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5년 만에 패션 무대로 복귀한 알버 엘바즈와의 인터뷰

2021.05.11

by Anna

    5년 만에 패션 무대로 복귀한 알버 엘바즈와의 인터뷰

    FACTORY MAN

    우리가 기다리던 알버 엘바즈의 A부터 Z까지.

    평온한 봄, 어느 금요일 오후 5시 30분. 나는 테이블에 앉아 노트북 앞에서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알버 엘바즈 (Alber Elbaz)의 어시스턴트는 줌(Zoom)으로 나와 연결한 후 “잠깐만요, 이제 알버가 곧 들어올 거예요!”라고 말했다. 이윽고 시작된 40여 분간의 화상 미팅. 파리 시간으로는 오전 9시 30분이다. 검정 수트에 아이코닉한 뿔테 안경을 끼고 노랗게 머리카락을 염색한 무슈 엘바즈와 나는 이렇게 공식 대면했다. 그의 어깨 너머로 차곡차곡 쌓인 장작이 눈에 들어와 매우 궁금했지만 그 질문은 일단 보류.

    알버 엘바즈를 실제로 처음 본 건 정확히 1년 전 파리 패션 위크에서였다. 루브르 근처의 모던한 드라이 에이징 스테이크 레스트랑이었다(이곳에서 나는 일본 출신 슈퍼모델 아이 도미나가도 만나 수다를 떨었다. 그녀 역시 엘바즈 시절 랑방 쇼에 선 적 있기에 이 레스토랑에서 알버를 만났다고 나에게 귀띔했다). “그날 당신이 지인과 함께 식사하는 모습을 봤어요. 내가 다시 파리에 간다면, 어디를 추천해줄 건가요?” 인터뷰의 워밍업을 위해 공통분모부터 꺼냈지만 대답은 내 예상과 좀 달랐다. “사실 나는 핫 플레이스 같은 곳은 잘 가지 않아요. 요즘에는 특히 더더욱 집, 회사, 집, 회사만 반복하죠. 만약 시간이 주어진다면 스마트폰 없이 튈르리 공원의 초록색 벤치에 앉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행인들을 구경하고 싶어요.”

    나이와 사이즈에 구애받지 않는 모든 여성을 위한 AZ 팩토리의 2021 S/S 컬렉션.

    지난 1년간 알버 엘바즈는 패션 월드로의 귀환을 준비하고 있었다. 2015년 랑방을 떠난 후 ‘AZ Factory’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지난 1월 오뜨 꾸뛰르 위크에 공식 데뷔했다. “팬시(Fancy)한 옷을 만드는 데는 자타 공인 도사예요. 수십 년간 해왔기 때문이죠. 하지만 AZ 팩토리의 옷은 다분히 현실적인 옷이에요. 우리 주변을 살아가는, 1시간 만에 열 가지 일을 해치우고 돌봐야 할 부모님도, 강아지도, 파트너도 있는 그런 여자들을 위한 옷이죠. 1년 내내 고급 호텔에서만 살 수 있는 여자가 대체 몇 명이나 될까요?” 이브 생 로랑, 기라로쉬, 랑방 등 럭셔리 하우스에서 수십 년간 일했지만 그가 지금부터 만드는 옷은 “싼(Cheap) 가격이 아닌 바른(Right) 가격의 옷”이다. “1,800유로의 티셔츠를 디자인해 팔았던 적도 있어요. 하지만 이제 일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꿨죠. 매 시즌 컬렉션을 디자인하고 그 안에 아이템을 두루 갖춰 완성해왔다면, 이제는 한 아이템만 집중 공략합니다. 세상에는 너무 많은 옷이 있죠. 그렇다면 그 옷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있어야 하죠. 블랙 드레스를 만들더라도 이 안에 들어가는 최신 기술, 친환경 시스템 등의 요소를 삽입하는 식이죠. 시즌에 구애받지 않고 한 번에 하나의 스토리와 제품을 공개하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스포티한 레깅스와 니트웨어를 조합한 ‘MyBody 2.0’ 컬렉션, 스니커즈와 구두의 장점을 결합한 ‘Pointy Sneaks’, 여러 명의 아티스트와 협업한 실크 파자마 ‘Switchwear Pyjamas’ 등 AZ 팩토리 웹사이트(azfactory.com)에서는 여러 컬렉션에 담긴 스토리를 확인하고 즉석에서 구입도 가능하다.

    나이와 사이즈에 구애받지 않는 모든 여성을 위한 AZ 팩토리의 2021 S/S 컬렉션.

