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 홈커밍> – 노동자 계급의 슈퍼히어로와 빌런이 만났을 때
마블 코믹스의 대표적인 슈퍼히어로이면서 마블이 영화 제작에 나서기 이전 영화화 판권을 소니 픽쳐스에 넘겨주어 남의 자식 취급을 받던 스파이더맨이 화려하게 ‘귀향(homecoming)’했다. 슈퍼히어로 영화의 명가답게 스파이더맨을 다루는 마블의 솜씨는 그야말로 천의무봉이다.
잘 알려졌듯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존 왓츠 감독의 <스파이더맨: 홈커밍> 이전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2002, 2004, 2007)과 마크 웹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012, 2014) 시리즈가 있었다. 벌써 두 번째 리부트인 셈인데 이처럼 빈번하게 영화화되는 슈퍼히어로는 슈퍼맨과 배트맨을 제외하면 스파이더맨 정도다. 그만큼 사랑 받고 있을 뿐 아니라 이들 슈퍼히어로가 각각 품고 있는 ‘어떤’ 세계관이 보편성을 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스파이더맨: 홈커밍>을 다루는 글이니 스파이더맨 입장에서 이에 관해 설명해볼까 한다.
이 영화의 스파이더맨/ 피터 파커(톰 홀랜드)는 15살 소년이다. 팀 아이언맨의 정식 멤버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다. 신체적 능력이 보통 인간을 훨씬 능가한다고 해도 이 세상의 정의는 단순히 물리적 힘의 역량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래서 피터에게 첨단의 수트를 선물한 아이언맨/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위험한 일은 하지 말라며 조언한다. 토니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질풍노도의 시기의 피터는 자신의 ‘슈퍼’한 능력으로 ‘히어로’의 존재를 각인시켜줄 악당 벌처/아드리안 툼즈(마이클 키튼)와 맞선다.
근데 이 악당, 단순한 빌런으로 보기에는 배경이 예사롭지 않다. 벌처가 되기 전 아드리안은 산업폐기물처리 용역업체를 운영하는 대표자 격이었다. 특히 <어벤져스>(2012)의 어벤져스 멤버와 치타우리 종족 간 뉴욕 전쟁으로 남겨진 외계 물질 수거 작업의 용역을 따내기 위해 전 재산을 바쳤던 터다. 이를 토니가 운영하는 스타크 기업이 자본과 권력의 힘으로 밀어붙여 업무를 빼앗아가자 아드리안은 딸을 가진 평범한 가장에서 악당으로 돌변한다.
대개 슈퍼히어로물은 특성상 비현실적이라고 규정되고는 한다. <스파이더맨: 홈커밍>의 경우, 현대 자본주의의 계급 피라미드를 배경으로 슈퍼히어로의 사회학을 다룬다는 점에서 현실 반영의 접근이 농후하다. 이는 스파이더맨이 토니 스타크의 표현을 빌리자면, ‘노동자 계급의 슈퍼히어로’인 까닭에 가능한 설정이다. 이에 존 왓츠 감독은 ‘스파이더맨’ 서사의 원형에 속하는 피터 파커의 출생의 비밀과 숙부가 없는 이유 등의 사연은 과감히 건너뛰고 현대 자본주의 시스템의 거미줄 안에서 혼란을 겪는 피터의 성장통에 집중한다.
현대 자본주의, 즉 신자본주의 시대의 권력 관계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으로 이분화되지 않는다. 자본가와 노동자 각각의 계층 내에서도 서열이 형성된다. 같은 자본가층에 속해도 토니 스타크와 아드리안 툼즈의 적대 관계는 초대형 기업과 이름 없는 회사 간의 힘의 먹이사슬이 형성된다. 다만, <스파이더맨: 홈커밍>은 이들의 적대 관계를 배경으로 가져가되 주요 플롯은 피터와 아드리안 간의 대립으로 가져간다. 그도 그럴 것이 토니와 같은 대기업의 오너에게 아드리안과 같은 작은 회사의 수장은 말단 직원의 존재만큼이나 인식 밖에 있다.
요컨대, 아드리안이나 피터나 토니보다 계급상 힘이 약하다는 점에서 같은 부류에 속하는 계층인 셈이다. 과거였다면 이들이 연대하거나 한 명이라도 계급 피라미드의 꼭대기 인물과 대립 구도를 형성했을 터. 하지만 현대에는 자본가들이 법망을 피해 구축한 갑을 관계 시스템의 교묘한 거미줄에 걸려 손을 잡아야 할 이들끼리 싸워야 하는 얄궂은 운명으로 바뀌었다. 신자본주의 시대의 비극은 여기서 출발한다. 피터가 이를 인식하고 혼란에 빠지는 결정적인 계기는 파티에 함께 가기 위해 짝사랑하는 학교 친구 리즈(로라 헤리어)의 집을 방문하면서다.
문을 열어주는 이는 다름 아닌 아드리안. 피터는 원수의 딸을 사랑하고 있었다! 친아버지가 부재한 피터의 유사 아버지 역할을 토니 스타크가 맡고 있다는 점에서 <스파이더맨: 홈커밍>의 대립 구도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떠올리게 한다. 셰익스피어 원작은 로미오의 몬터규가와 줄리엣의 캐플렛가가 왜 원수지간이 되었는지에 대해 정확히 설명하지 않느다. 만약 현대가 배경이고 슈퍼히어로물로 개비한다면 스타크 가문의 피터와 툼스 가문의 리즈가 새로운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 해도 과장되어 보이지 않는다.
과연 피터와 리즈의 사랑은 이뤄질 수 있을까? 아무리 초인적인 능력을 갖췄다고 해도 슈퍼히어로가 이를 바꾸기에 세상은 만만치 않다. 신자본주의는 벌처 같은 악당이 인간적으로 보일 만큼 무시무시한 빌런이 되었다. 15살 소년이 넘어야 할 세상의 벽이 너무 높아 보인다.
- 글
- 허남웅(영화평론가)
- 에디터
- 윤혜정
- 사진
- 소니 픽쳐스 제공
추천기사
인기기사
지금 인기 있는 뷰티 기사
PEOPLE NOW
지금, 보그가 주목하는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