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니스

레나 던햄, 자궁과 이별하다.

2018.04.12

by VOGUE

    레나 던햄, 자궁과 이별하다.

    계속되는 자궁내막증과 참을 수 없는 통증. 서른한 살의 재능 있는 영화감독 겸 배우 레나 던햄은 결단을 내려야 했다. 아예 자궁을 떼어내기로 한 것이다.

    No Title, 1960, Eva Hesse

    “혈압이 낮네요. 30분 후에 다시 체크할게요. 임신할 가능성이 있냐고요? 물론 없죠. 방금 자궁절제술을 받으셨잖아요.” 주사로 혈액응고 방지제를 투여하던 간호사가 어색하게 미간을 찌푸린다. 아직은 젊은 여자 환자에게 “이제 당신은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시켜야 하는 업무를 난처해하지 않도록 장난기 섞인 답을 던져야겠다. “의사가 어제 엉뚱한 장기를 떼어낸 거 아니에요?” 내가 아이를 낳을 수 있을지 묻고, 간호사가 난감해하면 반은 장난인 양 받아치는 대화가 반복된다. 걸을 수조차 없을 때 시술한다는 주사 덕분에 배는 별자리 같은 멍 자국이 가득하다. 나는 이런 것들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자궁과 이별하기 전날 밤. 나는 무릎을 가슴에 모아 당기고 곰 인형을 꼭 끌어안은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담당 간호사는 모델처럼 매력적이고 냉소적이며 좀 특이했다. 나는 그녀가 병실을 순회할 때 환자들의 상태를 입력하고 처방된 약을 스캔하기 위해서 끌고 다니는 커다란 컴퓨터로 이것저것을 검색해달라고 부탁했다. 담당 의사들이 이미 많은 이야기를 해줬지만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었다. 제거한 자궁경관을 어떻게 처리할 건지, 모양은 어떻게 생겼고 그 목적은 무엇인지, 의사들이 그 안에 구멍을 남길지, 즉각적으로 호르몬 수치가 떨어지는 것이 체감되는지 등을 묻고 또 물었다. 마지막 질문은 난소의 유효기간. “난자를 채취하기 전에 내 난소가 죽어갈 확률, 즉 폐경기가 시작될 확률은 얼마나 되나요?” 결국 모든 걸 잃게 될 수도 있는지에 대해 물은 것이다. “임신할 가능성이 있냐고요?” 간호사가 약을 건네며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반문하기에 “글쎄요, 내일 이후엔 없겠죠”라고 내가 선수를 쳤다. 아무도 간호사가 농담하는 걸 좋아하진 않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불임을 선고해야 하는 순간을 맞게 된다면 그에 적절한 단어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자궁절제술을 받기 전 12일간 입원해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간호사, 의사, 영양사, 목사의 동정 섞인 한숨에 아주 익숙해졌다. 서른한 살이지만 열아홉 살의 얼굴을 하고 있는, 강아지 무늬 파자마를 입은 파란 머리 여자. 그들은 병원 침대에 웅크리고 있는 나를 볼 때면 미묘하게 숨을 들이쉬곤 했다. 그런 숨소리가 밉지 않았다. 그들이 그저 안타까워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모르는 사람에게 동정심을 느끼는 것은 친절한 일이다. 그것이 잘난 체하는 것처럼 느껴지거나, 마치 리얼리티 TV 취향 여자들의 호들갑스러운 가짜 공감처럼 느껴지더라도 말이다.

    솔직히 내가 아이를 갖게 될 거라는 사실을 의심해본 적은 없었다. 가족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된 이래 단 한 번도 말이다. 임신은 모든 상상의 아름다운 시작이었다. 어릴 때는 건조기에서 막 꺼낸 빨래를 셔츠 안에 가득 쑤셔 넣고 뽐내듯 거실을 행진했고, 다 커서는 TV 드라마에서 임신부로 분장한 배를 무의식적으로 쓰다듬으며 편안해했다. 친구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소름 끼친다”고 말할 정도였다. 평소라면 퉁명스럽게 아침 업무에만 집중하던 남자 스태프들이 너무도 친절하게 나를 배려했다. 비록 배에 들어 있는 건 일본에서 주문한 실리콘이지만, 사람들은 마치 내가 메시아를 품고 있는 것처럼 떠받들었다. 이것이 임신의 원초적 힘이구나! 나는 언젠가 이런 가슴 보형물 말고, 자연의 섭리에 따라 배가 불러올 순간을 고대했다.

