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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시장에 강력한 돌연변이가 등장했다. 보틀 디자인부터 향, 광고 영상까지 겐조 향수 역사의 세대교체.
2016년 어느 겨울 낮, 스물한 살짜리 노스캐롤라이나 출신 여배우 마가렛 퀄리가 뉴욕의 한 아파트 입구에 도착했다. 이곳은 <존 말코비치 되기> <괴물들이 사는 나라> <그녀> 같은 작품으로 아카데미 시상식과 골든 글로브 시상식을 휩쓴 미국 유명 영화감독 스파이크 존즈의 집이자 그의 새로운 프로젝트 ‘겐조 월드’ 향수 광고 촬영을 위한 오디션장. “춤추고 싶나요?” 순진한 얼굴로 앉아 있는 마가렛을 향한 스파이크의 첫 질문이었다. 배경음악은 DJ 샘 스피겔 & 에이프 드럼스의 ‘뮤턴트 브레인’. 우리말로 직역하면 ‘돌연변이 뇌’. 긴장 상태의 여배우에게 내린 스파이크의 지령은 단 하나다. “마가렛, 당신의 몸이 당신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여야 해요.” 사이코패스 환자를 연상케 하는 연기는 지난 6월 말, 프랑스 칸에서 열린 ‘칸 라이언즈’ 국제 광고제에서 가장 권위 있는 티타늄 라이언 상을 비롯해 금상 2개, 은상 2개, 동상 3개 등 총 8개 부문 수상의 영예를 안겼다. 론칭에 앞서 공개된 ‘겐조 월드’ 광고 캠페인은 퍼포먼스와 안무 연출이 뒤섞인 뮤지컬 같은 독특한 장르다. “정신없는 일상 한가운데에서 눈으로 볼 수 있는 한 멀리, 쉼 없이 움직이고 달리는 우리의 꿈과 열정을 묘사했어요.” 스파이크 존즈의 설명이다. 영상 공개 시점부터 지금까지 유튜브 조회 수 660만 뷰를 달성한 ‘겐조 월드’의 공식 론칭은 9월 1일. 지난 5월, <보그 코리아> 뷰티팀 앞으로 특별한 초대장이 도착했다. 미팅장은 도쿄 최대 쇼핑 명소로 떠오른 긴자 식스 겐조 매장. ‘겐조 월드’를 탄생시킨 겐조 아티스틱 디렉터 움베르토 레온과 캐롤림과의 <보그 코리아> 단독 인터뷰는 그렇게 시작됐다.
Vogue Korea 2011년 겐조의 아티스틱 디렉터로 임명됐으니 햇수로 6년 만에 나온 향수입니다. 언제 처음 향수 제작에 착수했나요?
Carol Lim 우리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탁된 이래 겐조 퍼퓸과 끊임없이 향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된 건 2년 전쯤으로 기억해요.
Humberto Leon 정확히 말하면 재작년 9월이었어요. 이야기의 시작은 향기부터. 향이 정해진 다음 보틀 디자인, 패키지, 마지막으로 광고. 이렇게 단계별로 진행했죠.
Vogue 조향은 프란시스 커정이 맡았어요. 2002년 ‘겐조키 로투스 블랑’ 작업 이후 겐조와 무려 14년 만에 재회한 셈이었죠. 그와의 작업은 어땠나요?
Humberto 커정과 소통하는 모든 과정이 흥미로웠어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자유롭고 개성 넘치며 자존감 강한 여성성을 나타내줄 ‘향’이었죠. 우린 어떠한 방식으로 여성성을 드러낼지 머리를 맞대고 오랜 시간 고민했어요. 다소 막연한 생각일 수 있지만 향수 사용으로 인해 생기는 여성의 긍정적 변화 과정을 향으로 표현하고 싶었고 ‘겐조 월드’가 바로 그 결과물입니다.
Carol 잊지 못할 황홀한 경험이었어요. 알다시피 커정은 엄청난 재능을 가진 스타 조향사잖아요. 예상을 뛰어넘는 탁월한 안목으로 커정은 우리 두 사람을 유연하게 이끌어주었어요. 이번 작업에 있어 커정보다 더 적합한 사람은 없다고 단정 지을 만큼 매 순간 훌륭한 파트너십을 보여줬죠.
Vogue 미국 보그닷컴과 인터뷰에서 ‘겐조 월드’를 일컬어 ‘파리의 꽃향기와 캘리포니아의 신선함의 조화’라 표현했어요.
Humberto 맞아요. 처음엔 라즈 베리, 피오니, 재스민 등 꽃 과일 향기가 많이 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푸릇푸릇한 풀 향, 신선함이 당신의 후각을 기분 좋게 자극합니다.
Carol 우리가 ‘겐조 월드’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해요. 서로 다른 매력을 지닌 향기의 조화로움이 그것이죠. 첫 향은 아주 깊고 풍부하지만 가볍게 흐르는 잔향이 무척 매력적이니 꼭 한번 시도해보세요.
Vogue 향수는 단순한 악취 제거제의 기능을 넘어 한 사람의 취향을 드러내는 도구로 자리매김했어요. 그래서 말인데 평소 어떤 향을 좋아했나요?
Humberto 제 인생 최초 향수이자 여전히 애용하는 향수는 캘리포니아 베이스의 ‘장다름(Gendarme)’이에요. 오늘 아침 뿌리고 나온 향수이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향이라 남성 향수에 접목하고 싶은 부분이 많아요.
