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프 시몬스와 큐레이터 프란체스코 보나미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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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프 시몬스와 큐레이터 프란체스코 보나미의 대화

2021-04-03T02:28:36+00:00 2021.04.05|

패션의 영원한 인습 타파주의자 라프 시몬스가 2003년 출간된 <The Fourth Sex>를 공동 편집한 큐레이터 프란체스코 보나미와 대화를 나눴다. ‘체제를 향한 미학적 반응’부터 사람들이 ‘터무니없는’ 값을 지불하는 그의 빈티지 작품에 이르기까지.

“라프 시몬스 아세요? 그는 정말 천재예요!” 이것은 루카 구아다니노(Luca Guadagnino) 감독의 TV 시리즈 <We Are Who We Are>의 10대 주인공 프레이저 윌슨이 영어를 알아듣지 못하고 라프 시몬스(Raf Simons)를 전혀 모르는 베네치아 출신 재봉사에게 감탄을 섞어 말하는 대사다. “아티스트 브라이언 캘빈(Brian Calvin)이 내게 메시지를 보내기 전까지 이 시리즈에 대해 전혀 몰랐어요.” 라프 시몬스가 자신의 밀라노 집에서 내게 말했다. “주인공이 제 브랜드에 흠뻑 빠져서 브라이언과 제가 함께 만든 콜라보레이션 빈티지 티셔츠를 입고 있죠. 그것은 첫 번째 에피소드의 주제나 다름없어요. 심지어 다른 10대들은 그 주인공을 이름으로 부르지 않아요. 말리에타(Maglietta, 이탈리아어로 티셔츠) 또는 ‘티셔츠’라 부르더라고요.”

그것이 기본적으로 오늘 저희가 나누려는 내용이죠. 그렇죠? 맞아요. 그렇지만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구아다니노 감독의 시리즈를 보면서 엄청난 감성적 자극을 받았다는 것부터 말하고 싶군요. 어릴 때 살던 마을 부근에 벨기에 주둔 미국 공군기지가 있었고, 그곳에서 아버지가 근무하셨거든요. 야간 보초병이셨죠. 그리고 오랫동안 미국인 파일럿 자녀들의 스쿨버스 운전기사로 일하기도 했죠.

당신이 유스 문화를 활용하는 방식은 정치적이기보다는 실존적입니다.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거의 20세기 절반을 유스 문화에 대해 생각하며 지내왔어요. 제가 태어난 1968년부터 말이죠. 저는 히피족 부모에게서 태어났어요. 그렇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히피 문화를 가까이하지 않았죠. 그 문화의 미학이 제게는 전혀 흥미롭지 않았어요. 대신 뉴웨이브, 펑크, 그런지 같은 다른 유스 문화의 발현을 미학적 관점에서 살펴봤을 뿐 아니라 그것들이 담고 있는 원칙도 관심 있게 봤죠. 그런 원칙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관련 있다고 생각해요. 젊은이들이 여전히 그것들을 따르는 것도 지켜보죠. 성의 해방, 젠더에 대해 차별을 두지 않는 것, 정치 기득권층에 대한 대립, 생태론적 각성, 자연과의 조화 등을 추구하면서 말이죠. 이 모든 것이 저와 제 창의적 프로세스에 중요합니다. 이 브랜드를 단지 젊은이들뿐 아니라 연령과 상관없이 젊은 사고를 지닌 사람들도 선택한다는 것을 깨닫게 됐죠. 그래서 제가 하는 일이 미묘한 방식으로 정치적 풍자를 살짝 지닌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젊은 사고방식에 대해 이야기할 때 당신은 과거, 현재, 미래에 당신만의 유스에 대한 사고방식에 대해 언급하는군요. 늘 세대 간 단절에 많은 관심이 있어요.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찬성이나 반대, 서로 질문하기 등의 방식으로 다른 세대와 대화하는 것이 갖는 가능성에 매료되어왔죠. 왜 제가 이런 것에 흥미를 갖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는 제 자신을 다른 어디론가 이끌어갈 질문을 스스로에게 제기하는 데 필수적이었죠. 아마 제가 부모님에 대해 가지는 순전한 존경심에서 나왔을 수도 있어요. 어쩌면 린다 로파(Linda Loppa)가 앤트워프 왕립예술학교의 패션학과장이었을 때 그녀를 만나면서 생겨났을 수도 있죠. 저는 그녀와 세대가 달라요. 하지만 그녀를 만났을 때 제 또래보다 그녀와 더 흥미로운 대화를 나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 대화를 통해 더 젊은 세대를 위한 여러 메시지를 제 컬렉션에 담기 시작했어요. 젊은이들에게 한 수 가르치는 그런 사람이 되진 않았죠. 그런 것이 싫거든요. 그보다 가교 역할을 하는 사람이 됐죠.

