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청춘을 찍는 카메라

2017.03.17

청춘을 찍는 카메라

영화감독 래리 클락, 사진작가 라이언 맥긴리, 패션 디자이너 고샤 루브친스키 등이 포착한 청춘이 디뮤지엄의 전시를 통해 펼쳐진다. 그중 잃어버린 날을 상기시키는 1994년생 사진작가 파올로 라엘리에게 인터뷰를 청했다. 그가 이탈리아 팔레르모에서 딸기 셰이크를 먹으며 작성한 답변.

친구들의 소소한 일상을 꿈같은 기법으로 촬영하는 파올로 라엘리

친구들의 소소한 일상을 꿈같은 기법으로 촬영하는 파올로 라엘리

창밖으로 무엇이 보이나?
숲으로 난 작은 오솔길과 나무에 매달린 그네. 이맘때의 자연에서 느껴지는 색이 좋다.

이탈리아 출신으로 1994년생 사진작가다. 자신을 더 소개한다면?
열여섯 살엔 빨간 후드 티셔츠를 입고 엄청 큰 헤드폰으로 음악을 듣는 아이였다. 머리를 새파랗게 염색하고 아무에게도 말을 걸지 않았다. 열아홉 살에는 사자 갈기 같은 금발로 정원에서 고양이 그림을 그렸다. 지금, 스물두 살의 내 팔에는 친구가 해준 타투로 가득하다.

디뮤지엄에서 <Youth-청춘의 열병, 그 못다 한 이야기>란 전시를 연다(2월 9일부터 5월 28일까지). 당신의 사진은 ‘Youth’라는 키워드를 자동적으로 연상시킨다.
나는 사진을 통해 청소년기라는 황금기를 축하하고 싶다. 내가 누구인지 깨닫기 위해 끊임없이 정보를 모으는, 모든 것이 너무 가볍거나 너무 무거운 시절. 행복, 슬픔, 자유, 사랑, 우정이 내 사진의 주된 테마다. 최근엔 사진을 특별하게 해줄 ‘룩(Look)’을 원하게 됐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분홍빛, 보랏빛을 입혀서 꿈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려고 한다.

디뮤지엄의 김지현 수석 큐레이터는 “그간 비주류 문화로 여겨진 유스 컬처가 현재의 예술, 패션, 음악, 라이프스타일 등에서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키는 점에 주목해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고 한다. 유스 컬처가 왜 부흥할까?
많은 젊은이들이 여러 분야에서 자기식대로 살고 있다. 그것이 젊고, 신선한 방식이기에 ‘유스 컬처’가 형성되지 않았을까? 인터넷의 덕도 크다. 신구의 트렌드 속에 존재하는 몇천 개의 문을 단번에 열었다.

당신의 사진이 어떤 식으로 감상되길 원하나?
처음 느낀 자극을 따라가길 바란다.

A컷을 고르는 기준은?
사진을 무더기로 찍는 편이다. 그들을 쓱 훑어보면 눈이 멈추고 나와 연결됐다고 느껴지는 사진이 있다.

지금 사용하는 카메라는?
니콘 D800. 열여덟 살 생일에 받은 니콘 D90도 좋아한다.

처음 사진을 찍던 순간을 기억하나?
여름휴가의 첫날, 나의 첫 강아지가 해변에서 뒹구는 사진이다. 행복해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강아지는 이제 없고 모든 것이 달라졌지만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Favorita, Roma, 2016

Favorita, Roma, 2016

처음 선물하거나 판매한 사진은?
물론 명확히 기억한다. 누나와 동생이 양귀비 꽃밭에서 껴안고 있는 사진을 엄마에게 선물했다. 처음으로 판 작품은 커플이 키스하는 사진으로, 보이 밴드의 앨범 커버가 됐다.

20대 초반이라는 나이의 장단점은 무엇인가?
나이는 업계에서 중요한 혹은 덜 중요한 인물이 되는 것과 관계없다. 단 내가 많은 것을 누리는 특권층임을 인지하려 한다. 세상에는 나와 나이도 비슷하고 사진에 대한 열정과 목마름을 가졌지만, 자유롭게 펼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가끔은 더 많이 창작하고, 더 나은 무언가가 되고 싶지만, 지금까지 해온 것에 만족한다.