    아이를 갖고 싶다는 열망. 하지만 동시에 그것에 필적할 만한 문제가 내 몸 안, 자궁에 자리하고 있음도 알고 있었다. 수많은 테스트를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잘못된 건 확실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확증할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아야만 했던 나의 자궁. 미궁에 빠진 선천적인 결함 때문에 나는 지난 10년 동안 지독한 자궁내막증과 싸워야 했다. 이번이 무려 아홉 번째 수술. 의사들은 아직도 확실한 얘기를 해주지 않는다. 그들은 “유산할 확률이 약간 높아졌다”고 말한 적도 있고, “제 기능을 하는 걸 영원히 기다리진 말라”고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마흔 번도 넘는 자궁경부 초음파 검사를 할 때면 “저 난포들을 좀 보세요! 조심하지 않으면 당장 다음 주에라도 아이를 가지겠는걸요!” 같은 말을 한다. 나의 가임 능력을 보존하는 것, 그것이 의사들이 생각하는 임무이자 목표인 걸까? 나는 소리 내어 웃다가 미소 지었다. 그리고 알게 됐다. 스크린에 캡처된 텅 빈 검은 공간, 비어 있는 자궁이 앞으로 내가 보게 될 전부라는 걸 말이다.

    8월이 되자 통증이 참을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아팠지만 역시 이번에도 의사들은 그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초음파에는 낭종도, 액체도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아기도 없었다. 사람 목소리가 텔레토비 노래처럼 들릴 지경에 이른 나에게 이런 애매한 진단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 정도의 극심한 통증이 계속된다면 나는 결코 누군가의 엄마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설사 임신한다 하더라도, 결국 유산하고 말겠지.

    8월부터 11월까지, 석 달은 이 새로운 차원의 통증을 이겨내려 필사적으로 노력한 시기였다. 몸속에서 나를 괴롭히는 것의 정체가 무엇이든 이겨내겠다는 결심을 다졌다. 얼마나 열심히였는지 마치 이게 두 번째 직업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골반저 테라피, 마사지, 통증 치료, 컬러 테라피, 침술, 요가는 물론 낯선 사람이 시술하는 소름 끼치는 질 마사지 공격까지 감행했다. 하지만 결국엔 의사에게 묻고 말았다. “내 자궁을 꺼내야 할까요?” 그녀의 대답은 “지켜봅시다”. 그로부터 이틀 후 나는 입원했고 “이 통증을 멈춰주거나 내 자궁을 꺼내줄 때까지 나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제 정말 안 되겠으니 ‘그녀’, 내 자궁을 데려가달라고 말이다.

    의사들은 나의 이런 간청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의료 과실 소송은 실재하고 대부분의 여성들은 자궁에 애착을 갖고 있으니까. 불임이 현실로 인식되고 그것이 분노로 바뀌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기에, 의사에게는 자신의 환자가 수술한 후에도 변심하지 않을 단호한 사람이라는 증거가 필요하다. 그래서 통증을 가라앉힐 의료용 헤로인을 맞는 동안 ‘나는 서른두 살이 되기 전에 자궁을 제거하더라도 앞으로 잘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요지의 1,000단어 에세이를 썼다. “자궁절제술이 모든 사람에게 옳은 선택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수술로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이 사라질 거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 또한 잘 압니다. 여성들이 가임기를 어떻게 보낼 것인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당신의 깊고, 본질적이며, 페미니스트적인 믿음 때문에 수술을 실시하려 한다는 걸 인지하고 있습니다.”