이제 당신은 인플루언서입니다. 제 자신을 그렇게 여기고 싶지 않아요. 이미 말했듯 연결 고리에 더 가깝죠. 예를 들어, 초창기 헤르만 헤세의 글을 많이 읽고 제 의상에 그의 글귀를 사용했죠. 헤르만 헤세 재단에서 제가 그 글귀를 사용하는 이유와 제가 허가를 요청하거나 저작권료를 지불하지 않는 이유를 묻더군요. 이 방식을 통해 헤르만 헤세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그의 생각을 전달해주고 있다고 대답했죠. 그러자 그들도 수긍하더군요. 그들은 제가 그것을 부당하게 이용했다기보다 헤세의 생각을 세상에 확산하고 있다고 판단한 거죠. 또 제가 개인적으로 영향을 받은 음악도 많이 참조했어요. 저는 록 밴드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Manic Street Preachers)의 팬이었죠. 이 밴드의 리드 싱어 리치 에드워즈(Richey Edwards)가 실종됐을 때, 제 티셔츠에 경찰이 만든 실종자 포스터를 프린트하기 시작했어요. 너무 슬픈 일이기는 했지만, 저만의 방식을 통해 미약하게나마 사람들이 그를 계속 기억할 거라 여겼죠.

당신의 그 방식은 옷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어요. 맞아요. 초창기에 제 자신을 패션 디자이너로 여기지 않았으니까요. 그것은 제 자신에 대해 그리고 현실적이고 눈에 띄지 않는 대화의 결과를 소통하는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과 더 관련되어 있죠.

조용한 대화죠. 맞아요. 그리고 이 조용한 대화를 통해 설치미술가 스털링 루비(Sterling Ruby) 혹은 로버트 메이플소프 재단(Robert Mapplethorpe Foundation)과의 협업처럼 매우 흥미로운 결과가 탄생했죠. 늘 메이플소프의 작품에 관심이 많았어요. 하지만 그 재단이 먼저 제게 손을 내밀었고, 결과적으로 가장 독특하면서도 색다른 협업이 됐죠. 제가 그 아티스트와 대화할 수 없었기 때문이에요. 대신 그의 사진 작품 속 주인공들과 이야기를 나눴어요. 사진 이미지 혹은 신체 부위의 사용 허가권을 얻기 위해서 말이죠. 그 협업 작품은 2017년 피렌체 피티 미술관(Firenze at Pitti)에서 발표했답니다.

당신은 영감을 어떻게 구조화하나요? 수직적인가요, 수평적인가요? 상위에 자리한 순수예술과 하위의 대중문화를 접목해가는 식인가요? 방법론이 따로 있지는 않아요. 모든 것이 자동적으로 제 역할을 하죠. 바뀌어온 것이 있다면 초창기의 순진함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겁니다. 제가 옳다고 느꼈던 것을 그냥 사용할 수는 없어요. 사용 여부를 살피기 위해 먼저 누군가가 그것을 가려내야 하죠. 그 시절엔 많은 글을 활용했어요. 그것은 굉장히 중요했죠. 글의 출처와 상관없이 말이죠. 이제는 제가 직접 글을 써요. 또는 제가 메시지를 사용한다면 저와 연결된 사람들과 협업하죠. 미우치아 프라다는 제 브랜드의 근간이 되었던 이 언어 사용 방식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우리는 첫 컬렉션에서 함께 그 방식을 밀어붙이고 싶어 했죠. 그런 이유로 너무나 위대한 작가이자 사상가 피터 드 포터(Peter De Potter)와도 연락하게 됐습니다.

소셜 미디어의 글을 활용하나요? 다른 사람들에 비해 그다지 많이 활용하는 편은 아니에요. 인스타그램을 정말 조금 활용하죠. 물론 브랜드 때문에 그런 활동을 많이 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소셜 미디어는 너무 빠르게 움직이고 변화하기에 늘 놀랍죠.