    AZ 팩토리에는 지난 5년간 알버 엘바즈가 패션과 삶, 여성에 대해 고민한 결과가 응축되어 있다. “제가 패션계를 떠나기 전에 여러 친구들에게 질문했어요. 많은 압박 속에서 일하는 패션계에서 진정 행복하냐고. 에디터들과 저널리스트 친구들에게도 물어봤죠. 세트장에서, 현장에서 행복을 느끼는지.” 사실 나도 그 질문에 해당되는 사람이기에 그들의 대답이 무척 궁금했다. “모두가 ‘난 행복하지 않다’였어요. 저 역시 패션계를 떠날 땐 정말 ‘Too Much’, 과부하 상태였어요. 정상에 올랐는데 계속 더 높은 산으로 올라가라고 사람들이 부추기는 것 같았죠.”

    알버는 쉬는 동안 디자이너가 아니라 심리적으로나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여성을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상상의 여성이 아닌 지금 제가 눈앞에서 얘기하는 당신이라면 어떤 옷을 입을지, 입을 만한 옷을 떠올렸어요. 패션 위크에서는 모두가 화려한 튤 드레스와 멋진 모자를 쓰지만 제 주변 여성들은 그저 셔츠 차림에 레깅스를 입고 파자마와 스웨트셔츠를 즐겨 사죠. 1년 내내 두루 입을 수 있는 그런 옷, 옷의 개성이 강해서 입는 사람의 고유 이미지를 희석시키지 않고, 그 여성의 라이프스타일을 담을 수 있는 옷을 원했어요.” 그렇다면 사이즈는 어떻게 구성되죠? “XXS에서 4XL까지 있습니다. 몸매와 연령에 구애받지 않고 모든 여성이 입을 수 있는 옷이죠.”

    나이와 사이즈에 구애받지 않는 모든 여성을 위한 AZ 팩토리의 2021 S/S 컬렉션.

    AZ 팩토리가 소속된 리치몬트(Richemont) 그룹에는 까르띠에, 반클리프 아펠, 예거 르쿨트르, 피아제 같은 보석과 시계 브랜드부터 끌로에, 알라이아, 던힐 같은 일급 브랜드가 포진하고 있다. 하지만 AZ 팩토리의 볼드하고 펑키한 주얼리는 30만원대부터다. 또 오프라인 매장이 없고 자체 웹 사이트와 네타포르테, 파페치에서 제품을 판다. 게다가 자칭 ‘First Digital Luxury Brand’라고 칭하며 패션쇼라는 전통적 프레젠테이션도 과감히 버렸다. “이제 런웨이에서 사람들은 옷을 보지 않고 15분마다 한 번씩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죠. 스마트폰으로 옷을 ‘찍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거예요. 사람들이 직접 눈으로 무언가를 보는 걸 멈춘 겁니다. 이 현상이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큽니다.” 지난 1월 오뜨 꾸뛰르 기간 중에 AZ 팩토리는 컬렉션 공개와 동시에 ‘패션쇼’가 아닌 ‘Show Fashion’이라는 25분짜리 패션 필름을 공개했다. 패션쇼를 준비하는 백스테이지에서부터 홈쇼핑 포맷을 차용한 영상, 그리고 알버 엘바즈가 AZ 팩토리를 시작한 이유와 앞으로의 비전을 담은 진정 어린 독백으로 구성했다. 요즘 난무하는 ‘느낌적인 느낌’으로 버무린 패션 필름이 아닌, 실용성 넘치는 영상인 건 분명하다.

    “AZ 팩토리는 스타트업처럼 일합니다. 예전에 3,000명이 탔던 큰 함선을 운항했다면 지금은 25명이 타는 작은 어부용 보트를 이끌어요. 그리고 스태프들을 인스타그램에 공개하죠. 디자인부터 생산팀이 일하는 방식, 우리 옷을 만드는 공장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등등. 이게 바로 투명한(Transparent) 정보 아닐까요? 젊은 세대에게 필요한 정보는 이런 거죠.” 이스라엘에서 태어나 패션 이력 30년이 넘는 그는 누군가에겐 ‘레전드’ 혹은 ‘롤모델’로 기억되고 있다. 그러한 무슈 엘바즈에게도 스승으로 기억되는 인물이 두 명 있다. “제프리 빈(Geoffrey Beene)과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에게서 무엇을 할지 그리고 하지 말지에 대한 판단력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인생의 큰 스승은 바로 어머니죠.”

    나이와 사이즈에 구애받지 않는 모든 여성을 위한 AZ 팩토리의 2021 S/S 컬렉션.

    우리에게 주어진 대화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아차릴 때쯤, 그는 마지막으로 한국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K-팝 스타들은 지금 최고인 것 같아요. 모든 패션 브랜드에서 그들에게 러브콜을 보내잖아요. 팬데믹 이전에는 한국을 자주 방문했어요. 제 파트너 ‘구’도 한국인이고, 저는 한국 드라마는 거의 다 봤거든요. 서울에서 한국 학생들을 지도한 적도 있고. 빨리 한국에 다시 가고 싶군요!” 기다릴게요, 알버!

      에디터
      남현지
      Courtesy of
      AZ Fac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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