱’의 당신만의 활용법이 궁금해요.
    IF 컬러 스틱은 눈과 입술, 심지어 헤어에도 활용 가능합니다. 아주 보편적이며 사용이 쉽고 간편하죠. 참, 컬러 스틱끼리 섞어 쓰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 Bohman+Sjostrand

    VK 영국 태생의 전형적인 브리티시 키즈입니다. 외모를 꾸미는 것에 대한 관심은 언제부터 생겼나요?
    IF 아트와 제품 디자인을 전공했는데 메이크업은 또 다른 형태의 예술로 느껴졌어요. 얼굴에 색을 입히는 예술적 행위는 물론, 메이크업이 지닌 변화의 힘을 사랑합니다.

    VK 과감한 헤어 변신도 즐기더군요. 스트레스 해소 차원인가요, 아니면 치밀한 계획 아래 진행되는 뷰티 메이크오버?
    IF 하하! 그저 새로운 느낌을 좋아할 뿐이에요. 염색만큼 확실한 기분 전환 효과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언제든 원하는 컬러로 염색할 수 있도록 화이트 블론드로 유지하죠.

    VK 이 세상에서 바이레도 메이크업을 가장 잘 연출할 인물은 누굴까요?
    IF 누구든지! 바이레도 메이크업은 모두를 위해, 기분대로, 느낌대로 할 수 있으니까요.

    VK 전 세계 <보그>와 멋진 작업을 보여줬어요.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요?
    IF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슈퍼스타 리한나 그리고 마돈나와의 촬영이 떠오릅니다. 어떤 메이크업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늘 창의적인 결과를 완성하는 인물들이죠. 몇 달 전 영국 <보그> 커버에서 리한나의 ‘Truth’ 페이스 타투 작업처럼!

    VK 올가을 서울 여자들을 위한 바이레도식 메이크업 룩을 제안해주세요.
    IF 온화한 브라운 핑크 톤이 아시아 여자들의 건강한 피부와 잘 맞는 듯해요. 한 가지 더 조언하자면, 입술과 양 볼에 매트한 페탈 색상 ‘컬러 스틱 #바비(Babi)’를 터치해보세요.

    VK 끝으로 가장 좋아하는 단어와 그 이유가 듣고 싶군요.
    IF 에너지! 이미 충만한 상태지만요.

    기이함과 아름다움 사이. 어느 한쪽으로 기우는 순간 무섭거나 지루해진다. 바이레도 메이크업 라인의 히로인 이사마야 프렌치는 그 미묘한 균형에 집중하는 뷰티 아웃사이더다. 드레스는 크리스토퍼 케인(Christopher Kane), 헤드피스는 샬라얀(Chalayan).

    뷰티 디렉터
    이주현
    포토그래퍼
    Marcus Ohls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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