우리가 소통하는 방식과 언어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말하고 싶었어요. 제 생각에 그 방식과 언어는 시각적으로 굉장히 유용한 것 같아요. 이런 의미에서 그것을 많이 활용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것이 특별히 즐겁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당신이 발표한 컬렉션 중 하나는 인스타그램에 대한 반응이었잖아요. 백팩 컬렉션이었어요. 소셜 미디어 덕분에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수많은 젊은이를 돌아보며 물리적 연결에 대해 다룬 쇼였죠. 물론 팬데믹으로 인해 단절된 상황이지만 우리가 지금처럼 네트워크를 통해서라도 관계를 이어갈 수 있어 정말 다행이긴 합니다.

배우 존 클리즈(John Cleese)가 창의성에 관한 강연에서 호기심을 국한시키지 않게 하는 ‘Open Mode’ 그리고 계획적으로 스스로를 몰두하게 하는 목적의식이 담긴 ‘Closed Mode’에 대해 이야기했죠. 당신은 어떤 모드에 속하나요? 저는 전혀 폐쇄적이지 않아요. 그렇지만 제가 폐쇄적이지 않다고 여기는 것만큼, 미우치아와 함께 일하며 더 오픈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쇼 시작 몇 시간 전에 아이디어를 떠올릴 정도로, 그것을 실현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것을 실행할 정도로 말이죠. 제 브랜드가 이런 업무 방식에 극단적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프라다와 너무나 환상적으로 궁합이 잘 맞는다는 것을 알게 됐죠. 패브릭 회사 크바드라트(Kvadrat)와도 그렇고. 업무 과정이 대화, 대화, 또 대화, 끊임없는 대화와 오픈된 대화를 기반으로 하는 브랜드죠. 그 과정은 절대 멈추지않아요. 저는 시작도 중간도 끝도 없어요. 그렇지만 이 방식으로 일하는 것을 유지할 수 있었죠. 아주 초창기부터 편하다고 느끼는 규모 이상으로는 브랜드를 키우지 않겠노라 의식적으로 결단을 내려왔기 때문입니다. 직원은 18명에 불과해요. 마케팅 부서도 없어요. 이 거대한 브랜드에서 제가 맡은 역할을 통해, 제 브랜드를 위해 제가 무엇을 원했는지 알게 되었죠. 그리고 제게 필요하지 않은 것도 깨달았습니다.

오래전 당신이 빠른 속도로 앤트워프에서 오스탕드(Ostende)로 운전하는 사진을 갖고 있어요. 속도에 관한 개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패션계에서 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속도를 올리는 데 익숙해집니다. 그래서 자신이 얼마나 빨리 가는지 못 깨닫기 마련이죠. 창의적인 다른 분야를 보세요. 그곳에서는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하지만 대형 패션 브랜드에서 일할 경우, 당신은 일주일에 50~60개 정도의 패브릭을 개발하게 될 수 있어요. 그러나 크바드라트와 협업할 때는 1년에 패브릭 세 개를 개발했을 뿐이죠. 이처럼 패션 분야에서도 조금 더 시간 여유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협업 후 긴장을 풀고 앉아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고 즐기면서 잠시 패션 시스템에서 한발 물러서는 그런 시간 말이죠. 그러다 보면 만반의 준비를 하는 일을 잊을 수도 있다는 것도 알아요.

당신 브랜드의 25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작품 100점을 다시 발표합니다. 기념할 일이니까요. 원래 취지는 더 젊은 세대가 태어나기도 전에 제가 만들었음에도 그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는 몇몇 작품을 만날 기회를 그들에게 주자는 것이었죠. 코로나19 때문에 그렇게 하기로 한 거예요. 컬렉션을 발표할 수 없다 보니, 아카이브를 활용하기로 결정했고, 시즌과 상관없이 발표하기로 했죠. 또 중고 시장에서 폭발적 반응을 얻으며 깜짝 놀라게 만드는 제 작품 몇 점에 대해서도 생각했죠. 2001년 발표한 봄버 재킷 ‘Riot Riot Riot Camo Bomber Jacket’이 거의 5만 달러에 팔렸다는 것을 제가 어떻게 여겨야 하나요? 정말 말도 안 돼요!

나폴레옹이 쓴 편지나 이탈리아 가구 디자이너 카를로 몰리노(Carlo Mollino)의 책상처럼 여기면 됩니다. 진품이 수백만 달러에 거래되잖아요. 리메이크 작품을 몇천 달러에 살 수도 있고. 그건 당신이 신경 쓸 문제가 아니에요. 어떤 사람들은 진품, 즉 역사를 사고 싶은 거죠. 2001년에 만든 그 작품을 원하는 거예요. 아무리 똑같아도 당신이 오늘 만든 것에는 크게 관심이 없죠.오리지널 작품은 당신 인생의 아우라가 담겨요. 우리는 아카이브에 있는 작품의 재발표에 대해 많이 생각해요. 아마 유니크한 작품을 발표하게 될 거예요.