주 활동 무대인 로마가 당신과 작품에 미치는 영향이 큰가?
컬러풀한 골목들, 많은 길고양이가 있는 로마를 좋아한다. 하지만 지역보다 사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로마에서 만난 멋쟁이들이 작품 스타일을 잡는 데 크게 기여했다. ‘지금의 나’가 되는 데도 도움을 줬고. 사진에 로마의 건축물은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 장소는 관광객들로 정신없을 뿐이다.

인스타그램(@paoloraeli)을 활발히 한다. SNS가 어떤 의미가 있나?
그 덕에 내 작품을 세계에 보여줄 수 있다. 심지어 한국 팬도 생겼다. 이보다 행복할 순 없다.

인스타그램에 고양이 사진이 많다. 고양이뿐 아니라 당신에게 영감을 주는 것은?
고양이 세 마리를 키우는데 나만큼 호기심이 많은 녀석들이다. 멋진 사진작가들의 사진집도 좋지만 무엇보다 영감의 원천은 친구들과 그들의 개성이다.

언젠가 카메라에 담고 싶은 인물이나 풍경은?
햇살이 너무 강해 눈을 뜨기 쉽지 않은 날의 새벽. 잠이 덜 깬 채 맨발로 바람 부는 발코니에 나와, 사랑하는 사람과 토스트를 먹는 풍경. 인생을 너무 낭만적으로 보는 걸까.

소장하는 사진집 혹은 즐겨찾기 하는 사진 사이트는?
실제 인터넷을 많이 하지 않지만 텀블러는 수많은 사진작가의 작품을 접하고 영감을 받고 나누기 좋은 사이트다.

Soar, Palermo, 2016

Soar, Palermo, 2016

최신 유행 중에 좋아하는 것과 질색하는 것은?
인터넷에서 유명해지려고 스스로와 타인을 위험에 몰아넣는 바이럴 비디오는 참기 힘들다. 핑크색이 성별과 관계없는 중립적인 색으로 자리 잡은 건 좋다.

이제껏 한 일 가운데 가장 대담한 일은?
편집증도 있고 겁이 많아 너무 위험한 일은 피한다. 모험을 하거나 혼자 어딘가를 방문하지도 않는다.

무엇이 가장 두렵나?
망각. 오늘 하늘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잊힐 거라 슬프다. 지금 피아노 위에 있는 꽃의 향기가 얼마나 좋았는지도. 사진은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사람을 기억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친구들의 사진을 찍어라. 그들이 웃고, 행복할 때, 슬플 때, 파티 하고, 공부하고, 밥 먹고, 잠자는 모습을. 새로 염색했거나 신발을 샀을 때, 처음으로 담배를 말아 피우는 순간과 끊기 직전의 마지막 담배도, 전부다. 그냥 있는 그대로인 친구의 모습을 찍길 바란다. 당장은 친구들이 싫어하겠지만, 언젠가 먼 미래에는 고마워할 거다.

당신 세대를 관통하는 특징은 무엇일까?
서로를 지지하고 포용하며, 아름다움을 받아들이고 긍정적인 분위기를 형성한다. 인터넷, 테크놀로지와도 매우 가깝게 지낸다. 그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변화하고 테크놀로지가 우리를 전진하게 도와주니까.

비록 스타일이 다르지만 당신이 인정하는 사진가가 있다면?
중국의 포토그래퍼 렌 항(Ren Hang). 대담하고 독특하다. 처음 그의 사진을 봤을 때 경외감이 들었다.

만인이 사진을 찍고 소비하는 시대에 갤러리에 걸리는 ‘작품 사진’의 자격은 뭘까?
열정과 자극이 아닐까. 모두가 좋은 사진은 찍을 수 있지만 모두가 뭔가가 느껴지는 사진을 찍지는 못한다. 그게 예술이다.

한국에 오면 카메라에 담고 싶은 풍경은?
서울의 고층 건물이 이뤄낸 스카이라인. 이탈리아는 그렇게 높은 건물이 많지 않다. 그나마 높은 건물이 많다는 밀라노마저도. 남이섬과 한라산에도 가보고 싶다.

오랜 꿈은 무엇인가?
경치가 아름다운 나의 집에 놀러오는 동물들.

우리가 놀랄 만한 비밀을 하나 말해준다면?
고층에 갈 때 층수와 관계없이 계단으로 올라간다. 건강을 위하는 척하지만 실은 엘리베이터가 엄청 무섭다. 처음 고백한다.

    에디터
    김나랑
    포토그래퍼
    PAOLO RAE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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