    우리 가족이 원하는 것은 내가 다시 행복해지는 것뿐이다. 허튼 농담으로 상황을 포장하려 해봤지만 그들은 처음으로 두려움에 떨었다. 아버지는 내가 잠든 동안 내 가슴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숨소리를 체크했다. 통증에 시달리는 동안 연민과 걱정으로 나를 보살펴준 아름다운 파트너는 일 때문에 먼 곳에 있었다. 우리가 서서히 멀어지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삶이 너무나도 단호하게 인생은 만만치 않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차갑고 못되게 굴며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다. 그는 내가 아직 여자이고 살아 있다는 것을 재차 상기시켜주려 했지만, 자궁 문제가 아닌, 다른 이유로라도 우리는 곧 헤어지게 될 것이고 나는 서서히 모든 걸 잃게 되리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중 나를 보러 들르는 인턴들 중 한 명을 타깃 삼아 물었다. “몇 살이에요? 어디 살죠?” 그는 스물일곱 살이라 답했고 나는 분노했다. 그가 삶에 대해 무엇을 알까? 이런 고통을 느껴본 적은 있을까? 이런 허상 같은 선택을 해야만 하는 상황을 맞닥뜨린 적이 있겠는가? 이 남자는 왜 누가 봐도 컨디션이 엉망일 때조차 늘 “좋은 오후예요”라고 인사를 하는 거지? 그는 진통제에 인색했고 내게 왜 그냥 집에 돌아가서 수술을 기다리지 않느냐고 물었다.

    병원에 머문 지 6일째 되는 날, 자궁을 제거하지 않고 통증만 가라앉히기 위한 마지막 도전에 나섰다. 자궁 확장과 소파수술을 받기로 한 거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나는 출산 유도제 픽토신(피토신??)을 링거로 맞으며 회복 병동에 누워 있었다. 예상대로라면 내 자궁은 수축돼야만 했다. 하지만 다시 한번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의학적 이유로 자궁은 수축되길 거부했고 나는 테니스 시합 때나 들을 법한 신음 소리를 뱉으며 무려 7시간 동안 ‘출산 중’이었다. 출산과 가장 유사한 경험을 하고 있다는 건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내 곁을 지키고 있는 건 ‘레나 던햄이 왜 TV에서 그렇게 자주 누드로 등장하는지’ 큰 소리로 궁금해하는 스태튼아일랜드 출신의 간호사. 이 아이러니한 상황에 좋은 점이 있다면 마침내 의사들이 내 자궁이 ‘나쁜 씨앗’이라고 결론 내리게 된 것. 나의 자궁은 고전 영화 속 금발의 갈래머리를 한 악마 같은 아이, 로다(영화 <나쁜 종자(The Bad Seed)>에 등장하는 로다 펜마크)처럼 정상적이고 즐거워 보이지만 사실 알고 보면 화로 가득 차 있고, 지쳐 있어서 누구를 위한 집도 되어줄 수 없었던 거다.

    수술 당일 아침 6시, 가장 좋아하는 간호조무사가 나를 깨웠다. 양발에 <웨인즈 월드(Wayne’s World)> 문신을 하고, 어린 나이에 아들을 출산한 경험이 있는 사랑스럽고 친근한 사람이었다. “준비됐어요?” 그녀가 물었다. 나는 눈물을 참았다. 가족들이 수술실로 향하는 침대를 따랐고, 나는 늘 하는 스탠드업 코미디를 시전했다. “여기 누구 자궁 포기하고 싶은 사람? 한 번 수술하면 한 번은 서비스로 해준다고 들었어요. 아빠, 같이 할래요?” 엉엉 울고 싶었지만, 여기서 그러면 안 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훌쩍이면 확신이 없어 보일 것이고, 그러면 모든 것이 뒤집힐지도 모른다. 울먹이는 와중에도 주저함은 없었다.