Carol 향에 대한 추억 최전방엔 어머니가 즐겨 사용하던 에센셜 오일이 있어요. 어떤 브랜드인지 또 어떤 제품인지 정확히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코끝을 자극하는 매혹적인 라벤더, 장미 같은 지극히 자연의 향을 담고 있었던 걸로 기억해요. 여전히 제가 가장 좋아하는 향조이고요.
Vogue 아무리 봐도 광고 영상과 향수병 모두 기존 겐조 향수에선 볼 수 없던 파격 그 자체입니다.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을 꼽아본다면요?
Humberto 이런, 아주 어려운 질문이군요.(웃음) 딱 하나만 꼽긴 어렵지만 제일 좋아하는 장면은 2분 30초경 여주인공 마가렛 퀄리가 복도에서 손끝으로 레이저를 쏘는 신과 거대한 눈 모양 꽃 장식을 깨부수고 나오는 마지막 신이에요. 그 어떠한 향수 광고에서도 볼 수 없는 참신한 연출이라 자부합니다.
Carol 동의해요. 저 역시 움베르토가 언급한 마지막 장면을 가장 좋아해요. 덧붙이자면 이 장면은 일상적인 순간을 벗어나고자 하는 여인의 본능적 마인드를 표현하고 있어요. 아주 통쾌하죠. 영상을 보는 이들도 우리와 동일한 감정을 느낄 거라 확신합니다.
Vogue 패션 브랜드의 향수엔 패션 DNA가 한껏 녹아 있습니다. ‘겐조 월드’엔 겐조 패션의 어떤 부분을 담았나요?
Carol ‘겐조 월드’를 통해 이제껏 겐조 패션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해주고 싶었어요. 겐조의 패션 철학과 마찬가지로 ‘겐조 월드’ 역시 자유분방하면서도 세련된 이라면 누구든 쉽게 다가올 수 있는 그런 겐조만의 젊은 감성을 향수 한 병에 가득 담았죠.
Vogue 우리에게 익숙한 겐조 향수의 이름은 대부분 꽃, 물, 공기, 사랑 등 서정적 단어로 이뤄집니다. 이와는 사뭇 다른 ‘겐조 월드’라는 도시적 네이밍엔 어떤 의미가 내포되어 있나요?
Humberto 말 그대로 ‘세상’에 초점을 맞췄어요. 누구나 감싸 안을 수 있고 바라볼 수 있으며 자기만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이 모든 요소를 아우를 최적의 이름이죠.
Carol 제 생각은 좀 달라요. 전 ‘겐조 월드’를 통해 겐조 하우스를 표현하고 싶었어요. 다카다 겐조 시절 겐조 하우스는 모든 인종과 성별, 나이를 아우르는 민주적인 브랜드였어요. 겐조가 추구하는 하나의 세상, 하나의 이상향 같은 관점을 ‘겐조 월드’를 통해 전파하길 원했죠. 또 한 가지, ‘겐조 월드’는 우리 모두가 흥미롭게 여길 수 있는 이상 세계를 나타냅니다.
Vogue 이번 작업을 함께한 스파이크 존즈, 패트릭 리는 유능한 필름 디렉터, 보틀 디자이너이기 이전에 당신들의 오랜 친구입니다. 이들과의 인연과 작업 과정이 궁금해요.
Humberto 스파이크 존즈와는 12년, 패트릭 리와는 10년 지기 친구예요. 우린 이번 ‘겐조 월드’ 프로젝트를 위해 한마음으로 모였고 고상하기만 한 향수 시장에 파격을 전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해야 고정관념을 깨고 색다른 비주얼을 창조해낼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죠. 세상을 다르게 보기 위해선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는 결론 아래 우린 끊임없이 소통했고,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왔습니다.
Carol 그들은 서로 다른 필드에서 굉장히 훌륭한 업적을 내는 자랑스러운 친구들입니다. 이런 그들과 함께 이토록 의미 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었던 점에서 우린 굉장한 행운아라고 생각해요.
Vogue 지난 12월 파리에서 진행한 ‘겐조 월드’ 프레스 행사에 브래들리 쿠퍼, 아지즈 안사리, 몰리 베어, 미아 모레티 등이 자리를 빛냈어요. 이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Humberto 하나같이 호의적이고 긍정적인 반응을 내비쳤어요. 아주 믿음직한 친구들이죠. 하하! 참, 벌써부터 남성 버전의 향수를 기대하는 분도 있었어요. 제작자로서 아주 기분 좋은 코멘트였죠.
Carol 아주 감사하게도 모두 각기 다른 관점에서 ‘겐조 월드’를 즐겼어요. 보틀, 패키지, 향수의 스토리텔링, 광고 영상, 향기까지!
Vogue ‘겐조 월드’ 이야기는 여기까지. 둘 다 한국을 정말 좋아한다고 들었어요. 최근 서울을 방문한 적이 있나요?
Humberto 눈치챘군요. 우리 둘 다 한국 마니아예요. 음식, 쇼핑, 모든 면에서 흠잡을 데 없죠. 갈 때마다 개성 있는 메이드 인 코리아 브랜드를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Carol K-패션, K-뷰티 모두 매력 넘쳐요. 뭐랄까, 굉장히 독특하면서도 진보적이죠. 한국인들은 패션에 대한 안목이 정말 남달라요. 제가 한국계여서인지 모르겠지만 전 세계에 불어닥친 K-열풍은 한국 문화가 한몫했다고 봅니다. 참, 지난봄 청담동에 겐조 플래그십 스토어가 오픈했는데 아직 가보지 못했어요. 이걸 핑계 삼아 곧 가야겠군요.
- 에디터
- 이주현
- 포토그래퍼
- GETTYIMAGESKOREA, COURTESY OF KENZO PARFU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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