당신 브랜드의 25년을 기념할 100개 디자인 중 몇 가지 주요 작품만 고른다면? 당연히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 봄버(Manic Street Preachers Bomber)’. 이유는 모르겠지만 2002년 ‘버지니아 크리퍼(Virginia Creeper)’ 컬렉션에 발표한 이 스웨터는 지금 소장 대상이 된 진귀한 몸이죠. 그냥 평범한 스웨터예요. 후디도 아니에요. 스웨터에 ‘Nebraska’가 적혀 있죠. 아카이브에서 발표할 작품 100점 중 하나고, 그중에서도 단연 1순위죠. 이유요? 더 많은 의미를 가진 옷도 있어요. Nebraska라고 적힌 그 스웨터에 자연과 관련된 의미가 많이 내포되긴 했지만. 아직도 그 옷이 그런 성공을 거둔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저도 그거 살 거예요! 구매 후기를 남겨주세요.

네브래스카! 정말 멋진 이름이군요! 1998년 발표한 컬렉션에 들어 있던 케이프 몇 벌도 포함되었어요. 이런 작품이 더 유니크하고 흥미로워요. 그리고 그것들은 위시 리스트의 제일 밑에 있답니다.

평범한 스웨터 같은 그런 옷을 둘러싸고 일고 있는 이 광풍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사람들이 이런 옷을 장식용 받침대나 장식장에 넣어두려고 수집한다고 여기지 않아요. 그들은 그 브랜드와 그들 사이의 관계, 그들만의 스토리와 환경 때문에 그런 옷을 수집하는 거죠. 그런 점이 흥미로워요. 사람들이 그런 옷을 여전히 입는다는 게 가장 보람 있습니다.

초창기에 스스로를 패션 디자이너로 생각지 않았다고 말했어요. 그렇다면 스스로를 뭐라 여겼나요? 저는 산업 디자인을 전공했죠. 그렇지만 공부를 마쳤을 때도 여전히 모르겠더라고요. 많은 이들이 잘 모르는 한 가지가 있어요. 제가 벼룩시장 바닥에 담요를 깔고 일주일 전에 샀던 물건 파는 것을 엄청 좋아한다는 거죠. 친구랑 일주일에 대여섯 번 정도 그랬던 적도 있죠. 이 시간이 지닌 물질적 측면과 사교적 측면이 좋아요. 그래서 저는 나이 들면 벼룩시장에 매대를 마련하는 것이 꿈이라고 친구들에게 말하고 있죠.

벼룩시장에 깔린 당신의 담요에서 그 유명한 봄버 재킷을 판매한다면, 가격이 어느 정도 될까요? 제가 그 옷을 판매하면 사람들이 6~10유로 정도 내겠죠. 아니면 정말 쓰레기 같아 보인다고 말할지도 모르죠. 아시다시피, 우리는 구아다니노 감독의 텔레비전 시리즈에 나오는 그 미군 부대 밖에 있었을 의류 상점 스톡 아메리카인(Stock Américain)에서 그 옷을 구했어요. 그다음에 워싱을 했죠. 그것은 체제에 대한 미학적 반응이었어요. 의식적 행동과 무의식적 행동이 뒤섞여 있었죠. 요즘 젊은 세대로부터 형태는 다르지만 그와 같은 반응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들이 여전히 제 브랜드에 많은 호응을 보이고 25년 전 만든 제 작품에 반응을 보이는 이유라고 봅니다.

왜 그들이 그렇게 비싼 값을 치르고 당신 작품을 사는지에 관한 질문의 답이군요. 그들은 역사의 한 부분, 당신의 역사, 당신이 그 옷에 불어넣은 분위기와 반응에 담아놓은 추억을 사는 거죠. 물론 그렇게 순수하지는 않아요. 제 자신도 컬렉터죠.

당신이 예술 작품을 수집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어요. 그 밖에 어떤 것을 수집하나요? 패션 디자이너 마르탱 마르지엘라의 작품을 수집하고 있어요. 정서적 이유도 있지만 그는 혁명적인 디자이너거든요. 그를 통해 여전히 더 젊은 세대가 어떻게 혁명을 하고 있는지, 기존 체제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볼 수 있죠. 우리는 속도, 스케일, 개방성, 자각, 조화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제 생각에 이런 요소는 나이를 불문하고 젊은 마인드에 필수적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