    수술실에 들어서자 아이티 출신의 사랑스러운 마취과 의사, 랄맨드가 좋아하는 리한나의 노래를 고르게 해주었다. 적어도 열두 명은 넘는 사람들이 마스크와 푸른 수술복 차림으로 대기 중이었고 나는 순간적으로 중력을 흡수하려고 애썼다. 당장 도망칠 수도 있었지만 그냥 남아서 수술을 받는 쪽을 택했다. 더 많은 치료, 더 심한 통증, 더 많은 불확실성을 포기하고 진심으로 이 길을 선택했다는 걸 인정해야 했으니까. 약이 혈류를 흐르기 시작하자 시야가 기분 좋게 흐려졌다. 잠시 동안은 아무것도 느끼지 않아도 되리라.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 내 결정이 옳았다고 얘기하고 싶어 안달이 난 가족과 의사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자궁 상태는 상상 이상으로 나빴다. 마치 애매하지만 확실한 결함으로 가득한 차이나타운의 샤넬 백 같은 악몽이었다. 자궁내막증, 혹 같은 이상한 돌출부, 중간을 가로지르는 격막, 게다가 생리 주기 때 피가 거꾸로 흐르는 역류성 출혈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배 속이 피로 가득했다. 난소는 걸음을 걸을 때 쓰는 천골신경 둘레 근육에 붙어 있다. 자궁내막의 상태? 말할 필요도 없다. 유일하게 아름다운 사실은 본래는 전구처럼 생겨야 하는 이 장기가 하트 모양을 하고 있었다는 것뿐. 병실로 돌아오자 어깨, 엉덩이, 발목 복사뼈같이 엉뚱한 곳들이 아파왔다.

    몇 달이 지났다. 소소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나의 육체는 챔피언처럼 회복되고 있다. 골반 신경이 꽉 조여 다리를 저는 모양새긴 하지만 출산 선물로 직접 구입한 새 발렌시아가 부츠인 양 흔들어대면 된다. 내 마음, 내 영혼? 그건 전혀 다른 얘기다. 나는 그간 통증을 인정받기 위해 너무 애를 쓰느라 두려움이나 슬픔을 느낄 틈이 없었다. 작별을 고할 시간도 없었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나에게 애도는 사치였다. 끔찍한 클리셰 같지만, 나는 수공예를 시작했다. 그리고 욕조나 공예실에서 혼자 엉엉 운다.

    많은 친구들이 임신을 했거나 하려고 노력 중이다. 나는 내가 끔찍하게 반응할까 봐 걱정이다. 씁쓸하게 발길을 돌리거나, 베이비 샤워 때 샴페인을 너무 많이 마시는 것 같은 행동 말이다. 늙고 슬픈 레나 이모! 하지만 동시에 그들의 아이를 만날 날이 간절히 기다려지기도 한다(속으로 할리우드 아기들의 이름을 비웃긴 하는데 그건 내가 임신 가능한 몸이었더라도 그랬을 거니까 괜찮다). 소노그램과 인스타그램 피드는 제구실을 못하는 자궁을 품고 있을 때만큼 상처가 되지는 않는다. 나의 아이였을지도 모르는 아이, 그 잃어버린 가능성을 가슴에 품고, 우울하고 불안정한 걸음을 걸으며 나는 중심을 잡아가고 있다.

    예전이라면 더 이상 방법이 없다고 느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선택도 있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몸속 그 거대한 동굴과 반흔 조직 어딘가에 아직 난소가 자리하고 있으니 난자 역시 남아 있는지 확인해보려 한다(뇌는 신체 기관의 나머지가 사라졌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매달 난자가 활동을 하긴 한다). 입양도 내가 전력투구할 아주 신나는 일 중 하나다.

    나는 볼록하게 부풀어 오른 임신한 배를 원했다. 아이와 함께하는 온전한 아홉 달이 어떤 느낌일지 알고 싶었다. 그럴 운명으로 태어났지만 결국 면접을 통과하지는 못한 여자. 하지만 괜찮다. 정말 괜찮다. 지금 당장은 믿기지 않을지 모르지만 곧 납득하게 될 거다. 이제 남겨진 건 나의 이야기와 흉터뿐. 그리고 그것 역시 점점 희미해질 것이다.

      에디터
      백지수
      포토그래퍼
      COURTESY OF HAUSER & WIRTH, HESSE20469.JPG
      글쓴이
      레나 던햄
      그림
      Eva Hes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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